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의 사용가치는 구입 (교환) 동시에 실현되지는 않는다. 그건 우리가 모든 물건들을 구입한 즉시 사용하고 소비해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상품들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나중에 사용(소비)하기 위해 보관되기도 하고 (예를들어 나중에 먹기 위해 보관해 두는 라면, , 고기 등의 생필품), 어떤 상품들은 사용가치의 실현을 위해 우리의 적극적 노력과 참여를 필수 전제로 한다. 휘트니스 쎈터나  스포츠 강습 , 혹은 학원의 어학코스 등은 그들의 사용가치 날씬한 몸매, 건강, 외국어 실력 - 실현하기 위해선 우리 자신의 능동적 노력과 참여를 필요로하는 상품들이다. 여기엔 책도 포함되는데, 사놓았지만 아직 읽지않은 책들은 우리가 시간을 내어 그를 읽기 전까지는 아직 자신의 사용가치 지식의 증가, 책읽기의 즐거움 실현시키지 못한 남아있는 상품들이다. 이런 상품 종류들의 사용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우리 자신의 능동적 참여가 여러 이유로 인해 게으름, 시간없음, 흥미상실 지연되게 되면 상품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사용가치엔 일정한 변화가 발생하게 된다. 음식이 상하고 변질되어 결국 버려야 하거나 휘트니스 쎈터나 학원 수강증의 유효기간이 끝나 버리는 경우에서처럼 상품의 사용가치가 아예 상실되어 버리거나, 아니면 책의 경우에서 처럼 실현되지 않은 원래의 사용가치 대신 다른 사용가치(예를들어, 서재의 장식품, 라면 덮개, 폐품 ) 그를 대신해 등장하기도 한다.

    

상품의 교환(구매) 사용가치의 실현(사용) 사이에 놓여있는 이러한 분리[1]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예로들었던 상품들은 여전히 사용가치의 실현 여부가 우리의 의지와 참여에 달려있다. 말하자면, 상품들의 사용가치는 사다놓은 음식을 상하기 전에 소비하고, 서가에 꽂혀있는 책을 부지런히 읽고, 수강료를 지불한 학원에 열심히 다니는 우리의 의지적 행동을 통해 실현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엔 사용가치의 실현여부가 우리의 의지적 행동과 참여로부터 분리되어 있어서 우리가 아무리 부지런하고, 적극적이며, 열심히 노력하더라도 그것의 사용가치를 실현시킬 없는 상품도 있다. 보험이 그것이다. 보험 상품의 사용가치는 사고가 났을 그를 보상받는 데에 있다. 책을 사거나 외국어 학원을 등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험의 사용가치 역시 상품의 구입과 동시에 실현되지 않는다. 그러나, 책이나 학원 과는 달리 보험 상품의 사용가치는 우리의 의지적 행동을 통해서 실현되지 않는다. 모든 보험 상품들은 의도적으로 발생한 사고에 대해선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을 근본원칙으로 삼고 있으며, 이를통해 보험의 사용가치의 실현은 우리의 의지적 행동이 아니라 전적으로 우연적이고 예측할 없는 사고 가능성에 의존되어 있다. , 보험의 사용가치는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우연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불안한 과정 자체에 의해서만 실현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보험상품의 사용가치를 실현하게 하는 이런 사고들이란 사실상 결코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모든 상품들은 그것의 사용가치의 실현을 즐기고, 향수하기 위해 구매하는데 반해, 보험상품을 구매하면서 우리는 자신이나 가족에게 자동차 사고가 나기를, 집에 화재가 발생하기를, 누군가 갑자기 암에 걸리기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모순적 상품, 보험을 우리는 구매하는가? 말할 것도 없이 그건 우리가 살고 있는 자체가 예측 불가능한 온갖 위험성들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상품들이 그것의 소비(사용) 가져다   비록 가상적일지언정 어떤 행복에의 약속[2] 때문에 구매된다면, 보험이라는 상품은 이처럼 오늘날 현대인의 자체가 처해 있는 불행에의 가능성 때문에 구매된다. 

   

교황의 면죄부를 구입했던 중세인들은 최소한 자신이 구입한 상품(면죄부) 사용가치가, 살아있을 때는 아니더라도 죽어 영혼이 하늘에 올라갔을 때는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한 점에서 16세기의 면죄부는 오늘날의 보험에 비해 보다 확실한 상품이었다. 보험상품을 구입하는 현대인들은 모순으로 가득찬 상품의 사용가치가 실현될 것을 확신할 수도, 바랄 수도, 그렇다고 그것의 실현 가능성을 완전히 부인할 수도 없다. 보험은 오늘날 우리의 삶이 처한 온갖 모순적 관계들을 반영하고 있다.      

 

 



[1] Alfred Sohn-Rethel 상품의 교환과 사용의 분리를 자본주의적 상품관계의 핵심으로 파악한다. 그에 의하면 시장에서의 교환을 전제로 생산되는 상품들은 구매를 통해 개인 소비자에게 이전(교환)되기 전까지는 사용되지 않은 남아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교환에 있어서의 사용의 배제 (Nichtgeschehen) 결핍(Leere)이라는 상품관계에 행위와 의식, 행동과 사유, 나아가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리가 기인한다고 본다. Alfred Sohn-Rethel : Geistige und körperliche Arbeit. Zur Theorie der gesellschaftlichen Synthesis, 1972. S.47 ff.

