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국가에서
V. S. 나이폴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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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제목만 보고 정치적 서사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렇기엔 표지가 너무 발랄하다 싶었다. 쨍한 레몬색과 연녹색 세로 줄무늬가 선명했다. 색의 조합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작품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지에 대한 궁금함이 책의 첫인상이었다.

본문을 읽기에 앞서 책 날개의 작가 소개에 눈이 갔다. 작가 비디아다르 수라지프라사드 나이폴(V. S. 나이폴)은 인도계로 영국령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태어났다. 트리니다드토바고는 카리브해 남쪽 남미대륙과 가까이 위치한 작은 섬나라다.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의 누군가가 제국의 또다른 식민지 그것도 작디 작은 섬나라로 가게 된 사연이 머리 속에 그려졌다. 아마도 파란만장했을 여정 끝에 지구 반대편에 다다랐을 누군가, 그 누군가의 자손이 써낸 서사에 대한 호기심이 낯선 작가에 대한 부담감을 이겼다.

『자유 국가에서』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로 이름지어진 짧은 단편 사이에 2개의 단편과 중편 1개가 끼어있는 구조다. 사실 '자유' 혹은 '국가'라는 단어가 제목에 등장한 소설을 선뜻 읽고 싶어지진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읽는 쪽을 선택한 이유는 프롤로그의 제목 때문이다. 「피레우스의 방랑자」에 매료됐다. 게다가 에필로그에는 「룩소르의 서커스단」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중간의 이야기들이야 어떻든 이 책은 그리스 아테네의 외항 피레우스에서 시작해서 이집트 왕국 중심지 룩소르에서 끝난다는 말이 아닌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문명과 역사에 관심을 가진 독자로서는 두 단어가 등장한 소설에 눈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작가 나이폴은 학업을 위해 조국을 떠난 후 평생 다시 돌아가지 않고 영국에 머물며 작품을 썼다. 그러나 묘하게도 그의 작품에 영국이 소재나 배경으로 거의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는 "고향인 트리니다드나 인도나 아프리카 같은 유럽 식민지"를 문학의 대상으로 삼았다. 『자유 국가에서』의 단편들에서도 어딘가를 떠돌거나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들은 뿌리를 잃고 부유하며 자신이 디딘 현실에 혼란스러워한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결말은 독자의 고민을 요구했다. 지금 읽은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프롤로그 「피레우스의 방랑자」는 아테네 피레우스에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이틀 간의 뱃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지저분한 증기선"에는 "난민선처럼 승객이 꽉 들어차 있었"고 그 가운데 영국인으로 보이는 "방랑자"가 섞여있다. 누구와도 섞이길 원하지 않으면서도 타인의 눈길을 바랐던 방랑자는 다른 여행객들의 따돌림 속에 죽음의 위협을 느낀다. 소설 전반에 걸친 무리에 속하지 못하고 떠도는 방랑자의 이미지는 프롤로그에서 시작됐다.

「무리에서 벗어나 한 개인으로」는 인도 뭄바이에서 미국 워싱턴으로 간 하인 산토시의 이야기다. 주인의 "일부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만족했"던 산토시에게 워싱턴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유'의 현신이었다. 워싱턴에서는 하늘같은 주인도 없신여김을 받을 수 있는 존재였다. 산토시는 진정한 자신을 대면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이 달랐다. 내가 주인의 일부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는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저절로 그렇게 되어 버렸다. 나는 주인과 나를 남남으로 보게 되었다. p.61


나도 한때는 큰 무리의 일부였다. 그때는 나를 독립된 개인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다 거울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는 자유로워지기로 마음먹었다. 자유는 내게 이런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내가 가진 건 오로지 몸뚱이 하나뿐이라는 사실, 어떻게 해서든 그 몸뚱이를 입히고 먹여 살려야 한다는 사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모든 게 끝난다는 사실을.
p.96

「누구를 죽여야 하는지 말하라」는 모호한 이야기다. 동생 결혼식에 가고 있는 나와 친구 프랭크가 있다. 둘이 어떤 관계인지 나는 어떤 상황에서 동생에게 가고 있는 건지 설명하지 않는다. 동생을 아꼈던 '나'는 "항공 공학을 배우고 싶다는 동생을 따라 영국으로 가 뒷바라지하지만 동생은 형의 기대를 져버리고 노동자의 길을 택했다. 벌어놓은 돈을 모두 탕진하고 동생이 떠나려는 순간 '나'는 공허함과 분노를 느낀다.

