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베를린 유년시절> 중 "Krumme Strasse" 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벤야민이 이 거리에 있는 '시립 수영장'에서 어린 시절 수영을 배웠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이 거리에 대해 벤야민은 다음과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Krumme Strasse
때때로 동화엔 길 양쪽으로 유혹과 위험들로 가득찬 상점들이 즐비한 파사지와 화랑들이 등장한다. 소년시절의 내게도 그런 골목이 있었다. 그건 크루메 거리라고 불렸다. 그 거리의 가장 크게 휘어지는 지점에 그 거리의 가장 어두운 부분이 있었다. 붉은자기 벽돌로 지어진 수영장이다. 1주일에 여러번 수영장의 물을 갈았다. 그때마다 정문 앞엔 "잠시 문을 닫습니다"라는 글이 붙어 있었고, 나는 이렇게 해서 생긴 잠시의 유예 시간을 즐겼다. 나는 상점들의 진열창 앞을 기웃거리며 그 낡은 가게들에 가득한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물건들로부터 나의 혈통에 다가가곤 했다. 수영장 건너편에는 전당포가 있었다. 보도엔 생활용품들을 파는 노점상들로 북적거렸다. 거긴 한달에 한번만 입는 그런 옷들조차 즐비한 그런 구역이었다.
쿠루메 거리가 서쪽으로 끝나는 곳에 학용품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그 가게 진열장을 들여다 보는 멋모르는 시선들은 싸구려 Nick-Carter-노트에 달라붙곤 했다. 그러나 나는 저 뒤쪽 어디서 음란물들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여기엔 거의 사람들이 지나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진열창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처음엔 금전출납부, 컴파스 그리고 제병과자들을 가지고 내 알리바이를 만들려는 생각에서였지만, 조금 지나선 곧 이 종이로된 피조물의 가랑이 안을 헤치고 나아가게 되었다. 그 충동은, 우리 내부에서 가장 끈질긴 것으로 드러나게 될 그것을 알게 해주고, 그와함께 하나로 녹아붙어 있다. 가게 진열창에 있던 로제테와 연등이 저 부끄러운 사건을 축연해주고 있었다.
수영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시립 독서실이 있었다. 육중한 발콘을 가진 그 독서실은 내겐 그렇게 높지도 그렇게 차갑지도 않았다. 나는 나의 분야를 감지하고 있었다. 그 냄새가 독서실보다 앞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독서실은 마치 축축하고 차가운 지층 아래에 묻혀있는 얇은 지층처럼 나를 기다렸고, 층계참에서 나를 맞이했다. 난 늘 주눅이 든채로 그 철문을 열어 젖혔다. 그래도 독서실에 들어오기 무섭게 고요함이 내 힘들을 되찾아 주기 시작했다.
수영장에서 나를 가장 괴롭게 한 것은 규칙적인 물소리에 뒤섞인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그 소음은 상아로 만든 수영장 입장권을 구입해야 했던 전실에서부터 몰려왔다. 수영장 문턱 위로 발을 들여놓는 것은 저 위의 세계와 이별한다는 걸 의미했다. 그리고 나면 그 어떤 것도 둥근 천정으로 덮인 수영장 안의 물로부터 나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그 물엔 시샘하는 여신이 앉아 있었는데, 그녀는 언제나 우릴 가슴에 안고는 저 위의 세계의 어떤 것도 더이상 우릴 기억하지 못하게 될 때까지 차가운 창고에서 길어올린 젖을 먹이려고 했다.
겨울에 내가 수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면 벌써 가스등이 켜져 있었다. 그래도 그건, 마치 내가 그 골목을 범행현장에서 붙잡기라도 하려는 듯, 은밀하게 나를 내 골목으로 이끌고 가는 우회를 막지 못했다. 그 가게에도 불이 켜져 있었다. 그 불빛의 일부는 늘어놓은 물건들 위로 떨어지고 있었고 나머지는 가스등의 불빛과 섞여들었다. 그 흐릿한 불빛 속에서 그 진열창은 평소보다 더 많은 걸 기대하게 했다. 거짓 우편엽서나 카타로그들 위에 손에 잡힐듯 그려져있는 음란화들이, 오늘 하루 일을 다 마쳤다는 생각을 통해 더 강하게 나를 끌었기 때문이다. 그 때 내 안에서 일어났던 것을 나는 조심스럽게 감싸안고 집의 내 램프 아래까지 들고올 수 있었다. 잠자리조차 자주 나를 그 가게로, 쿠루메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던 사람들의 흐름에도 데리고 갔다. 날 밀치곤 하던 녀석들과 마주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지나가는 길에 내 속에 불러 일으켰었던 우월감은 더이상 생겨나지 않았다. 잠은 내 방의 고요 속에서 도취를 맛보았고, 그건 내게 수영장에서의 끔찍함을 일순간에 보상해주는 것이었다.

