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여자 - 일상에 도전하는 철학을 위하여
줄리엔 반 룬 지음, 박종주 옮김 / 창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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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이라는 말로 묘사되는 경험이 너무도 반갑고 귀하게 느껴질 만큼 우리 여성들은 비우호적이고 심지어는 모욕적인 형용사나 별칭을 뒤집어쓰는 데에 익숙하다.

p.8


추천사의 첫 마디다. '여성'이라는 단어에 '생각하는'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는 일이 모순적으로 여겨졌던 때가 있다는 말이다. 추천사를 쓴 앤 서머스는 저자 줄리엔 반 룬이 '사려 깊다는 것, 삶에 대한 커다란 질문들의 답을 원한다는 것'을 여서의 특징의로 제시했다고 쓴다. 형이상학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날마다 대하는 일상의 문제를 철학과 연결시킨 저작이라는 소개다.


이 책의 목표는 '철학적 사유와 일상생활을 연결'하는 것이며 줄리엔 반 룬은 매우 흥미로운 방식으로 이를 해냈다. 이 책은 한편으로는 자신의 어린 시절, 어머니가 된 것, 학계에 들어간 것, 오래된 관계를 떠난 것, 비참한 끝을 맺은 절친한 친구를 보낸 것, 여행, 배움, 사유에 관해 종종 편치 않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회고록이다. 또한 생활이나 일터에서 그녀를 사로잡아온 이 책의 뼈대가 되는 주제들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pp.8-9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여성'이라는 속성에 따르는 개인적, 사회적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을 다룰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철학을 '지혜를 사랑하는 일'이라고도 '인생, 세계 등등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즉, 어떤 대상 또는 상황에 대해 (현명하게) 숙고하고 이해하는 일이다. 인간 삶에 자주 철학적 이해를 구해야 할 사건이 일어나진 않는다(그런 일이 적은 삶이 행복한 삶이기도 하고). 삶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누구나 겪을 만한 생활의 일들, 생각없이 흘려버리는 소소함들. 이런 일들이 모여 매일을 이루고 삶을 조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상에 대한 지혜가 더 필요할 게다. 저자가 말하는 '매일 협상해야 하는' '물리적, 사회적, 제도적 구조들'에 대한숙고가 귀하게 느껴진 이유다.


내가 보기에 철학의 목적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서의 우리 경험들을 분석하여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협상해야 하는 저 물리적, 사회적, 제도적 구조들ㅡ일, 가족, 이웃, 동거ㅡ은 그 자체가 특정한 사유방식의 산물들이다.

p.13


저자는 여섯 가지 주제에 대해 여섯 명의 철학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이중 철학 학계에 자리잡은 여성은 단 한 명이다. 인생과 세계에 대해 체계적으로 사고하는 일이 철학임에도 이 '여성'들이 한 생각과 말은 학계에서 학문활동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것이 '여성'의 문제일까, 혹은 '학계'의 문제일까. 저자가 제기한 의문의 지점이다.


약 20년 전 나는 알랭 드 보통의 『철학의 위안』을 대단히 즐기면서 읽었다. 제목이 말해주듯 철학에서 위안을 길어올리는 책이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명백한 문제가 있었다. 죽은 백인 남성들의 사유로만 채워져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들은 훌륭한 사상가들이지만 모두 특정한 유형에 속한다. 책표지를 덮자마자 나는 생각했다. 이런 책을 쓰되, 모든 살아 있는 여성의 문제를 다루면 멋지지 않을까?

저자 인터뷰에서(책 뒷표지 中)


저자가 다룬 '일상에 도전하는 철학'의 주제는 사랑, 놀이, 일, 두려움, 경이, 우정이다. 각각의 주제마다 그 주제를 깊이 다룬 '여성'철학자들을 인터뷰했다. '사랑'에 대해서는 로라 키프니스, '놀이'는 시리 허스트베트, '일'은 낸시 홈스트롬, '두려움'은 줄리아 크리스떼바, 로비 배티, 헬렌 캘디콧, '경이'는 마리나 워너, '우정'은 로지 브라이도티와 함께 했다.


추천사에 등장한 '회고록'이라는 정의는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아주 적절한 것으로 드러났다. 저자는 각 주제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각 장을 서술하고 있다. '사랑'을 다루는 첫 번째 장에서는 자신의 오랜 동거 생활의 끝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그리고 또다른 만남에 대해서도. 저자는 자신의 헤어짐 그리고 만남의 과정에 로라 키프니스의 저작 『사랑과 맞붙기』의 서술들을 대입해 생각을 이어간다.


일, 일, 일… 근무시간이 아닌 때가 있기는 한가?… 일부일처 관계가 노동이 될 때, 욕망이 계약에 따라 조직될 때, 장부가 기록되고 피고용자들의 노동처럼 신의가 착취될 때, 결혼이 이 세상의 아내와 남편과 동거 파트너 들을 현상유지식 기계장치에 옭어매기 위해 고안된 엄격한 생산현장 규율이 통치하는 가내 공장이 될 때 ㅡ 이것이 정녕 우리가 말하는 '좋은 관계'인가?

p.30


사람들이 결혼과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이야기하면서 저자는 씨몬 드 보부아르와 장뽈 싸르트르 커플을 거명한다. 둘의 사상은 각각 실존주의 운동에 기여가 큰 인물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특히 씨몬 드 보부아르의 성취는 '성공적인 결혼'에 비유되는 '평생의 관계'에 무게가 실려있다. 저자는 '영원한 커플 상태'에 대한 기대 때문에 이별이 무능력으로 취급되는 현상을 지적한다. 사랑의 성공이 실패보다 더 예외적이라는 말이다. 사랑에 대한 문화적 기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일이 '사랑'에 대한 철학적 이해의 시작이다.