[2] Vgl. Wolfgang Fritz Haug : Kritik der Warenästhetik,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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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남시 님의 <보험, 모순으로 가득찬 상품>
    from 2007-08-03 01:11 
    그동안 보험 상품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막연한 거부감을 구체화시켜준 글. 그러나 여전히 주위에서는 내게 '보험의 필요성'을 시도때도 없이 환기시킨다. '보험가입을 피하는 101가지 요령' 같은 매뉴얼이라도 필요해보인다.
 
 
sandcat 2007-01-04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김남시 님.
저는 결혼 전부터 보험 들기가 꺼려졌는데 그 이유가 '미래'를 저당잡힌다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었어요. 불행, 우연의 사건, 사고를 담보 삼는다는 느낌. 무엇보다 불안한 마음을 사고판다는 것이 꺼림직했답니다. 공감하고 갑니다.

김남시 2007-01-04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sandcat님, 맞아요. 보험은 우리의 미래를 불행, 우연적 사건과 사고로 색칠해 보여주고는 그로부터 생겨난 우리의 불안한 마음을 담보로 자신을 판매하지요. 보험 속에 숨겨져 있는 저 '협박에 의한 강매'의 원리가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에요.
아이가 귀엽네요. 제 아들 (5살)과 비슷한 나이일 것 같은데...

sandcat 2007-01-05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후면 세 살이 됩니다. '협박에 의한 강매', 맞아요. 그런데 보험을 많이 들 수 있는 사람은 사실 불행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적은 사람이기도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좋은 날 되시길.

iggy 2007-08-03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퍼가려했는데, 오랫만에 와서 그런지 도무지 어케 해야하는지 몰라 먼댓글로 표시해둡니다. 여하튼 배워갑니다.

김남시 2007-08-21 18:0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iggy님
 

 

 

책은 제목 그대로 발터 벤야민의 죽음과 관련되어 스페인 법원 문서보관서에 보관되어 있다 1992 처음으로 발견된 도규멘트들이다. 여기엔, 벤야민이 소지하고 있던, 그가 뉴욕 소재 사회 연구소 연구원이라는 증명하는 막스 호르크하이머가 작성한 인증서를 비롯, 당시 벤야민의 죽음을 조사했던 Portbou 검사 Fernando Pastor Nieto 사건 경위서, 죽기전 벤야민을 진찰하고 죽은 그를 검시했던 의사 Ramon Vila Moreno 진료비 청구서, 벤야민이 마지막 밤을 묵고 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Hotel de Francia 주인 Juan Suner 호텔 숙식료 청구서, 나아가 관과 무덤까지의 운반을 맡았던 장의사 Carpinteria Mecanica de Enrique Espadale 벤야민의 장례와 안장을 담당했던 Portbou 천주교 사제 Andres Freix 요금 청구서 등이다.  

 

스페인 법원 아키브에 보관되어 있던 공식 문서들이  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데에는 발터 벤야민의 이름을 둘러싼 혼동에 이유가 있었다. 문서들에는 모두 발터 벤야민의 Benjamin 이름 Walter 뒤바뀐 형태인 Dr. Benjamin Walter 기록되어 있었다. 도규멘트들을 모아서 편찬한 Ingrid Scheurmann 설득력있는 설명에 따르면 전통적 카톨릭 국가 스페인에서는 Benjamin이라는 유대인 성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고,  그건 성이 아닌 이름으로만 사용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스페인 검사와 경찰 벤야민의 죽음 사건을 담당한 관련인들은 그의 벤야민 그의 이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쨋든 문서들이 발터 벤야민대신 벤야민 발터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었던 이유로 이들은 오랜 동안의 추적에도 불구하고  문서 아키브 구석에서 잠자고 있었던 것이다.

 

문서들을 통해 이전까지 베일에 싸여 있던 벤야민의 마지막 일정이 보다 상세하게 밝혀질 있게 되었다. 이에 따르면 벤야민 일행은 1940 9 25 오후 Portbou 도착한다. 스페인 국경을 넘으려다 적발된 이들은 다음날 다시 프랑스로 보내질 것이라는 불안한 소식을 듣고 그날 밤을 Portbou에서 보내야 했다. 당시 이들이 묵게 되었던 호텔 Hotel de Fancia 이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명의 경찰이 대기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설상가상으로 호텔 주인 Juan Suner Jonama 스페인 경찰 아니라 지역 독일 게스타포와도 친분이 있었던 인물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들은 탈출에 실패해 호텔에 감금되게 되었던 벤야민 일행의 희망마져 위협했음에 틀림없다. 호텔 주인이 이후 담당 검사에게 제출한 숙식비 청구서에 따르면 호텔 4 룸에 머물렀던 벤야민은 곳에서 25 저녁 식사를 하고, 어디론가 차례 전화를 걸었다. 아마도 벤야민은 미국에 있는 호르크하이머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려 시도했을 것이다. 또한 도규멘트에 따르면 이날 마을 의사 Ramon Vila Moreno 네차례 호텔에 왕진해 벤야민의 혈압을 재고, 사혈을 하고  차례 주사를 놓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벤야민이 몰피움을 복용하기 전에 일어난 것인지 아니면 이미 몰피움을 복용하고 구급 소생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관련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벤야민이 이미 50알의 몰피움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어쨋든 26 22 35,  호텔 주인은 옷을 차려입은 침대에 누워 죽어있는 발터 벤야민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벤야민의 시신이 발견된 호출된 의사 Ramon Vila Moreno 검시 그의 사망 원인을 Hermoragia cerebral,  뇌출혈로 인한 자연사 판정한다. 죽기 벤야민을 4차례나 진찰했던 의사가 그의 몸에서 몰피움 복용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의 죽음을 자연사 판정했다는 사실은, 몰피움 복용 증세에 대해 경험이 없었을 마을 의사 Ramon Vila Moren 오진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보다는 당시 스페인의 사회, 정치적 상황과 관련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전통적인 카톨릭 국가 스페인에서 자살 즉각적으로 사법부의 조사를 받아야 하는 중대한 처벌행위 여겨졌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정치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던 벤야민 일행들은 물론 이들의 복잡한 사정에 휘말려 들기를 원치 않았을 마을 의사  누구도 벤야민의 죽음을 이상 크게 확대시키길 원치 않았을 것이다.