그 사람들 중 나의 적은 누구인가? 누가 적인지 알면 그를 죽일 수 있을 것이다. (…) 대체 누가 내 돈을 강탈하고 내 인생을 망쳤는가? 나는 이들 중 누구에게 복수해야 하는가?(…) 누군가 아는 사람이 있으면 말하라. 대체 나는 누구를 죽여야 하는지.
pp.172-173

수록작 중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표제작 「자유 국가에서」는 내전 중인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다. 대통령이 왕을 죽이고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무력을 행사한다. 주인공 바비와 지인 린다는 혼란한 이때에 (영국인) 관할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장거리 여행을 떠난다.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에 대한 생각이 다르고 조국에 대한 태도도 다른 두 사람은 여행 중 맟닥뜨리는 여러 상황에서 때론 같은 모습을 보이기고 하고 싸우기도 한다. 시시때때로 표변하는 둘의 마음과 행동에는 아프리카 땅에 대한 경외와 아프리카인에 대한 폄하가 드러나고 동시에 과거 지배자로서의 자존심과 피지배자였던 아프리카인이 현재 행하는 무력에 대한 두려움이 뒤섞여 있다. 그 와중에 동성애자로서의 바비의 정체성과 린다에게 따라붙어 있는 문란하다는 소문이 두 사람의 심리상태를 복잡하게 만든다.


아프리카인에게 호의적인 듯 보이는 바비의 모습이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작가는 스스로 '편견'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자신 안에 잠재된 생각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걸 드러냈다. 바비는 자신이 "그 어떤…… '편견'도 갖고 있지 않"다며 "이곳(아프리카) 사람들이 유럽인들에 대해 편견 같은 걸 갖고 있다면 그건 순전히 유럽인들 탓"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관할 구역 내의 안전한 집으로 돌아간 후 자칫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는 하우스보이 "루크를 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마음 먹는다. 루크가 대통령에 맞선 왕과 같은 부족이기 때문이다. 바비는 자신의 말을 증명했다. 유럽인들은 자신들에 대한 편견을 '스스로' 생산하고 있었다.


에필로그 「룩소르의 서커스단」에서는 밀라노를 거쳐 이집트 룩소르로 여행을 떠난 '나'가 주인공이다. '나'는 사막에서 만난 일단의 유럽 여행객이 구걸하는 이집트 아이들을 상대로 파렴치한 행동을 하는 것을 목격한다. 유럽인들을 저지한 '나'의 눈에 점잖은 태도의 중국인들이 들어온다. '나'는 "차분하고 단정한" 중국인들에게서 이집트를 향해 다가오는 "또 하나의 머나먼 제국"을 발견한다.


작가 나이폴은 『자유 국가에서』로 맨 부커 상을 수상(1971)했고 2001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됐다. 나이폴은 평가가 갈리는 작가다. 작품 해설을 참고해 보자면 탈식민주의 문학의 주요 작가로 평가되는 한편 "서양인의 식민주의적 시각으로 제삼 세계를 바라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자유 국가에서』에서 느낀 바로는 그 어느 한쪽으로 판단할 수 없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과거 식민지였던 지역 주민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은 시각으로 제국주의 국가 국민들을 보고 있었다. "아프리카나 아시아 사람들을 무지하고 비굴한 모습으로 그리"는 동시에 영국인들을 위선적이고 호감가지 않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이 대목에 대한 역자의 해설은 적확하다.


결국 종주국인 영국이든 트리니다드를 비롯한 인도나 아프리카 같은 식민지든 나이폴은 사뭇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작품에서 서로 다른 인종과 문화와 정치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그의 관심사는 그 해결책이 아니다. 이 책 『자유 국가에서』처럼 그의 시선이 머무는 것은 그 같은 문제투성이 국가나 사회에 정착하지 못한 채 포스트콜로니얼(Postcolonial), 즉 식민 지배 시스템이 붕괴된 이후 세계를 떠도는 유랑자들의 쓸쓸한 모습이다.

