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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ㅣ 민들레 그림책 4
현덕 글, 이형진 그림 / 길벗어린이 / 2000년 9월
평점 :
확실히 1930년대에 씌어졌다고 하기엔 현덕의 글은 혁신적이다. 그당시 그림책으로 이리 새롭게 태어날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으리라 생각하지만, 너무나 '그림책 적'이다. 비교적 많이 알려진 작가의 글, <나비를 잡는 아버지>나 <집을 나간 소년>들을 보고는 그토록 현실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실적인 작풍에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했는데...
<고양이> 라는 것은 이게 현덕의 글이었나? 하는 생각으로 눈이 번쩍 뜨이게 만든다. 아이들의 고양이 놀이를 따라다니며 고대로, 한 몸짓 빠뜨리지 않고 덧붙이지도 않고 고대로만 써낸 것 같다. 그렇게 그대로만 써보는 것으로도 그냥 흐뭇하니 입가에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글이 되니라, 하면서.
앞서 말한 현덕의 창작동화집 <집을 나간 소년>에서 한번씩 등장하는 노마라는 주인공이, '아하, 이리 놀기도 했구나' 하고 생각하니 그 답답하고 어려웠던 시절에도 재료 하나 없이도 온몸으로 놀이에 몰두하고 있는 아이들이 맘에 그려져서 더욱 푸졌다. 아이들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그 천진함을 아주 잃어버리기 어려운 존재가 아닌가..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들이 잃어버린 그 몰두를 아이들을 통해서 본다.
더불어 이 책은 이형진의 그림책이다. 현덕이라는 작가의 몫이라고만 하기에는 그림을 그린 이의 몫이 너무나 크고 도드라진다. 그의 선은 마치 고양이의 몸놀림만치 유연하다. 과감한 생략은 온통 고양이를 닮은 아이들의 몸놀림에만 우리의 눈을 집중하게 한다. 아이들의 표정은 장난기, 호기심, 놀람들이 그대로 살아있어 절로 나를 미소짓게 한다.
놀이가 고조되어 노마, 영이, 똘똘이 들은 그대로 스스로 고양이인양 하며 눈을 반들거린다. 부엌 선반 위에 앉힌 북어 한 마리를 물어 내와서는 조르르 둘러앉아서 그대로 고양이가 되어 입으로 북북 뜯어 나눠 먹는다. 이에 어머니가 나오다 보고 발 구르며 쫓아오고, 입에 북어 조각을 문 고양이 세 마리가 후다닥 달아난다. 그들은 아예 고양이 그림자를 달고 달아난다.
다시 이 그림책의 미덕을 되살려보면, 우선 글의 품새가 우리에게 새롭다. 30년대라는 시기가 무색하게 지금 봐도 자연스럽고 아이들 마음을 적확히 잡아내고 있다. 그러나 내게 더 놀랍게 다가온 것은, 이형진의 그림이다.
이형진의 고양이 그림책을 보며 나는, 그가 앞으로 더 빛나는 그림책을 만들어내리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다. 그는 아마도 그림책이 될 만한 글을 골라내는 감각이 탁월하며, 글을 최대한 빛낼 수 있는 그림을 그릴 만한 준비가 되어있는 듯 보인다.
그가 <잠꾸러기 불도깨비>를 그렸고, <숨은 쥐를 잡아라>에도 그림을 그렸으며, <메주도사>도 그리고 <안녕 나는 너의 재롱동이야>를 그리더니 드디어 '이형진의 옛이야기'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여우누이 이야기를 재해석한 <끝지>를 내놓은 사실은 그런 그의 준비를 신뢰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를 믿으며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만드는 작가라니. 그런 기다림은 얼마나 만족스러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