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공지영 지음 / 황금나침반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살아야 했다구, 알아들었어?
물론 너나 나나 도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었겠니?
그래도 살아야 할 걸 그랬다구.
뭣 때문이냐구? 아무것 때문에도 아니지
그냥 여기 있기 위해서라도
파도처럼 자갈돌처럼
파도와 함께 자갈돌과 함께
빛과 함께
모든 것과 다 함께

-「인생의 어떤 노래」앙드레 도텔

 

바로 이 시와 함께 작가는 두어 장 분량의 짧은 생각을 펼치고 이 책을 마무리한다. 그 짧은 생각 중에 이런 내용.    

 

이제 아이들의 엄마로서, 사회의 중년으로서 내 아이들뻘 되는 젊은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괜찮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어떻게든 살아 있으면 감정은 마치 절망처럼 우리를 속이던 시간들을 다시 걷어가고, 기어이 그러고야 만다고, 그러면 다시 눈부신 햇살이 비치기도 한다고, 그 후 다시 먹구름이 끼고, 소낙비 난데없이 쏟아지고 그러고는 결국 또 해 비친다고. 그러니 부디 소중한 생을, 이 우주를 다 준대도 대신해줄 수 없는 지금 이 시간을, 그 시간의 주인인 그대를 제발 죽이지는 말아달라고.

 

이 책 전체에서 그는 이와 같이 한 편의 시를 고르고 그 시와 함께 인생을 이야기한다. 대체로 그녀 자신의 인생에 연관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펼쳐지는 자신의 삶은 날것 그대로 드러나지 않고 온갖 다른 삶의 모습들과 어우러져 종횡무진의 사유를 넘나든다. 때로는 소개된 바로 그 시인의 삶이기도 하고 때로 작가와 가까운 지인들의 삶, 때로 맹렬한 독서가로서의 작가에게 축적된 타인의 경험들이 그 사유를 이루는 질료들이다. 그것들이 작가 자신의 인생에 드리운 빛과 그늘을 공유한다. 빛과 그늘을 공유하면서 작가는 어느새 듬직해졌다.

 

이미 공지영 작가의 책 여러 권을 읽은 이래 그에게 여러 번의 큰 시련이 있었음을,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지나칠 만큼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반면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와 같은 생의 순간들도 허투루 놓치지 않는다는 것도. 그의 책을 읽는 권수가 늘어날수록 나는 그에게 점점 더 공감하게 된다. 무엇보다 그가 썩 훌륭한 작가이기 이전에 아주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되어서일 거다. 소설에 이어 <수도원 기행>이라든가, 이 책 <빗방울...>을 읽으면서도 그런 느낌이 더 깊어졌다. 그러니까 어쩌다보니, 어느새  공지영 작가의 팬이 되어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처음 보는 시들을 여럿 만났다. 체 게바라가 쓴 <나의 삶> 중의 짧은 발췌문은, 오래 전 읽었던 체 게바라 평전 전체의 느낌보다 더 강렬했다. 여러 편 등장하는 자끄 프레베르의 시편들은 시집 전체에서보다 이 책에서 더 빛나는 것처럼 느껴져서 잠깐 얼떨떨했다. 이 책이 아니었으면 만나기 어려웠을 압둘 와합 알바야티의 시들에도 마음이 머물렀다. 어느새 나는 지은이가 소개하는 시를 마치 나의 책장에서 즐겨 꺼내 읽듯 깊이 음미하고 있었다. 그렇게 향기롭게 책을 읽었다. 읽던 중에 서울 여행길에 나서게 되어 가방에 챙겨 갔더니, 기차에서도 아무 데나 펼쳐 읽었고 숙소에서도 보고 지하철에서 이십분 남짓 읽기도 했다. 여행 내내 비가 왔고, 차창을 긋는 빗줄기를 보며 그래서 나도 가끔은, ‘빗방울처럼 혼자다’ 고 생각했다. 
 

비교적 최근작인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를 읽을 때는 너무나 자주 유쾌했다. 신문의 목요섹션에 실릴 때는 한 주일을 기다렸다 먼저 읽곤 했는데 나중에 단행본으로 출판되어 그때의 유쾌함을 가끔 누리고 싶어 책을 샀다. 그의 이야기 중에는 어쩌면 희비극이고 어쩌면 블랙 코미디 같은 상황도 꽤 있었지만, 그래도 그런 상황조차도 유쾌했다. 마치 슬픔을 참으려 이를 꽉 깨물어도 스멀스멀 웃음이 피어나오고는 결국 그 슬픔이 펑 터지듯 날아가버리는 그런 상황 말이다. 하여간 그 책을 읽으며 이 작가의 멀쩡함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어쩐지 그 유쾌함 속에 치열함이 느껴지는 게 의아했다. 그게,

먼저 씌어진 책 두 권, <수도원 기행>과 <빗방울...>을 읽고 난 나중에야 <깃털>의 치열함이 쓱 이해가 되었다. <깃털>은 결코 앞서 써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는, 아직은 생의 슬픔을 이해하고 바라보아야 할 시간이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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