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모네이드 할머니
현이랑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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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한 노란색 표지에 깜찍한 일러스트, 발랄한 제목, 할머니 탐정과 꼬마 조수가 주인공이라 하여 어린이 책인 줄 알았다. 아니다. 현이랑 작가의 『레모네이드 할머니』는 추리소설이다.


“그럼 이제 할머니는 탐정 ‘레모네이드’예요. 난 조수 ‘꼬마’고요.”

p.61


탐정과 조수 콤비.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와 존 왓슨?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는 도란마을이다. 도란마을은 돈이 많은 노인들이 입주하는 고급 치매 요양 병원이다. 레모네이드 할머니는 두 달 전에 도란마을에 입주했다. 소문에 할머니는 도란마을 땅 소유자였고 굉장한 부동산 재벌이라고 한다. 여섯 살인 꼬마는 도란마을에서 일하는 서이수 의사의 아들이다. 서이수 의사와 함께 도란마을로 출근하는 꼬마는 레모네이드 할머니를 따라다니기로 한다. 2주 전 쓰레기 처리장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레모네이드 할머니는 요양병원 생활이 지루해지던 차에 사건에 흥미를 느끼고 조사를 한다. 꼬마는 할머니를 따라다니면서 함께 범인을 찾게 된다. 아들을 보호하려는 서이수 의사도 사건에 휘말린다.


단서를 풀어가며 범인을 찾아내는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을 기대했다. 사건도 있고 단서도 있는데, 추리에 퍼즐을 맞출 때 맞는 조각을 찾아내는 것 같은 기쁨은 적다. ‘자기가 보고 싶은 걸’ 쓴다는 현이랑 작가는 추리보다 이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보여주는 것에 더 무게를 둔 것 같다.


『레모네이드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새콤달콤하고 시원한 레모네이드와는 거리가 멀다. 이 사회에 존재하지만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현실을 모아서 한 통에 담은 인스턴트 통조림 같다. 부정부패와 비리 같은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보여주는 것은 의미 있지만 비판과 대안을 구하는 고민을 다루지 않은 것은 아쉽다.


부정부패와 비리를 보여주기 위해 비속어와 비하표현을 많이 써야하는가도 의문이다. 알맞은 곳에 적절하게 쓰인 욕은 통쾌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담고 있는 내용과 별개로 비속어와 비하표현이 난무하는 글을 읽는 것은 거북하다.


빛나고 아름다운 청춘. 잘 모르는 사이인 나이 든 사람들이 20대인 나를 만나면 늘 하는 말이다. 그 말을 들으면 늘 나는 어리둥절해지곤 한다. 누구나 사는 건 다 엿 같은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사는 게 엿 같다고 느끼는 내가 이상한 놈인 것 같다.

p.130


“네 아빠가 너랑 네 엄마한테 무슨 짓을 했던 그건 네 잘못이 아니다. 넌 그것만 알고 있으면 돼.”

p.223


“아무리 돈으로 보상을 해 준다 해도 그 사람이 받은 상처는 어쩔 수 없을 테니까…….”

p.225

『레모네이드 할머니』에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문장들이 곳곳에 있다. 그럼에도 이 말들이 식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소설의 제목과 추리와 문장이 잘 어우러지지 않기 때문일까 싶다. 덜 녹은 가루가 바닥에 가라앉고 신맛과 단맛과 물이 조화롭지 못하게 한 컵에 떠다니는 인스턴트 레모네이드 같지만 문장과 구성의 시원스러운 맛은 즐길만한 추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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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읽었다 - 각 분야 전문가가 말하는 영역별 책읽기
이권우 외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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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은, 그리고 진정한 독서는 '정보' 제공에 그치지 않는다.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자극하여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렇게 단기적으로는 우리의 생각을, 장기적으로는 인생을 바꾼다.

p.8


책을 어느 정도 읽다보니 내가 잘 읽을 수 있는 영역과 잘 알고 싶지만 도무지 알수 없는 영역이 어느 정도 분간된다. 앞의 구분에 포함되는 것은 소설, 역사이고 뒤쪽 구분에 포함되는 대표적인 영역은 시와 철학이다. 잘 알고픈 마음과 달리 시는 아무리 읽어도 맥락이 포착되기 힘들고 철학의 경우는 각 분파의 주장이 읽고 나면 모두 뒤섞여버리는 증상을 보인다. 시는 과감히 읽기를 포기했지만 철학은 어떻게든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어떤 책이든 잘 읽어야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 '잘'이란 걸 어떻게 하면 성취할 수 있단 말인가. 인생을 바꾸는 거창한 독서의 효과는 미래의 일로 미루고 일단 '잘' 읽는 것부터 시도해보고 싶다.


