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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연인
김현경 지음 / 책읽는오두막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덧붙임.
목요일은 일이 많아 10시만 되면 이미 아주 지친 상태가 된다. 다음 날 오전에 있을 라디오 방송 대본을 준비해야 하는데 어제는 너무 피곤해져 일을 마친 후 곧장 잠에 들었다. 그리곤 오늘 새벽 4시에 깼다. 2시간동안 대략의 원고를 쓰고 쇼파에 드러누워 페이스북에 들어가니 1년 전 내가 쓴 글이라는 포스팅이 먼저 보였다. 오늘 라디오에서 소개한 책이 <김수영의 연인>이었는데, 지난 해 같은 날에도 김수영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마음의 단단함’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지난 해 본색소사이어티에서 내가 옹졸하게 굴었던 일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신용준이 내게 김수영이 썼다는 문장 하나를 적어 보냈고 그게 퍽 위로가 되었다. 용준이 보낸 글은 김수영이 쓴 박인환 부고사였다.
"나는 인환을 가장 경멸한 사람의 한 사람이었다. 그처럼 재주가 없고 그처럼 시인으로서의 소양이 없고 그처럼 경박하고 그처럼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부고사치곤 야속하다는 느낌이 드는 문장이었는데, 그 옳음에 대한 강박적이라 할만큼의 태도가 좋았다. 그리고 1년만에 그 부고사를 다시 읽으니 다른 문장이 눈에 더 들어왔다.
" "아아 수영아, 훌륭한 시 많이 써서 부지런히 성공해라!" 하고 빙긋 웃으면서, 그 기다란 상아 파이프를 커크 더글러스처럼 피워 물 것이다“
나는 김수영과 박인환이 어떤 사이인지는 잘 모르지만 <김수영의 연인>에서 김현경 선생은 김수영이 박인환을 무시하게 된 계기가 마리서사에서 있었던 낭독회에서 박인환이 어떤 일본 작가의 글을 읽는 솜씨가 형편이 없다는 걸 본 후로부터라고 한다. 그러니까 일본어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다는 건데 물론 단지 그 때문일리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김현경이 쓴 이 책은 이렇듯 김수영의 내밀한 마음의 움직임까지는 도달하지 못한다. 그저 그 김수영과 김현경이 가난과 어떻게 싸웠는지, 김수영이라는 한 인간이 사랑한 여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볼 수 있다는 정도이지 사실 이 책에서 문학장에서 김수영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누구와 대립했는지, 왜 그런 대립을 감내했는지 식구에게서는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비화들도 거의 소개되지 않는다.
솔직한 내 느낌은 김수영은 아마 외로웠을 것이고, 이 부부는 경제공동체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는 거다.(모든 부부가 경제 공동체적이라는 걸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는 내내 아내인 김현경도 김수영을 잘 모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부정적인 평을 해보면, 김현경 선생은 ‘시인 김수영’의 아내라는 것을 인정 받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고 느껴졌다. 김수영에게 여러 여자들이 있었지만 내가 그의 아내이고, 그간 저작권자로 행사하지 않아 인세도 받지 못했지만 자신이 진정한 저작권자이고, 김수영이 문학적 성취를 이루는데 필요한 생활 기반을 제공해준 것도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구성 면에서도 아쉽다. 사실 이 책의 1부와 3부는 거의 같은 내용이다. 1부는 3부를 조금 고쳐쓰면서 상세한 내용을 붙이고 3부에서 가명으로 처리되었던 인물명을 모두 실명으로 공개했다. 3부는 90년대 중반인가 어느 여성지에 나간 글인데 그 때는 당사자들의 실명을 공개하기 어려운 맥락이 있었나 보다.
그렇다고 이 책의 가치를 폄하하는 건 아니다. 생활인 김수영의 민낯을 보고 나니 그의 시가 달리 읽히는 맛이 있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김수영이 반성적으로, 무겁게 써내려간 것이 아니라 광적으로 흥분하면서, 아내를 괴롭게 만들정도로 신경질적으로 써내려갔다고 생각하고 시를 읽어보니 느낌이 새삼스럽다. <만용에게>도 양계일로 쩔쩔매며 써내려간 글이라고는 이전에 그다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어째서 김수영이라면 밥벌이와 문학은 간단히, 깔끔하게 분리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여하간 이 책은 그런 점에서 가치가 있다. 방송에서는 흥미 위주로 소개했다. 두 사람의 연애 스토리를 위주로^^.
