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속 뱀장어의 여행 과학 그림동화 8
마이크 보스톡 그림, 캐런 월리스 글, 장석봉 옮김, 강언종 감수 / 비룡소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과학 그림동화란, 어쩌면 이야기 그림 동화보다 더 아름답고 더 신비로울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뱀장어. 뱀장어 구이로 토막진 채로 식탁에 오르고, 수족관에 가면 어항보다 조금 큰 물통에 담겨져 흐린 눈빛으로 하루하루를 뻐끔거리며 숨쉬고 있는 커다란 물고기. 아름답고 신비로우나 이미 그 아름다움을, 신비로움을 잃은 채 우리를 만나는 뱀장어.

우리는 자주 이렇게 말한다. '아하, 뱀장어. 그 물고기라면 잘 알고 있지, 맛은 어떻고 생김은 어떻고, 강에서 나서 바다로 먼 여행을 떠나고..' 어느날 뱀장어 전문 요리점에서 석쇠에서 지글거리는 뱀장어 구이를 맛보며, 반주를 마셔가며 안주삼아 뱀장어를 이야기한다. '수족관에서 봤더니 아, 생각보다 크더라구. 어쩌구저쩌구....'

그러나 그 뱀장어에게, 뱀장어의 일생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과연 아는가? 물고기처럼 헤엄을 치기도 하고 뱀처럼 미끄러지듯 다니기도 하는 뱀-장-어에게, 어떤 신비로운 일이 일어나는지를? 이 책의 글과 그림을 그린 이들은 그 뱀장어의 신비로운 여행을 이야기한다. 시적인 문체와 맑고 투명한 그림으로.

글을 쓴 캐런 월리스는 아일랜드에서 뱀장어를 기르면서 가수 겸 작가로 활동했다고 한다. 그림을 그린 마이크 보스톡은, 늘 자연에 관심이 많았던 일러스트레이터였다. 그런 그들의 관점은 그대로 그림책에 드러난다. 옮긴이의 힘을 더 입어, 이들의 뱀장어 이야기는 그대로 한편의 긴 시가 된다.

'깜깜한 바다 저 깊은 곳에서
새끼 뱀장어가 다시 태어나요.
대나무 잎처럼 길고 납작하게 생겼고
수정처럼 투명한 댓잎뱀장어 말이에요.
뾰족하게 튀어나온 입에는
톱날처럼 생긴 이가 나 있어요.
댓잎뱀장어는 먹보처럼 먹어대면서
물 속을 헤쳐 나가죠.
한번 상상해 보세요.
대나무 잎처럼 생긴 댓잎뱀장어 수백만 마리가
한꺼번에 파도를 헤치며 드넓은 바다를
가로질러 가는 모습을 말이에요.'

그리고 푸른 물 속을 헤엄치는 수백만 마리의 댓잎뱀장어 새끼들. 저마다 동그랗고 파랗고 새까만 구슬과 같은 눈을 반짝이고 톱날처럼 생긴 이를 벌리고 댓잎같은 몸을 바다에 맡기고 있다. 물빛을 띈 그림이 너무나 아름다와서, 손톱만한 크기의 댓잎 뱀장어 새끼들조차 너무나 시원시원한 크기로 마치 살아날 듯 그려져 있어서인지 정말로 내게는 이 그림책을 보는 것이 뱀장어를 그린 한편의 서사시를 보는 것 같고 잘 만든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는 것 이상이었다. 사실적이되 작가의 상상력이 충분히 느껴지는 그림의 신비로움. 일생을 마치고는, 다 쓰고 버려지는 은박지처럼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다는 작가의 섬세한 표현...

옛날 바닷물고기 도감에서 만났던 사르가소 바다의 뱀장어들을, 몇달전 서울의 어느 커다란 수족관 안 작은 어항에서 권태롭게 움직이던 커다란 뱀장어를, 이 아름다운 그림책으로 다시 만난 것은 내게 행운이었다. 자연을 주유하는 뱀장어의 일생을 이렇게 들여다보는 것으로, 나는 뱀장어를 비롯한 만물에 경외를 느끼게 되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모든 살아가는 것들은 그대로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아들이 과연 이 시적인 과학그림동화를 끝까지 따라올 수 있을까? 확신하기 어려웠던 내 우려와는 달리, 아들은 이 이야기- 장엄하기 이를 데없는 서사시와 같은-를, 숨소리조차 죽여가며 넋을 놓고 보았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아들과 나는 그들 뱀장어와 더불어 대 장정을 마친 듯, 잠시 말을 잊고 가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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