경희대학교 출판문화원에서 나온 『나는 이렇게 읽었다』 는 각 분야 전문가가 알려주는 책읽기의 방법을 담은 책이다. 책의 분야는 교양, 문학, 인문고전,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로 나누었다. 전문가들은 "각자의 체험에서 시작하여 특정 분야의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그 영역의 책을 읽는 방법, 추천 도서 순으로" 각자의 비법을 전수하고 있다. 이권우 도서평론가가 교양 영역을 맡고 나머지 다른 영역은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교수진이 담당했다. (이권우 도서평론가도 경희대 국문과 졸업생이다.) 이권우 도서평론가의 글은 『책읽기의 달인 호모부커스』와 『각주와 이크의 책읽기』에서 읽은 적이 있다. 나름의 위트와 쉬운 글쓰기였다는 기억이 있다. 『오래된 연장통』으로 알게된 자연과학 영역을 저술한 전중환 교수의 글도 기대됐다.


분야별 읽는 법은 각 저자의 독서 경험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한다. 이권우 저자는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영혼의 충만함을 느꼈고, 고봉준 교수는 직업으로서의 읽기와 여가로서의 읽기를 비교한다. 인상적인 서두는 자연과학 담당인 전중환 교수의 것이었다. 전중환 교수는 대학 새내기 시절 전공 분야 책임에도 『이기적 유전자』를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적었다. 나중에 배경 지식이 많이 쌓인 후 원서로 읽었을 때 이 책이 "수정처럼 투명하게 잘 쓰인 책임을 알게" 됐다고 한다. 전중환 교수는 읽기가 쌓이는 효과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번역의 문제가 떠올랐다. 처음 읽을 때 영어 원서를 읽었어도 이해하기 어려웠을까. 나중에 읽을 때 한글 번역본으로 읽었다면 원서로 읽을 때만큼 명징하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교양 도서는 "지식의 기초체력을 키우는" 책이며 "좀 더 넓은 분야를 아우르고자" 읽는 책이다. 저자는 자신의 수준에 맞는 책을 골라 읽되 속도전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책제목을 읽으면서 그 책의 전체 주제를 짐작"해본 후 서문을 읽고 번역서인 경우 번역자의 후기를 읽으라고 권한다. 목차 또한 꼼꼼히 살필 부분이다. 책 내용 요약의 결정판이기 때문이다. 모티머 애들러의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에 근거해 분석하며 본문을 읽는 방법도 소개한다.


고봉준 교수는 문학을 읽어야 이유를 "타인의 삶에 다가"가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문학은 우리를 타인의 삶으로 데려간다. (…) 문학이 우리에게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가져다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타인에게 가장 근접한 지점까지 데려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p.61


작품에서 느낀 "공감"과 "감동"은 "타인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과 달리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을 겹쳐 놓"는 일이다. 타인의 삶을 경험하면서 '나'를 성찰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문학을 읽는 이유다. 


소설을 제대로 읽기 위한 방법은 세 가지다. '첫 문장'에 집중할 것, 작품이 겨냥하는 바를 발견할 것, 작가가 말하지 않는 것과 제목에 주목할 것. 


작가는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한다. 이 때문에 문학작품에서는 작가가 말한 것보다 말하지 않은 것, 말할 수 있음에도 끝끝내 침묵한 것을 아는 일이 중요하다.

p.73


인문고전 읽기를 소개한 전호근 교수는 의외의 발견이었다. 서양고전 쪽으로 편독이 심한 터라 알지 못했던 저자다. 인문고전 읽기의 방법은 둘째치고 저자의 문맥 구성과 문장이 정말 좋았다. 저자는 "책을 읽을 때 상상력이 커지고 자유도가 높"아진다며 다른 매체와 비교되는 책읽기의 장점을 강조한다. "모름지기 책이란 천천히 읽어야 매일같이 읽을 수 있고 제맛을 느낄 수 있는 법"이라는 말은 깊이 새겨야 할 경구다. 