하지만 그러한 앎은 이해를 위한 도구가 되어주며 우리로 하여금 잠시 멈춰 주의를 기울이고 우리 여성들이 자주 발을 빠뜨리는 저 '정상'적이고 '복잡할 것 없는' 일상들을 재검토할 수 있게 해주는 촉진제로서 기능한다.

p.54


'놀이'를 다룬 장에는 미술비평가이자 소설가 시리 허스트베트와의 대화가 담겨있다. 인간발달 과정에서 '놀이'의 역할에 대해 말하던 허스트베트는 남성적 학문 연구 경향을 지적한다. 허스트베트는 놀이에 필요한 상상력이 여성적인 것으로 코드화돼 있다고 경고한다. '무의식, 수면, 욕망, 충동, 놀이, 재미'등과 같이 '창의적 작업'에 절대적 영역들이 여성적으로 코드화 되어 왔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문화적 의미에서 '여성적'임은 곧 '모욕적'인 것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경향은 심지어 '의식되지도 않'는다.


이상하게 비판받지 않는 커다란 거짓말 몇개가 있죠. 그중 하나가 전적으로 자율적인 개인, 그러니까 고독한 주체, 스스로 결정하며 이리저리 다니는, 대가 남성인 주체의 정치이론이에요. 글쎄, 좋아요 어느 정도의 자율성은 있죠. 하지만 그런 모델들은 언제나 인간의 발달을 잊고 있어요. 그건 절대로 포함하지 않죠. 뇌의 작동방식에 대한 모종의 정적인 모델들, 혹은 뇌가 움직 이고 변화하는, 시간이 지나면서 발달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듯이 뇌를 고립적으로 연구하는 것…그래서는 아무데로도 나아가지 못할 거예요.

pp.85-86


우리가 상상력을 여성적인 것으로 코드화하고, 여성적feminine이라는 형용사 자체가 계속해서 모욕적인 형용사로 쓰이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면, 저는 인간 존재가 곤란에 처해 있다고 생각해요.

p.111


일에 관한 사유에서는 일터에서 여성의 몸을 대하는 시선과 노동투쟁과 페미니즘의 통합에 대해 낸시 홈스트롬과 대화를 나눴다. '공적 장소에서 여성의 몸은 상대적 표준으로 여겨지는 남성의 몸과는 달리 문제적'이며 '생산현장에서의 착취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노동자 계급투쟁은 너무 좁은 개념'이라는 당연한 언급이 새로웠다. 여러가지 사회적 관계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느꼈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한 불편감이 언어로 명료화되어 있는 지점이었다.


두려움을 다룬 장에서는 '성과 폭력성'에 대한 인터뷰가 이어진다. 헬렌 캘디콧의 발언은 역사와 영웅을 보는 시각에 대해 생각해 볼 바를 꼬집고 있다.


'정말로, 대체 왜 전쟁을 찬양하는 걸까요? 왜 유럽에는 광장마다 말을 탄 남자 동상이 있는 걸까요? 역사상 "위대한" 사람들의 정말 많은 수가 살인자들이에요.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요? 전 알 수가 없어요.'

p.193


여성과 남성의 말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저자의 의견도 새롭지 않은, 그러나 짚어야할 대목이다. 우리 문화에서도 이런 일은 너무 당연한 현상이어서 그런 줄도 모르고 지나가는 일상이다. 부당함에도 불구하고 당연하게 체화되어 있다.


우리 문화에서 남성들의 말과 여성들의 말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두고 마리나 워너가 한 말이 떠올랐다. 전자가 자신감을 갖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는 성향은 매우 자주 존경과 함께 받아들여지지만, 후자가 그럴 경우엔 지나치게 떽떽대는 것으로, 혹은 수다스러운 성격으로 취급된다.

p.212


배움의 전제가 되는 경이, 호기심에 대해서도 성별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 호기심은 '남자 쪽에서는 과학적인 미덕이지만 여자 쪽에서는 이브의 죄와 동일시'된다. 이러한 젠더적 함의는 여성들의 '지식과 의견은 처음부터 의미가 없다고 여겨'지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여성과 어린이는 역사적 문화기록에서 구조적으로 부재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수록 인간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기록을 찾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저자는 이 모든 방해에도 불구하고 체념하지 말자고 주문한다.


… 성 바울의 작업이 틀이 되어 여성은 너무도 자주, 그런 (경이와 호기심의) 망망대해에 발끝을 담가보는 것조차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방해받았다.… 어떤 구조가 우리를 제약하고 곤란에 처하게 한다 해도 우리가 그것을 어쩔 도리가 없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이 장은 경이에 대한 우리의 능력이 실제로 우리가 누구인지를 바꿀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답은 분명하다. 그렇다. 바꿀 수 있다.

p.268


낯선 구성의 책이었다.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소설처럼 풀어내면서 일정한 대목마다 연결되는 철학적 주제를 이어댔다. 각 주제를 함께 풀어내는 여성 사상가들의 이야기는 때로는 여성의 입장에서 절절히 와닿고 때로는 배경지식의 부재로 소화하기 벅차기도 했다. 이 책의 의미는 무엇보다 살아있는 우리 시대의 여성 철학자의 음성을 듣는다는 데 있을 것이다. 저자는 저작을 통해서가 아니라 수차례의 인터뷰를 푼 녹취로 여성 철학자의 이야기를 전한다. 살아있는 대화로 전해지는 생각들 그리고 현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저자의 경험들이 어우러져 저자가 의도한 '일상에 도전하는 철학'의 모습을 어렴풋이 그릴 수 있었다.(배경지식과 독해력 부족으로 미진한 이해가 아쉬울 따름이다) 다름아닌 '여성'으로서 일상에 도전하는 철학의 모습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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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3 :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 불타는 사막에 피어난 꽃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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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 조사함.

표준국어대사전


유홍준 교수의 답사팀이 타클라마칸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에 닿았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실크로드 편의 마지막 여정이다. 시안에서 출발한 답사기는 1권과 2권에서 실크로드의 동부 구간인 하서주랑, 돈황 명사산을 다뤘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3에서는 ‘실크로드의 진수’라 할 만한 타클라마칸 사막 구간을 다룬다.


