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아이 일공일삼 26
구드룬 멥스 지음, 로트라우트 수잔네 베르너 그림, 김라합 옮김 / 비룡소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구드룬 멥스의 문장은 아주 간결하고 빠르다. 긴 생각이 이어지는 법이 거의 없다. 주인공 일요일의 아이의 생각은, 그 문장을 따라 짧고 강렬하다. 절박하게 들릴 정도다. 아이는 마치 열에 들뜬 것처럼, 희망하고 좌절하고 또다시 기대한다. 남들 다 있는 부모가 없어 고아원에서 자란다는 것, 나만을 전적으로 사랑해줄 누군가를 절실히 원하면서도 언제나 포기해야만 했던 그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책 전체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 절박한 문체에 휩쓸려 독자인 나도 일요일의 아이만큼이나 절박하게, 희망하고 절망한다. 

독일의 고아원에는 입양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일요일 하루를 데려다가 마치 가족처럼 하루를 지내고 다시 데려다주기를 되풀이하는 일요일의 부모가 있나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선택되어 일요일 하루를 어쨌든 행복을 살짝 맛보고 온다. 거기까지가 그들이 원할 수 있는 한계인 거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일요일의 아이가 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랬던 아이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도저히 포기하지 못할 일이지만 그래도 거의 포기하기에 이르른 어느 날, 놀랍게도 드디어 일요일의 아이가 된다. 이제 단 한 명을 남기고 자신도 드디어 일요일의 아이가 된 아이는 그 행운을, 조심도 하지 않고, 맘껏맘껏 부풀려 즐긴다. 아직은 자신의 일요일의 부모가 되어주기로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최고일 거라고 상상하는 아이. 그 상상의 기다림은 마치 '키다리아저씨'처럼 전능한 사람을 꿈꾸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울라 아줌마는, 부자도 아니고 그리 멋있지도 않고, 또 보통의 어른처럼 점잖아보이지도 않는다. 어째서 일요일의 아이가 필요한 걸까? 싶은 바쁜 아줌마다. 그러나 그 둘은, 눈이 맞는다. 

아이는 하나하나 일요일의 엄마를 가늠해본다. 내가 생각했던 엄마와는 너무나 멀다. 하지만, 하지만 그 덜렁이 엄마는 단 한 가지, 오직 나만을 위해 일요일을 내주었고, 나와 둘이서만 노는 시간을 즐겼고, 다음에 또 일요일의 엄마가 되어줄거라고 약속해 주었다. 마치 어린왕자와 여우의 관계처럼, 그들은 서로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어보기로 한 거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여러 변수가 물론 있지만, 일요일의 엄마는 그만 마음이 움직인다. 내게 일요일의 아이인 이 아이가, 너무나 간절히 매일의 아이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걸 알고, 스스로가 그걸 감당할 수 있는지 원하고 있는지를 가늠해 본다. 그리고, 행복한 일이 일어난다. 많은 것을 간절히 원해왔던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여러가지이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따스한 눈길'이었다는 것, 그걸 새겨들으라고 작가가 말하는 듯하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키다리아저씨는 이제 좀 머쓱해질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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