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 댄서
조조 모예스 지음, 이정민 옮김 / 살림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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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나 통제 아래 수행하는 동작은……

대상이나 관계에 대한 이해없이 나온 행동이다.

그런 대우를 받는다면 말이든 사람이든 품위 있는 태도보다는

비열한 행동을 하기가 훨씬 쉽다.

—크세노폰, 『기마술』, p.355

 

기마술의 아버지, 크세노폰과 조우하다. 『페르시아 원정기』의 그리스 장군 크세노폰을 로맨스의 여왕 조조 모예스의 소설에서 다시 만났다. 1만 명의 병사와 함께 적진에 떨어진 장군, 동료와 부하와 함께 고향 그리스로 돌아가기 위한 처절한 진군기의 주인공이 설탕 냄새 그득한 로맨스에 등장하다니 아연할 일이었다. 소설 속 문장의 크세노폰이 정말 내가 아는 그리스 장군이 맞는지 한참이나 검색했다. 맞다. 크세노폰은 『페르시아 원정기』 외에도 『소크라테스 회상록』, 『퀴로스의 교육』, 『헬레니카』등의 저서를 남겼다. 그가 남긴 소품 중 『기마술』이 있었는데 조조 모예스는 이 작품을 그녀의 신작 『호스 댄서』의 모티브로 삼았다. 각 장의 시작 부분에 앞으로의 내용을 담은 크세노폰의 문장이 들어있다. 로맨스 소설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700페이지 가까운 분량에 아연했던 기분은 크세노폰의 문장과 함께 사라졌다.

 

 

이야기는 말을 사랑하는 소녀와 이혼 위기의 변호사 부부가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한 집에 살게 되면서 시작된다. 부모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자란 사라, 그나마 할머니는 몇 년전에 돌아가시고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승마기수였던 할아버지 덕에 사라는 최고의 승마 교육을 받고 말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아이다. 할아버지는 사라에게 프랑스 최고 승마교육 기관에 입학할 기회를 주고 싶어 하지만 뇌졸중으로 쓰러져 거동이 어려워진다. 보호자가 없는 사라는 시설로 갈 처지에 놓인다.

 

영국 런던의 유능한 변호사 너태샤는 전남편 맥과 이혼 과정에 있다.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맥을 질투하면서도 마음 터놓고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너태샤는 회사 일에 몰두하면서 직장 상사와 친밀하게 지내게 된다. 이런 아내를 의심한 맥이 집을 나가고 둘은 함께 살던 집이 팔리면 헤어지기로 결정하지만 마음 한켠에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아이에겐 보호와 도움이 필요하고, 부부에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시간이 필요하다. 사라는 세상에 홀로 떨어진 채 자신의 꿈을 향해 나갈 수 있을까. 너태샤와 맥은 정말 이대로 헤어질 수 밖에 없는 걸까.

 

작가가 로맨스의 여왕이라고 불리고 내는 책 마다 그 어마머마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베스트셀러가 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숨길 수 밖에 없는 사정을 가진 아이의 심리와 행동을 묘사하는 한 부분에서 아이의 절박함이 잘 드러났다. 남편을 대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 속내와 태연한 척 가장하는 너태샤의 행동을 묘사하는 대목도 절묘했다. 아이와 어른의 적나라한 속마음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능력도 작가적 재능일 것이다.

 

너태샤는 사라와 부대끼는 시간 동안 자신에 대해 생각한다. 변호사로 남들보다 좋은 일을 하고 더 올바르게 산다고 생각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라의 문제도 또 자신의 문제도 그 일을 피하지 말고 직시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이 어른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난 확신을 가지고 일했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좋은 일을 하고 더 나은 한쪽에 있다고 자부하며 살았지.……” p.176

"그런 뜻이 아니라 내 말은, 그런 문제를 극복하는 게 어른이 할 일이라는 거지.“ p.322

 

사라는 자신의 말과 훈련하면서 배움에 대한 성찰을 얻은 아이다. 어떤 일에서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조금씩 애를 쓰는 과정, 그 일에 대해 모든 것을 알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특히 혼자 하는 일이 아닌 경우 상대와 함께 마음을 모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할아버지에게 배웠다. 그리고 그 과정에 사랑이 있음을 알게 됐다. 할아버지는 겉으로 보이기 위한 사랑이라는 감정보다는 ‘이해와 존중’이 더 중요하고 사소함 속에 사랑이 스며있음을 가르쳤던 것이다. 아이가 배운 사랑은 희소한 것 그래서 중한 것이었다.

