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그녀에게 - 서른, 일하는 여자의 그림공감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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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주관적인 그림 읽기.  

그림이 소재라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더불어 서른 즈음의, 기자로 일하는 아직은 싱글인 여자가 느끼는 온갖 것들이 책을 이루는 중요한 소재가 된다. 그녀의 삶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그녀는 그런 일들을 어떻게 느끼고 사는가. 그림을 매개로 하여 들려주는 그녀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는 전문적이지는 않아서 가벼운 것이겠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하나의 그림을 매개로 하여 펼쳐지는 수필의 영역일 것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이제 서른 즈음인 일하는 여자의 생생한 살아가는 이야기일수도 있겠다. 그럼, 도서관에서 빌려온 이 책을 손에 들고 그녀가 읽어주는 그림의 제목들을 먼저 훑어보니 서른 중 스물 정도가 알고 있던 그림이었던 내게는? 그게 내게는 중요한 점이었다.

상당히 주관적이지만 솔직한 그녀,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했으니 그림 읽기란 그녀의 전문 영역이기도 할 것이고, 학창시절부터 인정받을 기회가 있었다는 그녀의 글 솜씨가 바탕이 되어 한 권의 이야기책이 만들어졌다. 재미있고, 쉽게 읽히고 또 자주 솔깃하다.   

예컨대,

어느 날 오후, 함께 따뜻한 차 한 잔을 같이 마시고 싶어서 친구 집에 들렀다. 둘이 함께 식탁에 앉아 차가 우러나길 기다리는데 마침 눈에 띄는 게 있다. 식탁 한 귀퉁이 벽면에 친구가 그림 한 장을 붙여 놓은 것이다. 액자도 없이 어디선가 오려낸 그 그림 한 장, 그것이 내 눈에 쏙 들어오고 순간 내 마음을 휘저어놓는다. 내가 저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는 바로 그 일이 있었을 때였지.. 그때 그 그림은 그저 한 편의 유명한( 혹은 숨겨진) 그림으로서가 아니라 내게는 갑자기 어떤 특별한 의미로 다가와서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었지... 나는 친구랑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그만 잊어버리고 그 그림을 화제로 삼는다. 그때 내게 그 그림이 말이야... 

어쩐지 상상이 가는 이런 상황. 곽아람이 들려주는 그림에 얽힌 이야기는, 바로 그 그림에 얽힌 이야기와 그 그림에 얽힌 자신의 이야기들이다. 실은 자신의 이야기가 더 많은 듯하다. 그래서 쉽게 읽히지만, 다 읽고 나니 그림보다는 그녀의 이야기가 더 기억에 남는다. 전체적으로 그녀가 어떤 사람이구나 하는... 이미지가 남는다. 그래서 내게는, 이 책은 그림이라는 공통의 소재로 풀어나간 여러 편의 에세이를 묶어놓은 책이다. 딱 그만큼의 무게로 '그녀'라는 정체성의 색깔로.   

빈센트 반 고흐의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을 이야기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장녀 콤플렉스를 떠올린다. 고흐와 테오의 평생의 관계를 생각해볼 때, 그건 상당히 일리있는 생각이다. 그녀가 그 한 편 글의 마지막에 붙인 고흐의 편지글은, 섬뜩했다.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돈은 꼭 갚겠다. 안 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어느 날의 일기엔가 그녀는 이렇게 적었다.  

스무 살 때부터 미용사였다는 '히로', 아마도 지금쯤 30대 중반일 '히로', 엄청난 프로 근성으로 나를 감동시켰던 '히로'. 당신도 아직 그곳에 남아 있군요. 당신은 떠나지 못해 갑갑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직도 그곳에 가면 당신의 손에 머리를 맡길 수 있다는 변함없는 사실이, 모든 것이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이 세상이 야속하고 서운한 내게는 큰 위안이 됩니다. 어쩌면 이곳에 남아 있는 나의 존재도 누군가에게 그런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우리, 미래를 향해 질주하다 지나치게 이른 이별을 하는 일 따위는 하지 맙시다. 짙은 녹색의 슬픔을 뿜어낼 남겨진 이들의 마음이 어쩐지 안쓰럽잖아요. 

