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20억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는데 왜 하루에 10만 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가?’

  나도 궁금했던 이런 물음에 대해 이 책은 기아의 실태와 그 배후의 요인들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누구나에게 쉽게 다가가고 싶었던지, 아들이 묻고 아빠가 대답하는 방식을 택했다. 어쩌면 딱딱하고 사무적일 수 있는 이야기가 어린이가 이 이상한 세상의 방식에 대해 당연하게 가지는 의문을 제기하고 그 방면에서 열심히 소신껏 활동해온 전문가인 아빠가 그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답하는 걸 읽다보니 공감도 더 커진다. 지은이가 아마도 심혈을 기울여 택했을 이 방식은 분명 효과가 있어 보인다. 

 

  이 책에 해제를 단 경제학자인 우석훈은, 장 지글러야말로 학자이며 활동가이며, 전문가인 사람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스위스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는 실증적인 사회학자이며, 동시에 유엔기구에서 아동 구호와 식량문제에 관련된 일을 처리하고 대책을 세우고 현장에 직접 파견되어 의사결정을 내리는 활동가이다. 여기까지는 우리도 주위에서 적잖이 볼 수 있는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많은 교수들’과 비슷한 상황이겠다. 그러나 지글러는 그런 활동과정에서 그 스스로 알게 되고, 보게 된 것들을 일종의 국제적 어린이 기아 문제에 대한 전문가로서 다시 한 번 분류하고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은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확보하였다는 게 그의 견해다. ‘지글러만큼 고급 정보를 접하면서도 현장에서 상황을 이해한 사람이 우리나라에는 없다’고, 우석훈은 단호하게 말한다. 기아문제에 대해서 우리나라의 수준은 ‘많은 어린이들이 굶주리고 있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정도의 사실이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전부라고 하니 그런 상황이 안타깝기도 한데다가 이 책의 중요성은 그만큼 커지는 것이겠다. 

 

  본문에서 지글러는 우리가 맞닥뜨리야 할 바로 그 진실에 대해 적나라하게 이야기한다. 7장은 ‘부자들의 쓰레기는 가난한 사람들의 먹을거리’라는 것이고, 10장은 ‘소는 배를 채우고, 사람은 굶는다’는 것이다. 15장에서는 ‘무기로 변한 기아’를 이야기하고 15장에서는 ‘기아를 악용하는 국제기업’을 들춰낸다. 이런 사실들은 모두 ‘굶어서 죽는 어린이’가 수없이 많은 어이없는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이 무력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방식,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내가 다달이 유니세프에 한 구좌를 기부하는 것 말고 달리 뭘 어쩌겠어’ 라는 생각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예를 들자면, 지글러가 알려주는 사실들은 이렇다. 1970년 칠레의 대통령 선거에서 인민전선의 살바도르 아옌데 후보가 그 당시 가장 시급한 과제였던 어린이 영양실조를 해결하기 위해 ‘15세 이하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하루 0.5리터의 분유를 무상으로 배급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되었을 때, 그곳의 분유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다국적기업 네슬레와 중남미 국가의 자립을 꺼리던 미국의 선택에 관한 진실이다. 이는 전율을 느끼게 한다. 장 지글러는 더러운 사슬과 그에 의해 파괴되는 약자들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이렇게 폭로한다. 
 

 

아옌데가 누군데요?

 

아옌데는 소아과 의사 출신의 정치인이라서 유아기의 비타민 및 단백질 부족, 소년소녀들의 건강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었지. 그래서 그가 가장 우선적으로 내건 공약이 분유의 무상 배급이었던 거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분유와 이유식을 판매하여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던 다국적기업 네슬레가 당시 이 지역의 분유시장을 독점하고 있었지. 네슬레는 우유공장을 경영하며 목축업자들과 독점계약을 맺고 판매망도 장악하고 있었어. 그래서 아이들에게 분유를 무상으로 배급하기 위해서는 네슬레와의 원활한 관계가 필요했지. 아옌데는 결코 네슬레에 분유를 공짜로 달라고 하지 않았어. 제값을 주고 사려 했지.

그런데요?

 

그러나 1971년 스위스 베베이의 네슬레 본사는 칠레 민주정부와의 협력을 모두 거부했어.

왜요?