"아저씨는 왜 계속 사진을 찍어요?“

(…)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지.”

(…)

“저도 늘 더 나은 동작을 하기 위해 애쓰는 거예요. 말과 나의 완벽한 소통이나 교감을 이루기 위한 것이고요. 고삐를 잡는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이나 압력의 정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하니까요. 말의 기분이나 제 몸의 상태, 땅바닥의 조건에 따라서도 다르고요. 기술적인 문제가 전부가 아니거든요. 말과 나, 두 마음과 심장이…… 균형을 찾는 과정이기도 해요.” p.288

“……중요한 것은 동물의 감정을 어떻게 최대한 이끌어내어 활용하느냐는 점이야. 이는 사람이 말과 함께 힘을 합쳐 탁월함을 추구하는 과정이란다.……”

……

“……최선의 방법은 말과 사람이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거지.……”

……

“그가 추구하는 것, 제안하는 것에는 분명히 사랑이 있어. 그는 말로만 그러는 게 아니기 때문에 모든 사소한 행동에도 사랑이 포함돼 있다고 봐야지.” pp.456-457

 

로맨스 소설의 모양새를 갖춘 소설 『호스 댄서』를 읽으면서 정작 교육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자신이 열정을 가진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원하는 일을 스스로 하게 할 때 최고가 된다는 문장들이 특별했다. 문장 자체는 어디서나 들어본 얘기지만 소설 속에서 사라가 실현해내는 감동적인 과정들이 각 문장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자기 일에 대한 사랑으로 이뤄낸 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이지.…… 어떤 사람을 자기 세상에서 밀어내버리고 그 사람이 행복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어.” p.555

"말을 온당하게 이끌 수만 있다면 말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동작을 수행할 수 있어요. 닫혀 있는 문을 열어서 무한한 능력을 드러내도록 하는 거예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원해서 하게 해야 하죠. 바로 그때 말은 최고가 되는 거예요." p.289

 

우리는 아이들을 어떤 존재로 대하고 있는가. 온당하게 대하면 스스로 원해서 자시의 능력을 무한히 드러낼 존재들을 틀에 박힌 편견 속에 가두고만 있는게 아닐까 싶다. 사라의 할아버지가 했듯이 우리도 어린 아이들을 바라보며 손을 꼭 잡아줘야하는 걸 아닐까.

“가끔은……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구나. 부도 어리고…… 너도 어린데…….”

그러면서 사라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것은 할아버지가 잘못을 인정할 때면 취하는 행동이자 마음의 표현이었다. pp.99-100

 

사라와 말 부셰가 가는 길을 따르다보니 어느새 687페이지를 넘긴다. 이야기에서 특별한 의미를 생각하지 않아도 순식간에 읽히는 소설이다. 아이와 말만의 여정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너태샤와 맥이 자신들의 엉킨 매듭을 푸는 과정도 또한 매력적이다. 요즘처럼 억지로 집에 있어야하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지는 때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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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0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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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에 관한 가장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저서

2,400년 동안 읽히고 연구되어 온 ‘설득의 기술’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의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이 또 하나 나왔다. 그리스어로 씌인 작품을 번역한 철학, 비극 작품들을 읽으면서 원전 번역의 필요성을 느껴왔다. 한 사람만 건너가도 의미와 뉘앙스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이 말이고 언어다. 하물며 서로 다른 언어라는 매개를 몇 단계씩 거친 작품 속에는 원래의 의미에서 멀어진 내용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읽으려 하는 책의 원래 작품의 시기가 오래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시간에 흐름에 따라 원어의 변화에 더해 중역까지 거치게 되면 원작자의 의도와는 다른 작품을 읽게 될 수도 있다. 원전을 바로 우리말로 번역할 수 있어야 오류의 수도 적어질 것이라 믿는다.