저자는 "고전의 진정한 힘"이 "역사 속에서 독자들을 만남으로써 시대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책"이기 때문이라고 쓴다. 때문에 역사적으로 참고할 만한 해설이 많고 저자의 의도를 명확히 하기위해 해설을 함께 읽으라고 권한다. 그리고 매우 적확한 사례를 제시한다.


엉뚱한 소크라테스를 만나면 악을 정당화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고 《논어》를 잘못 읽으면 나라를 팔아먹는 배신을 저지를 수도 있다. 실제로 어떤 이(윤봉길)은 《논어》를 읽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는데, 어떤 이(이완용)는 《논어》를 읽고 나라를 팔았다. 인문고전을 읽을 때 길잡이가 필요한 까닭이다.

p.104


'사전을 옆에 두고 읽어라', '반복해서 읽고 필사하고 머릿속에 기억하라', '눈으로만 읽지 말고 입으로 소리 내어 읽어라', '입을 넘어 몸으로 읽어라', '책을 덮고 탄식하거나 눈물 흘릴 줄 알아야', '나를 성찰하며 읽어라', '멋진 문장을 찾아라', '자료형 고전은 빠르게 읽어라', '비판하면서 읽어라', '읽었으면 읽은대로 실천하라', '좋은 스승을 찾아 배워라' 등이 저자가 제시한 인문고전 읽기의 방법이다. 그중 무엇보다 '좋은 벗을 찾아 함께 읽어라'라는 대목이 머리에 박혔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책읽기의 방법이라니 누구나 한 번 도전해봐야 하겠다. 


좋은 벗을 얻어 함께 수행할 수 있다면 인생의 모든 것을 이룬 것이다.

-석가모니

p.117, 


이병주 교수는 독서를 "나와 우리의 삶을 읽어내는 과정이자, 삶에서 비롯된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지난한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사회과학도서 읽기의 방법을 실제 사회 현상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사회과학도서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저자의 입장과 질문 파악하기', '개념 이해하기, 개념화 과정 비판적으로 이해하기', '사회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과정으로 이해하기, 사회과학책의 내용을 구체적인 장면으로 그려보기'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주 진지한 책읽기에 관한 제언이다. 사회과학 책을 읽을 때 저자의 입장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대목이 인상에 남았다. 사회과학은 객관성을 찾는 자연과학과 달리 인간 사이의 현상을 또 다른 인간이 연구하기 때문이다. 기억하고 적용해야할 지점이다.


전중환 교수의 '자연과학도서 읽는 법'은 가장 경쾌한 장이다. 서술태도가 무겁지 않아 앞 부분을 읽으면서 독서에 부여했던 큰 무게를 좀 덜어낼 수 있었다. 특히 과학도서를 읽는 독자를 위로하는 문장이 반가웠다.(눈물 날뻔 했다.)


평소 교양서적을 상당히 읽는 여러분이 생전 처음으로 과학교양서를 집어 들었는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이는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다. 그건 저자나 번역자의 잘못일 확률이 높다.

p.203


심지어 "전문용어를 잔뜩 섞어가며 자기주장을 길게 늘어놓는 과학책은 집어 던지시라"며 "여러분은 하나도 잘못한 것이 없다"고 말해준다.(그래, 던지면 되는 거였다!) 


저자는 수전 와이즈 바우어의 『독서의 즐거움』에서 독서의 세 단계를 차용해 자연과학도서 읽기에 적용했다. 이해단계에서는 객관적으로 해석하는 책과 저자의 이론을 내세우는 책을 구별해 읽을 것을 권하면서 개요읽기 번역서의 경우 번역자와 한국어판 제목을 확인하고 이해가 안되더라도 끝까지 읽으라고 말한다. 평가단계에서는 핵심 주제를 한단락으로 정리해보고 저자의 요약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은유의 경우,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공유하는 특성에 주의해야 하며 저자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적절한지 살펴야 한다. 의견 표현 단계에서는 같은 주제를 다룬 다른 책과 비교해 읽기를 제시한다.