 

당시 미국의 닉슨 대통령과 그 보좌관 헨리 키신저가 아옌데 정권의 사회주의적 개혁정책을 꺼리고 있었기 때문이지. 또 외국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칠레의 자립성을 높이고 국내적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아옌데 정권의 개혁정책이 제대로 추진되면, 미국의 국제기업이 그때까지 누려온 많은 특권들이 침해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란다. 키신저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칠레의 민주정부를 괴롭히려고 했지. 칠레에 대한 지원을 끊어버리고, 운수업계의 파업을 뒤에서 조종하고, 광산이나 공장의 태업을 부채질했어. 서구의 많은 다국적 은행이나 기업, 상사들처럼 네슬레 역시 아옌데 정권의 개혁정책을 강하게 반대했던 것이란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매일 0.5리터의 분유를 배급하겠다는 아옌데의 공약은 수포로 돌아갔어. 아옌데가 추진한 개혁정책의 대부분은 엄청난 재정적 어려움에 봉착했지. 1973년 9월 11일,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의 군부쿠데타를 도왔어. 아옌데와 그의 동지들은 대통령궁인 모네다궁에서 무력으로 저항했지. 오전 11시, 아옌데 대통령은 라디오를 통해 대국민 연설을 마지막으로 했고, 오후 2시 30분에 살해되었단다. 피노체트의 무차별 탄압으로 많은 대학생, 기독교 성직자, 노동조합 간부, 지식인, 예술가, 그리고 일반 노동자들까지 목숨을 잃었어. 그리고 아옌데 정권이 들어서기 전처럼 수 만 명의 아이들이 다시 영양실조와 배고픔에 시달리게 되었지.

...

  온 세계 어린이 기아의 현장에서 슬픔과 분노를 삼켰을 장 지글러는 자신의 슬픔과 분노를 넘어 그 이유를 분석한다. 그리고 그 분석의 결과를, 이처럼, 명쾌하게 집필하여 발표한다. 그것이 장 지글러의 전문가적 역량이었고 한 지식인의 양심적인 행동이었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기아의 진실에 가까이가게 되었다.

 

  이 책에는 앞에 옮겨 적은 칠레 정부의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기아의 원인을 진단하는 여러 가지 진실을 보여준다. 그 진실을 접한다는 것은 지글러의 슬픔과 분노를 공유하게 하는 일이다. 세상의 견고한 법칙의 굴레에 희생되는 수많은 아이들은 자신들이 어째서 그렇게 운명지어졌는지를 알지못하고 죽어간다. 그 굴레, 그 수레바퀴를 굴리는 이들은 그 바퀴 사이에 끼어서 신음하고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아이들의 실재하는 존재를 자신들과 상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뿐만 아니라 암묵적으로 그 굴레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그 수레바퀴의 운행에 돌을 던지지는 못할지언정 기름칠을 해줌으로써 존재를 영속시키는 절대 다수의 대중들 중의 하나일 뿐인 나는? 아마존 우림을 벌채하여 그 광대한 땅에서 수만 마리의 소들을 방목하여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무심하게 육식을 늘려온 것은 아니었던가? 부도덕한 다국적 기업의 제품을 사는 데 주저한 적이 있었던가? 세계의 지배자들이 앉아있는 높다란 황금산을 비난하면서도 그들의 발치에 놓인 굶어죽은 자들과 전염병과 전쟁, 경제적인 궁핍으로 죽은 자들의 무덤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장 자크 루소는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는 자유가 억압이며 법이 해방이다"고 했다. 겪었다시피, 시장의 완전한 자유는 누군가에게는 억압과 착취와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세계시장은 규범을 필요로 하지만, 지금 세상은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맡겨져 있다. 식량생산, 판매, 무역, 식량 소비로 이루어지는 세계경제는 정글 자본주의의 세계다. 그러므로 기아에 관한 한 시장의 자율성을 맹신하는 것은 거의 죄악이다. 그 죄악의 결과 중 가장 참담한 것이 아마 굶어서 죽어가는 어린이들이 아니겠는가. 이런 사실을 장 지글러는 폭로하고, 세상을 깨어있게 하고싶어한다. 자신의 아이가 진실을 알기를 바라듯 그는 담담하게, 그러나 뜨거운 정열을 담아 이야기한다. 한 권의 책이 세상을 순식간에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이 거대한 악의 틈을 비집고 진실을 비추기 시작하는 순간, 그 진실은 어느새 새어나와 스스로 돌아다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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