 

그리스어와 라틴어 번역으로는 천병희 교수의 번역이 잘 알려져 있다.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을 많이 번역하기도 했거니와 읽기 쉬운 문체를 사용해 일반 독자 선호도가 높다. 충실한 각주로 생소한 문화권의 책을 읽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점 또한 미덕이다. 기존에 아리스토 텔레스의 수사학을 번역한 책이 없진 않았다. 철학 전공 연구자들이 번역한 원전 번역본이 전집으로 나와 있다. 충실한 해제와 각주가 담겼지만 본격적인 연구를 작정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 독자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안그래도 읽기 어려운 철학서다. 다양한 번역이 있다면 비교 독서로 책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것이란 아쉬움이 있었다. 현대지성의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은 이러한 번역의 다양성 차원에서 반가운 책이다.

 

번역자는 전에 읽은 바 있는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의 박문재 전문번역가다. 읽기 쉬운 문장에 더하여 적절한 각주와 작품 해설이 이번 책에서도 기대 이상이었다.

 

수사학의 내용은 학교 교과과정에서 얻어들은 바도 있고 하여 아주 낯설지 않다. 하지만 대략의 줄거리를 아는 것과 실제 문장을 읽는 것은 천지차이다. 설득의 방법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을 따라가야 하는 독서에서 초반부터 나오는 '변증법‘, ‘생략삼단논법’, ‘예증’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 같은 개념의 의미가 모호하다면 읽기를 이어가기 쉽지 않을 수 있다. 만약 그런 경우라면 책 뒤에 붙은 역자의 해제를 먼저 숙독하도록 권한다. 짧은 분량이지만 책의 내용 해설, 요약 뿐 아니라 당시 그리스에서 수사학이 이용되던 사회적 배경과 용어에 대한 설명을 살펴볼 수 있다. 또 아리스토텔레스의 생애와 저작, 사상에 대해 정리를 읽는다면 책의 맥락을 이해하는데 한층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본문의 1권에서는 수사학의 개략적인 정의와 연설의 종류를 다룬다. ‘조언의 위한 연설’, ‘법적 변론을 위한 연설’, ‘선전을 위한 연설’에서 어떤 전제들을 사용할 수 있는지 설명한다. 2권에서는 설득 수단으로 ‘파토스’, ‘에토스’, ‘로고스’를 다룬다. ‘파토스’는 청중의 감정을, ‘에토스’는 청중과 연설가의 성격을, ‘로고스’는 논리적 추론을 말한다. 3권은 문체와 구성과 전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책에는 그리스 철학자가 생각한 설득의 기술이 상세히 담겨 있다. 지금의 시대에 이 책을 읽는 이유는 아마도 기술을 익히고자 한다기 보다는 철학자의 생각을 알고 싶어서일 것 같다. 그리스 시대 말기에 정의과 미덕과 같은 이전 시대의 가치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대중의 감정에 영합하고 자신의 탐욕에 충실한 권력층이 득세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학당 리케이온에서 이성적인 정신을 가진 인간에 대해, 행복에 대해, 정의의 실현에 대해 가르쳤다. 존경받는 철학자였던 그가 말년에 쫓기듯 아테네를 떠나게 된 데는 반메케도니아 세력도 있었지만 올바름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한 몫했을 것이다. 부패와 탐욕이 넘치는 때에 정의를 외치는 목소리는 눈엣 가시였을 테니까.

 

정의를 현실세계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관점에서 보자면 수사학은 그 정점에 있는 저술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수사학은 그가 제시한 윤리학과 정치학을, 그가 제시한 변증학을 기반으로 대중 연설과 법정에서 현실 정치로 구현해내는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p.318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은 ‘수사학과 변증학은 짝을 이룬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수사학의 본질과 정의를 설명하는 첫 부분에서 대중을 미혹하는 소피스트의 연설을 비판하고 수사학의 유용함을 주장하는 대목이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것처럼 ‘수사학의 유용함’이 제대로 발휘되고 있는 걸까. 수사학을 제대로 사용한다면 진리와 정의가 그 반대편보다 보편적인 상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모두가 자신이 ‘진리’임을 내세우고 ‘정의’를 위한다고 말한다. 그 가운데 순수한 ‘진리와 정의’가 우리와 조금 더 가깝게 있기를 바란다. ‘진리와 정의’가 지닌 본성적 힘을 역설하는 철학자의 말이 진실임을 믿고 싶은 이유다.