 

의사의 사망 진단이 끝난후 벤야민이 지니고 있던 소지품 가죽으로 서류가방 하나, 남자 시계, 담배 파이브, 사진 여섯장, 뢴트겐 사진 한장, 안경, 편지와 잡지, 그리고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장의 종이 뭉치 담당 관청에 넘겨지고, 그가  지니고 있던  (70달러와 500 프랑) 당시 스페인 화폐 페세타로 환전되어 그의 숙식과 진료비, 그리고 장례 비용으로 지불된다.  

 

당시 벤야민의 탈출 일행 명이었던 Gurland 부인에 따르면 벤야민은 아도르노에게 전달해 달라는 짤막한 유서를 남겼다. 그녀가 탈출 도중 발각을 우려해 없애 버렸다는 유서를 그녀는 미국에 도착 아도르노의 부탁에 의해 기억을 더듬어 재구성해 낸다. 우리가 Gurland 부인의 기억을 신뢰할 있다면, 글은 발터 벤야민이 남긴 마지막 글이 되는 셈이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지금의 상황 속에서 내게는 지금 끝내는 말고는 다른 선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여기는 아무도 삶이 끝나는 알지 못하는 피레네 산맥에 처한 작은 마을입니다. 부탁컨데, 친구 아도르노에게 생각 (mes pensées) 전달하고 지금 내가 처해있는 상황을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쓰고 싶었던 것들을 쓰기엔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지 않군요. »  (Dans une situation sans issue, je n’ai d’autre choix que d’en finir. C’est dans un petit village dans le Pyrénées où personne ne me connaît ma vie va s’achever. Je vous prie de transmettre mes pensées à mon ami Adorno et de lui expliquer la situation où je me suis vu placé. Il ne me reste pas assez de temps pour écrire toutes ces lettres que j’eusse voulu écrire.)   

 

 

 

Ingrid Scheurmann : Neue Dokumente zum Tode Walter Benjamins, Bonn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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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헤 2007-08-21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스크바 일기>를 좋은 번역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벤야민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 극적이긴 하지만 그동안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었는데 이에 도움이 될 기록 같습니다. 제 블로그에 출처표기와 함께 옮겨 놓아도 되겠는지요.

김남시 2007-08-21 18:01   좋아요 0 | URL
모스크바 일기의 독자이셨군요! 감사합니다. 출처를 표기해주신다면 얼마든지 옮겨놓여셔도 됩니다.

람혼 2007-09-06 0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떠올려도 참으로 안타까운 최후입니다... ㅠㅠ 글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벤야민이 바타이유 편에 파리의 국립도서관에 원고를 남겼던 저간의 사정 또한 궁금하고 관심이 가는데, 혹시 나중에 시간이 되시면 자세한 사정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 역시 벤야민의 열혈 애독자입니다...

김남시 2007-09-07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람혼님, 아감벤이 파리 도서관에 숨겨져있던 벤야민의 원고를 발견하게 된 사정에 대해서 저 역시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답니다. 책들 속에 숨겨져 있던 책이라... 지금까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에대해 나와있는 자료는 다 이탈리어 뿐이라... 그래도 조만간 그를 확인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봅니다.

람혼 2007-09-08 01:53   좋아요 0 | URL
발견자가 아감벤이었군요! 바타이유는 참 의뭉스러운 사람이기도 하죠.^^
그나저나 그 이탈리아어 자료들이 참 궁금합니다. 일천한 실력이나마 이탈리아어로 된 자료라도 좀 읽어볼까 하는데, 간단하게나마 서지사항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답변 감사드립니다.^^
 

  

 

 

 

 

독일의 유태계 철학자, 문예이론가, 문예비평가 겸 번역자, 카발라적 마르크시스트, 혹은 맑스주의적 카발라리스트...  벤야민을 수식하는 저 수 많은 접속어들 중에서도 어쩌면 벤야민이라는 인간을 가장 처음으로, 그리고 가장 크게 규정하는 것은 무엇보다 '베를린'일 것이다. 

그는 베를린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지내고, Gymnasium과 대학을 다녔으며, 부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이후 파리로 망명하기까지 이 곳을 자신의 문학적 활동의 장으로 삼았다. 그가 남긴 글들에서 우리는 이 베를린이라는 장소가 그에게 남긴 흔적들을 본다. 마치 사투리가 그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난 곳의 흔적을 폭로하듯, 베를린이라는 장소는 그의 글 속에 스며들어 벤야민이라는 인간의 '장소성'을 폭로하고 있다.

벤야민에게 '기억'은 '발굴'되어지는 것이었다. 그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베를린의 장소들은, 그를통해 그 속에서 그의 삶의 흔적들을 발굴할 수 있는 상상적 장소로 남아있다. 그가 태어났던 Magdburgplatz 와 Gyamanium을 다녔던 Carmer strasse, 그 이후 베를린을 떠나기 까지, 결혼을 하고 나서도 머물러 있었던 아버지의 빌라 Grunewald 등의 장소들은 그리하여, 오늘날 벤야민의 사상과 이론을 그의 삶과의 연관 속에서 발굴하려는 우리에게, 그 곳에서 벤야민의 삶의 흔적을 '발굴'  할 수 있는 기억의 장소가 된다. 벤야민을 기억하는 우리에겐 그 장소들은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먼'  아우라를 품고있는 장소들이기도 하며, 바로 그런 점에서 그곳은, 마치 어린 시절의 장소들을 방문한 우리들에게 그 장소들이 주는 '비자발적 기억'의 계기를 제공해 주는 프르스트의 '마들렌느 과자' 같은 곳이기도 하다.    

