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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개정판)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아프가니스탄, 역시 할레드 호세이니 작품인 <천 개의 찬란한 태양>으로 처음 자세히 들어가봤던 나라, 고바야시 유타카의 아름다운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에서 파구만 마을을 통해 가슴아프게 바라봐야 했던 나라. 그리고 <천상의 소녀>라는 영화를 통해 머리가 텅 비는 것처럼 참담함을 느껴야 했던, 지금도 현재 진행형의 비극을 살고 있는 나라.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모국이 아프가니스탄이 되어버린 그 순간부터 생애에 너무나 큰 짐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비극의 나라가 이 나라가 아닌가. 생명에 대한 안정이 없이, 삼십년이 넘도록 전쟁 중인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일까. 우리나라도 일제시대를 겪었지.. 과거가 되어버린 그 고통의 시대를 현재형으로, 아니 외세 뿐만 아니라 내전으로 더욱더 황폐한 역사를 끌어가고 있는 나라의 국민으로 산다는 것의 무게를 생각하면 가슴이 짓눌리는 듯하다.
지은이가 65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났고, 이란으로 다시 카불로 옮겨다니며 살다가 76년에는 파리로, 그리고 80년에는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하였다니, 그가 카불에서 아프가니스탄 인으로 자신과 동질적인 사람들과 살았던 시간은 고작 십여년에 불과하다.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샌디에이고에서 의학을 전공하였고, 로스앤젤리스에서 내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캘리포니아에서 의사로 살았던 사람이다. 그가 2003년, 그러니까 37세에 쓴 첫 장편소설이 바로 이 책 <연을 쫓는 아이>다. 그는 어떻게 아프가니스탄을, 그토록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고작 열 살 전후까지 살았던 그곳의 기억에서 그는 어떻게 이런 책을 건져올렸을까. 그는 영어로 이 책을 썼지만, 그가 영어로 썼기 때문에 이 책은 세계인의 책이 되었다. 그에게 영어라는 언어, 제 2의 국어였던 그 언어가 그의 아프가니스탄을 알리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다니 아이러니다. 2001년 미국의 침공, 미국에서 이슬람의 입지가 그토록 백척간두에 서 있을 때 이 책이 출판되었다는 것의 의미는 결코 가벼울 수 없다. 그의 이 책은 여러 사람들이 격류의 감정과 광기어린 비난에서 스스로를 제어하도록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다행한 일이고, 결과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이 책의 지은이가 두 번 째로 써낸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실로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수난사에 다름 아니다. 이 책 <연을 쫓는 아이>는 남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물론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보편적 인간성의 도저한 흐름이 존재하고 그 무게감이 대단하여,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절박한 상황조차 오히려 헐겁게 느껴질 정도이다. 신의와 명예, 인간에 대한 예의. 그 어떤 조건에도 수그러들 수도, 사그라질 수도 없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탐구가 이 책에서 빛난다.
역사서를 통해 아프가니스탄을 도식적으로 이해한다고 해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을 느낄 수는 없다. 지리와 문화와 역사와, 무엇보다 그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실한 삶의 이야기가 녹아있는 한 편의 소설이야말로 한 나라를 통째로 이해할 수 있는 성실한 매개가 되어준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 두 편으로 아프가니스탄은 내게, 고통의 역사 속에서도 높디높은 하늘로 희망의 연을 날려올릴 수 있는 사람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빛나듯 아름다운 카불의 긍지를 지닌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