김수영의 연인
김현경
1.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이번 주에 제가 소개해드릴 책은 출판사 책읽는 오두막에서 만들고, 김현경이 쓴 <김수영의 연인>이라는 책입니다. 시인 김수영을 많은 분들이 아실텐데요, 이 책의 저자인 김현경 선생님은 시인 김수영의 아내입니다. 이 책에는 김수영의 생애, 김수영의 문학 세계에 대한 소개도 있지만 무엇보다 시인의 아내로 살아온 김현경 선생의 곡절 많은 삶이 마치 드라마와 같이 펼쳐져 있습니다. <김수영의 연인>이라는 제목 그대로입니다. 시인 김수영에 대해서, 그리고 김수영과 김현경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해서 쓴 책입니다. 얼마 전에 윤동주 시인을 다룬 영화 <동주>가 개봉했었죠?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영화로 만들기에 손색이 없다, 오히려 <동주>보다도 더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2. 김수영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이시죠. 혹시 김수영 시인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소개해주시지요.
네, 김수영 시인은 1921년에 태어나 우리나라 현대사의 가장 아픈 시기를 살았던 한국 문학계의 대표 시인 중 한 사람입니다. 도쿄상대에 입학했고 성공적으로 살 수 있었지만. 태평양 전쟁이 터지자 가족들과 함께 만주 길림성으로 이주하게 되어 학교를 마치지 못합니다. 광복 이후에 연희대 그러니까 지금의 연세대 영문과로 편입했지만 중퇴하고 맙니다. 6.25 전쟁 때는 의용군에게 강제로 끌려가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1952년에 겨우 살아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후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거나 신문사에서 일하며 시를 쓰고 번역일을 했는데요,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전쟁이 끝나고는 도시 생활을 비판하는 시를 주로 썼지만 4.19 혁명 이후부터는 현실 비판과 저항 정신을 바탕으로 한 참여시를 집중적으로 쓰게 됩니다. ‘풀’, ‘폭포’,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와 같은 시가 김수영의 대표적인 시인데요, 모두 이 시기동안에 쓰여진 시이죠. 저 개인적으로는 김수영 시인의 시를 볼 때 반 고흐가 떠오릅니다. 연인을, 동생을, 자연을 그 누구보다 강렬하게 사랑하며 그림을 그렸던 반 고흐처럼 김수영 시인도 한 여인을, 인간을, 우리 사회를 정말 뜨겁게 사랑하며 시 쓰기에 매진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오래 살지 못했다는 것도 닮았습니다. 가난과 싸우다가 반 고흐는 3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떴는데요, 김수영 시인도 엄혹한 한국 사회의 격변기에 생애의 대부분을 보내면서 가난과 싸우다가 48세의 일기로 세상을 뜹니다.
3. 그렇다면, 이 책의 작가인 김현경 선생님께서도 김수영의 아내로 살면서 김수영과 그 모든 것을 함께 겪은 것이 되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이 책을 보면요, 김현경 선생이 김수영을 처음 만난 것은 1942년 5월이었다고 해요. 김현경 선생이 아직 여고생이던 15살 때 당시 22살이던 김수영을 처음 만나거지요. 물론 그 때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이 시작되었던 것은 아니구요, 해방 후 다시 김수영을 우연히 명동 거리에서 만나게 되면서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 때의 과정이 이 책에 정말 재밌게 소개되는데요, 오늘은 김수영 시인의 문학 세계보다는 김현경 선생과 김수영 시인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책의 내용을 좀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김현경 선생님은 그 당시 이화여대를 다니고 있었는데, 시인 배인철과 사귀고 있었다고 해요. 배인철 교수와 김현경 선생이 명동에서 데이트를 한 것을 본 김수영이 그 다음 날 새벽 느닷없이 구둣발로 김현경 선생의 방으로 뛰어들어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고 해요. “어떻게 넌 말 뼈다귀 같은, 정체불명의 엉터리 같은 놈과 사귀어? 넌 어찌 그렇게 우둔해? 응? 내가 꼭 말로 사랑해야 한다고 해야 돼? 그래야 꼭 알겠어?” 하더라는 겁니다.
사실 배인철 시인은 그렇게 말 뼈다귀 같은 사람이 아니거든요. 니혼대학 영문과를 나와서 해양대 교수를 하고 있었고, 당시 사람들이 한복 아니면 군복을 염색해서 입고 다닐 때 영국 신사처럼 수트를 입고 다닐 정도로 기품이 있고 멋졌다고 해요. 그런데 두 사람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는데요, 두 사람 사이에 김수영이 끼어들어서라고 보기는 좀 어렵습니다. 1947년 5월 두 사람이 장충단 공원을 걷고 있을 때 괴한이 나타나 두 발의 총을 쏩니다. 한 발은 김현경 선생의 옆구리를 관통하고, 다른 한 발은 배인철의 두개골을 관통하면서 결국 배인철은 그 자리에서 즉사해 버리고 맙니다.