그때 그녀는, 짙은 녹색의 슬픔을 뿜어내는 그림, 보초니의 '마음의 상태 - 머물러 있는 사람들' 이라는 그림을 생각하면서 일기를 쓴다. 

이렇듯,

마치 함께 식탁에 앉아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놓듯, 그리 가볍지도 그리 무겁지도 않은 그만큼의 어조로 하는 이야기끝에 남는 한 점의 그림. 그녀의 개성이 묻어나는 이야기들. 나는 거기에 기꺼이 동참했고, 그녀의 이야기를 즐겨 들었고, 이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리고 그녀가 소개해준 그림들은, 대체로 내가 공감할 만한 그림들이었다. 하지만,

'그림을 읽어드립니다', 라고 표방하는 수많은 책들이 난무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가 그림 읽어주기를 기다린다는 뜻일까? 혹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남의 그림을 읽어줄 준비가 되었다는 말일까. 어쨌든 그 읽어주는 것과 듣는 것 사이에는 취향이라는 어울림이 있으니, 그토록 수많은 '그림 읽어주는 사람'들의 목소리 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솔깃한 목소리를 골라듣는 맛이 있으니 풍요로와졌다고 해야할까? 혹은 이제는 그 많은 그림읽어준다는 이야기들이 실은 그림과 얽힌 자신의 주관적인 이야기들에 불과할 때가 많다는 걸 받아들여 경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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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네모 로직 Vol.17 - 기적의 숫자퍼즐 네모네모 로직 17
테츠야 니시오 지음 / 제우미디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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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강한 중독성..네모로직 폐인을 만드는 강력한 책. 절제의 미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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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 대논쟁 3 - 민주주의 & 시민 불복종 히스토리아 대논쟁 3
박홍순 지음 / 서해문집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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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시민 불복종'이라는 주제를 껍질, 속살, 씨앗의 관점에서 부딪혀보는 신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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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의 털 사계절 1318 문고 50
김해원 지음 / 사계절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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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왔어야 할 책이 나왔다. 청소년들이 읽을 만한 책으로 나와 반갑기 그지없지만, 역시나 현실을 되새겨야 하는 답답한 마음 누를 수 없다. 

학교에서 강요하는(그들은 '규정'이라고 말하겠지만) 특정 종교 의식을 거부할 당연한 권리를 주장했던 강의석 군이 일호에게 겹친다. 그들은 그저 건전한 상식의 소유자였고, 두려움보다 용기에 방점을 찍었을 뿐이다. 어딘가에서는 너무나 당연해서 말할 거리가 안되기도 하는 일이 또 어딘가에서는 그토록 넘기 어려운 도전이 되기도 한다. 곳곳에 그런 일들이 포진해 있는 세상이다.   

오래전에 조한혜정 교수의 아들인가가, 머리를 깎으라는 명령에 따를 수 없다면서 장문의 사유를 적어 어떤 잡지-아마 '샘이깊은물'이었던가- 에 기고한 걸 본 적이 있다. 조목조목 거침없는 그의 논리는 당당했고 규정을 들먹이는 학교 어른들의 논리는 그 앞에서 얼마나 초라했던가. 그런데 그 초라함이 이렇게 질길 줄이야.

어째서 머리카락의 길이조차(물론 그 머리카락조차 하나의 대표성일 뿐이지만), 자신이 정할 수 없다는 규정을 아직도 그토록 많은 학교들이 고수하고 있는 것일까. 방학이면 숱한 반 친구들이 외국으로 어학 연수를 가는 걸 어느 새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이 땅에서, 3cm가 넘으면 바리깡으로 무지막지하게 머리카락을 밀어버리는 폭력이 어떻게 아직 공존할 수 있다는 건지, 참말 혼란스럽다. 그게 현실이니 어지럽다. 어른이고 아이고, 터널 속에서 뒤엉킨 기분이다.  