‘실크로드’라는 단어는 신비한 느낌을 자아낸다. 미지의 세계가 숨겨져 있을 것 같은 기분이랄까. 내가 가진 사막의 실크로드의 역사 지식 또한 미지의 영역이다. 실크로드라고 하면 다들 떠올리는 낙타를 타고 가는 대상들의 이미지만 떠오른다. 대상들이 들렀던 사막의 도시 모습은 어떠했을까. 동서무역의 수혜를 입어 풍요로웠지만 문명이 충돌하는 지역이므로 전란을 상흔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듯했다. 유홍준 교수의 답사기는 적절한 역사 해설과 현재 모습에 대한 충실한 묘사로 나의 호기심을 해소해줬다.


저자는 답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책의 여러 지점에서 언급한다. 역사는 유적․유물과 함께 기억해야 하므로 역사 순서로 답사해야하며 그러려면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때문에 이번 오아시스 도시 답사를 위해선 ‘위구르’ 역사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수는 답사는 유람도 여행도 아니며 세상을 새롭게 인식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역사는 유적․유물과 함께 기억할 때 이미지가 선명하게 그려지기 때문에 한 지역의 답사는 역사 순서로 진행하는 것이 요령이다. p.74


어느 답사나 마찬가지이지만 중국 답사에서 가장 필수적인 것은 유적지에 대한 설명보다도 그곳의 역사를 아는 것이다. p.100


사실 위구르 역사에 대한 이해는 투르판뿐 아니라 신강성 답사 전체의 필수 사항이다. p.146


“답사가 그냥 만고강산 유람하는 여행인 줄 아니? 자료를 조사하고 세상을 새롭게 인식한다는 점에서는 ‘답사학’이에요.” p.319


책은 저자의 생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답사의 구간마다 필요한 역사 지식을 풀어낸다. 책의 초입에 답사를 떠나는 지역의 전반적인 역사를 개관한 것은 물론이다. 뉴스에서 듣게되는 신장위구르 지역이 이번 실크로드 답사 지역이다. 저자는 한자어를 그대로 읽어 ‘신강’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 지역은 오래 전부터 ‘초원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무역로 개척이 시작되었고 사막을 통과하는 길과 곤륜산맥 북쪽의 ‘실크로드 남로’가 개척됐다. 길을 따라 오아시스 도시들이 형성됐고 중국의 혼란기인 1세기에서 6세기까지 번영했다. 15세기 대항해 시대 ‘바다의 길’이 열리면서 쇠락할 때까지 ‘오아시스의 길’의 동서를 잇는 교역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답사팀은 서역이라 불리는 이 지역에서 가장 번영했던 6개 지역 중 역사적 의미를 찾기 어려워진 카라샤르를 제외한 5개 지역을 답사했다. 누란, 투르판, 쿠차, 호탄, 카슈가르다. 여기에 이 모든 도시를 품은 타클라마칸사막 답사를 포함했다.


유홍준 교수의 답사에서 놀라웠던 것은 그의 팀 구성이었다. 다른 답사기에서도 이렇게 호화로운 구성으로 팀을 꾸렸던 건지 해외답사이기 때문에 특별히 힘을 준 것인지 모르겠다. 답사팀에는 화가, 건축소장, 스님, 치과의사 겸 극작가, 미술사학과 교수, 토건회사 임원, 지리학자에 고고학자까지 포함돼 있었다. 어떤 문명을 바라보는 총천연색의 시각을 구비한 답사팀이다. 화가와 미술사학과 교수가 해설하는 미학적 의미를 듣고 건축전문가가 본 유적지의 구조 분석을 들을 수 있다. 치과의사는 미이라의 치아상태를 보고 사자의 역사를 말해주며 지리학자는 문명이 앉아 있는 자리를 형태에 대해 설명해준다. 고고학자의 해설이 유용함은 말할 것도 없을 텐데 그 사람이 무려 강인욱 교수다. 현재 중앙아시아와 유라시아 고고학에 대해 이보다 더 잘 알려줄 사람이 있을까. 답사의 드림팀이다. 책에는 이러한 전문가들이 말하는 유적지 해설이 담겨있다. 예를 하나 들어보면 투르판의 교하고성 관아터 규모에 대해 건축사무소 민현식 소장은 이렇게 풀이한다.


"인간적인 분위기를 생각했다기보다 아마도 실용적 내지 기능적인 고려가 이런 공간을 낳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현대 건축에서는 인간 감각과 신체조건의 한계에 바탕을 둔 휴먼 스케일(human scale)에 대해 열심히 연구해서 이런 결론을 얻어냈지만 이 건물을 설계한 분은 아마 체험적으로, 또는 인간의 생래적 감각으로 이처럼 인간적인 공간을 만들어냈으리라 생각됩니다.“ p.88


타클라마칸 사막 한가운데 도시 투르판에서 우리나라 역사의 한 조각을 만날 수 있었다. 아스타나 고분군에 고구려 유민의 후예가 묻혀 있었다. 묘지명으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고요’라는 이름의 장군이라고 한다. 당나라에 멸망한 고구려의 주민들이 이렇게 먼 땅까지 강제 이주를 당한 것이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 이름을 떨치는 무장이 되었다. 1930년대 소련에 의한 고려인 강제 이주가 떠올랐다. 강제 이주의 역사적 배경은 다르지만 둘 모두 힘없는 민족의 설움이다.


그런데 이 고요 장군은 고구려 유민의 후예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아픈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제1권 천수 맥적산 답사 때 황하 서쪽 지역을 얘기하면서 잠깐 언급했듯이 당나라는 고구려를 멸망시키고는 이듬해인 669년 고구려 지배층을 중심으로 28,200호(약 20만 명)을 중국 땅 산시성 위쪽 오르도시 지역과 감숙성 농(隴) 땅으로 집단 이주시켰고, 평양에는 노인과 어린이만 남았다고 한다(『구당서(舊唐書)』). pp.135-136


오아시스 도시의 역사를 국내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정보도 이 책에서 얻은 수확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중앙아시아실에 누르판과 누란에서 출토된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이 유물들은 대체 어떻게 우리나라에 오게 된 걸까. 알고 보니 일제에 의한 것이었다. 크게 마음먹지 않고는 가기 어려운 사막여행을 하지 않고도 희귀한 유물을 마주할 수 있다니 중앙박물관의 문이 다시 열리는 대로 가볼 일이다.


