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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아 - 월드원더북스 1
호시노 미치오 글.사진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스스로 알래스카의 바람이고 싶었고, 바람이었던 호시노 미치오, 그가 취재중이던 캄차카에서 곰의 습격을 받고 45년의 짧은 생을 마감한지도 벌써 13년이나 흘렀다. 이제 그는- 그의 영혼 그의 몸은, 생전에 그가 그토록 애틋하게 여겼던 곰으로 이어지고 있는 걸까. 그는 이렇게 다정하고 편안하게 "곰아," 하고 부르고 있는데.
"나는 알았지.
너와 나 사이에 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도쿄에서 어린 시절,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던 때, 그는 전차 안에 있다가 문득 곰을 떠올린다. 그리고 어떤 영상이 확연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여행하는 나무>, 호시노 미치오) 곰은, 깊은 산속에서 풀숲을 힘차게 헤치며 쓰러진 큰 통나무 위를 건너고 있었다. 그때부터 큰곰과 그는 하나가 되기 시작했다. 도쿄와 홋카이도 만큼이나 멀리 떨어진 미지의 존재로부터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림책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책은,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좋을 것이다. 알래스카 곰이 봄 여름 가을의 자연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지은이가 찍은 것이다. 바로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위치에서 찍은 듯한 사진도 있다. 무심코 앞을 봤을 때 풀숲 속에 앉아있던 곰의 모습도 있다. 가을이었나, 불타는 듯한 풀을 배경으로 그윽한 눈매의 곰이 바로 나를 바라보는 듯, 고요하게 있다. 긴장이 흐른다. 사진을 찍은 지은이는, 스스로도 어쩔 줄 몰라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서로 마주 본 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지은이의 귀에 가늘게 쉬는 곰의 숨소리가 들렸다고 하니... 곰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진이 달리 어디 있으랴.
그런 사진들이 한 면 한 면마다 펼쳐진다. 사진가인 지은이의 그리움도 있고 두려움도 있다. 극북의 석양과 밤과 오로라와가 책 안에 펼쳐지고, 여름의 미크픽 강과 베어플라워꽃 무더기, 가을의 툰드라가 펼쳐진다. 여러, 여러 장면들이 펼쳐진다. 현실의 우리에겐 저 너머의 어떤 것을 보여주는 신비로운 사진들이다. 스스로 원시인이 된 듯, 짐승이 된 듯 느꼈다는 지은이의 감성과 경험을 따라갈 수야 없겠지만, 나즉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는 있다. 그것 만으로도...
이 책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