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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곰의 가을 나들이 - 3~8세 ㅣ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26
데지마 게이자부로 글 그림, 정근 옮김 / 보림 / 1996년 9월
평점 :
이 한 권의 그림책을 처음 손에 들고 느꼈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림책이 이럴 수도 있구나.. 그런 심정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림책을 보기 시작한 초기였는데 한 마디로 놀라웠다.
데지마 게이자부로의 그림에 반해서 다른 여러 권의 그림책을 사서 보았고, 그림들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내게는 여전히 이 그림책이 가장 맘에 든다. 주인공이 아기곰과 엄마곰이어서일까.
목판화 기법인가? 채색도 되어있다. 목판화가 주는 느낌이 그렇듯 강렬하다. 그런데 말할 수 없이 섬세하다. 곰의 털 하나하나, 담쟁이 잎의 결 하나하나까지 생생하다. 아기곰이 처음 자기 힘으로 잡은 연어를 자랑스럽게 입에 물고 물에서 올라와 몸을 부르르 떠는 장면은, 지금도 이 책을 생각하면 맨먼저 떠오르는 장면이다. 검은 밤하늘, 달빛을 받아 표면만 노랗게 선으로 표현한 강가의 돌멩이들, 털이 바짝 선 아기곰의 등 뒤로 물방울이 튀고 있다. 수없는 물방울들은 그대로 밤의 별이다. 그 물방울들은 그 중에도 움직임까지 표현되어있다. 연어는 몸을 비틀며 비명을 지르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의 한 순간, 강렬한 생명이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저녁놀이 사라지고/ 달빛이 숲 속에 비칠 때/ 엄마곰과 아기곰은/ 강가로 왔습니다.
"올까요? 정말 올까요?"/ 아기곰이 말했습니다./ "그럼, 틀림없이 올 거야."
그림만 그리는 작가가 아니라 마치 시처럼 느껴지는 글도 쓰는 작가다. 겨울잠을 자기 전에 실컷 먹어둬야 하는 엄마곰과 아기곰은, 낮동안 잘 익은 머루 열매를실컷 따 먹고 이제 밤의 연어잡이를 기다리는 중이다. 아기곰에게는 움직이는 다른 생명체를 스스로 잡아 내 생명을 이어가야하는 엄중한 일이 기다리고 있고, 얼마나 설레는지 모르는 일이다. 산너머 검은 하늘에는 노란 초승달, 달빛으로 반짝이는 강가에 두 마리 곰은 설렘을 담아 기다리고 있고, 검고 푸른 강물에는 또 하나의 노란 달이 흔들리고 있다. 마침내 연어가 오고, 아기곰은 생애의 첫 경험을 시작한다. 쉽지 않은 그 일을 여러번 실패 끝에 드디어 성공하고 만족스럽게 배를 불린 아기곰이 문득 뒤를 돌아보니, 강물에 엄청나게 커다란 노란 물고기가 반짝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첨벙!
"엄마 엄마, 정말 커요. 정말 커다란 물고기예요."
엄마곰이 다정하게 웃었습니다. "얘야, 그건 달빛이란다."
그리고는 하루의 모험을 끝낸 아기곰의 편안한 잠. 아기곰은 별처럼 반짝이며 밤하늘을 유유히 헤엄쳐 가는 커다란 물고기의 꿈을 꾼다.
지은이는 홋카이도가 고향인 작가이고, 그는 여우라든지 올빼미라든지, 홋카이도의 자연을 주로 그림책으로 그려냈다. 그의 그림책에는 그를 태어나게 하고 키워낸 홋카이도에 대한 사랑이 담뿍 담겨 있다. 그의 그림책을 통해 나도 홋카이도를 사랑하게 되었다. 어른은 어른의 눈으로 이 그림책을 보고, 아이는 아이의 눈으로 이 그림책을 볼 것이다. 아이가 어릴 때 우리는 둘다 물론 이 그림책을 좋아했다. 아이는 아기곰의 입장에서 이 그림책을 보았을 것이다. 모험, 꿈, 사랑, 호기심... 내게는 시리도록 아름다운 홋카이도의 자연, 아기곰의 첫 모험, 너무나 멋진 그림과 부드러운 시어처럼 들리던 말들... 물론 그런 것들은 아이에게도 다 좋았을 것이다. 처음 본 지 십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주는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