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토끼가 도망친다 미도리의 책장 1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시작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추리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와의 첫 만남.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은 추리라는 장르가 오래전부터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아주 인기있는 분야라고 한다. 작가층도 두텁고, 작품 수도 많은 만큼 인기 있는 작품도 셀 수 없이 많고, 열성적인 독자층도 탄탄하다고 한다. 지적인 유희라든가, 몇 번이고 계산된 속임수-트릭-라든가, 이런 속성으로 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작품성과 별개로 생각해 온 분야인데 말이다. 그런 구분은 점차 엷어지고, 우리나라에서도 추리소설의 작가나 독자층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하니 언젠가는 우리도 폭넓은 작가- 독자층을 확보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래도 그건 우리 식의 추리소설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아리스가와 아리스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따온 스스로의 작명이라는 이야기도. 역자인 김선영씨에 따르면 그 스스로 택한 '앨리스' 라는 이름에서 보듯 환상주의, 초현실주의, 은유를 좋아하는 취향이라고 하는데, 확실히 뭔가 스타일이 느껴지는 작가다. 스스로 추리작가로 소설 안에 1인칭으로 자주 등장하는데, 실제로는 언제나 문제를 풀어가는 건 히무라이니까, 홈즈- 왓슨 구도로 가기로 작정한 거다. 그러나 왓슨은 또한 작가 코난 도일의 창작 인물로 설정되는데 비해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스스로 작가이면서 작품에 등장하는, 작가와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장치를 쓰는 게 다르다. 그게 유머러스하다. 스스로를 희화적으로 표현하기로 작정한 작가의 장난기랄까, 그런 데서 왠지 '추리소설'을 대하는 작가의 애정이 느껴진다.  

이 책에 나오는 네 편의 작품을 작가 스스로 짧게 해설한 것을 보면 더 그런 느낌이 든다. '부재의 증명'은 조금 색다른 알리바이 트릭 작품이고, '지하실의 처형'의 테마는 말할 것도 없이 범행의 '뜻밖의 동기'이며, '비할 바 없이 성스러운 순간'은 다잉 메시지, '하얀 토끼가 달아난다'에서는 철도 트릭이라는 것과 잘 보이지 않는 범행 동기가 작품의 구성 요소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마치 종합세트처럼, 각각 다른 유형의 추리를 펼쳐보이려 노력한 것도 아리스 라는 작가의 열정의 산물로 보이지만, 어쩐지 코믹하게 느껴진다. 추리는 일종의 심리적 동기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밀실 트릭이라든가 철도 트릭이라든가 하는 유형 안에 심리의 요소가 살짝 가려지는 것이다. 도대체 범죄의 방식과 동기라는 것이, 그런 특정 유형 안에 갇힐 수 있는 것일까? 나로서는 그게 의문이다. 그런데 일본 작품에서는 그렇게나 많이 그런 유형들을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게 또 추리의 기본 코드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그렇게 많은 일본 작가들이  밀실 트릭을 창조해내고 또 그걸 풀어가는 걸 지적인 유희로 느낀다는 사실이 여전히 신기하다.

이 작품집에서는 히무라도 아리스도 크게 존재감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뒤에 붙은 '타잎' 을 분류 해설해놓은 것과는 별개로, 하나하나의 작품들이 다 탄탄하고 재미있는 작품들이었다. 좀더 많은, 특히 긴 작품을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작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