'예술도서 읽는 법'을 담당한 윤민희 교수의 독서법에서 주목할 부분은 '예술도서의 맥락 읽기'다. 저자는 다섯 권의 도서를 중심으로 예술도서의 맥을 짚는 방법을 소개한다. 서양미술사와 한국미술사, 1인 예술가를 다룬 모노그래프, 유명 예술도서를 모은 책, 미술 작품 분석 방법론과 글쓰기에 대한 책의 구성과 내용을 서술한다. 


저자들은 "독서에 있어 이 책에 제시된 내용이 유일한 방식이 아니라 첫 번째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고 그 이후에는 "독자 스스로 자신만의 책 읽는 방법"을 찾기를 권한다.  각 저자가 각 장의 말미에 써놓은 주옥같은 필독서들만 다 읽어도 책읽기에 대한 목마름은 어느 정도 가실 듯하다. 그 목록은 아주, 아주 길고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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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요테의 놀라운 여행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13
댄 거마인하트 지음, 이나경 옮김 / 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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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슬퍼하는 게 잊어버리는 것보다 훨씬 나은 거 같아요.

p.270


댄 거마인하트 장편소설 『코요테의 놀라운 여행』이 다산북스 ‘놀 청소년 문학’으로 2021년 4월 29일 출간되었다. 소설은 출간된 해에 아마존 올해의 어린이책으로 뽑혔으며, 2019년 미국학부모협회 권장도서 픽션 부문 금메달을 수상했다.


책은 버스를 타고 미국을 여행하는 368페이지의 로드 트립 소설이다. 북아메리카 평원에 서식하는 여우보다 크고 늑대보다 작은 개과에 속하는 포유류 코요테가 여행을 한다? 아니다. 댄 거마인하트 소설 속 코요테는 ‘대충 다섯 달쯤 더 있으면 열세 번째 생일이 되는’ 해진 청바지와 얼룩덜룩한 흰 티셔츠를 입고 청바지 벨트까지 머리를 땋은 주인공의 이름이다. 이름하여 코요테 선라이즈.


코요테 선라이즈는 학교에 가지 않는다. 학원에 가지 않는다. 숙제도 물론 없다. 로데오가 구매 후에 개조한 56인승 스쿨버스가 집이다. 로데오와 코요테 선라이즈는 스쿨버스를 타고 항상 움직인다. 목적지는 없다.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음식이 생각나면 고속도로를 달린다. 매일이 자유롭고 재미있고 신나는 모험이라고?


나는 작별이 뭔지 안다. 그리고 작별이 싫다. 가장 좋은 작별은 안녕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p.57


코요테 선라이즈는 친구가 없다. 놀면서 책이야기도 하고 비밀도 나누고 더 친해지면 좋을 아이를 만나도 곧 작별해야 한다. 아빠인 로데오를 아빠라고 부르면 안 된다. 이름을 코요테 선라이즈로 바꿔야했다. 로데오는 엄마와 언니와 동생 생각을 하는 것을 금지했다. 오 년 전 떠난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금지였다. 코요테 선라이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코요테의 놀라운 여행』은 어느 날 밤 댄 거마인하트 작가의 머리를 스친 우울한 공상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딸과 단둘이 집에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나머지 가족들의 귀갓길에 그들에게 끔찍한 일이 생긴다면 나와 이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 무너진 인생을 과연 돌릴 수 있을까?” 이 책은 그런 질문들에 대한 작가의 답이라고 한다.


어느 토요일 할머니에게 포플린 스프링스에 있는 샘프슨 파크가 없어질 거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코요테 선라이즈는 로데오가 금지한 일을 하기로 결심한다. 엄마와 언니와 동생을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로데오가 무엇을 원하는지만 염려하며 살아왔던 코요테 선라이즈는 몰래 간직했던 추억을 꺼내고, 외롭고 슬프고 상심한 자신의 마음을 돌보기 시작한다.