벤야민이 태어났던 Magdeburger Platz 4. 1893년 부터 1900년까지의  어린시절을 보냈던 Kurfuersten Strasse 154, 1900년 부터 1912년 Gymnasium 시절의 벤야민이 살았던 Carmen Strasse 3, 그리고, 청,장년기를 보냈던 Delbrueck Strasse 23, 모스크바에 다녀온 벤야민이 베를린을 방문한 아샤와 함께 살았던 Duesseldorfer Strasse 42,  파리로 도피하기 전 1930-33년 까지 벤야민의 마지막 베를린 거처 Prinzregenten Strasse 66.   위 모든 장소들은 베를린 지도 상에서 작은 원 안에 다 포괄될 정도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그의 가족이 속했던 사회적 지위와 관련되어 있다. 벤야민 당시 대부분 유럽의 도시들엔 소위 유복한 부르조아들이 모여살던 지역과, 이 도시에 조성된 공업단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주거지역이 분명히 구분되어 있었고, 이러한 지역적 편차와 그 흔적들은 오늘날 유럽의 도시들에까지 남아있다. 벤야민이 살았던 베를린 지역은 저 상류 부르조아 계층들이 주로 모여 살았던, 그래서 오늘날에도 베를린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지역에 속하는 Charlottenburg와 Zehlendorf  였다.

 그 중 이 글에서 나는 먼저  벤야민이 김나지움을 다니던 학생시절 수영을 배우던 Krumme Strasse를 찾아보았다.그건 무엇보다 그곳이 지금 내가 살고있는 지역에서 가장 가까이 있다고 하는 매우 실용적인 이유에서다.    

우린 <베를린 유년시절> 중 "Krumme Strasse" 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벤야민이 이 거리에 있는 '시립 수영장'에서 어린 시절 수영을 배웠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이 거리에 대해 벤야민은 다음과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Krumme Strasse

 때때로 동화엔 길 양쪽으로 유혹과 위험들로 가득찬 상점들이 즐비한 파사지와 화랑들이 등장한다. 소년시절의 내게도 그런 골목이 있었다. 그건 크루메 거리라고 불렸다. 그 거리의 가장 크게 휘어지는 지점에 그 거리의 가장 어두운 부분이 있었다. 붉은자기 벽돌로 지어진 수영장이다. 1주일에 여러번 수영장의 물을 갈았다. 그때마다 정문 앞엔 "잠시 문을 닫습니다"라는 글이 붙어 있었고, 나는 이렇게 해서 생긴 잠시의 유예 시간을 즐겼다. 나는 상점들의 진열창 앞을 기웃거리며 그 낡은 가게들에 가득한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물건들로부터 나의 혈통에 다가가곤 했다. 수영장 건너편에는 전당포가 있었다. 보도엔 생활용품들을 파는 노점상들로 북적거렸다. 거긴 한달에 한번만 입는 그런 옷들조차 즐비한 그런 구역이었다. 

 쿠루메 거리가 서쪽으로 끝나는 곳에 학용품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그 가게 진열장을 들여다 보는 멋모르는 시선들은 싸구려 Nick-Carter-노트에 달라붙곤 했다. 그러나 나는 저 뒤쪽 어디서 음란물들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여기엔 거의 사람들이 지나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진열창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처음엔 금전출납부, 컴파스 그리고 제병과자들을 가지고 내 알리바이를 만들려는 생각에서였지만, 조금 지나선 곧 이 종이로된 피조물의 가랑이 안을 헤치고 나아가게 되었다. 그 충동은, 우리 내부에서 가장 끈질긴 것으로 드러나게 될 그것을 알게 해주고, 그와함께 하나로 녹아붙어 있다. 가게 진열창에 있던 로제테와 연등이 저 부끄러운 사건을 축연해주고 있었다.

 수영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시립 독서실이 있었다. 육중한 발콘을 가진 그 독서실은 내겐 그렇게 높지도 그렇게 차갑지도 않았다. 나는 나의 분야를 감지하고 있었다. 그 냄새가 독서실보다 앞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독서실은 마치 축축하고 차가운 지층 아래에 묻혀있는 얇은 지층처럼 나를 기다렸고, 층계참에서 나를 맞이했다. 난 늘 주눅이 든채로 그 철문을 열어 젖혔다. 그래도 독서실에 들어오기 무섭게 고요함이 내 힘들을 되찾아 주기 시작했다.

 수영장에서 나를 가장 괴롭게 한 것은 규칙적인 물소리에 뒤섞인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그 소음은 상아로 만든 수영장 입장권을 구입해야 했던 전실에서부터 몰려왔다. 수영장 문턱 위로 발을 들여놓는 것은 저 위의 세계와 이별한다는 걸 의미했다. 그리고 나면 그 어떤 것도 둥근 천정으로 덮인 수영장 안의 물로부터 나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그 물엔 시샘하는 여신이 앉아 있었는데, 그녀는 언제나 우릴 가슴에 안고는 저 위의 세계의 어떤 것도 더이상 우릴 기억하지 못하게 될 때까지 차가운 창고에서 길어올린 젖을 먹이려고 했다.

 겨울에 내가 수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면 벌써 가스등이 켜져 있었다. 그래도 그건, 마치 내가 그 골목을 범행현장에서 붙잡기라도 하려는 듯, 은밀하게 나를 내 골목으로 이끌고 가는 우회를 막지 못했다. 그 가게에도 불이 켜져 있었다. 그 불빛의 일부는 늘어놓은 물건들 위로 떨어지고 있었고 나머지는 가스등의 불빛과 섞여들었다. 그 흐릿한 불빛 속에서 그 진열창은 평소보다 더 많은 걸 기대하게 했다. 거짓 우편엽서나 카타로그들 위에 손에 잡힐듯 그려져있는 음란화들이, 오늘 하루 일을 다 마쳤다는 생각을 통해 더 강하게 나를 끌었기 때문이다. 그 때 내 안에서 일어났던 것을 나는 조심스럽게 감싸안고 집의 내 램프 아래까지 들고올 수 있었다. 잠자리조차 자주 나를 그 가게로, 쿠루메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던 사람들의 흐름에도 데리고 갔다. 날 밀치곤 하던 녀석들과 마주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지나가는 길에 내 속에 불러 일으켰었던 우월감은 더이상 생겨나지 않았다. 잠은 내 방의 고요 속에서 도취를 맛보았고, 그건 내게 수영장에서의 끔찍함을 일순간에 보상해주는 것이었다.      

