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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하녀 마리사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고래>를 읽은 뒤 '프랭크와 나'를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에 '프랭크와 나'를 비롯한 열한 편의 단편들이 들어있다. 도발적인 표지, 기대감.
천명관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정말 유쾌한 일이었다. <고래>를 읽고나서이든, 읽기 전이든 상관없이 이 책은 충분히 즐겁다. 여태 대체로 단편집에 몰입해서 즐기기가 쉽지 않았던 터인데 이 책은 쉼 없이 읽어낸 것도 내게는 신기한 일이다. 한 편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아쉬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며 금세 책장을 넘겼다. 첫 작품 '프랭크와 나'에서 나는 벌써 무릎꿇어버린 것이 아니었던가. ^^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싶은 일을 '세상에 이런 일도 버젓이 일어나네,'라며 구라를 푸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처음에는 '에이 설마,' 하던 사람들을 앞에 두고 썰을 푸는데 그 썰이 점점 점입가경, 하도 도저하여 나중에는 그 일은 대체 어떤 수정도 불가하게 반드시 그렇게 흘러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게 얼떨떨하다가 종국에는 웃음이 터져나온다. '프랭크와 나'에서는 정말 점입가경이었다. 한 줄, 한 장이 보태지면서 그 엉뚱하고 황당무개함으로 해서 이게 대체 어느 쪽으로 갈래지을 수 있는 이야긴가 하며 팔짱 끼고 보던 내 자세가 어느새 무장해제, 나중에는 그저 그 가시덩굴같이 번져가는 이야기의 당혹스러움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거다. 그 짧은 분량 안에서 그토록 덩굴덩굴 끝도 없이 딸려나오는 이야기라니.. 경사진 언덕을 굴러내려가며 점점 커지는 눈덩어리에는 처음 한 주먹감의 눈뭉치의 계획은 온데간데 없다. 그건 그저 굴러내려가며 스스로 놀라운 힘의 법칙에 휘말릴 뿐인 것을. 인생의 여러 순간을, 우리는 대체 왜, 어쩌다가 이 자리에 내가 서 있는 것인지 어리둥절해서 바라보곤 한다. 이 작가가 삶의 수많은 어이없는 법칙들을 얼마나 능수능란하게 이야기로 다루는지 반하지 않을 수가 없다. '프랭크와 나'에서는 랍스터와 관련된 그 어떤 성과도 없이 다섯 달의 캐나다 체류를 마치고 온 남편의 이야기가 불쑥 끝나버린다. 그 황당함 끝에 늘어놓은 작가의 마무리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얼마 전 남편은 좀더 보수가 나은 곳으로 직장을 옮겼다. 그 기념으로 우린 랍스터 집에 가서 외식을 했다. 어찌된 일인지 몇 년 새에 동네마다 랍스터 집이 한두 개씩 생겨나 있었다. 우리는 이인분을 시켜 셋이 나눠먹었다. 랍스터를 먹으며 우린 마피아 프랭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그가 LA에서 에이프릴과 함께 행복하게 살길 바랐다. 그리고 코리안들을 더이상 미워하지 않기를 바랐다. 또한 스무 살이나 어린 브라질 여자가 사촌형 프랭크의 곁을 떠나지 않기를 바랐다. 얘기를 나누며 우린 조금씩 키득거리고 웃기 시작했다.
프랭크, 그리고 또다른 프랭크, 토론토, 밴쿠버, 콘수엘로, 칠레, 축구코치.......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졌고 우리는 점점 더 크게 웃었다. 볼리비아, 콜롬비아, 에이프릴, 마리화나, 캐딜락 자동차....... 한때 우리의 희망이기도 했고 절망이기도 했던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들춰내며 우리는 끝내 배꼽을 잡고 의자에서 뒹굴었다. 랍스터를 먹던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았지만 우리는 도저히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너무나 매력적인 마무리. 스멀스멀 피어나기 시작해 어느새 것잡을 수 없이 모든 것을 장악해버리는 웃음의 마력은 유쾌하기 그지없다. 하하하, 으아하하, 살다보니 그런 일을 겪었지뭐야, 살다보니...라는 것. 해학적이다. 늘 뜻하지 않게, 뜻모를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우리의 생을 이렇게 붉은 속살 내보이듯 선연히 보여주는 단편의 맛이 시원했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도 '프랑스 혁명사'도 마치 오 헨리의 단편을 보듯, 자연스럽다가 뜻밖의 반전에 다시 한번 즐거워진다. '더 멋진 인생을 위해'까지 세 편의 이야기가 이국의 주인공을 내세워 이국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한국의 작가에게 듣는 이국의 인물들의 이야기가 새롭고도 낯설 법도 하건만 마치 외국 소설의 번역판을 보듯 자연스럽다. 이건 뭘까? 한국 작가의 창작집에서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천연스레 듣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주인공과 무대를 한국인, 이곳으로 대체했을 때는 얼마나 다른 느낌이었을까. 실험은 거슬림 없이 유쾌했다. '세일링'이나 '농장의 일요일' 같은 작품에서도 '마음의 긁힘'들을 다루고 있지만 그 느낌이 많이 다르다. 그런 점에서 세 편의 능수능란한 '외국 이야기'들을 읽는 즐거움도 각별했다.
'13홀'도, '숟가락아, 구부러져라'도, '비행기'도 다 멋진 이야기 감이다. 한 편 한 편이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있는 것인가 싶은 '20세'도 또한.
한 편의 장편소설과 열한 편의 단편소설로 만난 천명관이라는 작가, 그의 신선하고 싱싱한 작품들의 싱그러운 맛을 탐닉하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