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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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나면 전체적인 느낌도 그렇지만, 읽는 중에 마음에 드는 부분이 너무나 많아서 아찔한 책이다.

'첸차는 울면서 마차를 따라가, 티타가 긴긴밤 불면증에 시달리며 떴던 어마어마한 담요를 그녀의 어깨에 간신히 둘러주었다. 담요가 어찌나 크고 무거웠던지 마차 안에 다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티타가 꼭 잡고 놓지 않았기 때문에 담요는 길게 드리워진 웨딩드레스 자락처럼 마차 뒤에 끌려갔다. 만화경처럼 알록달록한 무늬에 일 킬로미터나 되는 어마어마한 길이였다. 티타가 색깔에 신경쓰지 않고 닥치는 대로 아무 실이나 가져다 썼기 때문에 완전히 총천연색이었다. 마차가 지나가면서 일으킨 거대한 먼지 구름 사이로 담요는 마술을 부리듯 보였다 안 보였다 하면서 현란하게 너풀거렸다.'

'불쌍한 헤르트루디스는 물 양동이를 들고 열 번도 넘게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했다. 너무 고된 일이라 가뜩이나 후끈 달아오른 열기가 더 달아올라서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래도 시원하게 샤워할 수 있다는 생각에 참고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몸에 닿기도 전에 증발해 버렸기 때문에 불행히도 헤르트루디스는 샤워를 즐길 수 없었다.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어찌나 강했던지 나무판자가 뒤틀리면서 불이 붙었다. 헤르트루디스는 불길에 휩싸여서 타 죽을까 봐 너무 두려웠던 나머지, 완전히 벌거벗은 채로 샤워장에서 뛰쳐 나왔다. 그때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장미 향은 멀리, 아주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이거야말로 판타지.. 라우라 에스키벨식의 천연스런 말법이다. 우리에게는 역시 그리 익숙치 않은 멕시코 작가여서 그런가? 어찌나 신선하고 사랑스러운지, 멕시코 자체가 그만 좋아져버린다. (문학의 힘은 그런 곳에도 있다 ^^) 작가가 함께 살았던 알폰소 아라우가 감독한 영화, 바로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와  또 한 편 더, <구름 속의 산책>에서 멕시코는 그야말로 이 세상을 초월한 어떤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듯 보여진다. 주술적인 아름다움, 마법과 같은 일들을 그저 그렇게 일어날 수 있는 일로 태연하게 말하고있는 작가 때문에, 읽는 나마저 한동안 그 마법같은 대지를 홀린 듯 끌려다녔다. 멕시코, 너에 대해 품은 환상을 한동안 깨지지않게, 품고 있고야 말리! ^^

정말 독특하게도 이 작품 속의 사랑의 매개는 멕시코를 드러내는 요리다. 사랑은 음식을 통해 나타난다. 내용만이 아니고 형식에서도 그렇다. 아예 일 년 열두 달을 나타내는 열 두 개의 장을 설정해서 요리법부터 설명하고, 주인공 티타의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그 속에 녹여낸다.  사랑하는 남자가 언니와 결혼하는 걸 억장이 무너지는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만든 '차벨라 웨딩케이크'를 먹은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깊은 슬픔과 회한에 빠져 시름시름 아프고, 그 사랑하는 사람이 오직 자신과 가까이 있기 위해 언니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행복에 들떠 만든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를 먹은 사람들은 또한 사랑의 기쁨에 들떠 어쩔 줄을 모른다. 티타의 슬픔, 기쁨, 외로움, 눈물, 아픔과 소망이 들어간 요리는 그대로 사람들을 전염시킨다. 마음이 담긴 요리에는 그 나름의 치유력이 있다는 등의 얘기를 오래전부터 들어왔지만 그거야 증명하기 어려운 추상의 영역이니 그러려니 하는 법. 그러나 라우라 에스키벨이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그 추상의 영역을 생생하게 구체화하는데 내게는 그게 기가 막히게 아름답게 느껴졌다. 판타스틱!   

 티타는 그제서야 자신의 몸을 통해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모든 물질이 왜 불에 닿으면 변하는지, 평범한 반죽이 왜 토르티야가 되는지, 불같은 사랑을 겪어보지 못한 가슴은 왜 아무런 쓸모도 없는 반죽덩어리에 불과한 것인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이 책에는 티타와 페드로의 사랑법 뿐 아니라 티타와 존의 사랑법도 등장한다. (물론 그 외에도 헤르트루디스의 사랑법도 있다)  둘다 순탄하지 않은 상황을 거치며 그 속성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생각해보면, 수많은 문학 작품에서 존의 사랑법은 자주 페드로의 사랑법에 밀린다... 너무 많은 '존'들은 또 수많은 '페드로와 티타의 사랑'을 그저 아프게 바라볼 수밖에 없어서 그것이 또 독자인 우리를 실은 가슴 아프게 한다. 우리는 마치 스스로가 존이 된 것처럼 아플 수 밖에 없다. 불처럼 확 타올라 어쩌면 소진되어버리는 사랑에 대한 예찬은 끝이 없어서, 사실 그 존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물과 같고 공기와 같은 넉넉한 사랑은 문학 작품에서 설 자리를 찾기도 쉽지 않다. 불과 같은 사랑은 이 책에서 보듯 사실 너무나 매혹적이지만, 어쩌면 그 비현실성으로 하여 이토록 허구에서만 아름답게 노래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평온하지 않고 들끓는 사랑에 대한 독자의 탐심 또한 그러한 현실 불가능성이라는 든든한 토대 위에서 더욱 빛나는 것일지도. 이 책의 제목도 실은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이 아니라 '초콜릿이 끓기 직전의, 부글거리는' 상태를 표현한 말이라지 않는가. 변화, 소멸을 향해 돌진해가는 그 절정의 순간을 말하는 것 같다.

그토록 신선한 소재와 형식, 라우라 에스키벨 만의 독특한 말법으로 하여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책이 되었다. 한동안은 이 책을 생각만 해도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 들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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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7-02-06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히히 저도 이거 재미있게 읽었어요 >.<

sprout 2007-02-08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님 반가워요 ^^ 웃음소리가 제 마음에 쏙 듭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