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바빠빠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4
아네트 티종 지음, 이용분 옮김 / 시공주니어 / 199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들이 무척 좋아해, 라고 권한 친구의 말을 듣고 이 그림책을 처음 보았을 때는 '글쎄, 내눈엔 그저 그런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보여주었더니 그게 아니었다. 아이는 굉장히 바바빠빠를 좋아했다. 그냥, '또! 또! 또 읽어줘~ 딱 한번만 더 읽어주세요~~'였다. 좀 놀랐고, 속으로 '이게 뭐가 그래 재밌나? 이것 완전 연구 대상인걸?' 싶었다.
바바빠빠는, 별 설명도 없이 그냥 갑자기 물을 주니 태어난 전혀 예기치 못했던 존재다.
분홍색의 뭉글뭉글해 보이는 몸체와 땡그랗게 호기심에 반짝이는 눈, 마음대로 변할 수 있는 굉장한 특성이 있다.
그 특성은 세상에서 가장 특이하고 환상적이다. 원하는대로, 마음먹는 대로 변할 수 있다니 정말 굉장하다! 게다가 절대로 그 특징을 나쁜 쪽으로 쓰지 않는다. 대체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에만' 쓴다.
이렇게 바바빠빠를 생각하며 적다보니, 아이들이 어떻게 이 친구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다. 그야말로 아이가 바라는 완벽한 이상형! 맘대로 되어보고 싶고, 멋진 일을 해내고 싶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영웅처럼 환영받을 수 있는 바바빠빠! 이렇게 멋지니까 사람들도 나중에는 그걸 알아보고 잘해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쨌든 바바빠빠에게는 아이들의 무한한 에너지, 커다란 소망들이 그대로 담겨 있는 듯하다.
분명히 아이들이 좋아하지만.. 그래도 나는 아이만큼 이 바바빠빠라는 책이 썩 좋아지지는 않는다. 왜일까? 왜 내게 이 이야기는 어쩐지 거북한걸까????
어른들은 바바빠빠가 자기들에게 해롭거나 무서운 것이 아니고 유익하고 선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는 환대한다.(혹시 사고라도 치면 언제든 다시 내칠 지도 모르는 어른들...) 바바빠빠는 그냥 그 이기적인 사람들의 마음도 그대로 웃으며 받아들인다.
바바빠빠는 외로워서 동물원의 친구들에게 '나랑 함께 놀자..'라는 제안을 해보지만 거절당하고 동물원을 나가게 되는데, 거리에서 사나운 표범이 사람을 쫓아가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해 표범을 몸으로 가둔다. 표범은 다시 붙잡혀 동물원으로 돌아가고....
표범은 단속해야 되는 적이 되고 사람은 구해내야 하는 친구가 되었다. 언제부터? 바바빠빠는 천성적으로 표범보다는 사람의 친구이다? 하지만 동물원에 갇힌 표범의 탈출을 생각해보면, 어디까지나 이 책이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나 사람 중심이고 바바빠빠도 사람의 친구이기를 택한다.
분명히 이렇게 놀라운 바바빠빠를 아이들은 좋아하지만, 작가가 바바빠빠를 만들면서 원했던 것은 이런 것이었을까? 아주아주 착하고, 절대로 위험하지 않고 있어도 결코 애먹이는 일이 없고, 사람들을 위해 언제나 유익하고, 굉장한 능력으로 원하는 대로 뭐든 해낼 수 있는 멋진 존재! 마음도 따뜻하고 혼자서는 외로워 하기도 하고 언제든지 즐겁게 어울려 놀 수도 있는 존재.
마치, 아이들 생각으로는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줄 것 같은 초능력의 든든한 존재, 어른들에게는 언제나 착하고 유익하고 순응적으로 행동해줄 것 같은 환상적인 착한 어린이와 같은 존재로서의 이상형을 보는 듯하다.
그, 기존 이데올로기를 은근히, 효과적으로 수호하는 이야기의 흐름이 어쩐지 나를 불편하게 한 듯하다. 그리 장난스럽지도 않고, 존재의 특이성에 대한 고민도 없고, 그대로 어쨌든 내가 잘 하니까 사람들이 받아들여주더라, 나는 행복하고 너도 행복하다, 그렇지? 라는 이야기가 뭐 내게는 그리 달갑지가 않았던 것이리라.
그저 재밌게 보면 되는 아이들 그림책일 수도 있는데 (아이들이 얼마나, 그저 좋아하던가!) 왠 이데올로기, 왠 존재의 특이성에 대한 고민? 하지만 그저 재밌게 볼 수도 있는 그림책인데도 어쩐지 아이들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내 거부감의 진원지가 어디지? 라는 생각을 하다보니 그렇게 읽혀지기도 했다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