내가 원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나는 스스로에게 끄덕였다.

p.122


“자기 행복은 자기가 찾아야 하는 거야,”

p.244


내가 할 일은 아빠를 돌보는 게 아니었다. 더는 아니었다.

내가 할 일은 나를 돌보는 것이었다.

p.281


코요테 선라이즈는 원하는 것을 찾아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에서 자신이 받은 상처와 연약하고 외롭고 슬픈 감정을 인정하면서 변화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외면하고 달아나는 대신 추억을 마주하며 지금 여기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는다.


뭔가를 향해 달려가는 건 뭔가로부터 달려가는 것보다 낫다. 훨씬 낫다.

p.357


우리 모두 조금씩 망가졌을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조금씩 연약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에게 서로가 그렇게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p.358


미국 땅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의 집필을 위해 댄 거마인하트 작가는 캠핑카를 몰고 열흘간 약 6,500킬로미터를 멈추지 않고 달리는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코요테의 고향 마을과 공원을 제외하고 샌드위치 가게 등 언급되는 모든 곳들이 실제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코요테의 놀라운 여행』이 버스를 타고 미국을 횡단하는 이야기인데 마지막장을 덮고 나서 도시나 지역이 특별히 기억에 남지 않았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주유를 하는 동안 휴게소에서 몇 번 쉬고 워싱턴 주에 있는 포플린 스프링스라는 도시에 잠시 내렸다가 다시 버스를 탄 기분이다. 코로나19로 여행을 가지 못 하는 대신 책으로 여행을 즐기려는 독자에게 『코요테의 놀라운 여행』이 만족스러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감동이 넘치는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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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한 조각
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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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터스텔라>(2014), <오블리비언>(2013), <타이드랜드>(2005)에 공통점이 있었다. 세 영화는 하나의 그림을 주요 모티브로 삼았다. 황량한 들판 한 가운데 갸날픈 여성이 주저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앤드루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다. <인터스텔라>와 <타이드랜드>는 거친 들판에 솟아 오른 낡은 저택의 이미지를 차용했고, <오블리비언>에서는 그림이 주인공들의 의지를 다지는 상징물로 등장한다.

 

화가의 이름이나 그림을 이전에 알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앤드루 와이어스는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 중의 한 명이다. 추상화가 대세이던 시기에 끈질기게 극사실주의를 표방한 구상화를 그려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그의 대표작 <크리스티나의 세계>는 실존 인물인 크리스티나 올슨을 모델로 했다. 그녀는 샤르코 마리 투스 병으로 추정되는 신경계 질환을 앓아 움직임이 힘들어지고 중년에 이르러서는 기어서 이동해야 했다.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는 이웃이었던 그녀의 모습을 그렸다. 그림 덕에 유명세를 탔지만 크리스티나는 끝까지 외딴 시골에서 사는 자신만의 생활 방식을 지켰다.

 

작가는 거친 풀밭을 가녀린 팔로 디딘 크리스티나의 모습이 "무뚝뚝한 개인주의와 내면의 힘, 장애를 불사하는 도전 정신, 불굴의 의지"와 같은 "미국인의 특징"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림의 모델 크리스티나의 삶을 소설로 살려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작가는 소설의 주인공과 실제 인물 크리스티나를 구별짓고자 한다. 비록 역사적 사실을 철저히 조사해 소설을 썼다해도 소설로 표현된 인물의 내면이 실제 인물과는 다를 수 있다는 걸 분명히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책을 읽은 독자 입장선 두 인물이 하나로 여겨진다. 꼼꼼한 사료조사로 구성한 소설적 현실이 실존 인물 크리스티나 올슨의 일대기와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외딴 시골집에서 외롭게 살아가던 여성, 불편한 몸에도 무엇엔가 기대려하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기를 고집한 그녀가 작가의 문장으로 생생히 그려졌다.



소설은 1939년 크리스티나와 앤드루 와이어스를 만나는 시기와 그녀의 과거를 교차로 그려낸다. 크리스티나의 조상들이 어떻게 메인주 쿠싱에 정착하게 됐는지부터 시작한 이야기는 병이 시작된 서너살 무렵, 학교를 그만두고 집안을 돌봐야 했던 청소년 시절, 사랑하고 배신당한 후 동생 앨과 외딴 집에 칩거하게 되기까지를 들려준다.