그럼에도 수사학은 유용하다. 진리와 정의는 그 반대되는 것보다 본성적으로 더 힘이 있기 때문에 수사학이 유용한 것이다. 따라서 판단이나 판결이 적절하게 내려지지 않아 진리와 정의가 패배했다면 그것은 변론한 사람의 잘못이기 때문에 그들이 비난을 받아야 한다.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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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대 갱년기 문학의 즐거움 55
제성은 지음, 이승연 그림 / 개암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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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춘기보다 무서운 게 갱년기라는 말이 있다. 사춘기와 갱년기가 싸우면 갱년기가 이긴다고도 한다. 우스개 소리로 하는 말들이지만 사람들 입과 귀를 오래 흘러다니는 말들엔 (함량이 제각각 다른) 진실이 숨어있다. 어린이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는 극적인 변화를 겪는 사춘기에 대해선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시기나 증상은 물론 대처방법이랄 것들까지. 반면 중년에 맞게 되는 갱년기는 어떤가. 갱년기의 신체, 심리적 변화는 사춘기때처럼 극적이지 않아서인지 그리 심각하게 대하지 않는 듯하다. 갱년기는 사춘기보다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시기일까. 성인으로서 준비를 위해 겪는 사춘기와 삶의 중간 시기를 넘어가는 부모의 갱년기는 다르다. 갱년기가 젊은 시절 이른바 한창 때의 마무리를 뜻하는 거라면 심리적인 고뇌는 더 깊어질 듯하다. 사춘기를 이기는 갱년기는 이런 뜻에서 나온 말 아닐까.

 

이쯤 되면 사춘기와 갱년기가 함께 사는 상황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공존의 지혜를 발휘해 서로를 이해할 것인지 혹은 그 반대일지. 『사춘기 대 갱년기』는 그런 궁금증을 정확히 반영한 책이다. 열두 살, 5학년이 된 루나에게 바야흐로 ‘그분’이 오셨다. 설상가상 루나의 엄마에게도 남다른 변화가 나타났으니, 시도 때도 없이 열이 오르고 몸은 한없이 무거우며 기분은 우울하기만 한 갱년기가 시작된 것이다. 갱년기에 대해 알기는 커녕 자신의 사춘기도 감당하기 어려운 루나는 급기야 엄마가 동생을 임신했다는 착각 속에 빠진다. 절친한 친구의 엄마가 임신을 한 탓이다. 복잡한 딸의 마음을 몰라주는 엄마가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고 혼자 지내는 동안 루나는 엄마의 빈자리를 절감한다.

 

 

『사춘기 대 갱년기』는 ‘내 마음 나도 모르는’ 사춘기 소녀와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은 갱년기 엄마가 일상을 지내는 이야기다. 그 둘이 생활 속에서 주고받는 대화가 정말 사실적이다. 사춘기의 내가 했을 법한 말들과 그 시절의 엄마가 했던 말을 작가가 듣기라도 한 듯해 뜨끔했다.

“엄마는 근무 태만이야. 나한테는 공부가 내 일이니까 열심히 하라고 하면서, 엄마 일은 살림인데 왜 열심히 안 해?”

말이 끝나자마자 ‘등짝 스매싱’이 날아왔다.

“어디서 밥투정이야? 먹기 싫으면 억지 마!”

엄마가 내 숟가락을 잡았다.

“아, 싫어! 먹을 거야!”

나도 숟가락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먹지 막!”

“싫어! 먹을 거야!” p.35

 

 

초경을 맞이하는 아이들의 마음과 행동, 짝사랑 남자친구에게 어떻게 고백할지 고민하는 모습 등 또래 아이의 생활을 옆에서 지켜본 듯 한 책이다. 휴대폰 채팅으로 소통하면서 발생하는 에피소드 부분에서 글 줄을 채팅창 형태로 넣어 이야기의 실감을 더 한 부분도 좋았다.

 

늦둥이 셋째 동생이 태어나 슬퍼하는 친구를 위로하던 루나는 엄마와 화해의 여행을 떠난다. 모녀는 현재 자신이 맞고 있는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서로를 이해한다. 루나의 사춘기와 엄마의 갱년기는 호르몬의 변화 때문이다. 둘은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으로 호르몬의 밸런스를 맞춰보기로 한다.

