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 헤리엇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개 이야기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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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도시에서 태어나 살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확실한 시골인 요크셔 지방으로 가서 그곳 개업 수의사의 조수로 '수의사' 생활을 시작한다. 그때까지 그는 한번도 소나 돼지나 양과 같은 가축들을 치료하며 평생을 살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그러나 운명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것 같다. 실제로 그가 요크셔 평원의 험난하지만 한갓진 땅을 돌아다니게 되면서 그는 자신이 그곳에서 너무나 큰 행복을 느낀다는 걸 절실하게 깨닫는다. 학창시절 그가 생각해왔던 그의 행로, 번쩍거리는 수술실, 하얗게 반짝이는 가운, 잘 정돈된 수술 도구들, 훈련된 조수들.. 속에서 다소 우아하게 애완동물을 진료하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들은 어느 순간 별 미련없이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그는 평원 꼭대기의 찬바람 속에서 웃옷을 벗은 채 자리를 잘못 잡아 태어나지 못하고있는 송아지의 탄생을 도와 소의 자궁 속에 온 팔을 집어넣고 있든가, 봄날 수백마리의 양들 가운데 서서 정신없이 그들을 잡아채며 예방접종을 하고 있다든가. 언제 차일 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건장한 말의 옆구리에 서서 털을 깎고 국소마취를 하고 있다든가... 언제나 그런 속에 있다. 밤이고 새벽이고 동물들은 아픈 시간을 골라주는 것도 아니고, 농부들은 혹시 이때쯤 수의사들이 지친 하루를 마감하고 쉬고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행여라도 기억해주는 것도 아니다.  

헤리엇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시기 요크셔의 수의사들의 생활은, 그야말로 흥미진진하지만 더이상 고달플 수도 없겠다는 생각에 측은한 마음마저 든다. 하지만 헤리엇은 그, 때로 폭풍우같고 때로 풍랑같고 때로 거센 파도같다가 가끔 잔잔한 물결같은^^ 그 생활 속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모든 즐거움과 보람을 이끌어내는데 타고난 재능이 있는 걸까? 그는 그 거센 파도 속에서 바다의 진정한 모습을 느끼고 그 속에서 장엄함 뿐 아니라 유머까지도 찾아낸다.  

자연과 동물과 농부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책 전편에 걸쳐 말할 수 없이 따스한 온기를 품고 있다. 이제는 내게 너무나 익숙하고 정다운 이름인 '수의사 헤리엇'의 이야기는, 정말로 "때로 재미있고 때로 훈훈하고, 어떤 것은 극적이고 또 어떤 것은 눈물을 자아낼만큼 감동적이다."(이건 워싱턴 포스트 지의 서평) 그가 수의사 생활을 25년이나 한 뒤에 드디어 자신이 겪은 수많은 이야기들을 글로 써낼 생각을 했다는 결심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무한한 축복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이야기들을, 실제의 사실 그대로 서술한 것이 아니라 체험 사실을 바탕으로 작가 나름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창작한 것이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들은 자전적 소설로 분류된다고 한다. 물론 그 지방에서 계속해서 수의사 노릇을 하면서 글을 써내기 시작했으니, 실명으로 또 사실 그대로 쓴다는 것보다는 그렇게 해야만 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알아내고 기뻐했다는 이야기가 책 속 지은이의 짧은 뒷이야기에 나오기도 하는데, 여러가지 이유로 헤리엇의 이야기는 작가가 선택한 방식이 너무나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없이 많은 에피소드, 그 짧은 이야기들은 그대로 하나의 진료 기록이 되고, 너무나 많은 독특한 사람들 혹은 동물들과의 만남에 얽힌 긴장감 넘치는 얘깃거리가 된다. 그 속을 흐르는 헤리엇의 진솔하고 따뜻한 시선, 여유로운 마음이 그 에피소드 들에 하나하나 생기를 불어넣는다. 자연과 그 품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물에 대해 그토록 순수한 애정을 가진 사람을 달리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자신의 직업과 관련한 그 많은 관계들 속에서 그만한 짜릿한 유머를 뽑아낼 수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내게는 아무래도 헤리엇만한 사람이 없다.'  

그의 삶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만남의 이야기는 동물과 한번도 그런 관계맺기를 해보지 못한 나같은 사람에게는 거의 신비로운 미지의 세계이다. 나는 그를 통해 동물과 그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감히 할 수 있다.  

알려졌다시피 헤리엇의 이야기는 4권으로 이어지는 같은 형식의 글모음들이다. 그 속에 있는 수많은 에피소드 들 중에서 개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따로 모은 것이 <개 이야기> 두 권이다. 농장의 동물들을 기른다는 것과 개를 키운다는 것은 확실히 다른 이야기이고, 지구의 어디서나 개는 인간과 함께 동반자로서 살아가고 있는 만큼, 개와 그 개의 주인에 관한 이야기는 또다른 확실한 매력이 있다. 여태껏 번역되어 나온 헤리엇의 이야기를 다 읽은 터라 이 책에서는 중복된 이야기가 물론 여럿이었지만,(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이 있어서 그런지 처음보는 이야기도 있었다) 개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도 즐거운 엮음이었다. 한 편의 이야기가 끝나는 시점에 작가의 짧은 후기가 덧붙여지는 것도 내겐 너무나 반가운 일이었다.  

헤리엇과는 오로지 책을 통해 만났을 뿐이지만 결코 예사롭지 않은 만남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해왔다. 20여년 가까운 세월 동안 어느 누구보다 자주 만났고 언제나 기쁨과 감동과 행복한 느낌을 내게 전해준 수의사 헤리엇에 무한한 애정과 존경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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