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미국에는 큰 산맥이 딱 두 개 있는데... 하나는 로키산맥이고 하나는 000이야.' 바로 이런 말을 얼마 전에 들었는데, 그 나머지 하나가 뭔지를 들어도 알지 못했다. 그냥 우리 나라에는 태백산맥, 소백산맥, 차령 노령... 이런 것 많은데 (학교 다닐 때 줄 그어진 것 보고 외웠던 기억이 난다) 거기는 딱 두 개 뿐이야? 그래도 어쩐지 엄청 길 것 같네.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을 열자 그 또하나의 산맥이 애팔래치아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귀엽게 보이는 곰 한 마리가 마치 창틀너머 뭔가를 보려는 듯 나와있고, 뒤에는 굵은 나무들의 몸통이 보이는 숲이 표지에 있었다. (하지만 책에 나오는 곰의 이야기는 사실 전혀 귀여운 곰에 대한 것은 아니다!) 어쨌든 나는 난생 처음 듣는 애팔래치아의 이야기가 실은 이렇게 '최근에 나와 상관있었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책의 뒷표지에는 이 책이 무지 웃긴다고 되어있지 않나.

이 책은 정말 재미있었다. 재미--라고 말하니 어쩐지 모자란다. 보는 내내 어쩐지 흥분된 상태에 있었고, 가끔 내 계획을 세우느라 책을 덮어야 했고, 킥킥 웃느라 행복했다. 빌 브라이슨, 사려깊고, 남을 기분좋게 웃길 수 있는 데다가 그의 뇌 속에는 무슨무슨 주의니 고정관념 같은 것들이 들어있지 않은 것 같아서 좋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는, 딱 내 친구였으면 좋겠다. (그러면 정말 굉장한 행운이다 싶을텐데!!) 이런 친구가 바로 내 옆에서 산다면, 내 인생까지도 덩달아 얼마나 사려깊게, 유쾌하게, 유연하게 굴러갈까 라는 생각이 들만큼 그의 이야기는 나를 사로잡았다.

이 책 안에 있는 것은 한 두 가지 정도가 아니다. 중요한 말만 골라도 우정, 대자연, 재미, 등산, 여행, 시도, 음미... 들과 같이 모두모두 이 책에서는 큰 의미가 있는 말들이다. 어떤 것으로 봐도 좋았다. 그리고 그 많은 것들 중에서도 내게 가장 좋았던 것은 바로 '그'였다. 빌 브라이슨, 그 사람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거대한 애팔래치아 종주라는 내용보다도, 너무 어처구니없어 아예 마음 바닥까지 포기하게끔 만드는 카츠라는 귀여운(!) 친구보다도, 또 뉴욕타임즈 북 리뷰가 그를 정의한 것처럼 천재적인 유머작가라는 것 보다도 더 '바로 그'가 좋았다. 언제나 사색하고, 엉뚱하고, 따뜻하고, 너무 귀엽고, 굉장하지 않은 그의 모습을 그의 책을 읽는 내내 즐길 수 있었다. 정말 이웃에 살면서 많은 것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질만큼 멋진 사람이었다.

'그'에 대해서만 줄창 이야기했지만, 읽는 동안 나도 맨 앞 쯤에 나와있는 애팔래치아의 간단한 지도를 아예 찾아보기 쉽게 접어두고서 보았다. 그들의 걸음을 따라짚으며 나도 줄곧 그 길을 따라다녔던 것이다. 그들은 다 다니지 않았지만 넘칠 만큼 다녔고, 그것이 그들의 인생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만큼 충분한 시간이었다는데 만족했다. 뭔지 모르지만 내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고, 그런 시간들을 어떻게 겪을 것인지도 알 수 없지만 어떻게든 갖고싶다는 욕구가 솟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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