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늘의 개척자 라이트 형제
러셀 프리드먼 지음, 라이트 형제 사진, 안인희 옮김 / 비룡소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지금은 비행기가 난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겠지만, 여전히 나는 그 덩치가 나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자동차가 달리고 잠수함이 바다 밑을 헤집고 다니는 것도 물론 신기하지만, 어쨋든 땅이나 바다는 그래도 인간에게 그 품을 부비도록 허락이라도 해 주지 않았던가. 그러나 하늘이란, 무엇엔가 튕겨올라가지 않으면 그 맛을 볼 수 없는 미지의 것이 아니던가. 그런 하늘을 우리 인류에게 열어준 라이트 형제라는 사람들. 그것이 내가 그들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동화읽는어른 회보에 새책으로 소개가 되어서 보게 되었다. 자발적으로 전기는 거의 읽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보통의 전기와는 그 품새가 아주 다르다. 우선 흑백의 아름다운 사진들이 책을 반 넘어 채우고 있는데, 그 사진들 속의 역사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147쪽의 책에 90컷의 큼지막한 사진이 시원하게 실려있다.) 거개가 오빌과 윌버 라이트 두 형제가 직접 찍은 이 사진들은, 비행기의 발명보다 조금 앞서 이뤄져서 그 당시 하나의 커다란 진보로 여겨졌던 사진의 발명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이었던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오빌과 윌버는 그들의 발명을 사진으로 남겨놓고 싶어했다는 설명은, 그들이 얼마나 미지의 것을 반짝이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던지를 보여준다. 결국 그들의 선택은 옳았다. 이 책에서 그들의 사진 작업은 상당히 중요하다. 그들의 작업의 기록으로서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사진을 받아들였던가가 내게는 더 인상적이었다. 아무래도 이 시대에 사진이라는 것은, 비행기보다도 더 일상적이고 더 광범위하게 우리에게 다가와있기도 하다. 지금 우리는 아이들과 무엇 하나를 만들고도 그것을 디지탈 사진 기록으로 남기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 당시에 그들 형제의 '놀랍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적극적인 마음은 지금 이 책을 이다지도 풍요롭게 하고 가치와 품격을 느끼게까지 한다. 이토록 이 책에서 사진은 인상적이고 중요한 도구이다.
오빌과 윌버에 대해서라면, 이 책을 쓴 러셀 프리드먼은 보통의 전기물과는 아주 다른 입장으로 자기가 고른 인물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한 위대한 일을 해낸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 책은 너무나 편안하고 산뜻하게 읽힌다. 주인공을 미화하지 않고 찬양하지도 않으며, 작가의 주관적인 해설을 덧붙이지도 않는다. 오빌과 윌버 두 사람의 비행기와 관계된 이야기가 마치 엊저녁의 일상인 듯 간결하고 담담하게 펼쳐진다. 그들의 기록과 그들 주변 사람들의 증언, 신문 지면을 덮었던 기록들을 이어가며 작가는 그 남은 증거물들을 일상으로 풀어낸다. 이런 매력적인 방식의 결과는, 딱딱한 기록물의 이편이나 혹은 감정으로 흥건한 문장의 저편으로 흐르지 않고 단정한 매무새로 나를 사로잡는다. 그 다듬어진 글의 솜씨가 좋다. 그 간결한 기록과 감정의 어느 즈음에서 오빌과 윌버의 삶이 조용하고도 힘있게 살아난다.
그들이 비행기를 만들었다는 굉장한 역사적인 사실 만큼이나 이 책에서는 그들이 어떻게 비행기를 만들어갔던지가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또한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던지가 중요한 이야기가 된다. 형제의 아버지 밀터가 윌버에 대한 추도문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중요함으로 가득한 짧았던 생애, 실수 없는 지성, 동요하지 않는 열정, 크나큰 겸손과 자기 신뢰, 정의를 명확히 바라보고 그것을 꾸준히 추구하며 살다 죽다." 라이트 형제에 대한 기록을 읽으면 이 말은 새삼 무게있게 다가온다. 기록대로라면, 이 말은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믿었고, 그 믿음대로 꾸준히 추구했다. 결과는 어쩌면 부수적인 것이었으리라. 그들은 말 그대로 천재였거나 혹은 천재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도 그들 주변인들의 생각도 단지 이러했다. "그들은 지성과 재능이 모든 면에서 평범하지 않았다." 이 책에서 글쓴이는 그들의 천재성이 아니라 그들의 평범하지 않음에 대해 독자들에게 조용하고 힘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이 책의 작가인 러셀 프리드먼은 이 책으로 1992년에 뉴베리상을 받았다고 하고, 사진 자료를 많이 사용하는 작가라고 한다. 라이트 형제의 삶과, 프리드먼이 그들의 삶을 조명하는 방식, 그 조화는 고요하고도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