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행복해지는 이야기 - 수의사 헤리엇이 만난 사람과 동물 이야기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몇년만에 다시 꺼내서 읽으니 역시나 스멀스멀, 행복한 느낌이 밀려온다. 최근 들어 몇몇 일로 한참 우울했던지라 무엇보다 그 행복감이 소중하고 반가워 한꼭지씩 읽던 것을 내쳐 다 읽고 만다. 그 뿐일까? 그 행복감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또 한권을 찾았다. 내게 수의사들이 뭐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정말로 세세하게 보여준 처음이자 마지막인 사람, 헤리엇의 이야기.  그 첫번째, <수의사 헤리옽, 크고 작은 모든 것들, 전덕애 옮김, 거창고등학교출판부 펴냄, 1986 >, 이 책을 통해 헤리엇을 처음 만났다.

꼭 거짓말 같지만 내게 너무도 우연히 다가와 지금까지도 즐겨 읽는, 보석같은 나의 소장품인 특별한 책이 그것이다. 지금은 꽤 많은 책들이 번역 출판되어 헤리엇은 이미 유명한 수의사가 되었지만, 내가 그를 처음 알았던 1990년에는 글쎄, 이곳 거창이라는 조그만 시골 말고는 그 책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을 듯하다. 지금 생각해도 그건 참 신기한 일이다. 89년에 거창으로 살러 왔으니, 내겐 아직 한참 생소한 곳이었는데, 아는 분이 그 책을 소개해주셨다. 두 권으로 한 셋트였는데, 상권과 하권이 모두 300쪽이 넘었으니 적은 분량은 아니었다. 거창고등학교 츨판부에서 펴낸 그 책, 몇 권이나 찍어냈을까? 거고에서 영어선생님으로 일한 적이 있는 전덕애 선생님이 번역을 하셨기에 출판될 수 있었던 책이었다.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읽게 된 책을 귀국해서 일하는 중에 틈틈이 번역하신 것. 그때 국민학교 5학년이었다던 아들과 함께 읽으며 얼마나 웃었던지 몰랐다는 책, 그러나 웃음 뿐만이 아니라 너무나 따뜻한 인간애와 용기를 함께 선사해주었다고 하던 책이다. 그러니 번역해서 다른 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이 책이, 그렇게 작은 시골 한 귀퉁이에서 다른 어디보다도 빨리 소개될 수 있었던 것인데, 내가 그 책을 읽게 되었다는 것이 어찌나 귀한 우연이라고 생각되는지 나는 지금도 내게 그 책을 소개해주신 분께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그때 그책을 읽으며, 어떻게 이렇게나 재미있으며, 이렇게나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책이 있을까 신기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도 한번 읽고 만 것이 아니라, 혹은 거실 한 귀퉁이, 혹은 식탁 위, 혹은 화장실 안에 두고 늘 손에 잡았던 것을 잊을 수 없다. 어디를 펼쳐도 좋았다. 혼자 낄낄거리며 웃다가보면  어느새 감동 먹고 숙연해지기도 하고... 하여간 좋은 책이란 건 이런 거구나, 하고 나혼자 이 책에 온갖 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그때야 인터넷이란 게 세상에 널린 것도 아니어서 그 책 말고는 어떤 정보도 얻지 못했으니, 내게 <수의사 헤리옽>이라는 책은 그저 어느날 뚝 떨어진 행운이라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게 내 손을 거쳐 다른 도시에 살고 있던 친구와 후배들의 손에 들어가 한 스무 남짓 횟수를 돌더니 책이 닳아서 내 손에 들어왔다. 빌린 책인데 돌려드리기 민망할 정도가 되어서... 물어물어 사러갔다. 거창고등학교 앞 서점에서 그 책을 팔고 있었다. 한 권에 3000원.. (참 옛날 이야기다 ^^) 두권 한 셋트를 새로 사서 얼른 돌려드리고, 그 낡은 책은 이제 함부로 돌리지 않는 내 귀중품이 되어 이날 이때까지 이어져왔다. 지금 다시 봐도 전덕애 선생님의 번역은 정말 재미있다. 매끈함과는 거리가 있지만, 정말 정감이 넘치는 번역이다. 딱 책의 모양새에 어울리고, 출판된 내역과도 어울린다. 여러가지가 종합적으로 어우러져, 이 책은 나름의 가치를 물씬 풍긴다. (완전, 포쓰다!) 물론 그 책을 탐독했던 친구와 후배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그들에게도 난데없는 행운이 뚝 떨어졌던 셈이다. 

그 이후로도 그저 수의사 헤리엇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질 때, 요크셔 지방의 동물들과 사람들의 어울려사는 이야기에 그저 귀기울이고 싶어질 때, 혹은 그냥 킬킬 웃고 싶어질 때면 그 책을 펴들었다. 한 토막을 읽고 싶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잡으면 언제나 앞뒤로 오며가며 다 읽어버리고 하권까지 찾게 되었다. 그래서 물론, 지금까지 열 번도 훨 넘게 읽어왔다. 

오래 살다보니 드디어 국내 유명 출판사에서 정식으로 번역 출판이 되고, 드디어 수의사 헤리엇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대략이나마 알게 되었다. 내가 처음 읽었던 책이 네 권 연작 중의 첫 번째 책이었다는 것도, 그 이후로도 몇 권의 책으로 요크셔 지방 이야기가 이어져 나왔다는 것도. 어쨌거나 수의사 헤리엇 선생님은 내게는 한점 등불같은 분으로 남아있다. 그의 삶이 담긴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진진하고 나를 사로잡는다. 그런 이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이 그저 내 마음에 훈기를 준다. 그의 삶의 방식, 인간과 동물과 자연에 대한 사랑, 그의 용기, 게다가 그의 넘치는 위트! 온세계 사람들에게 이미 고전이 된 이야기들이지만, 언제나 따뜻함과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것은 얼마나 기분 좋은 이야기인가. 그걸 생각만 해도 내 마음 속에서 헤리엇의 작은 등불이 깜빡거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곰이 2009-10-06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귀한 책과의 인연이네요. 정말 이런 조우는 잊지못하죠.. 사람과의 어떤 우연이나 인연도 반갑지만 어느날 어찌하여 들어온 내 손의 책 한권 그것도 아주 향기롭고 좋은책 ^^
그나저나 김석희 번역본 말고 전덕애 선생님 버젼 읽고 싶어지네요 ^^ 수의사 헤리엇 ..정말 소설을 쓰래도 이렇게 재밋고 감동적으로 쓸수잇을까요..무엇보다그 바탕을 흐르는 따뜻한 인간애? 동물애? ㅎㅎ 참 좋은 책이에요. 근데 제본등 모냥새가 책에 못미친다는거~~ 제 생각.

2009-10-07 1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