독일어로 Krumm이라는 단어는 '휘어진, 굽은' 이라는 뜻을 갖는다. 벤야민이 살았던 지역 Charlottenburg의 구청 건물 Rathaus가 있는 대로와 그 반대쪽의 비스마르크 거리를 이어주는 약 600 미터 길이의 이 거리는 실제로 활처럼 휘어져 있다. 벤야민이 말한 대로 크루메 거리가 가장 크게 휘어지는 곳 저 멀리, 붉은 자기 벽돌로 지어진 수영장 건물이 보인다.

벤야민이 어린 시절 수영을 배웠던 시립 수영장은 아직도 베를린 시민들이 이용하는 시립 수영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수영장 정문엔 벤야민이 이곳을 다녔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1주일에 언제 수영장 물을 갈고 청소하는지를 적어놓은 명판이 붙어있다.

수영장 맞은편, 벤야민의 기억에 의하면 당시 전당포가 있었다던 곳에는 이젠, 번듯한 주택단지가 들어섰다. 노점상들로 북적거리지도, 사람들이 흐름을 지어 지나다니지도 않는 한적한 주택가 거리로 변한 이 곳에 서 있는 전기 가로등은 그의 기억 속의 가스등을 대체하고 서 있다.

쿠루메 거리가 시작되는 "스판다우어 담", 벤야민 시절엔 "베를린 거리"에는 위에서 말했던 샬로텐부르크 '구청' 건물이 있으며, 그 옆에 벤야민이 말했던 시립 도서관이 연결되어 있다. 이 도서관 역시 지금도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
정문 위의 육중한 석조로 된 발콘과, 벤야민이 늘 주눅이 든 채 열어젖혔다는 철문도 보인다.

왜, 벤야민은 그다지도 수영장에서 나는 소음을 싫어했을까.
권위적인 아버지는 어쩌면 어릴 때부터 허약했던 벤야민의 건강을 염려해 이 곳에서 수영을 배울 것을 그에게 강요했을 것이며, 배우기 싫은 수영장에 억지로 발을 들여 놓아야 했던 벤야민에게, 저 수영장에서 들려오는 소음은, 마치 지옥에서 들려오는 고성소리처럼 들렸을 것이다.
저 끔찍한 수영장의 소음은 벌써 수영장 정문을 열고 들어가는 전실에서부터 들려온다, 고 벤야민은 말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그렇다.

위의 전실에 이어져있는 입장권을 사는 곳이다. 벤야민이 다니던 시절엔 상아로 만든 입장권을 사용했다고 하지만, 이젠 컴퓨터로 일련번호가 찍힌 종이 입장권으로 바뀌었다.
입장권을 사들고 저 앞 계단 위의 문을열면 둥근 천정으로 뒤덮인 수영장이 눈 앞에 나타난다. 벤야민에게 저 위의 세계와의 단절을 상징하던 저 수영장 문턱을, 당시 벤야민 또래의 많은 아이들이 넘나들고 있다.

벤야민에게 끔찍하고 혐오스럽게 남아있는 수영장에 대한 기억은 어쩌면 그 건물에 붙어있는 이 그로테스크한 물고기 조각들을 통해 더 강화되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수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을 밝히고 있었던 가스등은, 이제는 모두 전기로 작동하는 가로등으로 바뀌었다.

크루메 거리에 대한 벤야민의 추억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서쪽에 위치한 학용품 가게 자리엔 지금은 케밥가게가 들어서 있다. 케밥은 터키 음식으로 얇은 빵사이에 자른 고기와 야채를 넣어 쏘스를 뿌려 먹는 대중식이다. 베를린엔 이 케밥 가게가, 서울 시내의 떡볶기 가게 만큼이나 많다.

지금은 케밥 가게가 된 이 장소에서 어린 벤야민은, 이 곳에 있었던 학용품 가게 창가에 붙어서서
늘어서 있는 물건들을 구경했을 터였다.
그리고 그 학용품 가게엔, 음란화가 그려진 우편엽서와 그림책들을 팔던 곳이기도 했다.
가스등과 그 진열창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 사이에 뭍혀 어린 벤야민은 자신의 성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저 음란한 그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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