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머거리 너구리와 백석 동화나라 - 빛나는 어린이 문학 2 빛나는 어린이 문학 2
백석 지음 / 웅진주니어 / 199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산뽕잎에 빗방울이 친다
멧비둘기가 난다
나무등걸에서 자벌기가 고개를 들었다 멧비둘기켠을 본다

이것은, 언젠가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에서 만난 백석의 '산비' 라는 시이다. 시에 대해서는 워낙 짧은 터라 거기서 이 시인의 시를 처음 만났지만, 그 맘 푸근하면서도 정갈한 몇편의 시들은 인상적이었다. 첫 장에 박혀있는 그의 생김도 꼭 그러했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알고보니 <집게네 네 형제>라는 동화시집을 냈다 하고, <동화문학의 발전을 위하여>라는 글을 썼다고도 하니, 그 당시 시인으로서는 드물게 아이들을 위한 글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그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그림과 함께하는 형태로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 이 책이다.

요즘에는 어린이책에 대한 관심이 한창 높아져서, 많고도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니 실로 읽을 책이 없어서 못 읽던 우리들의 시기는 막을 내리고 '도무지 뭘 읽으면 잘 골라 읽었나'를 고민하는 때가 되었다. 그렇게 넘쳐나는 창작물 속에서도 이 책은 한것 제 빛을 발한다. 보고는 정말 놀라웠다.

갓 초등학교 일학년이 된 아들과 6학년인 딸을 함께 앉혀놓고 소리를 내어 노래하듯 읽어주었다. 읽고 듣고 하다보니 듣는 아이들도 재밌는 티가 역력하지만 읽는 나는 더 흥에 겨워 절로 신이 났다. 그대로 '시'이고, '노래'이고 '동화였다. 거기다 아이들이 좋아할 맑고도 정다운 그림. 그중에 우리들이 제일 좋아한 '개구리네 한솥밥'이라는 이야기를 아무한테나 풀어보고 싶다.

'개구리 덥적덥적 길을 가노라니
길가 도랑에 우는 소리 들렸네.

개구리 닁큼 뛰어 도랑으로 가 보니
소시랑게 한 마리 엉엉 우네.

소시랑게 우는 것이 가엾기도 가엾어
개구리는 뿌구국 물어 보았네.
....'

운율이 있고 계속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 반복과 그러면서 진행이 있다. 바쁘고 힘든 여정인데도 누가 울고 있으면 일일이 그 사정을 헤아리고 도와주고 간다. 그러다 막상 자기 일이 늦어진 개구리,

'디퍽디퍽 걷다가는 앞으로 쓰러지고 뒤로 넘어진다.'

그러자 그때, 개구리를 도와주러 오는 동무들, 힘없이 울고있던 그 동무들이 먼저는 개구리의 도움을 받았고, 이제는 자기의 재주들을 살려 개구리를 신명나게 돕는다. 그리고는,

'모두모두 둘러앉아 한솥밥을 먹었네.'란다.

이야기는 어찌나 재밌는데다가 흐뭇하고, 운을 타는 말들은 얼마나 흥겨운지. '동화시집'이라던 생소했던 분류가 이 책을 통해 그냥 그대로 이해가 되어버린다. 어디선가 다시 이런 분류의 책을 본 적이 있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옛날의 작가로 잊혀져버릴 수도 있었을(한때 우리네 정보당국에서는 백석을 월북작가로 분류해서 시집을 금서 속에 포함시켰다) 한 시인의 탁월한 동화시집을, 그 먼지 곰팡내 속에서 끄집어내 이런 화사한 빛 속에 내놓은 출판사의 안목과 노력이 고맙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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