4. 아, 벌써 드라마가 시작되는 것 같은데요, 배인철의 죽음으로 두 사람의 사랑이 끝나고 만거네요. 어떻게 그런 일이 다 있었을까요?
그렇죠? 김현경 선생님도 배인철이 죽고 나서야 알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배인철은 남로당의 주요멤버였다고 해요. 배인철은 부친께서 인천에서 통운회사를 운영할 만큼 부유한 집안 출신이라 그가 남로당 멤버일 거라고는 아예 처음부터 생각을 못했던 거죠. 당시 경찰은 오직 치정 관계에 의한 살인으로 보고 김현경 선생의 주변 남자들을 불러 들여 고문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많은 고초를 당한 것이 김수영 시인이었다고 해요.
아마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이 확인된 것이겠죠. 이 일이 있고나서 김현경 선생님은 이화여대에서 제적이 됩니다. 연애금지 규정을 어겼기 때문이죠. 김현경 선생이 가택구금을 당하고 있을 때 김수영은 태연히 찾아와 김현경 선생에게 시를 쓰고 문학을 하라고 열변을 토하고는 돌아가고는 했다고 합니다.
5. 두 사람의 사랑이 그렇게 시작된 거군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해요. 이 두 사람이 노량진 종점에서 백사장을 따라 여의도 쪽으로 걸어가다 여의도 섬 한 가운데 얕고 넓은 웅덩이를 보게 되었다고 해요. 숨이 막힐 만큼 더운데 맑은 웅덩이를 보더니 김현경 선생이 아무 부끄러움도 없이 원피스와 속옷 마저 벗고 알몸으로 물 속에 뛰어 들었다고 합니다. 김수영도 처음에는 난처한 표정을 하다가 결국 옷을 벗고 뛰어들어 갔는데요, 아무도 없는 여의도 섬 한복판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함께 보내며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제가 보기에는 두 사람 다 제 정신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한밤 중에 여자 혼자 사는 집에 찾아가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고문을 당해도 태연히 찾아가서 데이트를 즐긴 김수영도 보통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김현경 선생님도 보통이 아닙니다. 학칙을 어기고 연애를 해서 퇴학을 당하고, 옷을 벗고 웅덩이에 뛰어 들어가고..
그런데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문학을 하려면, 혹은 예술을 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자유로운 정신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고 마음껏 표현하는 태도가 두 사람 모두에게 있었기 때문에 한국 문학의 가장 높은 곳까지 김수영이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6. 여의도에 인적이 없는 웅덩이에서 옷을 벗고 헤엄을 치다니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인데요, 지금처럼 복잡하고 사람이 많은 여의도를 생각해보니 더 꿈 같은 이야기처럼 들려요. 그런데 이 때가 1948년이라고 하셨잖아요? 6.25가 터지고, 김수영 시인이 포로가 되면서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이 계속되기는 정말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사실 6.25가 터지기 전에 이미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은 이뤄지기 어려운 점이 많았어요. 먼저 두 사람의 집안 배경 자체에 차이가 많이 났어요. 김현경 선생의 아버지는 경기고 출신의 사업가였고 일제 시대에 훗카이도에 골프를 치러 다닐 정도로 부유했다고 합니다. 총독부가 진행한 만국박람회의 기획자이기도 했구요, 광산도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김수영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김수영의 어머니는 유명옥이라는 설렁탕집을 했구요, 그래서 가난했지요. 저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김수영은 치질이 아주 심했다고 해요. 항문에서 터져 나오는 고름을 김현경 선생이 짜내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만약 이 책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웃음) 치질 치료 때문에 병원비가 필요한데 돈이 없으니까 김현경 선생이 집에 있는 비단을 몰래 팔다가 잡혀서 아버지가 방에 대못을 박고 다시는 만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해요. 그래도 항문에 고름까지 짜주는 사이를 어느 누가 가를 수 있겠습니까? 두 사람은 결혼식도 하지 않고 살림방을 얻어 신혼살림을 그렇게 시작했다고 해요.
7. 그렇네요. 아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가 흥미진진하네요.
