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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문선명 지음 / 김영사 / 2009년 3월
평점 :
지은이 스스로의 말에 의하면, '이름 석 자만 말해도 세상이 와글와글 시끄러워지는, 세상의 문제인물'인 사람. 동전의 이면을 보듯 다시 보면 '돈도 명예도 탐하지 않고 오직 평화만을 이야기하며 90평생 살아왔다'는 사람. 세상에 알려지기를 통일교 즉,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창시자이며 최고 목회자인 사람이다. 문선명 총재라고들 한다..
세상의 많은 종교가 평화에 기여하기는커녕 오히려 전쟁과 재앙의 불씨가 되었다는 걸로 하여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해서 커다란 반감을 갖고 있다. 막연히 기독교의 한 종파라는 것만으로도 듣기 거북하고- 실제로는 기독교계에서도 이단으로 몰리니 오히려 종교적 박해를 받는 입장이지만 어쨌든 기독교, 게다가 교차결혼 같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을 마구 이루어내는 집단, 나름 거대한 재력을 소유한 기업화된 이미지... 였으니 실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 자주 보는 주간지에서 생각과는 달리 비교적 긍정적인 의미로 교차결혼을 소개하고 있어서 그저 '달리 보면 그런 측면도 있을 수 있겠구나', 했던 게 전부였는데. 확실히 지금은 달라졌다.
실제로 교차결혼으로 일본에서 한국의 농촌 총각과 결혼한 분을 알게 되어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그러니까 종교적인 만남 말고, 일본어 수업을 통해 만나게 되었는데, 그이는 인간적으로도 정말 매력적인 여성이다. 왠지 조심스러워 종교 이야기 말고 여러 가지를 나누었는데, 좋은 친구 한 사람이 새로 생겨서 기쁠 따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특이한 결혼 방식 말고는, 정말 아무 것도 특별할 게 없는 그저 편안하고 좋은 사람이어서 편하게 종교에 대해서도 물어보게 되었다. 일본인이지만 편견 없이 통일교를 접했고, 문선명 총재에 대해 공감하고 존경하게 되어 그에 맞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것, 지금도 자신의 선택이 가치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나야말로 좀 더 알고 싶어졌다. 종교인으로서 조금도 과하지 않고, 생활인으로서는 더할나위없이 소박하고 훌륭한 한 개인과의 만남이 내 편견을 어느새 희석해놓은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이 책을 권해주셔서 보게 되었다. 그것 참, 적절한 때에 보게 된 것 같다.
책을 통해 보는 문총재의 삶은 믿을 수 없을만큼 역동적이었다. 종교적 에너지라고는 하지만,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한계치를 훌쩍 넘은 많은 일을 해 왔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실은 어두운 안개에 둘러싸인 안좋은 소문 말고는 자세히 알아보려 한 적이 없었으니, 일단은 흑막에 쌓인 인물이 전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 지은이 스스로가 자신의 삶에 대해 너무나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어하는 게 느껴진다. 너무 많은 오해를 받았으니 제발 제대로 듣기나 해보고 판단하라는 말일 것이다. 90평생 얼마나 많은 '사명' 앞에 섰는지 듣기만 해도 힘들 정도였는데, 그런 일들이 일관되게 인류와 세상의 평화를 위한 것이었다는 것은 존경스러운 일이다. 나 자신 국제 정세 속에서 그런 일들이 실제로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파악할 만큼은 안되니 아무래도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지만, 진심으로 평화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한 사람의 진실성이 느껴졌다.
"2001년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두 동강 나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세상에서는 이를 두고 이슬람교와 기독교사이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문명의 충돌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이슬람교와 기독교는 충돌과 대립의 종교가 아닙니다. 둘은 하나같이 평화를 중시하는 종교입니다. 이슬람 세력은 과격하다는 생각이 편견인 것처럼 이슬람교와 기독교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도 편견일 뿐입니다. 종교의 본질은 똑같습니다. "
"1994년 우리는 전 세계 종교학자 40여명을 모아 <세계경전>을 편찬했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불교를 비롯한 세계 주요 종교의 경전에 등장하는 단어들을 비교 연구한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작업을 끝내고 보니 그 많은 종교의 가르침 중에서 73%는 모두 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27%만이 각 종교의 특징을 나타내는 말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전 세계 종교의 73%는 동일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터번을 두르고 염주를 목에 걸고 십자가를 앞세우는 겉모습은 다르지만 우주의 근본을 찾고 창조주의 뜻을 헤아리는 것은 모두 같습니다 (잠깐, 불교가 창조주의 뜻을 헤아리는 종교인지는 별개로 치고..).
사람들은 서로 취미만 같아도 좋은 친구가 됩니다. 태어난 고향만 같아도 몇 십 년 같이 지낸 사이처럼 말이 통합니다. 그런데 무려 가르침의 73%나 같은 종교들끼리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서로 통하는 것들을 이야기하며 손을 잡으면 될 일을 서로 다른 것들만 내세우며 비판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평화와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평화와 사랑을 놓고 다툼을 벌입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이 사는 곳에 대규모 폭격을 가하면서도 평화를 내세웁니다. 팔레스타인의 아이들이 죽어가는데도 그들은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믿는 유대교 역시 평화의 종교입니다. 이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경전>을 만들면서 우리가 얻은 결론은 세계의 종교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신앙을 가르치는 일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잘못된 신앙은 편견을 부르고 편견은 싸움을 부릅니다."
종교의 '문제'를 짚고 있는데,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문총재가 아라파트를 12번이나 만났다는 걸 알고 놀랐다. 유대교와 이슬람교, 기독교인들 수천 명을 한 자리에 모아 화해의 광장을 마련하고 평화행진을 벌였다는 것, 평생 세상의 낮고 구석진 곳을 찾아 아프리카와 남미를 찾아다녔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렇게 스케일이 크고 대단한 일을 하는 것과 별개로, 스스로의 일상이 소박하고 검소하다고 한다. 반찬은 세 가지 이상을 놓고 먹지 않는다든가, 대형할인점에서 5만원도 안 하는 구두를 사서 신는다든가, 값싸고 시간이 절약되니 맥도널드를 즐겨 먹는다든가, 심지어 식구들에게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 같은 걸 사먹지 말고 물을 마셔서 절약하라고 한다니.(이토록 소소한 실천 이야기, 대범한 누군가는 웃어넘길지 모르지만 내게는 와서 꽂힌다..) 세상 사람 모두 넥타이를 풀고 그 돈을 굶주리는 이웃을 위해 쓴다면 세상은 좀더 살만한 곳이 될 것이라는 제안에는 나도 슬며시 웃음이 난다. 정말일까? 정말이라면.. 너무나 소박해서 존경스러운 삶이 아닌가.
문 총재의 삶은 열정적이고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구나. 공감. 그러나 '하나님'을 중심에 놓고 세상의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나, 가족 안에 가부장적인 질서가 평화를 유지하는 받침이라고 생각하는 것, 공산주의에 대한 일방적인 공격 등에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정에 찬 실천주의자의 삶을 들여다본 일이 내게는 근거없는 편견을 없애게 된, 아주 좋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