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방고의 숲속학교
트래버스 외 지음, 홍한별 옮김 / 갈라파고스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프리카의 가장 아래쪽, 남아프리카 공화국 바로 위에 보츠와나라는 나라가 있다. 물론.. 처음 알았다. 거기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먼저 케이트 니콜즈, 어느 날 갑자기 아프리카로 생활의 터전을 옮기기로 마음 먹은 비범한 아줌마다. 30대 후반에 배우로서 성공했지만 무대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진화생물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때 코츠월드에 살면서 공부하고 있던 그녀는 옥스퍼드에서 리처드 도킨스를 만나 몇 차례 도움을 받는다. 끝장을 보는 성격인 그녀는, 엄청난 독서와 공부로 다윈 이론의 전문가가 되는데, 마침내 일상 생활에서 다윈 이론을 실제로 관찰할 수 있는 보츠와나로 이주해서 연구하기로 마음먹는다. 도킨스의 말에 의하면 그녀에게는 그 결정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니..  

그때까지 다섯 아이들은 코츠월드의 홀리부시 오두막에서 자신들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시끌벅적하게 엉켜 살고 있었다. 제일 큰 에밀리와 막내 오클리는 다른 세 아이들- 트래버스, 앵거스, 메이지-과는 아버지가 다르지만, 그렇다고 다른 점은 하나도 없다고 트래버스는 기억한다. 그리고 이 책의 시작이기도 한, 아프리카로의 이주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느 날 아침 난로 옆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데, 엄마가 아프리카로 가서 새로운 생활을 해보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빠는 로스앤젤레스에 이민할 예정이었고, 엄마도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했다. 엄마는 유럽인들의 생활방식을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사회가 기술적으로 점점 복잡해지면서 아이들이 점점 무력해진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우리 가족이 어떤 도전이라도 맞서고 무슨 일이든 스스로 하는 법을 익히길 바랐다. 영국에 살 때는 무슨 일만 생기면 그 분야 전문가를 찾았다. 심지어 언젠가는 부엌에 나타난 쥐 한 마리 때문에 모두 집밖으로 대피하고 쥐 잡는 사람을 불러 처리한 일도 있었다. //  세계지도를 꺼내온 엄마는 보츠와나라는 나라를 짚어 보이며 오카방고 삼각주와 칼라하리 사막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날 아침까지 그런 나라가 있는 줄도 몰랐다.' 

이것이 오카방고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경위를 적고 있는 트래버스의 말이다. 그때 세 아이들은 초등학생 또래였다. 그리고 여섯 달 후, 아이들은 보츠와나에 있었다. 

음.. 남다른 엄마이기는 하다. 그녀가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는 유럽인들의 생활방식이라는 건 실은 지금 우리들의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그 분야 전문가를 찾는다.. 사회는 기술적으로 점점 복잡해지면서 과연 아이들은 점점 무력해진다. 아이들 뿐인가?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것에 대해서는 움츠린 채 살아가면서도 그런 삶을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들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그게 맘에 안 든다고 떠날 생각을 한다. 그렇게 시작할 수 있었다. 

보츠와나에서 아이들은 케이트의 생각 그대로, 어떤 도전이라도 맞서고 무슨 일이든 스스로 하는 법을 익히면서 자란다. 세 아이 모두 발이 액셀러레이터에 닿을 때부터 랜드로버를 몰았고, 타이어를 들어올릴 수 있었을 때부터 일상적으로 타이어를 갈았다. 막내 오클리가 기억할 수 있는 때부터 천막집에서 살아왔다. 아이들은 어머니에게 교육받았다. 수업은 전적으로 캠프 내에서 이루어졌는데, 정해진 학기에 따랐고 힘든 숙제도 있었고 국제 공인 시험에도 대비했다. 케이트는 표준교육 과정에 따르면서 한편으로는 대부분 아이들이 십대 때 잃고 마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키우고 간직할 수 있게 아이들을 교육했다. 이 책을 읽어보면, 그 교육은 더할 나위없는 성공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교육의 결과물이기도 한 이 책, 아이들은 자신들 스스로의 힘 만으로 이 책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책은 그저 어린이들의 감상적인 체험기.. 정도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아이들의 글은 아주 훌륭하다. 오카방고 삼각주의 숲속 생활의 기록으로서도, 가족과 타인들간의 관계의 기록으로서도, 또한 사자 연구로서도 탁월하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갖고 있는 순수성, 열정, 호기심, 조심성과 두려움 들이 글 속에서 반짝인다. 섬세하고 명석하다. 그들의 그림은 처음 이 책을 대하는 우리들에게도 아프리카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정말 문학적이면서도 인문학적으로도 뛰어난 기록물이다. 한 편의 서정적인 다큐멘터리를 손에 들고, 나 스스로 열정에 들떠 이 책을 읽어나갔다. 물론 끝날 때까지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모르는 동물을 발견하면 여행 안내서를 여러 권 뒤져서 무엇인지 알아낸다. 숲에 다니면서 새에 대해 공부하고 하늘을 나는 수리를 관찰한다. 수리가 땅으로 날아 내려오는 것은 가까이에 죽은 동물이 있다는 뜻이다... 아이들이 자연의 법칙을 알아내는 과정은 그것이 생활 그 자체이기 때문에 이상적이다. 차를 타고 가면서 동물의 학명을 외우는 게임을 한다. 이들은 거의 매일 동물들을 만나면서 생활한다. 캠프 안으로 동물들이 드나든다. 밤이면 텐트 바깥을 스쳐지나가는 코끼리와 사자, 하이에나 같은 동물들의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러면서 캠프의 생활은 안락한 영국에서의 생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새롭지만, 말할 수 없이 불편하다는 생각도 한다.  

