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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야 누나야 ㅣ 겨레아동문학선집 9
김소월 외 지음, 겨레아동문학연구회 엮음 / 보리 / 1999년 4월
평점 :
절판
땅바닥을 / 텅! / 내려 디디면
물숙하니 / 들어가는 / 힘 나는 첫봄
박고경, '첫봄'
1920-30년대 초반 우리나라의 사정을 생각해보면 여기 실린 동시들의 각별한 의미가 더 크게 살아난다. 우리 겨레붙이라면 모두가 어려웠을 그 시절, 특히 이중 삼중의 고통에 시달렸을 아이들에게 여기 실린 이 시들은 그야말로 어느 때는 한줄기 햇살이고 지친 삶에는 한마디의 위안이었으리라.
이 시집에는 아이들의 일상을 노래한 동시도 있고, 힘든 일상에서도 새 용기를 일으키는 힘이 있는 동시도 있다. 아픔을 달래주는가 하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부르는 노래들도 있다. 간혹 모순된 사회상을 준엄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그 척박했던 시절, 겨레의 어린이들이 이런 동시들을 읽으며 울고 웃었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필요해서 일어났고, 그렇게 태어난 시들이 또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게 되고...
또 한 가지 새삼스러운 것은, 작가별로 나누어진 동시들을 읽다보면, 그 작품 안에 그 작가의 삶이 보인다는 엄정한 사실이다. 그 시대 일본 도쿄 음악 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했다는 윤극영의 동시들에는 일제 시대 어린이들의 아픔이나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가 않고, 카프에서 활동을 했거나 월북을 했다는 작가군에서는 계급 모순이 선듯 느껴진다. 이원수의 시들에서는 뚜렷한 현실 인식이 드러나면서도 아주 서정적이다. 동시를 쓴다는 것이 삶을 유리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리라.
시집 전체에 흐르는 큰 느낌은 정말로 싱그럽다는 것이다. 몇 편 유희적인 경향의 동시들이 끼어 있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그 살아있는 시정신이 돋보이는 것들이다. 몇 차례나 고치고 또 고쳐도 지금도 아이들의 교과서에 남아있는 말놀이에 치우친 동시들, 또 도대체 뭣을 말하는지 알 수 없는 까다롭고 복잡한 동시들을 보면서 답답한 마음 금할 길 없는데, 오롯이 이 책에서 살아나는 싱싱한 말과 정신들이 반갑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이런 동시들을 더 자주 더 많이 만나게 되면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