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짱이 간다 보리피리 이야기 2
김송이 지음, 홍영우 그림 / 보리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낫짱이 간다> , 제목이 멋있다. 책을 읽고 난 뒤에 보는 제목은, 더 멋있고 적절하다. 제목만 봐도 씩씩한 기운이 어디선가 솟아오르는 것만 같다.

조선인으로서 일본에 산다는 것, 그것도 1960년대. 이 책의 지은이 김송이 님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고있다. 조선인에게 적대적인 일본인 동네에서, 죄인처럼 숨죽여 사느냐 아니면 일본인인 척 하고 위태롭게 섞여 사느냐, 아니면 '조선인인데 뭐!' 하면서 당당하게 사느냐 하는 것이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지은이가 소학교 3학년이었을 때, '가네모토 나츠에, 낫짱'이라는 이름으로 그 시기를 살았다. 뒤에 고등학교를 조선 고등학교로 옮기고 민족 교육을 받기 시작하면서 가네모토 나츠에라는 이름을 한국 발음으로 부른 '김하강'이라는 이름을 찾고, 더 뒤에 도쿄에 있는 조선 대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스스로 새 한국 이름을 지어 '김송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다. 그 이래로 그이는 자신이 졸업한 조선 고등학교에서 교사가 되어 동포 청소년들에게 민족의 자긍심을 나눠주면서 '송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어떤 이름으로 사느냐, 하는 문제가 그이에게는 어떤 '삶'을 사느냐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 책, <낫짱이 간다>는 그래서, 지은이가 '낫짱'으로 살던 시절, 어째서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활개치고 또 억울한 일들이 세상에는 많은가 하는 것을 겪어내면서 성장하는 아이의 이야기이다. 물론 관찰자의 입장이 아니라 스스로가 그것을 겪고 그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자신이 어떻게 했을 때 스스로에게 떳떳한지를 생생하게 느껴가면서 자라는 것이다. 때로는 맘속에 품은 의문을 다 묻지 못하고 또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하면서 느끼는 것들이 오히려 더욱 사실적이다.

낫짱은 사뭇 당당하고 씩씩한 아이긴 하지만, 그러나 물론, 편견 가득하고 엉터리 투성이인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당차게 내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아이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목소리를 낮추고 고개를 숙이면서, 오히려 고분고분하게 살아가는 것이 더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자긍심은 한껏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르는 척 살아도 모르는 것은 아니지 않나. 낫짱의 주변에는, 당당한 목소리를 내는 낫짱에게 오히려 힘을 주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살다가도, 낫짱의 당당한 목소리에 마음이 움직이고 스스로 생각을 하게 되고, 그다음에는 그들이 용기를 내게 되어 그 힘으로 낫짱에게 다시 힘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용기는 또 다른 용기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의 위태로움, 서로의 빈자리를 메꾸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내게는 이 주고받음이 무척 아름답게 보인다. 그게 실은 사람살이인 것이다. 좀더 당당해보이는 사람도, 좀더 소심해보이는 사람도 서로 주고받으며 둘다 앞으로 한걸음씩 나아갈 수 있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아름답다.

낫짱의 이야기는 김송이님의 생생한 경험, 스스로에게 수없이 던졌을 의문에 대한 깊은 고민, 또 맑고도 세찬 물이 흐르듯하는 이야기솜씨에 힘입어 아주 재미있다. 당당한 낫짱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아픔 가운데 통쾌함을 준다.

더불어 이 책에서 놓칠 수 없는 또 하나의 매력, 홍영우 님의 그림은, 이 책의 이야기와 이 책의 주인공에 더없이 잘 어울린다. 그림도 글 만큼이나 오지다. 글과 그림이 잘 어울려 한 권 책을 더욱 빛나게 한다. 책의 맨 뒤에 덧붙여 실어놓은 지은이들의 이야기는 더 이 책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한 자락이다.  

결국, '어떤 상황인가' 보다는 '어떻게 사느냐' 의 문제인 것이다. 1960년대 일본에 살던 재일한국인의 삶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적잖은 파문을 일으킨다. 어린이를 통한 그 파문의 기운이 상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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