“사춘기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찾아가는 시기잖아. 갱년기는 자기 자신에게 엄마 노릇을 시작하는 시기래.” p.136

 

 

어쩌면 치열한 신경전으로 점철될 수도 있었던 사춘기와 갱년기의 대립은 모녀의 다정한 포옹으로 끝을 맺는다. 엄마는 아이에게서 배우고 아이는 엄마를 이해할 실마리를 찾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이는 엄마가 말해준 갱년기 증상을 듣고 엄마의 고충을 이해하게 됐다. 엄마는 아이의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보고 용기를 얻었다. 서로 이해하려 마음을 연 루나 모녀의 현명함에 박수쳐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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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는 세계
미우라 시온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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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없는 세계'를 제목으로 하는 소설은 정작 세계를 사랑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였다. 2019년 서점대상 본상을 수상한 소설 『사랑없는 세계』를 쓴 미우라 시온은 '문학성과 대중성을 함께 인정받는' 작가다. 대중소설 작가에게 가장 영예로운 상이라는 나오키 상을 2006년에 수상하고 '일본인이 사랑하는 소설가' TOP50에 선정되기도 했다. '유쾌하고 따스한 소설'이 인기의 비결이라는 평은 이번 소설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랑없는 세계』는 식물을 연구하는 박사과정 모토무라와 그녀를 해바라기하는 식당 종업원 후지마루의 이야기다. 두 사람이 중심이 되어 풀어가는 중심 서사 주위로 모토무라의 연구실 동료들과 식당 엔푸쿠테이의 주변 인물들이 수묵화처럼 스며들어 있다. 일본 소설에서는 그 사회 특유의 분위기가 풍긴다. 정치적인 내용을 다루거나 스릴러같은 장르소설이 아닌 보통에 가까운 사람이 삶을 다룬 경우 드러나는 분위기가 있다. 사람을 대하는데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 어딘가 허당기가 농후한 인물들, 자기 분야에 정통한 장인의 출연, 클라이막스에서 조차 격함을 배제한 담백함 같은 것들이다. 소설이 사회를 비추는 면이 있다면 적어도 소시민적 일본인의 일상은 이런 모습일까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정치적 입장은 배제한 의견이다.)

 

후지마루는 무림의 고수에 가까운 음식 솜씨를 지닌 쓰부라야가 운영하는 식당 엔푸쿠테이에 입주종업원으로 일하게 된다. 삼고초려(?) 한 덕분에 얻은 일자리이가도 하고 주인의 능력을 알아보고 선택한 터라 무척 열심히다. 식당 앞 대학의 한 연구실에 배달을 다니면서 박사과정의 모토무라에게 반한다. 남들이라면 이상하게 생각할 만한 프린트가 인쇄된 티셔츠를 아무렇지 않게 입고 하찮아 보이는 풀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하염없이 들여다보는 대학원생이다. 우연한 기회에 그는 그녀에게 마음을 고백한다. 돌아온 답은 정중한 거절. 모토무라는 '사랑'이라는 개념이 없어도 왕성하게 번식하고 생장하는 식물 세계 연구에 모든 것을 바치기로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식물을 바라보는 현미경 속 별처럼 빛나는 세계와 결혼한 것이다. 선뜻 공감하기 어려운 답을 받은 후지마루는 그럼에도 그녀를 이해하려 애를 쓴다. 계속 대화하며 그녀가 속한 세계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나 '배가 고프니까' '맛있고 예쁘니까'라는 기분은 인간의 깊은 곳에 자리한 중요한 욕구입니다. 기초연구도 같은 욕구로부터 출발하는 겁니다. '알고 싶다'는 마음은 공복감과 비슷해요. 아름다룬 것을 추구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기 때문에 연구하는 겁니다."

그런 기분을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는 건 어렵지 않을까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걸 인간의 근원적 욕구라고 모토무라가 말하는 걸 들으니 희망이 생기는 것 같았다. 연구를 통해서 누군가의 마음과 연결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pp.161-162

 

모토무라가 생각은 식물에 경도되어 있다. 느낀대로 판단하는 식물의 입장에서 보는 인간 세상은 오히려 자유롭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식물과 결혼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언어도 없고, 기온이나 계절이라는 개념조차 없는데도, 식물은 정확히 봄을 알고 있다. 온도계나 일기장을 사용하지 않고도, '이건 초겨울의 따뜻한 날씨가 아니라 진짜 봄이다. 슬슬 여느 해와 같이 활발하게 생명 활동을 할 시기가 왔다'라고 판단하고 기억하다.

