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손 보리 어린이 12
오색초등학교 어린이들 지음, 탁동철 엮음 / 보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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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오색 초등학교 어린이들 시, 탁동철 엮음.

전부 21명의 3, 4, 5, 6학년 어린이들이 98년부터 2001년까지 탁동철선생님과 함께 지내며 쓴 시들을 탁선생님이 엮은 것이다.   아이들이 크면서 학년이 바뀌니 5학년 최아름이 6학년 최아름이 되기도 한다.  2002년 9월에 초판이 되었는데 그때 바로 사서는 지금까지 두고두고 읽고, 두고두고 다른 이들에게 들려주고 이야기도 해주는 책이다. 

이 시집에 실린 아이들의 마음은 어찌나 맑은지, 또 아이들이 쓰는 글들은 어찌나 편안하면서도 아름다운지, 지금도 나는 이 책을 꺼내보면 그저 내 마음까지도 그렇게 물들어버리는 것만 같다.  이미 어린이들이 쓴 다른 시집을 여러 권 보기는 했다.  보리에서 만든 <엄마의 런닝구> 와 같은 시집들도 다 내가 참 좋아하는 아이들시집이다. 80년대 초반인가, 이미 오래오래적에 이오덕 선생님이 <일하는 아이들> 을 펴내 많은 이들에게 '두 눈이 확 떠지는'  놀라움과 여태까지의 글쓰기교육에 대한 반성을 동시에 불러일으킨 이래,  많은 학교에서 올바른 글쓰기를 위해 노력하는 선생님들이 많이 생겨나고 진지한 고민도 커져왔다.  그 결과물들도 여럿 나와 있어 이제 더이상 어린이 시집은 낯선 것도 아니고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 책에 실린 아이들의 글은, 하나하나가 참 새롭게 보이고 모여있는 걸 봐도 놀라울 따름이다. 네 해동안 탁선생님이 맡은 아이들이 스물둘, 그중 하나만 빼고 스물한 명의 어린이들이 쓴 글이 다 들어있는데( 그 한 아이의 글이 없는 이야기는 맨 끝 선생님 글에 얼핏 비친다), 아이들마다 참 나름대로 가진 마음들이 드러나보이면서도 다들 고르게 그 마음들이 맑다. 선생님이 어린이들에게 바란 것이 '자기를 사랑하고 동무를 사랑하고, 자기들 둘레에 눈길을 주는 사람으로 자라나게 하고 싶어 했다'는 것인데, 바로 그 바람이 아이들이 쓴 글들을 읽으면 그대로 느껴진다.  '아이들이 참 잘 자라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과 '나도, 내 아이들도 이렇게 자랄 수 있었다면...'하는 아쉬움에 마음이 뻐근해진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가 있고 지금 중 2인 아이도 있다.  아이들이 다니는 샛별초등학교에서 혹은 엄마인 내가 하고있는 동화읽는어른 모임에서도 글쓰기가 중요하며 어떤 글쓰기가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서 오래도록 고민해왔다.  하지만 실제로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간에,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 시와 같이 '내용'과 '형식'에서 고루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시를 쓰는 게 쉽지가 않은 일이다.  우선 생활이 그러하지 못하고, 쓰는 게 편해지는 데도 참 시간이 걸린다. 

'오색 아이들이 시로 쓴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시집에 실린 아이들의 시들은, 신기할만큼 시를 쓴 아이들의 속이 그대로 다 들여다보이는데 그 속이 참 아름답다.  읽다보면, 하나하나가 너무 좋아 여러번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속이 아름다운 아이들이 쓴 시라서 그걸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 아름다운 속을 우리가 어떻게 보나?  그 내용은 형식이라는 그릇에 담긴다.  그 내용을 담는 방법, 형식에서도 자연스런 이어짐과 끊음의 절제가 돋보인다.  탁선생님은 아마도 훌륭한 글쓰기선생님이고,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훌륭한 생활인일 것이라고, 나는 이 책을 본 이래로 믿고있다. 

이 책은, 내가 보고 남에게 어서 보여주고 싶어지는 책이다.  요즘은 잠드는 아들의 머리맡에 앉아  날마다 몇 편씩 읽어준다.  아들은 어느새 스르르 잠들고, 나는 그 머리맡에서 한참을 더, 찌릿찌릿해진 마음으로 앉아있곤 한다. 

 

버들강아지

 

버들강아지는 보들보들하다.

강아지 털같이 너무 보들보들하다.

어우 진짜 보들보들해.

야, 연실아! 이거 만져 봐.

진짜 이뻐.

보들보들해.

강아지 만지는 거 같애.

눈 감고 만지면 진짜 좋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5학년 이수연)

하.  이걸 읽으며 정말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마저 어쩔 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든다.

 

 

상장

 

현관에 들어올 때

아름이 누나가 세라 누나보고

"너, 장려상 받는다." 했다.

상을 받아서 무엇을 할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지난번

상을 못 받았던 미경이는 손뼉만 치다가

눈물을 찌끔찌끔 흘렸지.

상은 우리를 외롭게 한다.

(5학년 차상훈)

 

 

차를 세운 할머니

 

어린이날

선생님 차 타고 속초 '어린이 한마당' 잔치에 가는 길,

거마리를 지나갈 때

파마 머리 하고 이마가 다 보이는 할머니가

길가에 서서 손을 들었다.

선생님 차가 멈췄다.

"저기까지 갈라 그러는데요."

머리에 나물 보따리 이고

손에도 보따리 들어서

몸이 한쪽으로 비틀어져 있다.

"사람이 너무 많은데 어떡하죠."

선생님은 죄송하다고 그랬다.

할머니 이마에 주름살이 보였다.

할머니도 차를 세워 미안한 얼굴이다.

거마리 지나가는 길에는

버스가 거의 안 오는데.....

잘라 그러는데 그 할머니가 자꾸 생각났다.

내가 그 할머니 손자였으면

차에서 내려 그 할머니 태우고

나는 걸어갔을 거다.

(5학년 이명준)

 

세 편을 고르기도 참 힘든다.  하나같이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간에 들려주고 읽어주고, 나누고 싶은 시들이 너무 많아서다.  나는 어린이들이 쓴 시를 읽으며, 내가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지도 모르는 그 마음밭에 슬금슬금 들어간다. 그 마음밭은 참, 한참 전에 잃어버린 듯한데도 아주 잃어버리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런 어린이시들을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아이들이 함께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날이 오겠지' 라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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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꿈 2005-09-28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이들 글쓰기를 소중히 여기시는 분들이 계셔서 이런 귀한 책도 나오고, 귀한 책 알라보고 권해주시고....저도 그 귀한 마음밭 한구석에라도 발을 담구고 싶습니다.

sprout 2005-10-01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의 표현, 참 고맙고 이런 곳에서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게 반갑기도 하네요. 언젠가 더 편안하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