일호의 행동은 물론 일호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일호의 가족사와 얽혀있지만, 가족사는 그런 장치로서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도 호기심과 재미를 주는 이야기들이다. 개화파의 이상을 실현한 정도였다는 엄청난 단발령 시행 이래 초대 이발사였던 고조할아버지로부터 이어져내려온 가업이 일호네 식구의 특별한 이력이다. 철없는(?) 아버지는 그 무엇인가를 감당하지 못하고 집을 나가 떠돈 것이 이십여 년,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채 살아온 세월이 가족에게는 저마다의 상처로 남아있다. 그 아버지가 어느날 불쑥, 극적으로 '실재'가 된다. 그리고는 그들은 그 오랜 부재를 그토록 슬며시, 순탄하게 채워나간다. 도대체 그런 일이, 그런 사람들이 가능할까 싶게. 그들의 낭만적인 융화는 마치 그림같아서, 실화라기보다는 마치 상징처럼 읽힌다. 그들의 대사도 실제라기보다는 운율과 같다. 이야기에 끌어온 조선시대 한 자락의 힘이었을까, 그 상징같고 운율같은 것들이 내게는 희한하게 그리 버석거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러려니, 그러니까 작가가 만들어내는 무늬려니 하고 태평스레 받아들이게 했다.  

학교가 강압하는 일호의 '직접행동'을, 일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자신의 방식으로 지지한다. 그 지지의 힘을 받으며, 일호는 생각하며 그 자리에 서 있는다. 소로의 불복종과 카터의 직접행동의 청소년 버전이랄까. 걱정으로 조마조마하지만 일견 머리가 시원해지는 장면이기도 하다. 

해결도 다소 낭만적이다. 억압의 최전선이 우연히, 극적으로 무너지는 것이다. 그걸 무너뜨리는데는 교장의 과거-청소년기의 기억-를 되살려내는 것으로 충분했다. 너 그 단단한 청대도 유년에는 여린 죽순이었으니... 그건 사실 실제의 해결과는 거리가 있겠지만, 어쩐지 이 책에 어울리는 해결일지도 모르겠다. 먼지에 뒤덮인 채 과거에 덮여 있는 학교 안 이발관, 그 속에서 중학생들의 머리에 별 그림을 그려놓는 세습 이발사, 그 이발사에게 머리에 별을 만들어 달라던 중학생 시절의 교장... 어울린다 어울려. 

그래, 이 이야기는 아직도 이 시대에는 실화가 되기 어려울지도 몰라. 동화로 풀지 않으면 안될 만큼의 난제. 고등학생도 아닌, 중학교 1학년생인 송일호에게 너무 큰 짐을 지울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나마 편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지도.  작가가, 정면으로 보되 너무 무겁도록 정직하지는 않게, 그걸 의도했는지도 알 수 없다.  

오광두라는 존재가 자꾸 걸린다. 매독은 분명하다. 무찔러야 할 적일 뿐이다. 오광두는 뭔가? 그저 노회한 이중성인가? 혹은 허울뿐인 양심의 잔재를 희미한 기억으로 갖고 있는 무력한 어른의 자화상인가? 그가 읽고 있던 노란 책은 또 무엇인가? 일호에게 선물한 책은 또 뭘까? 찜찜하다.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 그 이상은 아닐지언정, 일호와 그 아버지의 일화는 오쿠다 히데오의 노란 색이 두드러지는 표지 <남쪽으로 튀어>를 연상시킨다. 어딘가, 비슷하다.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며 책을 읽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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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비교도감
김옥임.남정칠 지음, 이원규 사진 / 현암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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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도감에서 좀처럼 풀기어려운 궁금한 점들을 모으니 썩 유용한 비교도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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