한편, 스타인이 떠나고 4년째 도는 1911년 일본 오타니 탐험대의 다치바나 즈이초(橘瑞超)가 타클라마칸사막을 헤매던 중 누란 지역에 와서 현지 ‘유물 사냥꾼’들에게 구입해서 가져왔을 유물들이 지금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실에 전시되어 있다. p.43


저자는 이번 답사 중 가장 인상적인 도시로 쿠차를 꼽았다. 산업화에 밀려 유적의 존재가 가려진 다른 도시와 비교된다는 이유다. 덕분에 쿠차는 천혜의 자연과 함께 유적지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 도시가 됐다고 한다. 쿠차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서운한 얘기겠지만 과거의 모습을 찾는 방문자의 입장에서는 고대의 모습을 간직한 도시의 현대화가 너무 빠르진 않았으면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이렇게 산업화되지 않고 더디게 도시화되었다는 것은 오히려 역사도시 쿠차의 엄청난 강점이자 매력이다. … 말이 된다면 ‘순박함 속에 들어 있는 화려함’이라고 하겠다. 이 점 때문에 나는 쿠차를 타림분지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로 꼽으며,…p.178


과거의 모습을 잃은 도시라고 해서 답사에서 소홀히 다룰 수는 없다는 저자 덕에 ‘호탄’과 ‘누란’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누란’은 도시가 쇠퇴한 이후 접근로가 사라져 답사가 어려웠다. ‘호탄’의 경우는 대부분의 유적이 옛날의 모습을 잃었거나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있었다. 저자는 ‘듣는’ 답사로 우리에게 ‘누란’과 ‘호탄’의 역사를 소개한다.


그렇다면 호탄 답사는 그냥 지나가도 그만인가. 답사는 그럴 수 있지만 답사기는 그럴 수 없다. 아무리 폐허가 되었다지만 호탄에는 그 이름값이 있다.

‘보는 호탄’이 아니라 ‘듣는 호탄’이다. p.339


책에 실린 유물 사진 중 신기한 형태의 호탄옥이 있다. 호탄 지역의 옥이 유명하다고 한다. 그런데 배추모양으로 다듬은 옥과 형태와 빛깔이 돼지고기 덩어리를 꼭 닮은 것이 있었다. 중국 사람들은 이것들을 박물관에 전시해서 관람객이 줄을 선다고 한다. 옥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기호를 알게 되기도 했고 문화의 다양성을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됐다.


그중에서 호탄옥은 옥 중의 옥으로 좁은 의미로는 호탄 지역에서 생산된 옥을 지칭하지만 최고 양질의 옥을 가리키는 말로 옥의 대표성 또한 갖고 있다. p.364


책은 오아시스 도시의 불교 유적이 어떻게 발견되고 유물이 세계 각지로 흩어지게 됐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읽는 것만으로 한 바탕 사막 바람을 맞고 온 듯 현장감이 있다. 나오는 대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시리즈의 저력을 알 수 있었다. 저자의 다음 답사는 본격적인 중국 답사라는데, 답사팀 말석에라도 끼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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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8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문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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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읽다가 멈춘 책이다. 라스콜니코프가 살인하는 장면,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고 노파의 동생에게 우발적으로 도끼를 휘두르는 장면에서 책을 미뤄뒀었다. 몇 십 년 전 일이다.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기억에 없었다. 그러나 도끼로 노파의 머리를 가격한 장면, 벌벌 떨며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또다른 피해자에 대한 붉은 이미지는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내게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은 선혈이 낭자한 범죄로 구성된 추측이었다. 추측을 사실로 대체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문학동네에서 세계문학 전집으로 『죄와 벌』을 발간하면서 다시 읽을 기회가 왔다.


책은 책임질 수 없는 이상을 쫒아 살인을 저지른 라스콜니코프가 고뇌 끝에 자수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가족, 친구,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과 거주지 인근에 사는 주변 인물들의 사연이 라스콜니코프 이야기의 사이사이에 끼어든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실행한 살인은 주인공에게 공포 이외에 아무 것도 가져다주지 못한다. 자신의 범죄가 밝혀질까 두려워하고 그런 두려움 때문에 쇠약해져가는 자신에게 환멸을 느낀다. 그의 두려움에는 죄책감이 담겨있지 않다. 사람을 죽인 일에 대한 죄스러움이나 후회가 없다. 그저 자신이 스스로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라는 단 하나의 사실에 좌절한다.


다시 읽은 『죄와 벌』에서 가장 눈에 들어온 부분은 이 책이 ‘심리해부서’라는 것이었다. 작가는 일찌감치 살인 사건의 범인을 드러내고 그가 자수에 이르기까지의 심리를 철저히 묘사한다. 라스콜니코프는 살인을 저지르기까지 무척 망설였다. 막연히 세운 범행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를 미뤘었다. 그러나 우연히 엿듣게 된 대화가 범행을 촉발한다. 잔인한 행동에 대한 두려움, 망설이는 자신에 대한 실망이 교차하는 심리가 촘촘히 이어진다.


‘정말 그렇게 끔찍한 생각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단 말인가? 내 마음이 그렇게 더러운 걸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도 더럽고 지저분하고 추악하다, 추악해! 그런데도 나는, 한 달 내내……’ 

1권 p.19


하지만 도대체 왜, 도대체 왜 그렇게 중요하고, 그렇게 결정적이며, 동시에 그렇게 순전히 우연한 만남이 센나야 광장에서(더구나 그 길로 갈 필요도 없었는데), 하필 바로 그 시간에, 인생의 그런 순간에, 다시 말해 운명 전체에 너무나 결정적이고 너무나 최종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그런 기분과 그런 상황에 자신이 놓여 있을 때 그것이, 그 만남이 다가왔을까?라고 그는 항상 묻곤 했다. 꼭 일부러 거기서 그를 기다리기나 한 듯이 말이다!