반대로 인간은 뇌와 언어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는 건지도 모른다. 고뇌도 기쁨도 모두 뇌가 내놓는 것이고, 그것에 휘둘리는 것은 물론 인간이기에 맛볼 수 있는 묘미겠지만, 관점을 바꿔놓고 보면 인간은 뇌의 포로라고 할 수도 있다. 실은 화분의 식물보다도 더 좁은 범위에서밖에 세계를 인식할 수 없는, 자유롭지 못한 존재. p.352

 

모토무라가 살고 있는 '사랑없는 세상'은 사실 무엇보다도 큰 사랑을 공유하는 세계다. 무언가를 알고 싶은 마음, 열정과 인생을 바쳐서 연구하는 태도 자체가 사랑이라고 본다면 말이다. 또 빛으로 만든 몸을 다른 생물들에게 제공하고 서로의 먹이사슬이 되는 일, 그것은 사랑으로 연결된 세계인 것이다.

 

"그 열정을, 알고 싶은 마음을, '사랑'이라고 하지 않나요? 식물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는 모토무라 씨도, 이 교실에 있는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대상인 식물도, 모두 같아요.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는 세계를 살고 있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가끔 생각해요. 식물은 광합성을 하며 살고, 동물은 그 식물을 먹고 살고, 그 동물을 먹고 사는 동물도 있고……. 결국, 지구상의 생물은 모두 빛을 먹고 살고 있구나 하고요." pp.457-458

 

누군가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은 식물의 세계를 알고 싶은 마음을 인정한다. 모토무라를 알고 싶은 마음이 커질 수록 식물의 신비를 알고 싶어하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후지마루는 자신이 '언젠가 다시 연애를 시작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더라도 별처럼 빛나는 현미경 속 모토무라의 세계가 의미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어떤 존재에게 기울이는 마음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익숙하지만 독특한 캐릭터가 촘촘히 등장하는 것도 이 소설이 재미다. 살인청부업자 분위기가 풍기는 지도교수, 전공분야인 덩이줄기만 건드리지 않으면 한없이 느긋한 옆 연구실 교수, 선인장 오타쿠 동료 연구자, 식당 종업원의 애정관계를 두고 진지한 토론을 일삼는 단골손님 등. 사람뿐 아니다. 모토무라의 연구대상인 '애기 장대'는 소설 전반에 자신의 유전자 구조를 밝히는 과정을 공개하고 후지마루의 집 건너편에 핀 무궁화조차 사랑에 대한 성찰의 조력자로 역할을 다한다.

 

혼자 책을 읽다가 '풋'하고 웃을 터뜨리게 되는 대목들이 있는 반면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무슨 소릴 하는 건이 혼란에 빠지는 부분이 있다. 식물학 박사과정 논문을 위한 가설, 연구 설계, 실험, 검증, 결론제시에 이어 연구의 한계와 앞으로의 연구 방향 설정 과정이 소설 내내 자세히 서술되기 때문이다. 식물의 유전자 연구를 위해 어떤 기구를 이용해 실험하고 결과를 기록하는지에 대한 부분도 상세하기 그지 없다. 일본식물학회에서 특별상을 괜히 준게 아니었다. 그러나 차분히 읽어가면 이해못할 정도는 아닌 것이 또한 작가의 능력이라고 하겠다. 연구자의 태도에 대한 단락 또한 인상적이다. 자기 분야에만 몰두하기보다는 더 넓은 시야에서 연구의 근본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은 특정 학문 분야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넓은 시야가 요구될 겁니다. 연구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어떤 연구를 왜 하고 있는가, 그것에 의해 무엇을 알게 되었고 아직 모르는 것은 무엇인가 등에 대해, 연구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알기 쉽게 전할 수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연구비가 나오지 않는 것도 않는 것이지만, 일반인들과 소통하지 않다 보면 '바로 결과가 나와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 이외에는 모두 소용없고 무의미하다'라는 나쁜 성과주의, 공지주의가 세상을 뒤덮어버릴 테니까요." p.160

 

생물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특히 식물학과 유전학에 관심이 있다면 남다른 독서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 『사랑없는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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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 밀레니얼 세대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정지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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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을 하지 않는다. 페이스북도 마찬가지. 소통에 관심이 없어서는 아니다. 단지 그 소통 방식에 적응하기 어렵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더해서 그 인터페이스를 사용해 주고받을 수 있는 내용에 의문이 들었다.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마셜 맥루헌의 오래된 명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매체의 형식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의 내용이 결정된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이미지가 주 컨텐츠를 이루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오가는 의미는 어떤 것인가. 아니 그 인터페이스로 주고 받기에 최적화된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대면 커뮤니케이션의 메시지의 일부일까 혹은 전통적인 메시지를 초과할 것인가.

