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의 딥마인드
페이스북 친구의 일곱 살 아이는 수학 퀴즈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 아이는 자동차 번호판의 네 자리 숫자 각각에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를 해서 아빠가 정해준 숫자를 만드는 게임을 즐긴단다. 예를 들면, 아빠가 정해준 숫자가 50이라고 하자. 아이는 지나가는 자동차의 번호판이 ‘5796’이었다면 아이는 (5×7)+9+6이라고 답하면 된다. 먼 길을 갈 때도 아이는 자동차 번호판으로 숫자와 씨름하느라 지루할 틈이 없단다. 다만 걱정도 있다고 하셨다. 번호판이 ‘9083’인 경우에 (90÷2)+8-3이라도 50이 될 수 있는데 아이는 9와 0을 조합해서 90이 될 가능성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 나누기는 왠만하면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 걱정이라면 걱정이라고 했다.
글을 읽고난 후 번호판을 가지고 그런 놀이를 만들어 낸 친구도 기발하고, 그런 놀이를 즐겨한다는 아이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자 그런 생각도 금방 지나가 버렸다. 동네 도서관에 보드게임을 하러 가자고 아이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 앞 도서관에 가면 수십 종의 보드게임을 무료로 할 수 있다. 아이가 먼저 선택한 게임은 ‘쿼리도’였다. 우리 모두 처음 접하는 게임이었지만 규칙은 어렵지 않았다. 먼저 가로 9칸, 세로 9칸으로 된 게임판의 반대편 양 끝 줄에 각자의 말을 서로 마주 보게 세워둔다. 그리고 게임판에 세울 수 있는 9개의 나무 조각을 이용해 상대 말이 내 말이 처음에 서 있던 반대편 줄까지 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누구든 먼저 상대 말이 서 있던 줄까지 도착하면 이기는 거다. 나는 아이가 움직이는 말을 막으려 나무 조각을 무리해서 세우다가 번번이 게임에서 졌다. 일부러 져준 게 아니다. 정말 내 꾀에 빠져, 그리고 아이의 수를 간파하지 못하여 진 것이다.

아이가 다음으로 가져온 건 ‘숫자의 강’이라는 게임이었다. 게임판에는 숫자가 1부터 100까지 적혀 있고, 우리 각각은 6개씩의 집을 나눠 갖는다. 그리고 카드를 두 번 뽑게 되는데, 처음 뽑은 카드에 적힌 숫자에 그 다음 뽑은 카드에 적힌 숫자를 더하거나 빼서 나온 숫자에 자기 집을 세운다. 예를 들면 처음 뽑은 카드에는 ‘10’이 적혀 있고, 다음으로 뽑은 카드에는 ‘-7’이 적혀 있다. 그러면 게임판에 ‘3’이라고 적힌 곳에 집을 세우면 된다. 두 사람 중 먼저 여섯 개의 집을 세우는 사람이 이기게 된다. 먼저 아이가 카드를 뽑았다. 처음 뽑은 카드에는 ‘93’, 다음 카드에는 ‘-17’이 적혀 있다. 아이는 엉뚱한 답을 냈다. “85? 86이야? 몰라. 하기 싫어. 다른 것 할래”. 그때 갑자기 페친의 아이가 떠올랐다. 곱하기, 나누기도 한다는데.. 뭔가 모를 오기가 생겼다. “안돼. 다시 해 봐”. 아이는 다시 골똘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겨우 답을 냈다. 다시 아이의 차례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53’이 적힌 카드와 ‘-10’이 적힌 카드다. “이번에는 쉽지? 53에서 10을 빼면 얼마일까?”. 아이는 한참을 생각했다. “아빠, 44야?”. “아니”. “45?, 46?”. “야! 53에서 10을 빼는데 어떻게 45야? 정신 안 차릴래?”. 아이는 갑자기 화를 내는 아빠를 보고 얼어 붙었다. 눈물이 맺혔다. “아빠, 43 맞아?”.
대관절 큰 소리가 나자 사서가 들어왔다 나갔다. 안 배웠으면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하면 아이가 수학과 결국 멀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날은 참기가 힘들었다. 어떻게 10을 못 뺄까. 10을 빼는 건 1을 빼는 것만큼이나 단순한 것 아닌가? 내 아이는 수학머리가 없는 걸까? 집에 돌아와 아이에게 하루 종일 수학 문제를 풀게 만들었다. 노트에 두 자리 숫자를 적어주고, 내가 어릴 적 내 어머니께 배운대로 계산법을 가르쳤다. 아이는 금방 요령을 익혔다. “37에서 46을 더하려면 먼저 7과 6을 더한 13을 적어. 그런 다음에 3과 4를 더해 나온 7을 앞의 자리 1과 더해줘. 그러면 83이 되지? 쉽지?”. 그리고 그날부터 구구단도 외기 시작했다. 하루만에 5단까지 외웠다. 집에 쌓아둔 수학 문제집도 모두 풀었다. 집에 돌아온 엄마에게 아이는 이제 구구단을 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나도 아이가 수학 머리가 영 없진 않구나 안도하는 사이 엄마가 이렇게 물었다. “그러면 4에서 8을 곱하면 왜 32인거야? 곱한다는 게 뭐야?”. 아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엄마는 다시 물었다. “7하고 6을 더해서 나온 13에서 앞자리 1과 3에서 4를 더한 7은 왜 더해주는 거야?”. “몰라. 그냥 아빠가 그렇게 하면 된다고 했어”.

아이를 재우고 나자 자책감이 몰려왔다. 오늘 나는 교육이 아니라 고문을 한 것이리라. 돌이켜 보니 아이가 53에서 10을 빼는 것이 8을 빼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이 당연했다. 아직 손가락 계산기가 필요한 아이에게 10을 빼는 것은 앞자리 5를 4로 바꾸면 되는 간단한 계산이 아니다. 53부터 52, 51, 50... 44, 43. 그렇게 하나씩 열 번을 빼는 과정을 거쳐야 하니 8을 빼는 것보다 복잡한 계산이 되는 것이다. 수학 문제집도 아이 혼자라면 결코 다 풀지 못했을 것이다. 어른들의 관점에서야 아이들이 푸는 수학 문제는 너무 단순하지만 아이에게는 그렇지 않다. 아이 스스로 문제를 읽고서 거기에 제시된 방식에서 패턴을 찾아 답을 하기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나는 아이가 문제를 읽고 패턴을 찾는데는 관심이 없었다. 답을 찾는지에만 모든 관심을 집중했다. 원리를 찾을 시간도 주지 않았고 유치한 시기심에 요령부터 가르쳤으니, 내 아이를 알파고만도 못하게 취급한 것이다. 구글에서도 알파고가 ‘경험’을 통해 알고리듬을 찾을 수 있도록 학습의 기회를 줬다고 하는데 나는 아이에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한낱 계산 능력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인 사고가 필요한 쿼리도도 아이에게 못이기는 아빠인데, 아침에 일어나더니 그래도 “아빠가 최고”란다. 잠깐 페친의 아이가 최고라 생각한 아빠부터 정신을 차려야겠다.
-2016.5 키자니아에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