 1권 p.97


전당포 노파와 그 동생을 살해한 후 라스콜니코프는 혼돈에 빠진다.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살인의 광경에 더해 누군가 자신의 범행을 알아챌까 전전긍긍한다. 자신을 돌봐주려는 친구와 오랜만에 상봉한 어머니, 여동생까지 밀쳐낸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비밀을 가졌기 때문에 세상에 혼자 남은 것 같은 고독감을 느낀다.


이 순간 스스로를 모든 사람, 모든 것으로부터 가위로 도려낸 것처럼 느껴졌다. 

1권 p.179


노파를 살해하고 괴로워하는 라스콜니코프를 보면서 ‘대체 왜 살인을 저지른 걸까’라는 질문이 계속 떠올랐다. 사건의 희생자는 없는 사람들의 푼돈까지 끌어모으는 밉상이긴 했지만 직업이 그런 것일뿐 잘못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또 돈이 궁색해져 살인을 저질렀다면 훔쳐낸 금품을 잘 이용해야하지 않는가 말이다. 라스콜니코프는 범죄현장에서 허둥지둥 챙겨 온 금품이 뭔지도 알려하지 않고 땅에 묻어버린다. 게다가 자신에게 있는 얼마 안되는 돈도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스스럼없이 줘버린다. 그렇다면 그의 범죄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핵심은, 이분 논문에서는 모든 사람이 어떻게든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으로 분류된다는 거지. 평범한 사람은 순종하며 살아야 하고, 법을 뛰어넘을 권리를 갖지 않아, 왜냐하면 알다시피 그들은 평범하니까. 반면 비범한 사람은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온갖 방법으로 법을 뛰어넘을 권리를 갖는데, 그건 그들이 말 그대로 비범하기 때문이야.“

 1권 p.401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이 ‘비범한 사람’이길 원했다. 법을 초월한 권리를 가진 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의 생각에 역사적으로 위대한 사람들은 범죄에서 자유로웠다. 그러므로 ‘비범한’ 자신이 세상의 피를 빠는 ‘이’같은 존재인 전당포 노파를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쩌면 성공적일 수 있었다. 그를 의심할 수 있는 심증은 있었지만 물증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자신이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는 ‘비범’하지 않았다.


“난 당신에게 절을 한 게 아니야. 난 모든 인류의 고통에 절을 한 거야.”

“내가 당신에 대해 그렇게 말한 건 수치와 죄가 아닌, 당신의 크나큰 고통 때문이야. … 당신이 죄인인 이유는 무엇보다 자신을 헛되이 죽이고 배반했기 때문이야. … 자신이 그렇게 증오하는 더러운 삶을 살면서, 동시에 그러다 한들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하고, 누군가를 어떤 것으로부터도 구원할 수 없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끔찍하지 않을 수 있겠어!” 

2권 p.75


소냐의 고통은 라스콜니코프에게 동류의식을 일깨웠다. 그녀가 ‘자신을 헛되이 죽이고 배반’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소냐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몸을 판다. 그녀의 희생에도 가족은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데다 아버지는 딸의 몸값으로 술독에 빠져 있다. 라스콜니코프는 소냐의 값없는 희생이 마치 자신의 것과 같다고 느꼈다. 소냐를 만난 후 그는 ‘강렬한 생명의 느낌’을 경험한다.


그는 온몸에 열이 났지만 그걸 의식하지도 못한 채, 서두르지 않고 조용히 걸어내려갔는데, 어떤 새롭고 무한하며, 갑자기 밀어닥친 충만하고 강렬한 생명의 느낌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 느낌은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느닷없이 뜻밖의 사면을 받았을 때의 느낌에 비견할 만한 것이었다.

 1권 p.290


"신기루야 사라져라, 거짓된 공포도 사라져라, 환영이여 사라져라!…… 삶이 있다! 나는 지금 살아있지 않은가? 내 삶은 아직 늙은 노파와 함께 죽어버리지 않았다! 하늘의 왕국이 노파에게 임했으니 그걸로 되었다, 노파여, 이제 편히 쉬시라! 이제 이성과 빛의 왕국이, 그리고…… 의지와 힘의 왕국이 도래하리니…… 어디 두고 보자! 한번 겨뤄보자고!“ 어떤 어두운 힘을 향해 도전하듯 그가 오만하게 덧붙였다. ”난 이미 1아르신의 공간에서 사는 데 동의하지 않았던가!“

 1권 pp.292-293


사건을 조사하던 예심판사 포르피리는 라스콜니코프의 심리를 꿰뚫어 본다. 예심판사는 라스콜니코프가 잡지에 게재한 논문과 사건 후 그가 보인 행동을 분석한다. 다른 일을 가장해 예심판사를 찾아간 라스콜니코프를 우회적으로 추궁하는 장면은 심리묘사의 절정이다.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듯 질문하는 포르피리와 교묘히 피해가는 라스콜니코프의 대화는 긴장의 연속이다. 포르피리는 라스콜니코프가 무엇 때문에 범행했는지 그리고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할지까지 내다보고 있다.


현실과 본성은 말입니다, … 때로는 대단히 통찰력 있는 생각도 쓸모없게 만들어버리지요! … ‘모든 장애를 넘어서려는’ 젊은이는 자기 재치에 푹 빠져서 이점은 생각조차 못합니다. … 본성이라는 거울은, 그 거울은 정말 투명하게 비춰주지요! 