이후에도 어려움은 많았습니다. 김수영이 길거리에서 인민군에게 징집되고, 여차저차해서 거제도 포로수용소까지 가게 되는데요, 그 때는 이미 첫 아들을 낳은 이후라고 해요. 죽은 줄만 았던 김수영이 1952년에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왔지만 전쟁통에 모두들 너무 가난해서 살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김수영은 부산과 대구를 오가며 통역이나 번역일을 했지만 그걸로 밥벌이는 어림도 없었고, 자식은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김현경 선생은 자신에게 김수영을 소개시켜 준 이종구라는 사람을 찾아가서 취직을 부탁합니다.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던 이종구가 일자리를 알아봐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이종구는 일자리는 알아봐 주지 않고 김현경 선생을 자기 집에 잡아두고 보내주지를 않습니다. 탈출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감시하며 1년이 넘는 기간동안 그렇게 김현경 선생은 이종구와 함께 살게 됩니다.
8. 아, 그러면 두 사람 간의 진짜 시련은 전쟁도, 가정도 아니고 가난이었던 것이네요.
그렇죠. 결국 가난 때문에 이종구에게 붙잡혀 있었던 거니까요. 이종구는 집요하게 김현경 선생에게 자신과 혼인할 것을 요구하고 김수영과 이혼하라고 압박했다고 합니다. 결국 김현경 선생도 김수영에게 찾아가 이혼도장을 달라고 했더니 김수영이 도장을 줬다고 해요. 그런데 막상 도장을 이종구에게 주려고 하니 도저히 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도피에 도피를 거듭해서 이종구를 탈출하고,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말 영화 같은 이야기죠?
전쟁이 끝나고도 가난한 삶은 계속되었다고 해요. 혹시 김수영이 양계장을 운영했다는 말 들어보셨어요? 이 때 쓴 시가 <만용에게>라는 시입니다. 제가 조금만 읽어보겠습니다.
수입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너나 나나 매일반이지
모이 한 가마니에 사백삼십원이니
한달에 십이, 삼만원이 소리없이 들어가고
알은 하루 육십개 밖에 안나오니
묵은 닭까지 합한 닭모이 값이
일주일에 육일을 먹고
사람은 하루를 먹는 편이다
모르는 사람은 봄에 알을 많이 받을 것이니
마찬가지라 하지만
봄에는 알값이 떨어진다
여편네의 계산에 의하면 칠할을 낳아도
만용이의 학비를 빼면
아무 것도 안 남는다고 한다. (이하 생략)
시 내용 중 일부인데요, 김수영이 번역일을 해서 벌어들인 작은 돈을 양계장 하면서 모두 닭이 먹었다고 해요. 주로 생활은 김현경 선생이 책임을 진 것 같아요. 양장점을 운영했는데, 꽤나 유명했다고 해요. 그런 생활 끝에 김수영은 1968년 6월 15일, 술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버스에 치여 죽고 맙니다. 사실 이것도 가난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돈이 급해 김현경 선생이 김수영에게 번역한 원고료를 선불로 받아오라고 채근했었다고 해요. 그걸 받아오다가 변고를 당하게 된겁니다.
9. 김수영 시인이 마지막으로 쓴 시가 ‘풀’로 알고 있는데요, 두 사람의 사랑, 김수영 시인의 불꽃 같은 생애를 더 듣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끝으로 이 책을 우리 청취자들에게 추천해주시는 이유 정리해주시죠.
최근 김수영 시인이 한국 문학에서 이렇게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작가냐를 두고 작은 소동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런 소동은 대부분 김수영의 문학보다는 정치적인 입장에 따른 겁니다. 김수영이 생전에 보였던 정치적 입장과 다른 사람들이 김수영의 문학까지 폄하하는 건데요, 이 책을 한번 읽어보시면 교과서에서 배웠던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김수영의 깊고 넓은 시 세계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시라는 것은 정치적 의미, 종교적 의미를 따지며 읽는 것이 아닙니다. 알사탕을 입에 넣고 굴리듯 시를 입 속에서 천천히 굴리며 시적 언어를 경험하는 거죠. 이 책에는 김현경과 김수영의 러브 스토리 뿐 아니라, 근대를 살아오면서 여자로서 자신의 문학적 꿈은 포기하고 남편의 문학적 성취를 지원했던 한 여성의 삶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현경 선생이 뽑은 김수영의 시와 그 시에 얽힌 뒷이야기들이 있어 김수영의 시를 알사탕처럼 입에 굴리는 맛을 더해줍니다. 요즘 시를 읽는 독자들이 너무 적어졌다고 해요. 입에서 알사탕을 굴릴 여유조차 없기 때문일까요? 부디 이 책을 통해 시를 읽는 5월이 되셨으면 하는 바램에 소개드리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