흑인 오르페
마르페사 오운 외, 마르셀 까뮈 / 피터팬픽쳐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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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속 사랑의 비극이라면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사랑이 브라질의 리우에서 펼쳐지는 카니발을 무대로 다시 살아난다. 1959년 깐느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마르셀 까뮈 감독 작품이다. 

두 아름다운 남녀의 이야기는 유명한 것이고, 무대의 시공간은 현대, 브라질. 카니발의 흥분과 열정, 그 혼란 속에서 비극적인 사랑이 시작되는데, 다 아는 이야기인데도 끝까지 기대를 놓지 않게 만든다. 오히려 고대적부터 내려오는 그 아는 이야기가 어떻게 현대에서 재해석 되는지를 기다려보게 만든다. 작품 전체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댓구를 이루며 흥미롭다. 극중 오르페우스, 에우리디스, 헤르메스, 케르베로스, 에우리디스를 소유하고자 따라다니는 '죽음'의 복장을 한 이, 오르페우스를 따라다니는, 결국은 돌로 쳐서 오르페를 죽이게 되는 여자들이 완성해가는 이야기는 그대로 신화의 세계다. 오르페가 에우리디스를 찾아 끝없이 내려가는 계단은 마치 하데스가 지배하는 지하세계로 내려가는 그 깊고 끝없는 내리막길을 닮았다.  

영화 내내, 타악기로 두드려대는 흥겹고도 주술적인 음악이 이 이야기와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이야. 카니발은 그대로 비이성과 주술적 제례의 정서를 담고 있다. 억눌린 현재의 카타르시스의 시간은 사실상 광기의 시간이기도 하다. 오직 춤추고, 두드리고, 고함지르는 그들의 모습은 생경하되 신비롭다. 삶의 흥은 저기에, 저들에게 있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 두드림과 스텝 속에서 홀연 떠오르는 감미롭되 쓸쓸한 멜로디, 오르페우스가 읊조리는 아름다운 허밍으로 시작하는 '카니발의 아침'은 매혹적이다.  

오래된 이 영화를 다시 본다는 것은 내게 남미, 브라질의 발견이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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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오르페
마르페사 오운 외, 마르셀 까뮈 / 피터팬픽쳐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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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스의 운명이 브라질의 삼바 음악과 카니발을 타고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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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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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이든 희극이든, 소설과 영화 속의 무수한 히어로들은 전적으로 아름다운 히로인을 위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것만이 사랑받을 수 있다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인간은 너무너무, 실은 우매할 정도로 아름다운 것만을 사랑하고 사랑해 왔습니다. (단언컨대, 인류는 단 한 번도 못생긴 여자를 사랑해 주지 않았습니다. 만약 진실로 그런 남자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를 네오 아담이라 불러야 할 것입니다.)... 

권력과 부가 남성에게 부과된 힘이었다면, 미모는 소수의 여성만이 얻을 수 있는 강력한 힘이었습니다. 여성은 아름다워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류가 설정한 진화의 방향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작가는 고민의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이 소설을 미루고 미룰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말, 나는 어떤 식으로든 '아름답지 않았던' '사랑하고 사랑받던' '여자' '주인공'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 여자들이 주인공일 때는 혹은 짝사랑이었고, 혹은 놀림감이었고, 혹은 우울증이었다. 나를 포함해 수많은 세상의 평범한 여자들은, 아름다운 여자, 인간의 사랑 이야기에 어떻게 그렇게 홀린 듯 다 포기한 채  매혹되기만 할 수 있었을까. 저건 내 이야기는 아냐, 라고 한숨을 쉬면서도 말이지.

...여자의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그러니까 권력의 추구다. 이 시대에 그것은 자본의 외피를 입는다. 우리는 그 사실을 날마다 인식하고 있지만, 또한 날마다 살짝 외면한 채 잘 살아간다. 들이대고 진실을 말해, 라고 해봤자, 씁쓸할 뿐이니까.


세상도 마찬가지였다. 마침 <중산층>이란 단어가 한창 사회의 이슈가 되던 무렵이었고.. 이 정도는 몰아야.. 이 정도는 벌어야.. 결국 이 정도는 살아야 - 사는구나, 소리를 듣는 세상이었다. 평균을 올리는 것은 누구인가. 그것을 부추기는 것은 누구이며, 그로 인해 힘들어지는 것은 누구인가.. 또 그로 인해.. 이익을 보는 것은 누구인가. 나는 생각했었다. 자본주의의 바퀴는 부끄러움이고, 자본주의의 동력은 부러움이었다. 닮으려 애를 쓰고 갖추려 기를 쓰는 여자애들을 보며 게다가 이것은 자가발전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부끄러움과 부러움이 있는 한 

인간은 결코 

자본주의의 굴레를 빠져나가지 못한다.  

