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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쉽게 찾기 ㅣ 호주머니 속의 자연
윤주복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나무와 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접한 책이 윤주복 님의 <식물관찰 도감>이었다. 정작 산에 갈 때 들고 가기가 좀 무겁다는 점만 빼면, 초보인 나에게는 너무나 유용해서 "바로 이게 내가 찾던 거야!"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던 책이었다.
제법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들꽃에 익숙해졌다 싶었는데, 의외로 나무는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았다. 풀꽃들은 사실 꽃피는 그 때를 제외하면 존재감이 많이 드러나지 않아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마련이다. 지나다 어딘가서 '반짝' 하는 느낌이 올 때, 돌아보면 거기 노랗게 뽀리뱅이가 피어있기도 하고 붉게 지칭개가 피어있기도 한거다. 풀꽃들은 겨우내 대부분 잎조차 스러진다. 그렇게 풀꽃들은, 거개가 꽃으로 자신의 온 존재를 알린다. 그래서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들꽃 쉽게찾기 하는 책들은 그 꽃의 색으로 구분해 들어가는 식으로 편집이 되어 나온다.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라 여긴다. 일반인에게는 게절별, 꽃색별 접근이 학술적인 접근에 우선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나무는?
나무는 사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게 풀과는 다르다. 겨울, 잎을 다 떨구고도 나무는 그 자리에 언제나 있다. 풀처럼 없어졌다가 나타나는 게 아니니까, 꽃 피는 것으로만 자신을 알리지는 않는다. 물론 꽃피우는 건 중요한 일이지만, 그건 너무나 짧은 순간, 한 해 중에 잠깐에 불과한 시간이다. 산과 들과 집 근처, 학교 마당이나 관공서에도 나무는 당당히 자기 존재를 알리며 서 있다. 그래서 나무는 꽃 뿐만 아니라 그 잎, 그 줄기, 그 열매, 그 겨울눈.. 등등으로 찾아들어가는 게 훨씬 유용한 방법이다.
내가 다섯 해 이상을 살아온 아파트에서 어느 날 발치에 떨어진 나무잎 하나를 주웠다. 처음 보는 잎이었다. 고개를 젖혀 위를 보니, 족히 7~8 미터는 됨직한 낯선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 나무 그리 크도록, 한 번도 바라보지 않았던 걸까. 한번 올려다 본 적도 없었을까. 처음에는 어린 나무였을텐데. 그러면 그때는 내 눈 높이보다 약간 더 높았을지도 모르는데. 이미 커버린 나무는 잎을 관찰하기도 어려울만큼 커버렸다. 대체로 너무 높은 높이에 있었다. 무성한 초록잎, 그 중 하나가 발치에 떨어져 내게로 온 거다. 집에 와서 내가 가진 도감으로 그 잎을 찾자니 너무나 힘이 들었다. 꽃을 본 것도 아니니, 그냥 도감 전체에서 찾다가 운 좋으면 빨리 그것과 같은 잎 모양을 찾을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잎이 크게 나와있지 않은 것도 많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끈기있게 뒤져서 그 나무가 튤립나무라는 것을 알아내기는 했다. 그건, 그때로서는 처음 듣는 이름, 튤립나무 혹은 백합나무였다. 꽃 모양이 튤립꽃을 닮아서 그런 이름을 가진, 그래도 꽤 유명한 나무였다. 이미 가로수로도 많이 심어진 나무란다. 얼핏 플라타너스를 닮아보일만큼 울창하고 멋지게 자란다. 그게 우리 아파트에 두 그루가 있었다는 걸, 그 때 처음 알았다. 반가웠다.
나무는 그렇게, 잎으로 자신을 드러내기를 즐긴다. 꽃과 열매는 잠깐이니까. 줄기는 실은 구분하기가 잎에 비하면 더 까다로우니까. 그래서, 잎으로 나무를 찾는 방법이 없나? 하고 살폈다. 일반인을 위한 도감으로는 꽤 정평이 나 있는 진선출판사, 전문용어를 쉬운 일반어로 바꿔서 일반인이 다가서기 쉽게 설명해주기로 이미 정평이 나 있는 윤주복님, 그들의 합작품이 이 책, <나무 쉽게 찾기>라는 도감이다. 물론 계절별로 꽃 색으로 구분을 해 두었지만, "잎 모양으로 나무 찾기"라는 항목이 맨 처음에 붙어 있다. 이 책에 나와있는 총 612종의 나무가 그 잎 모양으로 찾아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책의 가장 크고 유용한 장점이 그것이 아닐까 한다. 그 잎들을 찾아들어가는 것도 물론 그냥 나열식은 아니다. 홑잎과 겹잎, 홑잎 중에는 어긋나기와 마주나기, 어긋나기 중에서도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는 잎과 없는 잎, 이런 식으로 찾아 들어갈 수가 있으니 그야말로 나무잎 한 가지만 있으면 도감을 펼쳐 비교를 시도해 볼 수 있다. 그리고 비슷한 잎을 찾으면 그 밑에 적힌 이름으로 들어가 세부 내용을 살펴보며 확인해 볼 수 있게 되어있다.
이즈음에 늘상 산에 다니며 지나치던 나무들에게 이름을 불러주기를 시도하던 나에게 이 책은 단비와 다름없다. 이 책으로 굴피나무를, 비목나무를, 붉나무를 제대로 만나게 되었다. 성당 뜰에 있는 모감주나무도, 학교 담에 덩굴진 계요등도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을 도시에서 자라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제대로 만나지 못했던 나에게, 나무 도감이라는 책이 그 아름다운 나무들의 이름과 삶을 알려준다는 것은 그야말로 나에게 경이 그 자체다. 이미 열 권 남짓 식물 도감을 갖고 있는 나에게도 이 책은 너무나 유용하고 고마운 도감으로 자리잡았다. <겨울나무 쉽게 찾기>라는 책도 있다는데, 올 겨울부터 겨울 나무를 자주 만나게 된다면 그것도 구입하게 될 것이다. 겨울눈과 잎 흔적의 모양으로 구분해 들어가는 나무의 세계라...
한 권의 책이 그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손에서 얼마나 큰 가치와 효용을 지니는지, 이 책이 그 쉬운 예가 될 것이다. 주변에서 만나게 되는 나무들 하나 하나를 이 도감을 통해 이름을 불러주게 되고, 그럴 때마다 하나씩 밑줄을 그어가는 일, 너무나 즐거운 놀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