'비가 오면 우리 생활은 완전히 달라진다. 우선 사자를 만나기가 너무나 힘들다. 차는 계속 진창에 빠져 끌어내야 하고.... 어느 날 밤, 배설물 샘플 하나를 건지려다 열한 번이나 차가 진창에 박혔을 때는 극도로 절망에 빠졌다. 그래도 쏟아지는 빗속에서 밤새 차를 파내고 들어올려 꺼내야 했다. 새벽에 흠뻑 젖고 기진맥진한 채 캠프로 비틀비틀 돌아가니 엄마가 불안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차라리 차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에 빠져나오지 그랬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날 밤은 차창을 새까맣게 덮어버릴 정도로 모기 떼가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모기 떼에 뜯기느니 차라리 차를 빼내면서 몸을 계속 움직이는 편이 나았던 것이다. 

지금도 며칠째 비가 내리고 있다. 편안한 집 놔두고 왜 여기에 와서 이러고 있나, 이렇게 해서 얻는 게 과연 뭔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최근에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사자가 우리를 지탱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가 여기에 사는 이유는 사자 때문이다. 이 비와 진창 속에도 지금 사자들이 무얼 하고있는지, 별 탈 없는지 궁금하다. 사자에 대한 사랑으로 버텨나가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지난 3년간 우리는 아주 많이 성장했다. 우리는 이제 동물에 대한 이해가 자연을 보존하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것은 앵거스의 기록이다. 14세, 성숙한 청소년의 품새가 드러난다. 놀라운 아이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아프리카가 만드는 아이들일지도 모른다는 게 이 책을 보는 동안에 든 내 생각이다. 근대의 학교 교육은 분명히 성공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삶과 경험과 유리된 채 교실 안에서 오직 책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교육, 그것도 나이가 같으면 한꺼번에 같은 과정을 배워야 하고, 누구나 같은 것을 배워야 한다. 지혜는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 외워야 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러면서 사실 지혜는 생활에서 사라지고 만다. 우리나라의 교육 과정을 생각하면, 그건 더이상 전혀 교육이 아니다. 말할 수 없이 서글프다. 우리의 아이들은 그 속에서 죽을동 살동 경쟁하고 있는 중이고, 그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거기에 삶의 아름다움, 존엄함, 자연에서 느끼는 경외감 등은 어디에도 깃들 여지가 없다. 그래서 오카방고 숲속 학교는 그 '거의 불가능해보이는' 실현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에 깃든다.  

모든 사람들이 아프리카라면 바로 떠올릴지도 모르는 위험, 온갖 병들과 사고, 미진한 의료 체계 들은 이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었던가? 운 좋게 건강했기에 가능한 생활이었던가? 그렇지 않다. 아이들은 말라리아에 걸리고, 빌하르츠 주혈흡충에 감염되어 석 달 씩이나 고생하기도 한다. 언제든지 야생의 동물들은 위협적일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하고 차는 시도때도 없이 탈이 난다. 아파도 병원에 가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송용 헬기가 날씨 때문에 뜨지 못하기도 한다. 이런 것이 바로 아프리카적인 것이다... 그들에게도 그런 일들이 일상 다반사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래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 또한 희한하다. 그렇게도 살아갈 수 있다. 그런 것은 생활의 일부일 뿐이다. 며칠 씩 비가 내리는 가운데 텐트 속 생활을 한다는 것, 거센 바람에 텐트 기둥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도 물건들은 날아가고 물에 젖고, 엉망진창이 되기도 하지만, 또 그런 시간은 지나가고 다시 멋진 생활을 할 수도 있다는 것, 그게 아프리카적인 삶이다. 무엇보다 이 글을 쓴 세 아이들은 아프리카의 삶을 사랑하고 있다. 사자를 이해하면서 자연을 이해하게 되는 트래버스의 말을 들어보자. 

"사자들은 무자비한 자연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자연적인 원인에 의한 죽음이 삶이 초래한 것보다 훨씬 많다. 지난 5년 동안 연구 지역에서만 한창 나이의 수사자 열 마리, 암사자 여섯 마리, 새끼 쉰두 마리가 모두 자연적 원인으로 생명을 잃었다. 질병이나 싸움 때문에, 사냥중에 채이거나 찔려서, 돌보지 않아서, 다른 맹수에 의해, 다리가 부러지거나 아니면 늙어서 죽기도 한다. 자연에는 옳고 그른 것이 없다. 단지 야생의 삶은 힘들 뿐이다. 이곳에서는 제일 힘세고 영리하고 건강하고 운 좋고 질긴 놈만 살아남는다. 때로는 이런 자연의 현상을 보고 있으면 고통스럽기조차 하다." 

말할 수 없이 특별하고 대단한 책이다. 부모와 아이들 사이에는 깊은 신뢰와 사랑이 깃들어있고, 아이들이 그것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도 특별한 점이다. 자연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자연과 관계를 맺을 것인지,  서로 다른 경험과 방식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만들어 가는 것인지, 인간의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이란 진정 무엇인지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특별하게 보이기 위한 과장도, 스스로에 도취된 감상도 없다. 아이들의 기록 방식은 정직하고, 논리적이고, 새롭다. 너무나 다른 삶의 방식인데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의 편안함도 여러 가지 장점 중의 하나다. 세 아이들의 눈으로 나는 아프리카를 잠시라도, 가득가득 경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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