박민규의, 전지구적 병리현상인 자본주의에 대한 정확한 통찰. 그것이 소설에 녹아난다. <삼미 수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보여주던 해학과 페이소스로 버무린 자본주의 통찰에 이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는 좀더 묵직해진 느낌으로 만난다. 그 묵직함 속에 역시나 군데군데 잊지않고 터져나오는 박민규 식의 유머가 있어 책을 읽는 내내 감정이 출렁인다. 유쾌하고, 쓸쓸하다. 

어디 가? 

술 마시러 가. 

따라가도 돼? 

맘대로 해, 중얼거리자 이내 바싹 군만두가 등 뒤로 따라붙었다. ... 내용물을 알 수 없는 박스 하나를 무겁게 들고 가는 기분이었다.  

'내용물을 알 수 없는 박스 하나', 그리고 그걸 '무겁게 들고 가는 기분'. 박민규가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이런 표현은 사실 책을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선명한 주제 의식에 정면 승부를 거는 진지함을 갖춘 작가가, 분방하고 자유로운 표현과 매력적인 문체를 구사하고 있다면, 그 책은 언제나 읽을 만할 것이다.  그런 작가가,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랑의 조건이란 과연,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인가? 일반적인 -혹은 아름다운, 혹은 근사한- 사랑의 조건이란 결국, 천민자본주의의 산물일 뿐 아닌가...라는, 눈꺼풀에 덮인 분홍 비늘 떼는 소리를 하는 거다. 모두가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미화하고 그것만이 진실이라고 믿는 소리를 하고 있을 때, 박민규가 이야기한다. 분홍빛 비늘을 떼고 봐도 사랑은 있고, 그것은 진실이다,고. 

그해 가을을 살았던 사람들 중 누구보다 큰 이익을 본 사람은 <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랑은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익이었고, 세상의 가장... 큰 이익이었다. 천문학적 이익이란 아마도 이런 걸 뜻하는 게 아닐까, 무렵의 나는 생각했었다.  

그것은 묘한 경험이었다.   ... 

나는 여전했지만 여전하지 않았고, 예전과 달리 누가 누구와 헤어졌대, 누가 누구를 버렸대... 주변의 속삭임에도 마음을 아파하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떠났다는 말은, 누군가의 몸 전체에 - 즉 손끝 발끝의 모세혈관에까지 뿌리를 내린 나무 하나를 , 통째로 흔들어 봅아버렸다는 말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뿌리에 붙은 흙처럼 

딸려, 떨어져나가는 마음 같은 것... 무엇보다 나무가 서 있던 그 자리의 뻥 뚫린 구멍과... 텅 빈 화분처럼 껍데기만 남아 있는 누군가를 떠올리는 상상은... 생각만으로도 아프고, 참담한 것이었다. 그런 나무를 키워본 인간만이, 인생의 천문학적 손실과 이익에 대해 논할 자격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 믿음엔 변함이 없다.  

퉁, 하고 마음 속에 뭣이 떨어지듯 하며 이야기가 이어졌다. 뒤로 갈수록 가팔라지는 이야기. 여러 개의 여지를 두어 빈 자리를 남겨 놓는 결말. 내용도, 형식도 실험적인 이야기책. 박민규의 실험에 공감하여 주변 사람들을 건드린다. "읽어봐, 읽고 얘기해." 

말미에 붙은 '작가의 말' 중에 너무나 맘에 드는 구절이 있었다. 수첩에 적어 두기까지 했다.. 

결국 이 세계는 당신과 나의 <상상력>에 불과한 것이고, 우리의 상상에 따라 우리를 불편하게 해온 모든 진리는 언젠가 곧 시시한 것으로 전락할 거라 저는 믿습니다. 

그래, 그의 말대로, 와와 하지 말고 예예 하지 말아보자. 한 권 소설을 읽는 이유는 그런 데도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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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생태보고서 - 2판
최규석 글 그림 / 거북이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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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꿀하지만, 또 꿋꿋한 청춘이기도 하다. 습지의 해학을 꿰뚫는 최규석다운 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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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최규석 지음 / 길찾기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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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만남에서 앞으로의 최규석의 행보를 기대하게 했던 작품집.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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