 

 

독일어로 Krumm이라는 단어는 '휘어진, 굽은' 이라는 뜻을 갖는다. 벤야민이 살았던 지역 Charlottenburg의 구청 건물 Rathaus가 있는 대로와 그 반대쪽의 비스마르크 거리를 이어주는 약 600 미터 길이의 이 거리는 실제로 활처럼 휘어져 있다. 벤야민이 말한 대로 크루메 거리가 가장 크게 휘어지는 곳 저 멀리, 붉은 자기 벽돌로 지어진 수영장 건물이 보인다.

 

 벤야민이 어린 시절 수영을 배웠던 시립 수영장은 아직도 베를린 시민들이 이용하는 시립 수영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수영장 정문엔 벤야민이 이곳을 다녔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1주일에 언제 수영장 물을 갈고 청소하는지를 적어놓은 명판이 붙어있다.

 

 수영장 맞은편, 벤야민의 기억에 의하면 당시 전당포가 있었다던 곳에는 이젠, 번듯한 주택단지가 들어섰다. 노점상들로 북적거리지도, 사람들이 흐름을 지어 지나다니지도 않는 한적한 주택가 거리로 변한 이 곳에 서 있는 전기 가로등은 그의 기억 속의 가스등을 대체하고 서 있다.  


 쿠루메 거리가 시작되는 "스판다우어 담", 벤야민 시절엔 "베를린 거리"에는 위에서 말했던 샬로텐부르크 '구청' 건물이 있으며, 그 옆에 벤야민이 말했던 시립 도서관이 연결되어 있다. 이 도서관 역시 지금도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 

정문 위의 육중한 석조로 된 발콘과, 벤야민이 늘 주눅이 든 채 열어젖혔다는 철문도 보인다.

 

 

왜, 벤야민은 그다지도 수영장에서 나는 소음을 싫어했을까. 

권위적인 아버지는 어쩌면 어릴 때부터 허약했던 벤야민의 건강을 염려해 이 곳에서 수영을 배울 것을 그에게 강요했을 것이며, 배우기 싫은 수영장에 억지로 발을 들여 놓아야 했던 벤야민에게, 저 수영장에서 들려오는 소음은, 마치 지옥에서 들려오는 고성소리처럼 들렸을 것이다. 

 저 끔찍한 수영장의 소음은 벌써 수영장 정문을 열고 들어가는 전실에서부터 들려온다, 고 벤야민은 말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그렇다.

 

 위의 전실에 이어져있는 입장권을 사는 곳이다. 벤야민이 다니던 시절엔 상아로 만든 입장권을 사용했다고 하지만, 이젠 컴퓨터로 일련번호가 찍힌 종이 입장권으로 바뀌었다. 

 입장권을 사들고 저 앞 계단 위의 문을열면 둥근 천정으로 뒤덮인 수영장이 눈 앞에 나타난다. 벤야민에게 저 위의 세계와의 단절을 상징하던 저 수영장 문턱을, 당시 벤야민 또래의 많은 아이들이 넘나들고 있다.   




벤야민에게 끔찍하고 혐오스럽게 남아있는 수영장에 대한 기억은 어쩌면 그 건물에 붙어있는 이 그로테스크한 물고기 조각들을 통해 더 강화되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수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을 밝히고 있었던 가스등은, 이제는 모두 전기로 작동하는 가로등으로 바뀌었다.

 

 

 크루메 거리에 대한 벤야민의 추억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서쪽에 위치한 학용품 가게 자리엔 지금은 케밥가게가 들어서 있다. 케밥은 터키 음식으로 얇은 빵사이에 자른 고기와 야채를 넣어 쏘스를 뿌려 먹는 대중식이다. 베를린엔 이 케밥 가게가, 서울 시내의 떡볶기 가게 만큼이나 많다.

 


  

지금은 케밥 가게가 된 이 장소에서 어린 벤야민은, 이 곳에 있었던 학용품 가게 창가에 붙어서서

늘어서 있는 물건들을 구경했을 터였다. 

 

그리고 그 학용품 가게엔, 음란화가 그려진 우편엽서와 그림책들을 팔던 곳이기도 했다.

 

가스등과 그 진열창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 사이에 뭍혀 어린 벤야민은  자신의 성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저 음란한 그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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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업 2007-10-08 22: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이 조금 깁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장애인입니다.-
-녹슬은 철모-
(자작시)
이름없는 무덤가에 놓여진
녹슬은 철모.
군번도 없는 쓸쓸한 무덤가에
녹슬은 철모많이 당신을 지키고 있네.
조국을 위해 몸바쳐 가심을
철모가 말해주고 있네.

적의 총칼앞에 쓰러져간
젊은 청춘의 넋이여.
군번이라도 알 수 있다면,
좋으련만~~~~!
군번없는 무명의 용사가 돼어버린지,
57년.
57년이 흐른 지금에야
우리는
이름없는 무덤가에,
꽃을 놓누나.