2권 pp.107-108


도망은 추악하고 고단한 일이지만, 당신에겐 무엇보다 삶과 일정한 지위, 그에 상응하는 공기가 필요합니다. 자, 그곳에 당신에게 맞는 공기가 있을까요? 도망쳐도 스스로 돌아올 겁니다. 당신은 우리 없이는 안 되니까요

2권 p.297


라스콜니코프는 범행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범행이 죄라는 생각에 짓눌린 자신 때문에 자수를 생각한다. 소냐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한 후의 일이다. 소냐와 함께 한 순간은 그에게 ‘이해받는’ 시간이었다. 소냐가 그의 행동 모두를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마음으로 다 이해해”보려 했다. 이해해보려는 마음, 라스콜니코프를 움직인 것은 그 마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저 지금에 와서야, 이 불필요한 수치를 감당하러 가기로 결심한 지금에 와서야 내 소심함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확실히 알겠구나! 난 단지 내 비열함과 무능함 때문에 그렇게 결심한 것뿐이야, 더구나 어쩌면 그게 더 이로울 테니까, 그…… 포르피리가 제안했듯이 말이야!……”

 2권 p.386



라스콜니코프는 속죄하지 않았다. 자수를 통해 쫒기는 자로서의 고통을 덜었을 뿐이다. 그는 여전히 평범한 사람과 법을 뛰어 넘는 사람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고수한 채이다.


‘자, 어째서 내 행동이 저들에게 그렇게 추악하게 여겨지는가? … ‘악행이라서? ’악행‘이란 단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 양심은 평온하다. 물론 형사상의 범죄를 저질렀다. … 자, 그러니 법조항 대신 내 목을 가져가란 말인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당연히 권력을 물려받지 않고 스스로 쟁취한 많은 인류의 은인들조차 첫걸음을 내딛자마자 처형당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자신의 걸음을 견뎌냈고, 그래서 그들은 옳다. 하지만 난 견뎌내지 못했고, 그래서 그 걸음을 자신에게 허용할 자격이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가 인정한 유일한 자신의 죄였다. 첫걸음을 견뎌내지 못하고 자수했다는 것, 그뿐이었다. 

2권 p.425


라스콜니코프는 8년간의 수감을 선고받고 유형을 떠난다. 소냐는 유형지로 그를 따라 나선다. 에필로그에는 소냐의 정성과 라스콜니코프의 감화가 드러나 있다. 내겐 에필로그가 사족처럼 느껴졌다. 급조된 해피엔딩의 느낌이랄까. 작가가 그런 행복한 결말을 위해 긴긴 이야기를 끌어온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럴 요량이었다면 등장인물의 심리를 생각의 세밀한 토막까지 서술하는 작가가 이렇게 짧게 처리할리 없다. 라스콜니코프의 참회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그 역동적인 과정을 놓쳤을 것 같지 않았을 것 같다. 


도스토옙스키는 라스콜니코프와 같은 이상을 추구하는 인간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죄와 벌』을 썼던 거라고 생각한다. 현실과 괴리된 이상으로 가득 찬 채 고립된 골방에서 나온 청년이 어떤 사건을 겪고 어떤 마음의 소용돌이를 지나 운명적인 장소에 가닿는지를 그리고자 했던 것이다.


7월 초 몹시 무더운 저녁 무렵, 한 청년이 S골목의 세입자에게 빌려 살고 있는 골방에서 거리로 나와 망설이듯 천천히 K다리로 향했다. 

1권 p.9


그 순간 라스콜니코프는 이제 소냐가 영원히 그와 함께할 것이며, 운명이 이끄는 대로 세상 끝까지라도 그를 뒤따를 것임을 단번에 느끼고 이해했다. 심장이 온통 뒤집어졌다……하지만 그는 이미 운명적인 장소에 도달했다…… 

2권 p.398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책이다. 길고 여럿으로 불리는 이름 덕에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고전 중의 고전인지라 인물과 사건에 대한 해설도 다양하다. 한 번 읽고 이 모든 것을 소화하기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이지 싶다. 우선은 쉴 새 없이 읽히는 가독성 있는 책이라는 것, 더 치밀할 수 없을 만큼 자세한 인물 심리분석이 펼쳐진 책이라는 점을 안 것에 만족하기로 한다. 고전이라는 이름에 의문의 여지가 없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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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에 숨은 보물 찾기 초등학생이 보는 지식정보그림책 21
박신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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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무엇이 숨었을까~ 

나뭇잎, 돌, 열매, 곤충, 꽃…… 예쁜 보물 숨어있네.


『풀밭에 숨은 보물 찾기』 의 빨간 신발 아이가 찾은 예쁜 보물을 잃어버렸습니다. 아이는 풀숲에서 보물을 찾는데요. 부지런하기도 합니다. 이리저리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는 장소들을 잘도 다닙니다. 그곳엔 민들레가 피어있고 히아신스 향기가 가득합니다. 수목원 숲길을 거닐고 흐드러진 장미 정원에도 놀러갑니다. 맑은 물 개울가를 지나 낙엽 수북한 도토리나무 숲에도 들릅니다. 


아이가 찾는 보물은 아주 특별합니다. 나뭇잎, 돌, 열매, 곤충, 꽃 때로는 작은 짐승과 물고기까지 있습니다. 아이는 '분홍 구슬 팔찌, 유리구슬과 작은 장난감, 조그마한 물건들'을 가지고 다니는데요. 풀숲에 갈 때마다 이 조그만 것들을 잃어버립니다. 아이는 숲속 보물과 잃어버린 물건들을 찾으러 가자고 말합니다. 빨간 신발의 아이가 고사리같은 작은 손을 내밀며 하는 말입니다.


함께 찾으러 나가 볼까요?

p.3


아이의 뒤를 따라 풀숲을 헤맵니다. 봄볕에 어린 풀들이 올라오는 풀숲에서는 달팽이 집을 찾습니다. 히아신스 꽃밭에서는 네발나비와 벌 그리고 청개구리를 찾고요. 수목원 숲길에는 다람쥐가 숨어 있습니다. 장미가 가득 피어난 덩굴에는 꽃무지, 벼메뚜기, 쌍살벌, 풍뎅이를 찾아야 합니다. 토끼풀숲에서는 나방 애벌레와 벌, 개미들을 일별하고뜨거운 여름 개울가에서는 다슬기, 모래무지, 소금쟁이와 송사리를 따라가 봅니다. 낙엽 속에서도 쌓인 눈 속에도 보물이 있습니다.