 

몸이 불편했지만 자존심과 자립심이 강했던 크리스티나는 자신의 몸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태도로 마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그녀는 장애가 있다고 해서 동정받기를 원치않았고 도움 또한 거절했다. 고생스럽지만 자신의 일을 스스로 처리하려하고 학교도 어떻게든 계속 다니고 싶어 한다. 그녀는 문학에 대해 남다른 감수성을 지닌 아이였다. 학교에 계속 남아 선생님이 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기뻐한 것도 잠시 그녀의 부모는 크리스티나의 학업 중단을 결정한다. 가사를 돌볼 사람이 없다는 이유다. 자기 몸 건사하기도 어려운 사람이 대가족의 집안일을 온전히 떠맡아야 했다. 그녀에게는 언제나 상처와 부상이 따라 다녔다. 마을 사람 일부는 친절을 가장한 동정과 감사함을 전제로한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그리곤 왜 자신들의 도움을 고마워하지 않는지 의아해한다. 크리스티나는 그들을 인정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들에게 장애인을 돕는 것은 자신이 좋은 사람임을 확인하기 위한 행동일 뿐이므로. 크리스티나는 친절을 가장한 위선을 정확히 꿰뚫어 보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둘 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지만 그 자존심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 내 자존심의 형태는 반항이고, 아버지는 부끄러움이다. 내게 휠체어는 포기했다는 것을, 집안의 보잘 것없는 존재로 살겠다고 체념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눈에 그것은 창살이다. 아버지에게는 왕좌이고 덧없는 권위를 유지하는 방편이다. (…) 나는 부끄러운 줄 모른다. 부상과 굴욕을 감수해가며 내가 선택한 방식대로 움직이려고 한다. p.275

 

앤드루 와이어스(이하 앤디)는 크리스티나를 대하는 태도가 스스럼없었다. 그 자신이 다리를 약간 저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앤디를 크리스티나에게 소개한 그의 부인 뱃시도 어린 시절 척추층만증 교정을 받았었다. 몸의 불편함과 그에 따르는 사람들의 시선, 태도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세 사람은 금새 친밀함을 형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앤디는 대개 뭘 들고 오거나 돕겠다고 하지 않는다. 우리의 사는 방식을 보고 놀라지 않는다. 우리를 개조가 필요한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나가고 싶어하거나 이미 문밖으로 반쯤 나간 거나 다름 없는 사람의 분위기를 풍기며 의자 끝에 걸터앉거나 문 앞에서 서성이지 않는다. 그냥 자리잡고 앉아서 관찰한다. p.240

 

앤디가 크리스티나의 집에 작업실을 차린 후 그녀는 "그의 눈을 통해" "집의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을 모두 새롭게 인지"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을 판단했던 마을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앤디는 황량한 그 집을 "백 년 동안 그려도 절대 싫증날 일이 없"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크리스티나 곁에 끝까지 남은 사람은 동생 앨이다. 사랑을 만나 떠날 수 있었던 기회도 누나를 위해 포기한다. 엘이 포기한 삶은 그에게 상처가 됐다. 누나 옆을 지키겠다는 마음은 그의 나머지 인생 일부를 갉아먹었다. 크리스티나는 대가족의 가사를 돌보기 위해 미래를 희생했었다. 앨은 누나의 희생에 값하기 위해 사랑을 잃었다. 가족이 무엇일까.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시스템인가. 다행인건 둘이 서로를 여전히 위하는 마음이 있다는 거다. 앨은 누나를 위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고 크리스티나는 동생에게 미안해한다. 크리스티나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할머니의 말을 떠올린다.

