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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유르겐 니콜라이 / 범양사 / 1984년 11월
평점 :
절판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정이 사라졌다면 그것을 소생시키고, 그런 감정이 아직도 남아있다면 그것을 지속시키는 일은 이 책과 같은 서적의 가장 중요한 목적의 하나가 된다. 그러나 과학자로서 정확성과 진실성은 물론 유지해야 하지만, '무미건조'하지 않고 아름다운 것을 올바로 감상하고 좋은 목적을 옹호하는 저자 자신의 참여가 분명히 발휘되도록 그의 지식을 제시하는 것은 그의 의무인 것이다.
우리는 어떤 강의 동물에 비하여 새와 새의 생활양식에 관해서 더 많이 알고 있기 대문에, 이 책의 제목에 담겨 있는 주제 내용을 아주 흥미롭고 많은 사람에게 이해가 가능하면서도 과학적 정확성이 유지되도록 설명을 해야 한다는 일이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야심적이고도 책임이 중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일에 유르겐 니콜라이보다 더 적임자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동물을 사랑하는 그의 내심의 동기가 연구가로서의 그의 능력과 훌륭하게 결합되어 알찬 완성품을 만들어냈다...."
노벨상 수상자이면서 <솔로몬 왕의 반지>라는 책을 통해 새의 습성 생태학을 우리에게 정감어린 과학으로 설명해주었던 콘라드 로렌쯔가 이 책의 서문에서 쓴 글이다. 로렌쯔 교수의 동료이자 제자로서 전 생애를 새의 습성학 연구자로서 지낸 유르겐 니콜라이 박사가 쓴 이 탁월한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온 것이 1984년이다.
내가 85년 처음 이 책을 만난 이래, 이 책은 새를 바라보는 내 시각을 확연히 넓혀주었고, 그릇되지 않게 잡아주었고, 내 삶을 새와 동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만드는데 크고 큰 기여를 했다. 지금까지 나는 이 책을 통해 미지의 새들을 만나 마치 내 벗인 양 가까이 하는 경험을 여러차례 하였다. 지금 나는 겨울철 철새 탐사를 앞두고 원병오님이 쓴 <한국의 새> 같은 도감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새들과 낯익히기를 하고 있지만, 이 책에는 이 지구 어딘가에서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많은 새들의 이야기가 빼곡하다. 그들은 아름다운 사진을 통해 그 모습을 보여주고, 저자는 그들의 습성을 이야기해준다. 그들의'구애와 과시', '집짓기와 새끼기르기', '위장과 속임수>, <비상>, <대이동>에 대해서, 그리고 생태계를 공유하는 이야기와 진화에 대해서. 이 책의 이야기들은 내게는 너무나 흥미롭고 신비로왔다. 사진으로 보고 글로서 듣는 그들의 이야기는 내 마음을 단박 사로잡았다. 처음 이 책을 읽고 미지의, 아름다운 어떤 것과 내가 비로소 만나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던 때가 다시 생각이 난다. 지금도 나는, 새에 관한 대부분의 친밀감을 이 책에 기대고 있다. 내 이야기에서 새가 자주 등장하고, 내가 아이들과 함께 보는 그림책들에 새가 주인공인 이야기가 많고, 내가 새 그림을 자주 끄적거리는 것는, 이 책이 내게 준 것들에 대한 갚음에 다름아니다. 실로 나는 이 책을 통해 새를 만났다.
지구를 함께 나눠쓰고 있는 모든 것들 중에서도 특히나 인간과 새는 가깝다. 새들이 인간과 마찬가지로 시각과 청각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이 감각 기능의 유사성 때문에 그들의 개별행동이나 가정생활 또는 사회생활이 서로 유사한 데가 많은 것이고, 이러한 유사성이 인간으로 하여금 새에 대하여 다른 동물에서보다 훨씬 더 강한 동정심과 동료감을 느끼게 한다고 한다. 인간과 가까운 친척인 영장류에도 속하지 않고 포유동물에조차도 속하지 않는 새들의 사회생활이 인간의 사회생활과 가장 가깝다는 흥미로운 사실이 아니더라도, 새는 그 아름다운 비상으로 하여 인간의 영역에 언제나 신비로운 도전의식을 제공해왔다. 역사적으로 볼 때 새의 생태 연구는 동물 일반의 행동 연구의 길잡이가 되어 왔고, 새 연구의 선구자들은 모두가 새에 반하고 미쳤던 학자들이었다고 한다.
이 책이 아직 절판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기쁘다. 내가 이 책을 본 이래, 이 책을 보고 나서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 이들은 아직 없지만, 끊임없이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이들은 몇몇 있다. 관심있어 하는 이들에게 나는 이 책이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책이라고 단언했건만, 실은 이렇게 "지금도" 구할 수 있는 책이라는 게 정말 기쁘다. 당장 구해서 내 친구에게 주고 싶다. 몇년판인지, 원저가 무엇인지, 초판인지 개정판인지 어떤 정보도 없지만, 그때 내가 구입했던 84년판이면 어떠리. 이 책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 이 책을 통해 <새>에게 가까이 다가갈 친구가 생긴다는 사실이 더없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