 

다른 의문도 있었다. 타인을 의식한 글에서 자기 전시는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까. 어디까지를 공유로 보고 어디까지를 과다 노출로 볼 것인가. 넘쳐나는 자발적인 개인의 노출을 보면서 생각했다.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개인들은 왜 자신의 사적 생활을 노출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을까. 이런 내용으로 지인과 대화한 적이 있다. 공개적으로 자신의 삶을 전시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나의 입장에 지인은 어디까지를 전시라고 보느냐는 질문을 건넸다. 대답할 수 없었다. 여행기나 소소한 가정 생활에 대한 글을 종종 방송에 투고하는 지인에게는 ‘사생활의 전시’라는 단어가 불편했을 것이다. 당시엔 그저 얼버무리고 넘어갔지만 사실 최근까지 지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갖고 있지 않았다.

 

정지우 저자의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는 SNS 세상에 대한 질문에 정답지처럼 보인다. 저자 정지우는 ‘분노’라는 키워드로 우리 사회를 분석한 『분노사회』와 삶을 견디는 고전읽기 『고전에 기대는 시간』등의 인문적 성찰을 담아낸 다수의 책을 펴냈다. 또한 팟캐스트 <정지우의 인문학적 순간>과 <뼈가 있는 책>을 진행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제된 목소리로 전한 바 있다. 이번 책에서는 저자가 청년세대라 정의한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1부 환각세대: 우리가 원하는 것은’에서 저자는 ‘꿈’에 대한 강박과 ‘현실’에 대한 불안 사이에서 괴리를 겪는 자신의 세대를 ‘환각세대’로 규정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최악의 양극화에 시달리는 시대의 청년들이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지극히 평준화된 이미지를 누리고’ 있다는 말이다. 이들은 ‘환각적인’ 이미지에 둘러싸여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고 거기서 멀어질 때 박탈감을 느낀다.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소외감을 선사’하는 그 이미지에 의존하는 반면 그것을 따라잡지 못함에 좌절한다.

 

청년 세대를 절망하게 하는 이미지는 ‘인스타그램’으로 대표된다. 어두운 현실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인스타그램에는 그늘이 없다. 저자는 ‘이미지와 실제 삶의 간극이 일상화되면서 어쩌면 절망과 우울, 분노가 더 극적이게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밝고 환하기만한 일상의 단 ‘한 순간’을 마치 삶 전체인 것처럼 인식하면서 청년세대의 삶은 팍팍해져만 간다. ‘삶과 이미지의 간극’을 알아보고 그 격차를 넘어서고자 고민이 필요하다.

 

저자는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긍정한다. 기성세대의 고정관념에 가린 시각에 비친 사회보다는 청년세대가 사회를 진단하는 통찰이 예리하다고 말한다. 윗세대에겐 이미 살아버린 시간이지만 청년들에게는 예정된 시간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앞으로 살아낼 사회에 대한 청년세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졌다. 저자의 말대로 이들에게 얼마나 믿음을 갖고 귀를 기울이느냐가 중요한 이유는 청년의 문제가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 시대 전체, 이 사회 전체에 대한 통찰이나 시야는 이미 기성에 진입한 존재들보다는 기성에 진입하기 이전의 존재들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

사회 전체, 시대 전체, 이 세상 자체에 대해 ‘발언 권력’을 가진 기성세대는 사실 이미 이해관계에 얽혀들어 있으며, 그들의 하루하루를 지배하는 세상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고, 결국 이미 속하게 된 자신의 삶 안쪽을 향하는 시야 밖에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아직 삶 앞에 선 청년, 자신들이 시작하게 될 삶의 조건을 그 누구보다 예민하게 응시할 수밖에 없는 존재, 그래서 그 누구보다 절박하게 시대 전체와 미래 전체를 마주하고 있는 청년들의 시야는 항해에 앞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항해사의 눈빛처럼 예리하고 투명하다. p.79