pp.439-440


이해를 위해 작품 해설에 많이 기댄 소설이었다. 해설없이 읽었다면 종종 그런 것처럼 "그래서 결론이 뭐야?" 늪에 빠졌을 것이다. 어떤 소설은 명확한 결론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 또 어떤 경우에는 서사 구조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단편 읽기에서 배운다. 노벨상처럼 굵직한 상을 받은 작품임에도 읽은 후 "수상작은 어렵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 해설을 꼼꼼히 챙겨볼 일이다. 미쳐 알지 못한 작품의 이면이나 해석의 가능성 등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만의 작품 해석이 가능하다면 굳이 그럴 필요없겠지만 시간들여 읽은 작품을 모호하게 남겨두는 것은 아쉬운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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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아말 엘-모흐타르.맥스 글래드스턴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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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는 1984년생 동갑내기인 저자 아말 엘모흐타르와 맥스 글래드스턴은 초고에서 퇴고까지 6주가 안 되는 시간에 써낸 경장편 소설이다. 책은 2020년 영국 SF협회에서 주는 BSFA상과 캐나다 SF협회에서 주는 오로라상과 네뷸러상, 로커스상, 휴고상을 받았다.

이야기의 배경은 시간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미래다. 전체 시간을 차지하기 위해 ‘에이전시’와 ‘가든’이라는 두 세력이 전쟁 중이다. ‘에이전시’의 요원 레드와 ‘가든’의 전사 블루는 과거와 우주를 오가며 역사에 개입하는 방식으로 미래를 자신의 진영에 유리하게 바꿔간다. 레드와 블루는 애브러개스트 882에서 마주친 후 자신들 사이에 마무리 지어야 할 관계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에이전시’와 ‘가든’에 들키지 않기 위해 기발한 방식으로 편지를 교환하며 서로에게 침투한다. 소설은 제목을 통해 천명한다. "당신들은 (…)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고. 패배하는 '당신들'은 누구일까? 전쟁의 당사자들, 레드와 블루, 아니면 다른 누구.


나의 위업을 보라, 너희 강대한 자들아, 그리고 절망하라!

저 인사는 그냥 농담이야. 장담컨대 네가 저 문장을 읽고 아이러니를 느낄 만한 변수는 주위에 하나도 없을 거야. 내가 이미 다 없애 버렸으니까. 다만 네가 ‘시간 가닥 6’ 초기의 19세기 영국 문학에서 걸핏하면 선집으로 묶이던 작품들에 익숙하지 않다면, 나만 웃고 끝나겠지.

p.17


아말 엘모흐타르와 맥스 글래드스턴 작가는 시와 소설과 희곡을 아우르는 문학작품과 작가, 게임과 팝송 같은 대중문화,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과 인물, 생활관습과 자기 세트 같은 생활문화 등 온갖 분야의 수많은 요소들을 소설의 배경과 소재로 사용했다. 영어권 문화에 익숙한 독자에게 즐길거리가 될 요소다.


한편으론 영어권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두 작가가 사용한 다채롭고 화려한 소재를 일별하며 읽는 것도 좋은 독법이 될 수 있겠다. 다만 수많은 요소들은 흥미로운 장식일뿐 이야기에 중요한 소재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보니 서사를 따라가는 것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서사에 집중하는 독자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영리한 구조와 문장, 빛나는 아이디어와 캐릭터, 어느 쪽을 먼저 칭찬해야 할지 망설여질 따름이다.”

켄 리우 『종이 동물원』의 저자

리우 작가의 추천사를 보고 책 제목을 다시 봤다. 매들린 밀러의 "모든 것을 담은 소설"이라는 문장에 읽기로 결정했다. 켄 리우 작가의 소설처럼 새로울까, 매들린 밀러의 이야기처럼 빠져드는 매력이 있을까 기대하며 첫 쪽을 펼쳤다. 마지막 쪽을 덮고 나서 켄 리우 작가의 추천사가 이 소설을 적절하게 설명한다고 생각했다.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의 문장은 암시와 암호로 가득하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캐릭터는 흥미롭고 소설의 구조는 영리하다. 재미있는지 반전이 놀라운지 묻는다면 답하기 망설여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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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책 모임 잘하는 법 - 운영자와 참여자를 위한 비대면 모임 노하우
김민영 외 지음 / 북바이북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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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면 모임을 했던 때가 언제인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지난 겨울이었던가 아니 그 전 가을이었던가. 낭독 모임과 토론 모임 모두 온라인으로 전황된지 한참이다. '온라인'이라는 이물감에 집중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던가 싶다. 비대면이라는 방식에 거부감마저 표하며 마지못해 할 수 없이 '당분간만'이라며 진행하던 모임이 이젠 기본값이 된 것같다. 온라인의 이점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길에 버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고 따로 외출을 위한 준비의 시간을 내는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좋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 장점들이 오히려 단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책을 위한 모드로 전환하는 단계를 생략하면서 잡념을 없애로 읽는 몸으로 예열되기까지 모임 초반의 상당 시간을 허비하는 건 아닐까. 마음의 준비없이 집에서 접속하는 동안 집안일과 읽기 사이 어딘가에서 집중력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온라인에서도 대면 모임처럼 밀도있는 시간을 갖고 싶다. 그러나 온라인은 온라인의 상황이 가지는 특성상 대면에서 활용하는 여러 모임의 기술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어떻게 하면 온라인이라는 특성을 약점이 아닌 강점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 『온라인 책 모임 잘하는 법』은 이 물음에 정확하게 답하기 위해 쓰인 책이다.


