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댁 요코짱의 한국살이
타가미 요코 지음 / 작은씨앗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한동안 일본어를 공부한 적이 있는 아줌마로서, 이 책이 얼마나 생생하게 와 닿는지 모른다.  

한국의 아줌마로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으니까 요코짱이 느끼는 것들이 나에게는 당연 익숙한 것들이지만, 그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 문화가 다르면 전연 색다르고 황당하게 보일 수도 있더라는 것이다. 그게 어쩌다 오며가며 얻어듣는 한두번의 경험이 아니라 거의 책 전편에 걸쳐 펼쳐지니까 그저 스쳐지나가지 않고 간접체험으로 좀더 남게 되는 듯하다. 한 권 책을 읽는 내내 요코짱 덕분에 한국인인 나를 돌아보는 게 색다른 체험이었다.  

책을 통해 보면 요코짱은 아주 호감이 가는 사람이다. 서로 차이나는 문화 속에서, 게다가 그이는 일본과 한국이라는 미묘한 관계를 안고 한국에서 살아가야 하는, 어쩌면 항상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는 게 아닌가. 이질적인 것들이 당연 낯설고 또한 이상해서 금세 좋아지기보다는 힘들고 싫은 느낌이 우선 들 것만 같은데, 요코짱의 글과 만화에는 신기하게도 그런 역정이나 짜증이 묻어있지 않아서 어느새 유쾌하다. 성격이 낙천적이어서만 그런 걸까? ...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인과 결혼하고 한국에서 살아가기로 작정하고 이곳으로 온 요코짱이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다고 마음은 먹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질적인 것을 겪으면서 뭐 이래, 하는 마음보다는 엇, 다르잖아! 라고 생각하려 애썼겠지. 틀리다고 보지 않고 다르구나, 라고 생각하는 마음이라면 많은 부분 그대로 받아들이기 쉬워지는 것이니까.

"나는 일본 사람이니까, 한국에서 일본의 욕을 들으면 역시 굉장히 슬프고, 칭찬을 들으면 너무너무 기쁘다. 일본의 전자제품이 칭찬 받기만 해도,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몹시 으스대거나 한다.  

그런데 일본에서 한국의 욕을 들으면, 아주 기분이 나빠져서 한국을 옹호하기도 하고, 반대로 칭찬 받으면 나의 나라처럼 기쁘다. 한국에 시집 온 일본인의 마음은 사춘기의 중학생처럼 미묘하고 섬세하고 복잡한 것이다. 

외국에 대해 선입관이나 편견이 강한 사람도, TV나 신문의 정보 말고 자기 눈으로 그 나라를 보면, 제법 이미지가 바뀌는 것 같다. 일본 친구가 나를 보러 한국에 와 주고, 며칠간 함께 지낸 뒤 "한국이란 생각보다 훨씬 좋네, 또 놀러 올게!" 라고 말해 줄 때가 가장 기쁘다. 한국 친구가 "일본에는 좋은 이미지가 하나도 없었는데, 친구가 생기고 나서 바뀌었어."라고 해 줬을 때도 참 기뻤다. 

아마 일본에 있는 한국 분도 여러 가지 힘든 일이 있을 것이다. 양국 중간에 있는 사람은 괴로운 것도 많지만, 어쩌면 뭔가의 도움이 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좀 행복하다."  

131쪽의 글을 전부 옮긴 것인데, 내게는 정말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이야기였다.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 간에는 아직 풀어야 할 문제가 너무나 많지만, 그렇다고 두 나라 사람들이 서로에게 적대감을 가진다는 건 그 사람들 개개인을 겪어보면 참 힘든 일이다. 개개의 일본인과 한국인에게 무슨 감정이 있겠는가! 때로 나는 일본인과 한일의 역사에 관해 진지한 이야기를 주고 받지만, 그 이야기들이 합리적인 선을 넘어서 강요나 논쟁으로까지 뻗친 적은 글쎄, 기억에 없다. (물론 개인 차가 있겠지만... 한국인들끼리도 정치적인 견해로 싸우기도 하고 뭉치기도 하는 게 다반사다. 우리 민족은 게다가 다혈질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 같아서.. ^^) 어쨌든 이 나라와 저 나라의 사람들이 조금씩 조금씩 섞여들고 있다. 서로가 다른 방식으로 살아왔던 모습들을 지켜보고 받아들이고 하다보면, 그렇게 아래로부터 감정의 교류를 겪어가다보면 이질감과 거부감은 적어지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함께 살아간다는 게, 어쩔 수 없이 섞여드는 것이니 말이다. 요코짱도 확실히 그점을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양국의 중간에서, 어쩌면 뭔가에 도움이 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좀 행복하다니 말이다. 내가 아는 일본 사람도 꼭 그렇게 말했다. 힘든 생활 중에도 참 긍정적으로 생각하는구나, 하고 인상깊었던 부분이다. 나 자신, 내가 좋아하는 그 일본 사람으로 하여,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흥미로운 점으로 변화해가는 것을 느낄 때가 많이 있다. 요코짱의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일본이라는 나라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라면(꼭 호감 만은 아니라도 말이다) 기분 좋게 읽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어 학습 싸이트에 연재하다가 인기를 끌게 되면서 책으로 나오게까지 되었다는데, 면마다 네 컷 만화와 짧은 해설 한 편씩이 들어있다. 만화의 대사는 일본어이고 옆에 우리말 번역이 되어있어 내게는 딱 좋았다. 어느 분인가 리뷰에서 그 일본어가 꽤 쓰임새가 많다고 한 적이 있는데 진짜 그렇다. 아주 자주 쓰이는 실용적인 회화라 일본어를 어느 정도 배운 사람이라면 일본어로도 읽는 재미가 있을 듯싶다.

그런 것 아니라도, 전문 만화가도 아닌 요코짱, 만화를 구성하는 솜씨가 정말 빼어나다. 그의 남편과는 중국 유학 시절 만나, 서로 이야기 중에 만화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찾아 진도가 쑥 나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렇게 즐긴 것 뿐이었던 사람이 구성한 만화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요코짱의 만화는 재미있다. 에피소드를 네 컷으로 뽑아내는 솜씨도 훌륭하고, 그저 단순하게 표현한 사람들의 모습도 생동감이 넘친다. (요코짱, 짱! ^^) 대체로 유머러스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어떤 것들은 폭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읽는 내내 기대 이상의 즐거움을 주었다. 2권이 있다기에 물론 당장 사보았고, 친하게 지내는 일본인 아줌마에게 주려고 하나씩 더 샀다. 함께 이야기나누면 너무 재미있을 듯하다.  

귀여운 요코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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