애인같이 귀하게 여기던 총칼이
조문객을 살피우고
구름이
흘러흘러
청춘의 이름없는 넋을 위로하네

부디,
저,
세상에서
편히,
쉬시기를.
-돈준다넷-설명의 글-
돈준다넷http://www.donjund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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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다는 말씀을 이자리를 빌어 머리숙여 전해올립니다.
_한글 윈도우 XP(프로페셔널)복사판 CD 무료로 구합니다.-
-나 가거든-
(자작시)

나 가거든,
누가,
내 무덤가에 국화꽃 한송이 놓아주리요.
나 가거든,
누가,
내 무덤가에서 목놓아 울어주리요.

세월이 흘러흘러,
하늘이 내이름을 부르면,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야만 하는 것을,

내 인생의 길에,
모든 나의 짐을 지고 가야 할지언정,
잠시,
지게를 내려놓고,
내 인생을 뒤돌아본다.

잠시 왔다,
저 멀리 가는 인생이여.

인생의 끝자락에 서서,
후회없는 삶을 살았노라~~~~~~~~~

결코
나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정녕,
잠시 세상에 머문 시간이,
저승에서 해가 돼질 않기를~~~~~~~~~~

비록,
나 가거든,
내 무덤에 아무도 오지 않을 지언정,
후회하지 않으리라.
이렇게 빌어본다.
*안녕하세요.
저는,
얼마전,
교통사고로,
지체장애자 1급이 됀,
35세의 남자입니다.
전동 휠체어 마련할,
형편이 못돼어,
염치없지많,
이렇게 라도,
부탁드려봅니다!
저는,
컴퓨터에 관심이 많은,
이제,
컴퓨터에 입문한(?)사람입니다.
제가,
실수로,
운영체제를,
날리길 여러번~~~~~~.
제가,
혼자 살아,
외출이 자유롭지가 못합니다!
제가,
직접 지은,
-자작시-를 올려드릴테니.
제게,
한글(윈도우 XP)-프로페셔널(다른 버전도 가능.)
-정품-을 복사한,
-복사판-CD(한장)-CD키 포함-
을,
보내주실 분이 계시면,
제게,
메일을 주세요.
shinillku@naver.com
-배송비(무료)로,
보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너무,
염치없는 부탁인 줄 알지만~~~~!!!!!!!
*만약,
보내주시면,
감사히 잘 쓰겠습니다.
한글 오피스 2007 있으신 분 계시나요?
-(복사판)다른 버전도 가능.
(D키 포함.
(한글)포토샵-7.01-이상 버젼.
(복사판)CD키 포함.
(추신)
(정품)한글 윈도우 XP -프로페셔널-/한글 오피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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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가진 제 신분에겐,
너무,
높은 가격인지라~~~~~!!!!!!.
-비록-
염치없지많,
이렇게라도,
부탁드려 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안녕히.-

(신)=신(GOD)이.
나에게 무엇을 주었나 생각지 말며,
(일)=일과 속에서,
(규)규율이란 울타리 안에서,
남을 위해 봉사하는,
촛불 같은 삶을 살자!
*제,
-자작시-를 도용할 수는 있으나,
제 양심까지,
도용할 수는 없습니다!

(참고)
http://www.assacom.com/shop/index.htm
(아싸컴퓨터)
*컴퓨터를 구매하려는 분들은,
이 사이트를 참고하세요!
http://gooducc.tistory.com/28
-일년을 하루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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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2천원을 빼면,
님께서,
\248,000을,
절약하시는 겁니다.
(윈도우)처럼,
업데이트 제약이 없어요.
(만약,
이 글을 읽으시는 님꼐서,
-LG TWINS-PAN일 경우,
주의깊게 봐주세요,)
무=무릇 떠오르는 선수가 있으니.
적=적토마 이병규 선수.
L=엘지 맨이란 걸 잊지말라 그대여!
G=지면 끝장이라는 각오로,
일본 그라운드에서 멎진 활약 보여주시길~~~~~.
(들리는 가,들리는 가)
수많은,
그대의 팬과,
LG TWINS팬들의 함성이~~~~~.
비록,
2007년도애.
5위를 했으나,
-LG TWINS- 구단/선수/임직원/팬~~~~~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LGTWINS-의 팬이란게 자랑스럽습니다!
http://www.pandora.tv/my.madkhai/8191519
(-LG TWINS-)
-2007년 시즌,
수고하셨습니다!_
("이병규"선수-=적토마/"조인성"선수=앉아쏴/"김재박감독
님"=그라운드의 여우/"유지현"코지님=꾀돌이/(전)LG 투수"최향남 선수=아파치/
그들이 그립습니다!)
-프로야구 원년 만루홈런의 주인공이신.
"이종도(전)코치님/1990년 대의 우승의 주역이신/
"백인천 감독님~~~~~)
수많은,
자랑스러운,
"LG TWINS의 선수들이 그립습니다!"
"이상훈" 선수(전)투수,=삼손
복귀를 원합니다~!!!!!"
L=엘리트 명문 구단,
G=지루한 야구가 아닌,
-뛰는 신바람 야구/화끈한 야구-를 추구하는,
트=트윈스 팬이란 게 자랑스럽습니다!
윈=윈도우(운영체제)가 없으면,
컴퓨터를 가동시킬 수 없듯.
그대들의 계시기에.
(저희는)자랑스럽습니다!
스=스산한 가을바람이 불어 오는 그 날에.
반드시.
한국시리즈,
챔피언-을 기대합니다!-
(혹시,)
일러스트10(한글판)트라이얼버전/저장/인쇄 안돼는 거.
사용하시는 분들은,
(1034-1418-8202-9177-743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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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통해 시간 속에서 일어난 사건들, 곧 서사를 재현하는 이러한 두가지 방식은 그런데, 서양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의 옛 그림들에서도 서사를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두가지 방식을 모두 발견할 수 있다.