책모임 전문가 김민영 저자를 비롯해 3명의 공저자가 내놓은 책은 정직한 제목 그대로의 내용을 담고 있다. 만나서 하는 토론을 만나지 않고 할 때 만난 것만큼의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기술과 사례를 제시한다. 부제에는 "참여자와 운영자를 위한 비대면 노하우"라고 쓰여 있지만 운영자에게 더 도움될만한 내용이 많다.


책은 온라인 책모임을 위한 "처음부터 끝까지'를 포함했다. 온라인 모임을 위한 마음가짐부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이용법부터 시작한다. 온라인이 처음이어서 막연히 두렵거나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미리 알아두면 좋을 팁들을 친절히 설명해준다. "괜찮다",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는 정말 친절한 선생님처럼. 여성학자 정희진의 문장을 인용하는 대목은 '남들'에 대한 신경끄기를 위해 꼭 장착해야할 태도를 알려준다. 토론도 모임도 '내'가 없이 성립할 수 없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남들이 보기에'라는 건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생의 진리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남들은 나를 보지 않는다는 사실이며, 결국 자신과의 투쟁이라고 말이다(『나를 알기 위해 쓴다』, 교양인, 2020). 책 모임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이 내 말에 신경 쓰고, 마음에 담아둘 거라는 걱정은 내려놓자. 모임에 참석하고, 생각을 말하고, 생각하는 모든 과정이 나와의 싸움일 뿐이다.

p.38

1부에서 모든 준비를 마쳤다면 2부는 본격적인 모임 진행에 대한 실습이다. 온라인 모임을 기획하는 방법부터 알리고 참여자를 모으고 규칙을 정하고 모임 자료를 공유하는 방법 등을 상세히 제시한다. 온라인 모임은 공지 등을 좀더 신경쓸 필요가 있다. 대면 모임에서는 오가다 전할 수 있는 알림 사항이 온라인에서는 누락되거나 할 수 있다. 규칙과 운영 전반에 대해 명확히 공지할 필요가 있다. 책은 이런 점을 세세히 짚어주고 있다. 그뿐 아니다. 2부 2장의 "온라인 책 모임에서의 문제와 해결법"은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하다. 


사실 모임 방법에 대한 정보는 책 모임에 대한 여러 다른 도서들에서 참고할 수 있다. 대면 모임 방법을 응용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발생하는 모임의 문제들은 온라인이라는 특성때문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들도 있다. 온라인의 피로감을 고려해 "쉬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법"이라든지 다수가 참여할 경우 토론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 "공동진행자 시스템을 활용하는 법"과 같은 것들이 그 예다. 책은 이런 문제 상황들의 사례와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 명쾌하게 답을 내려주지 못할 경우 방향을 알려주는 것만으로 고민많은 운영자들에겐 도움이 될만하다.


책을 읽게 된 계기는 3부 2장의 "책 모임에 활력을 주는 프로그램" 중 "낭독하고 독서에서 일탈하는 책 모임" 부분이었다. 낭독 모임에 적용할 수 있는 좋은 팁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다. 책은 모임 분위기가 느슨해질 때 '낭독'을 이벤트로 활용해볼 것을 권한다. 낭독을 주로 하는 모임에 활용할 만한 팁은 다음에 나왔다. 낭독하는 목소리를 녹음해 공유해보는 방법. 서로의 낭독소리를 들어보는 일은 생각보다 의미깊은 과제가 될 것같다.