얼핏 숨은 그림 찾기 책인 줄 알았던 책입니다. 풀밭에 숨어 있는 숨은 그림을 찾는 책 말입니다. 이런 책의 경우 풀밭에서 찾는 숨은 그림은 장소와 아무 상관이 없죠. 망치, 바늘, 고깔모자 등이 숨어 있게 마련입니다. 박신영 저자가 쓰고 그린 『풀밭에 숨은 보물 찾기』는 그런 기대와는 달랐습니다. 책의 그림들은 아이의 눈높이에서 내려다본 풀숲 세상이었습니다. 높지도 않고 그렇다고 확대경을 들이댄 것과도 다른 딱 아이의 눈높이로 보는 자연을 세밀화로 그려냈습니다. 자연의 구성물은 다채롭습니다. 낙옆쌓인 도토리숲에는 도토리 나무만 있지 않습니다. 같은 낙옆도 올해 떨어진 것과 작년, 그 이전에 떨어진 것이 다른 색깔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말라버린 죽은 곤충들도 있습니다. 책은 계절에 따라 풀숲바닥에서 어떤 보물들을 발견할 수 있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이가 찾는 보물들은 정말 꼭꼭 숨어 있습니다. 때로는 꼬리털 한 줌만 보입니다. 자연 풍경 속에 숨어 있는 곤충과 식물들을 일별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자세할 수 있을까 싶은 자연 세밀화를 살펴보고 또 살펴보게 됐습니다. 생김새를 알지 못하는 것이 보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는 낯선 이름들입니다. 꽃무지, 벼메뚜기, 쌍살벌, 환삼덩굴 열매 꼬투리 등. 어떤 모양인지 알지 못하면 찾기 어렵습니다. 저자는 친절하게 책 뒷부분에 내용에 등장하는 식물과 곤충의 세밀화를 붙여놓았습니다. 흑백으로 그려진 자연 속 보물의 전체 모습을 눈에 익힌 뒤 다시 보물 찾기에 나서면 됩니다. 


어쩌면 이렇게 자세하게 그릴 수 있는 걸까요. 얼마나 관찰하면 이렇게 묘사할 수 있는 걸까요. 작가가 담아낸 자연은 사진보다 더 선명합니다. 얼핏 봐서는 눈에 띄지 않는 자연의 보물들을 잘도 숨겼습니다. 책에서 본 자연의 보물들은 우리 생활 속에서도 만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집 문밖을 나가 자연이 있는 곳 어디라도 나선다면 또 발밑 자연의 생김생김을 자세히 관찰한다면 찾을 수 있는 장면들입니다. 




『풀밭에 숨은 보물 찾기』는 미션을 완료하듯 숨은 그림을 찾아내는 책은 아닙니다. '다 찾았다!'를 외치고 덮어버릴 책은 아니라는 거죠. 힌트 없이 다 찾기도 어렵고요. 차근히 한 장 한 장 느긋하게 책장을 넘기며 보는 책입니다. 한 면에 가득 차 있는 한 계절의 풍경을 감상하고 그 안에 있는 자연의 선과 면과 색깔을 맛보아야 합니다. 숨어 있는 보물들은 덤으로 찾는 거고요. '초등학생이 보는 지식정보그림책' 시리즈지만 아이와 함께 어른도 즐길 수 있는 책입니다. 아이가 숨은 보물을 찾는 동안 담백한 자연을 그린 세밀화를 감상할 마음의 준비만 한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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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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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이 참 곱게 생기셨다. 표지 책 날개에 실린 옆모습이 단아하기도 하다. 2018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한 신인 작가의 얼굴이다. ‘장류진’이란 이름을 기억하지는 못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책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읽으려고 목차를 봤을 때 우리가 구면인 걸 알았다. 「새벽의 방문자들」? 혹시? 작년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동명의 테마소설집에서 작가를 만났었다. 단편집 『아내들의 학교』를 읽었던 터라 박민정 작가만 눈에 들어왔었다. 표제작의 작가라면 응당 그만한 작품을 썼을 텐데 그땐 눈여겨두지 못했었다.


장류진 작가는 데뷔 이후 만 2년이 못 되는 시간에 단편집을 묶어냈다. 부지런하다. 발표지면에 표기된 날찌를 보니 근 2~3개월에 한 작품을 발표했다. 짧은 분량이니 쉽겠거니 생각할 수 있겠지만 쓰는 사람으로서의 고민을 토로하는 여러 작가들의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부지런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작가는 직장생활도 병행했다. 직장인의 로망인 완벽한 투잡을 이뤘었다.(지금은 퇴사해 전업작가란다.)


IT회사에서 일하며 회사 생활을 녹인 등단작 「일의 기쁨과 슬픔」은 창비 홈페이지에서 40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전설을 남겼다. 읽고 보니 내가 직장인이라도 꼬박 챙겨봤을 이야기였다. 장류진 작가의 글은 젊었다. 흰 벽에 칸막이가 총총 들어앉은 회사 한 층을 똑 떼어다 글 속에 심어놓은 듯하다. 집단 속에서 이뤄지는 대화, 은근히 오가는 눈치, 뒷담화, 알 수없는 케미의 순간들이 담겨있다.


책을 읽으면서 소설사 김중혁이 팟캐스트에서 말한 단편 소설의 정의가 계속 떠올랐다.


단편은 사건을 겪은 인간의 이야기고 장편은 인간이 겪은 사건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단편은 거대한 사건보다는 한 인간이나 가까운 사람, 관계를 조망한 작품이 많아요. … 우리가 옆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듯이 혹은 누군가를 관찰 하듯이 단편을 보면 사소한 관찰로 굉장히 큰 것을 얻을 수 있어요. … 단편의 경우는 인간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죠.