 

전체 서사 중 중요한 한 장면만을 뽑아 그려 전체 서사를 대표하고 상기시키는 방법을 우리는 1797년 발행된 필사 채색본 <오륜 행실도>에 실려있는 « 맹희득금 »이란 그림에서 본다.  « 맹희득금 »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지닌 서사다. « 촉나라의 맹희는 비록 가난하지만 부모님을 지극으로 모시고 살았다. 그는 과일을 팔아 아버지를 부양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거적을 깔고 상을 지냈다. 그때 맹희가 있던 자리에 쥐가 땅을 파내려 갔는데 그 곳에서 황금 수만냥이 나왔다. « 이 그림은 저 서사 중 맹희가 아직 살아계신 아버지를 모시며 과일을 팔러가는 장면을 그리고 있는데, 이를통해 이 그림은 전체 서사를 상기시키면서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맹희의 지극한 태도와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이보다 거의 300여 년 앞서 1431년 세종의 명으로 출판된 <삼강행실도>에서 우리는 서사의 시각적 재현의 또 다른 방식, 곧 서로 다른 시간에 일어난 사건들을 동일한 공간 속에 배치시키는 방법이 사용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삼강행실도>에 등장하는 황향선침 ‘, « 황향이 베게에 부채질하다 »라는 제목의 그림은 동한시대 황향의 부모에 대한 효도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우리는 주인공 황향이 한 그림에 세 번 동시에 등장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서양의 그것과는 다르게 여기선 주인공 옆에 친절하게 그의 이름을 붙여 놓았는데, 그를통해 그림 속에선 여러번 등장하는 인물들이 사실상 황향이라는 한 인물임을 알려주고 있다. 왜 이렇게 이름을 붙여 놓아야 했을까? 그렇지 않았다면 저 동일한 공간 -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서로 다른 인물인 걸로 혼동될까봐? 그렇다면 15세기의 한국인들은 20세기 이후나 등장했던 사진적 재현, 한 그림은 그것이 보여진 (화가 혹은 사진사에 의해) 순간 그 공간에 함께 존재하던 대상과 인물들을 재현하는 것이라는 근대적 시각을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한 공간에 서로 다른 시간을 동시에 배치하는 이런 재현 방식이 그들에겐 같은 시기의 유럽인들만큼 익숙한 것이 아니였기 때문일까?

 

 

 

 

 

 

 

 

 

 

 

 

 

 

 

 

 

 

 

 

 

 

 

 

 

 

 

 

 

 

 

 

 

 

 

 

 

 

또 하나 흥미로운 건 이 그림에서 시간이 어떤 시각적 질서에 따라 표현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위 세 명의 황향 중 누가 시간적으로 먼저이고 누가 나중인지가 어떤 규칙에 따라 재현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를 알기 위해선 이 그림이 전하고 있는 서사의 구조를 확인해야 한다. « 동한 때의 황향은 이미 나이 9살 때 어버이 섬기는 도리를 깨달았다. 무더운 여름날에는 아버님의 침석을 부채질하여 모기를 쫓고 잠자리를 시원하게 하여 편안히 주무실 수 있게 하였으며, 추운 겨울에는 아버지의 베게, 이불, 요를 자기 몸의 체온으로 따뜻하게 하여 아버지가 따뜻한 잠자리에서 주무실 수 있도록 해 드리니 그 이름이 임금의 궁성에 까지 알려졌다이에 의하면 위 그림 가장 아래 쪽엔 9살때 돌아가신 어머니의 시신 앞에 꿇어앉아 예를 표하고 있는 - 다른 기록에 의하면 « 황향은 9살에 어머님을 여위고 아버지만을 모시고 살았다 »고 되어있다. - 황향을, 그 위 중간은 여름에 아버지의 침석에 부채질하는 황향을, 그리고 그 위엔 겨울에 아버지의 잠자리를 따뜻하게 하는 황향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림 속에서 서사의 시간적 순서는 아래에서 부터 위를 향하는 공간적 질서를 통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공간적 질서가 모든 그림들에 다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유럽 회화들에서도 « 왼쪽에서 오른쪽 », 그리고 « 아래쪽에서 위»로 향하는 시간의 공간적 시각화의 기본 원리는 화가들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어 사용되었다. 그건 화가가 자신이 재현하는 서사의 어떤 부분을 부각하고 싶은지, 어떤 주제와 내용을 강조하고 싶은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의 옛 그림들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우리는 이를 1617년 광해군의 명에 따라 편찬된 <동국신속삼강행실도>의 그림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금이 왜적을 치다 >라는 제목의 이 그림에서도 주인공 최금이 두번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서로 다른 시간에 일어났던 사건을 한 공간 속에서 표현하는 서사의 재현방식을 따랐기 때문이다. « 양민여자 최금은정유란에 그 지아비를 따라 두 아들을 거느리고 산중으로 왜적을 피하였는데, 왜적이 갑자기 이르러 지아비와 두 아들을 죽이거늘 최금이 돌을 가지고 돌진하여 왜적 하나를 죽이고 살해당했다. (그래서) 임금께서 정문을 내리셨다. »는 서사를 이 그림은, 파격적인 공간적 질서를 통해 재현하고 있는데, 그건 저 그림에 등장하는 사건의 시간적 순서가 아래에서 위로가 아니라,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그리고 다시 오른쪽 아래라는 지그 재그식질서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통해 산 속에서 마주친 왜구와의 싸움이 갖는 긴장감과 격렬한 운동이 시선의 공간적 이동을 통해 부각되는 효과를 갖는다. 흥미로운건, 최금의 용감한 행실을 치하하기 위해 임금이 내린 정문이 그림의 가장 위쪽 중앙에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시간상 가장 나중에 일어난 사건을 그림의 가장 위쪽에 그리는 전통적 공간 질서를 따르고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이를통해 이 서사 전체를 통해 보여주려는 메시지, , «장한 행동에 대한 보상»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같은 책에 실린 <이보가 손가락을 자르다>라는 제목의 서사에서도 마찬가지다.