낭독은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라는 의미도 있지만, 그에 앞서 내가 읽은 책을 정리해본다는 점에서도 좋다. 소리 내어 읽으면서 내가 놓쳤던 여러 문장을 다시 만나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되새김질을 하게 된다.

p.209

온라인 모임하는 사람들이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 『온라인 책 모임 잘하는 법』에서 배운 방법들을 징검다리 삼아 이 시기를 더 잘 건너가보고 싶다. 만약 우리가 향하는 길이 대면과 대면을 잇는 비대면이 아니라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가는 것이라면 이 책은 더더욱 밝은 방향 지시등이 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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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괴물들 - 드라큘라, 앨리스, 슈퍼맨과 그 밖의 문학 친구들
알베르토 망겔 지음, 김지현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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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을 잃어가는 소설가의 눈이 되어 준 소년은 후에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게다가 그 소설가가 한 세계의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이라면. 책만 읽지는 않았을게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을테고 책 너머에 대한 대화도 나눴을게다. 책을 좋아하는 소년에게 그 시간은 얼마나 환상적이었을까. 열여섯 소년 알베르토 망겔은 라틴 문학의 거장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우연히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만난다.

 

소년 망겔은 자라서 글쓰는 사람이 됐다. "문학, 영화, 예술을 아우르는 비평들"과 소설, 논픽션까지, 경계없는 글쓰기에 매진했다. 개인적으론 『독서의 역사』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로 익숙한 저자다. 다방면의 박학다식한 지식을 종횡무진 엮어내는 저자의 책을 읽다보면 언제 이렇게 많은 책을 읽고 또 쓰는지 불가사의하게 여겨질 지경이다. 그런이 이번에 그의 또 한 가지 재능을 알게 됐다. 그림이다.

 

현대문학에서 출간된 『끝내주는 괴물들』에는 작은 글씨로 이렇게 써있다. "알베르토 망겔 쓰고 그리다"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렸다는 말이다. 저자가 펼쳐놓는 괴물이야기도 관심이 갔지만 직접 그렸다는그림이 더 궁금했다. 책에는 한 두개의 삽화가 아니라 각 챕터의 주인공들이 저자 망겔의 머리 속에 든 이미지대로 형상화돼 있다. 각 캐릭터들은 귀엽기도 하고 유머러스한 와중에 자신의 성격을 잘 드러낸 모습니다.

 

'괴물들'이라는 호칭에 갸웃하게 되기도 한다. 보바리씨와 빨간 모자, 앨리스,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괴물로 칭하자니 처음엔 어색하다. 하지만 글을 읽다보니 저자가 말하는 그들의 '괴물다움'에 동의하게 된다. 저자의 괴물들은 다름 아닌 "문학 친구들"이다. 각 챕터에는 문학에 등장하는 인물(또는 인간 비슷한 존재들) 중 일반적으로 조명받지 못한 대상들이 주인공이 되거나 잘 알려진 주인공들의 남다른 면모가 소개된다. 망겔은 괴물의 라틴어 어원(monere)을 소개하면서 그것이 "천재, 괴짜, 특이한 것, 예기치 못한 것, 거의 또는 전혀 드러나지 않은 무언가를 뜻한다"고 했다. 책에 소개된 존재들은저자의 이러한 정의에 딱 들어맞는다.

 

이런 이야기 속 괴물들의 주요한 매력 한 가지를 꼽으라면 그들의 다중적이고 다변적인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마다 고유의 내력을 가진 허구의 인물들은 자기들이 등장하는 책이 아무리 길든 짧든 간에 그 안에만 갇혀 있지 않는다.

p.16

 

책에는 서른일곱의 '괴물들'이 등장한다. 첫 장을 연 주인공은 플로베르의 『보봐리 부인』에 등장하는 샤를 보봐리씨다. 저자는 "야망도 없고 의외의 면모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매력없는 이 인물을 '운명'을 받아들인 "용감한 자"라고 평한다. "아무리 뻔한 클리셰라 해도" "인생의 궁극적인 책임은 운명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용감한 자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불변하는 문학적 진실"이기 때문이다. 부인의 이야기로 읽히고 그저 불쌍한 남편정도로 여겨지는 샤를 보봐리에 대한 남다른 해설이다.

