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최규석 지음 / 길찾기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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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 중의 한 사람이고, 가장 기대하는 젊은 만화작가인 최규석, 나는 그의 팬이다. 이런 굉장한 작품집을 첫 작품집으로 내놓은 작가가 하는 말은, 다시 보니 진짜 의외다. 

... 이 책 속에는 읽히기를 바라는 저의 간절한 마음과 그것을 위한 노력만이 들어있습니다. 지금은 마음 밖에 보여드릴 것이 없지만 훗날에는 무언가를 더 보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그냥... 마음만 받아 주세요. (프로포즈 같습니다.) 

2004년 3월에, 내놓으면서 당장 문제작이 되어버린 작품집을 내놓는 작가가 하는 말이 이렇게, 조마조마하고 두근두근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니, 내가 다 조심스런 마음이 된다. 그리고 그는, 어느 새 한국 만화의 튼튼한 주인공이 되어 있다.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는 놀라웠다. 처음 보았을 때도, 지금 보아도 그러하다. 김수정이 만들어낸 천진하고 넉살 좋은, 모든 사람들이 그저 보기만 해도 입에 웃음이 물리는 아기 공룡 둘리는, 사실상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하나의 상징이기도 했다. 아마도 둘리는 우리 만화가 내세울 최고의 캐릭터였을 것이다. 그만큼, 그건 고정관념이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하도 확고한 것이어서, 그 둘리를 감히 '이렇게', 최규석이 오마주 하는 순간, 모두들 띵! 했다. 나도 물론, '띵! 했다. 당황스럽고 배반적이었다. 어.. 이래도 되는 거얌?  우리의 둘리를...! 감, 히, 이, 렇, 게... 처절하게? 

둘리는 어린이 세상에 있었다. 그리고 감히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당연히, 세월이 지나 어른 세상으로 진입했다. 먹고 살아야 하는 둘리와, 그 철 없던 친구들. 둘리는, 먹고 살기 위해 노동자가 되고, 현장에서 프레스기에 오른쪽 엄지 손가락 첫 마디를 잃었다. 그리고, 당연히, 초능력을 잃었다. 그러자 더이상, "호이." 하고 외치는 귀여운 초능력 아기 공룡의 세계에 머물지 못한다. 둘리는 "이 민증도 없는 새끼!! 사고 한 번 칠 줄 알았어!! 당장 나가!!"라는 공장 측의 폭언을 감수하며 쫒겨나고, 이리저리 떠돌며 비정규 일용노동자가 되어 있는 신세가 되었다. 아, 이 무슨 처참한!  

최규석의 오마주는 대담하다. 풍자는 거침없다. 고철수와 희동이도 역시나 건전한 삶과는 거리가 멀다. 특이한 인물들과 함께 어울려 보낸 어린 시절은 마치 한 때의 유행처럼 이미 지나가 버렸다. 남은 것은, 어쩌면 그 거품 같은 어린 시절의 여파인 듯한 쇠락의 삶. 철수도 희동이도 이미 아웃사이더가 되어 살고 있다. 또치는 동물원에서 남은 생을 비루하게 이어가고, 도우너는 악에 받친 철수에게 외계 생명체로 연구실에 팔아넘겨져서 해부당한다. 포장마차에서 만난 마이콜도 그 비루함에 있어서는 역시나,다. 그들의 이미 동심의 세계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들은 사회 구석구석의 소외계층의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버거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 하나하나 그들의 과거형에서 그들의 현재형으로 치밀하게 오버랩될 때, 그 충격의 강도도 체념처럼 희미해진다. 총체적 충격이었으니. 이 신진 작가의 상상력과 노회함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삶의 신산함에 지칠 대로 지친 둘리가 우리를 전율하게 한다. 그러나 그 속에 오늘, 현재가 있어 한없이 무겁다.  

<사랑은 단백질>도 눈에 번쩍 띄는 작품이다. 한 번 보고 도저히 잊히지 않는 작품을 만들어낸, 그때로서는 신인이었던 작가의 저력이 놀랍다. 이 작품에서는, 정말 놓칠 구석이 없다. 충만감을 주는 작품이다. 삶의 한 단면을 무심한 듯 그려내는 이 불온한 기운, 지금 와서 다시 봐도 너무나 최규석다운 작품이다. 

두 편이 하도 강렬해서 다른 몇 편은 습작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다 해도 새롭지 않거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내게는 위의 두 편이 하도 '감동적'이어서, 다른 데 정신을 팔지 못했다는 말이 오히려 맞겠다. 몇 년 전에 발견한 이 작품들을, 요즘도 꺼내 보면서 그의 불온한 상상력에 흠뻑 빠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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