 

의자에 기대앉는다. 옷이나 못 쓰게 된 손뿐만이 아니다. 모든 게 그렇다. 앞날이 두렵다. 허약해질 수밖에 없는 앞날이. 남한테 점점 의존하게 될 앞날이. 남은 생을 이 깨진 껍데기 같은 집에서 살아야 할 앞날이. p.303

 

여기서 우리는, 삶의 동반자가 아닌 남매로서, 나고 자란 집에서 조상들의 혼령에 둘러 싸인채, 꿈꾸었던 상상 속의 삶을 곱씹으며 함께 지내는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 우리가 먼지로 사라지면, 여기서 우리 둘이 공유했던 삶, 우리의 소망과 불안, 우리의 애착과 고독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pp.352-353

 

앤디가 완성한 그림에는 "다른 사람 어느 누구도 보지 못한" 것이 표현돼 있다. "세상의 작은 일부분"이자 크리스티나에게 "세상의 전부"인 "집과 들판" 그리고 젊은 아기씨의 마음을 가진 그녀의 "바람과 망설임". 크리스티나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삶을 "사진처럼 선명하고 동화처럼 신비로운" 것으로 바라보게 된다.

 

깨져버린 꿈과 약속을 딛고 지금까지 살아온 여자가 여기 있다. 그녀는 여전히 살고 있다. 영원히 저 언덕 비탈에서, 캔버스 가장자리까지 펼쳐진 세상의 중심에서 살 것이다. p.363

 

화가와 모델 사이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읽는 일은 흥미롭다. 그림을 잘 읽는 또 다른 방법이다. 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의 『세상의 한 조각』 은 그림 <크리스티나의 세계>를 해설하는 동시에 크리스티나 올슨이라는 장애인의 삶을 보여준다. 불편한 몸을 가진 그녀의 생각들을 기술한 대목들이 기억에 남는다. 희망과 절망, 낙관과 불안, 좌절과 체념 그 사이에서 건져 올리는 작은 행복들. 현실의 크리스티나도 그렇게 살았을 것 같다. 포기하지 않는 용기있는 삶을 살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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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6-04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월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누구 2021-06-05 21:17   좋아요 0 | URL
축하해주셔서 고맙습니다~(꾸벅)
 
스토아 수업 - 철학은 어떻게 삶의 기술이 되는가
라이언 홀리데이.스티븐 핸슬먼 지음, 조율리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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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철학의 갈래들에 대해 알고 싶어 철학사를 읽었었지만 기억에 남는 거라곤 스토아, 에피쿠로스, 스콜라, 실존주의 등등의 이름뿐이다. 각 사상이 무엇을 주장하는지 알고 있는가 생각해보면 입이 절로 무거워진다. 읽어도 기억에 남지 않는 것은 피상적인 문장으로만 사상을 알아보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상을 주장한 사람들의 삶에 대해 알고 어떤 경험에서 철학의 줄기가 되는 생각을 퍼올렸는지 안다면 철학의 맥을 더 잘 알 수 있을텐데.

프랭크 틸리의 『서양철학사』에 따르면 '스토아주의'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르쳤던 철학에 더 가깝"고 "그들의 삶의 이론을 형성하는 본질적 요소들"이 "대중적 형태로 제시"된 것이다. 앞선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강조했던 "4주덕" 즉 "지혜, 정의, 용기, 절제"를 일상의 삶에 실천하는 방법에 대한 사상이라할 수 있다. 문장으로 풀어놓으니 스토아주의에 대한 정의 자체부터 어렵게 느껴진다. 스토아 학파를 구성하는 논리학과 인식론, 형이상학, 윤리학 등의 학문으로서의 철학적 논의를 떠나 쉽게 다가가 볼 수는 없을까. 삶의 한 부분으로서의 스토아 철학을 본다면 어떤 말로 정의할 수 있을까.