 

그런데 사실 양쪽에게 사회 문제란 아예 차원이 다른 문제인 것이다. 기성세대에게 그것은 자기가 믿는 사회의 정의이자 자기 정체성, 신념과 존재의 문제라면, 청년세대에게는 자기의 생존이자 사다리의 문제이고, 게임의 룰이 공정한지의 문제인 것이다. p.99

 

결국 우리 모두가 한 배를 타고 있다는 인식을 끊임없이 재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다. … 그러나 한편으로는 분리되어 보이는 문제들 또한 넓은 차원에서는 이어져 있고 뿌리 깊게 연관되어 있으며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인식에 계속해서 도달해야 한다. p.114

 

‘2부. 젠더에 대하여: 여성에 관해 덜 말해질 때란 결코 오지 않았다’는 페미니즘 이슈를 다룬다. 남성 저자, 특히 청년 세대의 남성이 말하는 젠더에 대한 시각이 새로웠다. 흔히 젊은 남성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에 시달리며 젠더에 대해 또는 페미니즘에 대해 거의 반감에 가까운 감정을 가진다고 여겨진다. 인류 역사 내내 지속됐던 가부장 문화에 기초한 정체성의 문제를 인식하려 하지 않고 전엔 가지고 있었다고 믿었으나 이제는 빼앗긴 것같은 권리에 집착하는 것이다.

 

최근 청년 남성의 분노는 ‘공정’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젊은 남성들이 화가 나는 이유는 ‘남성과 여성의 경쟁’이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문제의 근본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근본적인 뿌리는 가부장적인 문화구조다. 그 속에서 형성되고 강요받는 정체성이다. p.150

 

젠더 문제에 대한 저자의 제안은 ‘이해’다. ‘혐오와 매도’를 내세우기 전에 ‘끊임없이’ 이해하라고 주문한다. 젠더에 대한 논의는 기성세대에게는 체념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페미니즘이 일깨운 인류 절반의 인식은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남성성’에 대한 뿌리깊은 믿음도 쉽게 해체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청년세대는 젠더문제의 해결을 향한 과도기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더더욱 저자의 제안이 유효하다. 적대적 인식보다는 ‘이해’를 전제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혐오와 매도 그리고 몰이해와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끊임없이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지만, 이해하기 싫어서 이해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어떤 잘못의 대가를 치른다면, 그것은 이해하지 않은 일의 대가가 될 것이다. 이해하지 않은 일, 손쉽게 증오한 일, 속 편하게 이해를 포기하고 혐오를 택한 일에 대한 결과는 그리 우습거나 만만하지 않을 것이다. p.151

 

사회 전반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한 ‘3부. 개인과 공동체: 우리는 서로 뒤섞이는 바다’에 이르러 인스타그램의 사생활 노출에 대한 질문의 답을 어느 정도 그려볼 수 있었다. 책 전반에 걸친 청년세대에 대한 분석은 그들과 SNS의 관계를 새롭게 볼 수 있게 했다. 청년세대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그 문제점, 기성세대와의 차이 등을 알 수 있었다. 청년세대와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위해선 ‘이해할 수 없음’을 전제해서는 안 된다. ‘이해를 거부’하지 않되 어떤 점을 ‘용납’하기 어려운지를 이야기해야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때 ‘상호 이해’를 위한 전제가 마련될 것이다.

 

무언가에 대한 이해 자체를 거부하는 형식의 담론은 결코 이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이런 점에서는 이해가 가능하되 이런 점에서 용납해서는 안 된다’라는 식의 언술 행위가 자리 잡을 필요가 있다. p.284

 

저자 스스로는 자신이 청년세대를 지나쳤다고 말하지만 독자에게 그는 누구보다 청년세대를 대표한다. 우리 사회에서 청년세대와 기성세대가 이 책에서 다룬 주제들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싶다. 청년세대에게 귀기울여야 한다고 말들은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책을 읽듯이 곰곰이 듣고 있을 수 있을까. ‘이해’하기 위해선 귀를 기울여야 한다. 청년세대에게 이 책이 자기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핍진하게 다뤘다고 여겨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기성세대로서는 그들에게 귀 기울여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러한 ‘귀기울임’이 언젠가 ‘이해’에 가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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