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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다섯 명의 오케스트라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20
칼라 쿠스킨 지음, 정성원 옮김, 마크 사이먼트 그림 / 비룡소 / 2007년 1월
평점 :
잘 준비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며 저런 조화를 위해 저들은 무지 강도높은 연습을 할거야.. 전체의 흐름을 흐트리거나 원치 않는 음악이 만들어질 때면 지휘자에게 혼나기도 하겠지. 나름대로 다 타고난 연주자에 훌륭한 교육과 훈련을 거친 연주자들인데도 모여서 연주하는 건 쉽지 않을거야, 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들의 연습 시간을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가끔 영화를 보면 독주 악기를 갖고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그럴 때면 그 협주곡을 만들어 내기 위해 지휘자와 그의 오케스트라의 음악과 솔로 연주자의 음악이 충돌하면서 서로 맞서는 걸 보기도 한다. 만들어내고자 하는 음악이 다른 거야.. 라고 생각을 하지만, 어쨌든 참 쉬운 일이 아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이 그림책은 <백 다섯 명의 오케스트라>의 연주 '전' 모습에 집중한다.
물론 피날레는 그날 저녁의 연주다. 필하모닉 홀 천장에는 샹들리에 여섯 개가 조용히 반짝거리고, 빨간 벨벳이 깔려 있고 축구장만큼이나 커다란 공연장이 음악으로 가득차는 순간을 채우는 사람들이 바로 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들이라는 걸 보여준다. 금요일 밤 8시 30분, '검은 색과 흰색으로 잘 차려입은' 백다섯 명이 함께 자신의 일을 하는 순간, 그 일이란 '흰색 종이에 그려진 검은 색 음표'를 멋진 음악으로 바꾸는 일이란다. 검은 색과 흰 색이 그렇게 연관이 되어 있었다니. ^^
그런 피날레를 향해 백 다섯 명은 어떤 준비를 하는가? 그걸 유쾌하게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연습 과정? NO!
집집마다 하나 둘 불이 켜지기 시작하면, 백 다섯 명은 일하러 나갈 준비를 한다. 어떤 준비?
모두들, 옷 입을 준비를 한다고! 하하.
아흔 두 명의 남자와 열세 명의 여자가 먼저 몸을 씻고( 누구는 샤워를 누구는 욕조에 푹 담그는 목욕을, 누구는 거품 목욕을... 그런데 이게 뭐? ), 그 다음에는 모두모두 수건으로 닦고, 그 다음에는 파우더를 뿌려서 물기를 다 말리고, 남자들은 면도를 하고, 그리고 속옷을 입는다네.
남자들은 삼각팬티도 입고 사각팬티도 입고, 러닝셔츠는 입거나 안입거나 하고, 아래위가 붙은 긴 내복을 입는 빼빼마른 남자도 있고, 검은색 양말을 신고 어떤 사람은 양말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양말 대님을 매기도 하고. (그게 대체 어쨌다고? )
여자들은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속옷을 입고, 스타킹 위에 모직 양말을 덧대어 신기도 하고.
이렇게 속옷을 다 입고 나면 이제 남자들은 흰색 와이셔츠를 입고, 검은 색 바지를 입고, 여자들은 검은 색 긴 치마를 입고, 치마와 어울리는 검은색 윗옷을 입고, 누구는 긴 드레스를 입기도 하고, 목걸이나 귀걸이도 하고. 하지만 팔찌는 절대 하지 않고(물론 연주하는 데 방해가 되니까).
단 한 명의 남자만 앞쪽에 주름 장식이 달린 부드러운 흰색 셔츠를 입고 멋진 커프스 단추를 채운 뒤, 허리에 커머번드라고 부르는 널따란 검은색 허리띠를 두른다. 단 한 명의 남자만.
또 또 모든 남자들은 검은 색 나비넥타이를 매고 모두들 턱시도를 입는데, 한 남자만 희고 커다란 나비넥타이를 매고, 특히 연미복을 입는다. 남자들이고 여자들이고 모두 다 차려입으면 그 위에 코트나 재킷, 망토를 걸치고 부츠를 신고 장갑을 끼고 모자를 쓰거나 귀마개까지 하고, 가방을 들고 나선다. 백 다섯 명은 모두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다..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타고 택시도 타고..
금요일 밤 8시 25분, 백네 명이 필하모닉 홀의 커다란 무대로 입장을 한다. 가방 속에 든 악기를 모두 꺼내 무대로 나르고, 외투와 장갑 같은 것은 무대 뒤쪽의 어두운 사물함에 놔두고. 세 명은 악기를 나르지 않는다. 누구? 무거운 악기의 주인들은. 하프 연주자, 팀파니와 같은 타악기 연주자 들이다. 무대에 있는 백 네 개의 의자에 각자 자기 자리를 찾아 앉는다. 보면대에 악보를 올린다. 더블베이스 주자만이 등받이가 없는 높은 의자에 앉는다....
특별한 한 남자, 그 남자가 무대 앞으로 걸어와서 지휘대로 뛰어 오른 뒤, 청중들을 향해 인사를 하고, 뒤돌아서, 지휘봉을 휘둘러서 그 넓고 조용한 공간을,
음악으로 가득 채운다는 말씀.
칼라 쿠스킨, 도대체 어떻게 이런 엉뚱한 구상을 한 걸까?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준비라는 것이, 연주가 있는 금요일 저녁에는 각자의 장소에서부터 시작해서 모두 똑같이 목욕하고 옷입고 인사하고 악기를 챙겨서 나온다는 거다... 모두모두 그렇게 한다. ^^ 이것, 유모어 그림책인가? 엉뚱하다. 그런데 뭐, 새삼스럽게 그걸 챙겨서 보고 있자니 실실 재밌기도 한 거다. 그러면 된 거겠지?
그래도 악기도 다 나오고, 오케스트라 자리도 대충 다 나오고, 흰 건 종이고 검은 건 음표라는 중요한 사실도 다 나온다. 그러면 충분한 거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그렇지, 그래서 재밌게 볼 수 있었던 거니까 그러면 충분한 거라고, 고개 끄덕여 줄 수도 있겠다. 그런데 거 참.. 싱겁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