라이언 홀리데이와 스티븐 핸슬먼의 책 『스토아 수업』은 '삶의 기술'로서 '철학'을 말한다. 이때의 철학은 '스토아 철학'이다. "덧없는 사상이 아닌, 행동하는 철학이자 쓸모있는 삶의 기술"을 실천한 철학자의 일생은 곧 '스토아 철학'의 본질적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스토아 철학은 덧없는 사상이 아닌, 행동하는 철학이자 쓸모 있는 삶의 기술이다. 용기, 절제, 정의 그리고 지혜라는, 간결하지만 좋은 삶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한 네가지 덕목을 강조했다. 그래서 여느 철학처럼 철학자들이 남긴 말과 글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실제 삶의 여정에서도 여러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책에는 스토아 철학을 창시한 키티온의 제논부터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까지, 기원전 330년 즈음부터 기원후 180년까지의 기간 동안 살았던 26인의 철학자를 다룬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싹을 틔운 스토아 철학은 로마 제국 황제의 마음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책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스토아 철학자의 계보를 나열한다. 예를 들면 철학의 창시자 키티온의 제논 다음에는 그의 제자이면서 스토아 학파의 2대 수장인 클레안테스를 소개하는 식이다. 그러면서 스토아 철학의 전반적 사상을 소개하는 1부, 자기 자신의 성찰에 대한 2부, 최선의 삶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3부, 궁극적 삶의 기술을 서술하는 4부로 나눠 각각의 철학자의 삶을 소개한다.


철학자들의 이름과 생몰연대와 사상만 나열된 경우 같은 사상 테두리 속의 각 인물들을 변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철학자들의 일생, 직업 누구와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를 서술함으로써 역사 속의 철학자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로도스 출신의 파나이티오스는 로마 장군 스키피오의 "통역관이자 고문이자 절친한 친구"였다. 로마 출신으로 집정관을 역임한 스토아 철학자 루틸리우스는 로마 장군 마리우스와 갈등했다. 키케로는 카이사르와 갈등했고 아우구스투스는 아테노도루스와 아리우스라는 두 명의 스토아 철학자를 스승으로 삼았다. 로마사 속에서 스토아 철학자들이 차지했던 역할에 대해 읽으면서 스토아 철학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 높아졌다. 로마사의 향방에 스토아 철학이 미친 영향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해보는 흥미로운 공부를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둔다.


연민에서 비롯한 '공감'을 바탕으로 한 "세계 시민주의"를 장려한 크리시포스와 "인생을 한 편의 연극"에 비유한 노예 철학자 에픽테토스, 그리고 플라톤의 '철인정치'를 몸소 실현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다룬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국내 번역돼 있는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는 것도 숙제다.


크리시포스의 공헌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우리 모두가 하나의 공동체에서 산다는 제논의 사상을 바탕으로 '심파테이아symphatheia'라는 개념을 장려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연결되어 있고 모두가 우주의 시민이기에, 기쁨과 슬픔, 고통 같은 감정도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다는 세계 시민주의다. p.76


에픽테토스는 삶에서 읽어나는 일들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인생은 한 편의 연극과 같다. 그래서 그는 온 힘을 다해 연기했다. "(…) 잘 연기하는 게 각자 해야 할 일이다. 배역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다." p.317


(…) 마르쿠스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란 걸 알았다. 그래서 타인의 칭송과 숭배를 받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기념기를 거의 만들지 않았고, 비판에 개의치 않았으며, 절대로 권력을 남용하지 않았다. p.361


모든 철학자가 스토아 철학을 삶에서 완벽하게 실천한 것은 아니다. 철학으로 얻은 명성을 권력과 축재에 사용했던 세네카, 철학적 삶보다는 명성에 집착했던 키케로, 복수에 눈이 멀었던 디오티무스 등은 반면교사의 대표적 사례다. 철학을 공부했다고 해서 배운대로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이들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사상을 일생을 통해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배우고 느끼고 실천하지만 누군가는 배움과 삶이 따로 간다. 그렇지만 우리 중 대다수는 그 둘의 중간 어디쯤에 자리할 것이다. 어떤 배움은 실천하고 또 어떤 앎은 애써 무시하고 있는 것이 우리가 사는 삶의 모습이다. 스토아 철학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하는 건 우리의 자리를 '배움과 삶의 합일' 쪽으로 기울이는 일일 것이다. 알긴 알지만 행하지 못하는 삶에서 아는대로 행하는 삶으로 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그 어떤 인물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서 용기와 정의, 절제와 지혜라는 고결한 덕목을 실천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성공하거나 역경에 맞섬으로써, 의도했든 아니든 자신이 믿는 원칙이 실제 선택보다 더 숭고하다는 걸 가르쳐주었다. 완전무결한 인생보다 스토아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한 데에 더 큰 의의가 있다. p.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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