<이동진의 빨간책방> 117회 대성당 1부 中


장류진의 단편들은 정확히 ‘사건을 겪은 인간의 이야기’다. 단편들에 등장하는 사건이 크던 작던 그 배경이 어디건 눈길이 가는 건 사람이다. 어이없고, 황당한 일에 부딪친 사람, 그들의 심리와 반응들이 모이고 엮인다.


청첩장을 달라며 밥을 얻어먹고는 결혼식에 나타나지도 않은 회사 동기 언니가 청첩장을 두고 갔다. 주인공은 오고 간 밥값을 정확히 계산해 차액만큼의 선물을 건넨다. 웬만하면 기분 상한 상대의 마음을 알아챌 만도 한 상황인데 언니는 그저 고맙다고 눈물까지 보인다. 주인공이 보기에 언니의 행동은 무례하고 의도가 있는 것처럼만 보였다. 그런데 소설이 마지막으로 갈수록 정말 그럴까 싶다. 동기 언니는 그저 아무 생각 없는 아이 같은 사람이었던 건 아닐까 싶어진다. 세상의 원리를 가르쳐주겠다던 마음은 그저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뀐다. 「잘 살겠습니다」의 이야기다.


“빛나 언니한테 가르쳐주려고 그러는 거야. 세상이 어떻게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아직도 모르나본데, 여기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말이야.… ”

p.28


빛나 언니는 잘 살 수 있을까. 부디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

p.33


표제작 「일의 기쁨과 슬픔」에는 월급을 카드 포인트로 받는 사태가 등장한다. 사장에게 찍혔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직원의 월급 전체가 포인트로 지급된다. 말도 안되는 이런 일이 소설 속에만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작가는 재미있지만 등골이 서늘한 지점을 짚어냈다. 우리 사회는 이런 일들을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곳이다. 그래도 회사는 다녀야하고 포인트는 어떻게든 돈으로 만들면 된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 같은 일반 회사원들과 사고구조가 아예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논리나 행동에 의문을 갖지 않는 편이 좋다는 것이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안 해야 돼요. 그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머리가 이상해져요.”

p.50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의 주인공 남자는 썸을 타던 여자를 만나러 후쿠오카에 간다. 본인은 둘 사이에 특별한 감정이 흘렀다고 확신하고 있다. 다시 만난 여자 쪽의 반응도 기대했던 그대로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다. 마지막 순간 직전까지만. 어쩜 이렇게 자신만만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상대도 만만치 않았다. 서로의 수를 훤히 꿴 고수들의 밀당전쟁이다. 남자의 마지막 행동에서 여자에 대해 추측했던 모든 생각이 혼자만의 것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는 말도 안 되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말도 안 돼. 종이컵 안에는 커피가 들어 있었다. 거지가 아니라 그저 커피를 마시고 있는 할머니였을 뿐이라는 걸 그제야 알아차렸다.

p.98


「다소 낮음」에서는 우연히 유튜브에 올린 영상이 인기를 얻으며 부침을 겪는 인디밴드 멤버의 이야기다. 그는 왜 다른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효율성’에 근거한 선택을 전혀 하지 못하는 걸까. 그런 선택이 편한 사람이 있는 걸까. 작가는 그런 선택도 존재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까.


「도움의 손길」에 등장한 도우미 아주머니와 주인공의 심리전도 흥미로웠다. 아이는 그랜드 피아노와 같아서 작은 평수의 집에는 감당할 수 없다는 주인공의 논리부터 새로웠다. 그런 식의 해석이 가능할 수 있구나 싶었다. 화자는 부부끼리 사는 대신 완벽한 인테리어를 하고 그에 걸맞게 가사 도우미를 고용하고 싶어 한다. 너무 깔끔 떠는 집주인이다 싶다가도 점점 태만해지는 도우미의 행동이 밉살스럽지도 하다. 둘의 행동이 어느 한 편으로 기울지 않게 아이러니함으로 가득하다.


「탐페레 공항」은 소설집에 실린 단편 중 가장 아름다웠다. 육년 전 핀란드 탐페레 공항을 경유하면서 만난 노인을 회상하는 이야기다. 희망했던 대로가 아닌 직장, 노력과 다르게 풀리는 인생, 쌓여가는 후회들. 회복 불가능할 것 같은 후회 하나를 기적처럼 되돌리는 이야기다. 용기를 내고 미뤄뒀던 일, 천천히 서랍을 여는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후회하는 몇가지 중 하나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애써 다 털어버렸다고 생각했지만 내 안 어딘가에 끈질기게 들러붙어 있고, 떼어내도 끈적이며 남아 있는, 날 불편하게 만드는 그것. 내가 그것을 다시 꺼내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고 꺼내서 마주하게 되더라도 차마 똑바로 바라보기는 힘들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p.209


장류진 작가의 소설집은 ‘사소한 관찰’에서 ‘굉장히 큰 것’을 느끼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사소한 일들의 나열같지만 소설 한편 한편의 전체를 볼 때 굉장히 촘촘한 의미의 그물이 펼쳐져 있었다. 쉽게 읽히면서도 자꾸 곱씹게 했다. 어느 한 쪽 편을 들 수 없는 사람들이 자꾸 생각난다.


주물공장 노동자였던 김동식 작가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자 한 대학 문예창작과 교수가 이런 우스갯 소리를 했다고 한다. 우리도 주물기계를 들여놔야 하는 거 아닐까. 장류진 작가의 경우 회사 생활 1년이 지나고부터 한겨레 문화센터에 다니며 처음 소설을 쓰게 됐다고 한다. 앞으로의 작가지망생들은 대학보다 문화센터 소설 창작교실에서 더 많은 배움을 기대하게 되진 않을지. (단, 장류진 작가는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긴 했다.)


단편「연수」로 장류진 작가는 2020년 젊은 작가상을 수상했다. 앞으로 작가가 보여줄 세계가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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