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여우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50
한성옥 그림, 팀 마이어스 글, 김서정 옮김 / 보림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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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쇼의 하이쿠를 열심히 읽고 있는데 이 책이 나왔다. 거의 이십년 전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삶이냐> 하는 책 속에서 삶의 존재론적 방식을 드러내는 시인 바쇼의 시를 읽고는 그 강렬한 인상이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괴테의 시, 테니슨의 시와 함께 인용되었던 그 시, 기억으로는 이러하다.

'가만히 살펴보니
냉이꽃 한 송이가 피어있다
울타리 곁에!'

그리고는 이즈음에야 류시화씨가 번역해 내 놓은 <한줄도 너무 길다>라는 제목의 하이쿠 시집을 구해서 읽고 있던 참이었다. 하이쿠가 어떤 양식이라는 것, 세계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다는 것, 무엇을 어떻게 말하는지 하는 등의 설명을 읽으며 이십년 전의 바쇼의 그 한줄을(일본어로 써놓으면 그대로 한줄) 다시 보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만난 이 그림책, 원제 <바쇼와 여우> 가 내게 어찌 특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글은 바쇼를 열렬히 좋아하는 미국인이, 그림을 미국에서 그림책을 그리는 한국인이 그렸다는 것도 재미있다. 글도 글이지만 그림은 얼마나 경탄스러운지! 나는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야말로 그대로 시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오래전 이 하이쿠를 썼던 바쇼의 마음, 이 글을 쓴 팀 마이어스의 마음, 그 마음들과 완전히 하나가 되지 않고는 이렇게 그려낼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설령 그들을 완전히 이해했더라도, 그림을 그린 이가 그이대로 훌륭한 시인의 마음을 지니지 않었더라면, 이런 일러스트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만큼, 들여다보면 볼 수록 그림은 매력적이다.

더 즐겁게 이 그림책을 음미하려면, 하이쿠 시집을 하나 구해서 함께 보라고 권하고 싶다. 번역에 따라서 같은 하이쿠의 맛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도 느낄 수 있다. 한가지, 옮긴이 김서정씨가, 여러가지 고려 끝에 그렇게 옮겼겠지만, 제목을 <시인과 여우> 라고 옮긴 것이 약간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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