 

『끝내주는 괴물들』을 읽는 일은 어떻게 보면 서른일곱 편의 서평을 읽는 것과 같다. 인물을 위주로 본 서평이랄까. 이름만 들어서는 어떤 책에 대한 이야기인지 추측하기 어려운 장도 있다. 여섯 번째 인물인 거트루드같은 경우는 왕관을 쓰고 새침한 표정을 한 채인 그림을 봐도 무슨 책의 등장인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햄릿의 어머니였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선 대사 몇마디 없는 왕비에 대해 저자는 솔직히 그녀의 존재감 없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녀 안에 넘쳐났을 욕망들을 상상하면서 햄릿의 성에서 "단 하나의 진정한 유령"이 거트루드라고 말한다.

 

『돈키호테』를 다루는 장은 등장인물이 아닌 다른 대상을 다룬다. 『돈키호테』의 원저자라고 세르반테스가 내세운 시데 아메테다. 그가 진짜 『돈키호테』의 작가인지 혹은 세르반테스가 작품에 심어놓은 문학적 장치인지는 알 수 없다. 저자는 그의 '배제'에 방점을 찍었다. "소설이란 오히려 애매모호함, 날것이거나 설익은 견해 그리고 암시, 직관, 감정을 토대로 꽃피는 법"이라면서 말이다. 세르반테스가 내세운 원자자의 실재가 모호하다해도, 후대의 독자들이 세데 아메테라는 작가의 존재를 무시하려했다해도 그의 존재는 결코 지워지지 않았다.

 

오늘날 『돈키호테』의 독자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배제된 문화는 결코 쉽사리 침묵하지 않는다는 것, 역사 속에서 부재는 현존만큼이나 견고하다는 것, 그리고 때로 문학이란 세상 그 어떤 지혜로운 문학가보다도 더 지혜롭다는 사실을 시데 아메테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다.

p.186

 

『구운몽』의 주인공인 파계승 성진이 등장하는 걸 보면서 저자의 독서의 폭이 얼마나 넓은지 짐작해봤다. 다종다양한 책에서 읽어낸 어디로 튈지 모를 사유를 통해 길어낸 문장들은 책 그 너머의 세계를 건너다 보게 했다. 책을 읽고 할 수 있는 생각의 한계없음에 아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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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기 위해 쓴다 - 분노는 유쾌하게 글은 치밀하게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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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온 몸으로 겪은 일상의 부조리함을 글로 쓰는 사람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왜 가난함을 벗어나지 못할까, 건강 전도사들이 말하는 비법들이 정말 효과가 있을까, 무한 긍정은 현실을 실질적으로 개선시켜줄까, 저자가 답을 얻고자 했던 질문들이다. 자신의 경험에서 솟아난 의문들에 대한 답 역시 구체적이길 원했던 저자는 부조리의 현장으로 들어가는 방식을 택했다. 최저 임금으로 생활이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해 노동자가 되고 유방암 투병 와중에 긍정 산업의 실체를 파헤쳤다. 무병장수와 안티에이징의 실현 가능성을 파악하기 위해 해당 프로그램을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 『노동의 배신』, 『희망의 배신』, 『긍정의 배신』, 『건강의 배신』 등 일련의 배신 시리즈는 이렇게 탄생했다.


『지지 않기 위해 쓴다』는 저자가 언론에 발표했던 글들을 모은 책이다. 1980년대부터 2018년까지 각종 언론에 발표했던 다양한 주제의 에세이들이다. 각 장에 주제별로 묶인 글들을 읽다보면 에런라이크의 생각이 흘러온 과정을 짐작하게 된다. 저자는 에세이를 쓰면서 문제 의식을 가다듬은 다음 현장을 체험하고 그 결과를 분석해 책을 써냈다. '1장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에 포함된 '열심히 일하셨나요? 더 가난해지셨습니다'를 쓰기 위해 시작한 식당 웨이트리스, 호텔 객실 청소부 경험은 책 『노동의 배신』이 되었다. '높은 담이 정말로 당신을 보호해 줄까'를 포함한 빈곤 문제를 다룬 에세이는 『오! 당신들의 나라』의 밑거름이 됐고, '2장 몸과 마음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 중에 '암의 왕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글은 『긍정의 배신』으로 진화했다.


저자의 글쓰기 방식이 독특한 건 그 현장성 때문이다. 화학과 물리학을 전공하고 세포면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력 때문일까. 저자는 사변적 글쓰기보다는 경험적 글쓰기 방법을 택했다. 증명을 위한 실험에 자신을 기꺼이 투입했다. 책의 첫 장에 저자의 그러한 노력이 잘 드러나 있다.


저임금 노동자의 세계로 뛰어든 저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질 수 없는 현실을 경험한다. "집, 커리어, 반려자, 평판, 현금 인출 카드"를 내려놓은 상태에서 시작한 생활은 몰려든 손님의 폭주에 멘붕에 빠진 상태로 끝났다. 한달 만에 재정은 적자였고 체중이 빠졌고 피로에 찌들었다. "투잡을 뛰는 데 실패했고, 일자리 하나로는 사는 데 필요한 돈을 충분히 벌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예전의 삶이 점점 더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전의 나에게 보내진 이메일 과 전화 메시지들은 나랑 전혀 상관없는 머나먼 곳에 살면서 시간이 너무 남아돌아 괜한 걱정을 하는 낯선 사람들이 보낸 것처럼 느껴졌다.

p.58


심리적 상황은 더 나빴다. 저소득층 생활 한 달만에 용감한 에런라이크가 소심한 겁쟁이가 돼가고 있었던 것이다. 매니저가 주방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부당하게 대우하는 것을 보고도 입을 닫은 것이다. 저자는 스스로의 변화를 통해 "아무리 보잘것없는 노동도 도덕적으로 희열을 주고 심리적으로 사기를 높인다"는 복지 개혁의 가정이 허구라는 것을 밝혔다.


원래의 나는 대체로 용감한 편이지만, 매우 용감한 사람들마저도 포로수용소 같은 곳에 갇히면 용기를 잃는 경우가 수없이 많다. 어쩌면 미국의 저임금 노동자들이 일하는 환경, 포로수용소보다 백만 배 천만 배 더 화기애애한 환경에서도 그와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는지도 모른다.

p.67


에런라이크의 글은 유머러스함이 매력적이다. 저자가 다루는 주제들은 즐거움과는 거리가 있는 것들이고 읽다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곤 한다. 매번 고통당하고 속아넘어가는 대상이 나와 다르지 않아서다. 차라리 몰랐으면 싶은 상황도 종종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는 저자의 문장은 진실을 마주하는 고통을 덜어준다. 지방 섭취가 모든 생활 습관병의 근원인 것처럼 알려져서 저지방 식품이 선호되는 일에 대해 저자는 자신과 친구를 비교대상으로 삼는다. 모든 지방 제품을 섭취해온 자신과 어려서부터 지방 제한 식단을 유지해온 친구의 현재 건강 상태는 대조적이다. 큰 키에 마른 그리고 작은 키에 비만 체형, 저자 그리고 친구의 상황이다. '저지방에 대한 신봉'은 또다시 선함과 연결되고 부유층의 구별짓기로 결론지어진다. 에런라이크는 이러한 상황을 '욕구불만'과 '(음식을 대신하는) 돈'으로 설명한다.


저지방 저단백질 식단의 장기적인 부작용이 무엇일지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바로 끊임없는 욕구 불만과 무시할 수 없이 계속 뭔가를 더 원하는 배고픔이다. 저지방 식단을 유지하는 수천 명에 달하는 고소득자에게 돈은 음식을 통해 섭취하지 못하는 지방의 대리물이었을 것이다.

p.180


합리적 페미니스트로서의 면모도 인상적이다. 저자는 아부그라이브 수용소 학대 행위를 예로 들어 자신이 "여성들에 대해 얼마간의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여상이 남성에 비해 천부적으로 더 온화하고 덜 공격적이라는 주장을 믿지 않"았음에도 여성의 가학성에 충격받았기 때문이다. 저자 이 사건으로 인해 "여성이 남성들로부터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을 뿐 아니라 남성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이론을 회의(懷疑)한다.


아부 그라이브에서 우리가 확실히 배운 것은 자궁이 양심을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성평등이 싸울 가치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성평등은 여전히 싸워서 쟁취할 가치가 있다. 만약 민주주의를 신봉한다면 그것은 남성이 해낼 수 있고 성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여성도 해내고 성취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심지어 나쁜 일들도 말이다. 그러나 성평등 하나만으로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낼 수 없다.

p.268


『지지 않기 위해 쓴다』은 치열한 글쓰기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준 책이다.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도덕적 분노에 불을 지피는 문제"에 관한 책이 어떻게 나올 수 있었는지, 그 책들에 어떤 주장들을 담았는지를 요약 정리해서 본 듯하다. "심화되는 사회 문제는 묻어 버린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저자의 문장이 날카롭다. "정직한 저널리즘"의 희귀함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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