 



 

 

 

 

 

 

 

 

 

 

 

 

 

 

 

 

 

 

 

 

 

 

 

 

 

 

 

 

 

 

 

 

 

« 이보는 용안현 사람이나 그 아버지 태방이 고치기 힘든 병을 얻어 거의 죽게되니 구완하여 치료해도 효험이 없어 밤낮으로 울고 있는데, 꿈에 어떤 중이 일러 말하되 산 사람의 뼈를 먹으면 나을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이보가 즉시 놀라서 깨어 손가락을 베어 약을 드리니 아버지의 병이 즉시 나았다 » 이 그림 속에서 두번 등장하는 이보의 행적은 그림 중앙에서 부터 시작하는데, 그건 이보가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안간힘쓰며 괴로와하고 있는 장면이다. 잠깐 조는 사이에 꿈 속에서서 나타난 중 현실이 아닌 꿈 속의 인물임을 강조하기 위해 구름을 타고 있는 이 그 다음의 시간적 순서에 해당된다면, 그의 왼쪽 아래서 손가락 피를 짜내고 있는 이보는 시간적으로 가장 마지막에 해당되는 장면이다. 역시 이 그림에서도 강조되고 있는 것은 아버지의 병 구완을 위한 이보의 노력   그건 자기 손가락을 베는 장면에서 절정에 달한다. – 이다. 이보의 아버지가 병이 나은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이 그림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가 – <행실도 >에 실린 다른 일화들과 마찬가지로 - 효도의 세속적, 현실적 « 효과 »가 아니라 지극한 효도 행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미 한국 그림의 역사 속에서 엄연히 존재했었던, 그림에 시간을 담아내려는 시도들은 유감스럽게도 한국 미술사에서 예술적 재현의 새로운 방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는 어쩌면 외재적인 근대화의 논리와 더불어 수입된 편협하고 나이브한 리얼리즘에의 강박이 저 옛 그림들에 표현되어 있던 풍부한 시각적 재현의 시도들을, 다른 모든 전통적 가치들과 더불어, 원시적이고 비 과학적인 것으로 싸잡아 폐기함으로써 생겨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를통해 우린, 이후 유럽 미술의 역사 속에선 다채로운 시각적 재현의 방식들로 발전되어 온 시간의 시각화의 단초들을 잃어버린 것이다.

 

시시각각 운동하는 시간적 변화들을 한 평면에 동시에 배치함으로써 시간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려던 시도들이 이후 유럽 미술사에서 어떤 모습으로 이어졌는가를 우리는 20세기 이후의 현대 미술에서 발견한다.

 


 

 

 

 

 

 

 

 

 

 

 

 

 

 

 

 

 

 

 


 

 

 

 

 

 

 

1912년 마르셀 뒤샹이 발표한 그림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 No.2>는 화가가 바라본 순간 저 계단에 존재하고 있던 서로 다른 여러 피규어들을 그린 것이 아니다. 이 그림은 서로 다른 시간에 걸쳐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동일한 한 명의 벌거벗은 사람을 그림의 동일한 공간 속에 동시에 배치함으로써 생겨난 것이다. 시간과 운동을 시각적으로 재현하고 있는 이 그림이 이전 시대의 그림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서로 다른 시간에 존재했던 동일인물의 다른 모습들을 좀 더 집약적인 공간에 집중시켜 놓았다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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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시간을 어떻게 표현할까. 언어로 이루어지는 예술, 곧 문학의 경우 이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될 수 있다. 그건 말이나 글을 사용하는데 이미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말이나 글이 가진 시간성은 그를 그림과 비교해 보면 가장 분명히 드러난다. 사과를 그린 그림을 보고 그것이 사과라는 걸 알아보는데는 일초도 걸리지 않지만 사과를 묘사하는 말이나 글을 통해 그 모습을 떠올리기까지는 그를 듣거나 읽어 이해하고, 그를 머리 속에서 그림으로 변환시키는 시간이 소요된다. 한 장의 그림을 통해서라면 금방 전달할 수 있는 장면을 말이나 글로 묘사하려면 시간이 걸리며, 이는 그 묘사를 듣거나 읽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다른 한편 바로 이런 특성으로 인해 언어는 시간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행위를 묘사하는데 그림보다 더 큰 장점을 갖는다. 그림이 사건의 경과나 행위들을 다만 그 중 특정한 한 장면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데 반해 시간성을 특성으로 갖는 언어는 사건의 경과나 행위를 묘사하는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달리고 있는 말이나 날아가는 새, 사건의 경과 혹은 전쟁 등을 소재로 한 그림은 실제로는 계속 움직이는 그 대상들의 한 모습과 장면만을 포착해 표현할 수 밖에 없지만, 언어는 이들의 사건과 운동을 모두 전달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라오콘>을 통해 레싱은 시와 회화의 우열을 둘러싼 논쟁에서 시의 편을 든다. 그에 의하면, 회화는 운동하는 대상으로부터 시간을 제거하여 그를 특정한 순간으로 고정시켜 공간화시킨 예술이다. 이를통해 원래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대상들은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그림의 공간 속에 고정되어 표현된다. 운동이 살아있는 것,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의 본질적 속성이라면 회화는 이런 의미에서 운동하는 것의 세계, 곧 정신적의 것의 세계에 참여하지 못한다[1]는 것이다.

 

하지만 그림이라는 매체가 갖고 있는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림은 지금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그것도 훌륭하게 시간을 표현해왔다. 시간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 곧 서사는 호머 이래 시와 소설 뿐 아니라 회화의 주요 대상이기도 했으며, 회화가 정물과 풍경 등의 고정된 대상을 묘사하기 시작한 건 2,500 년 서양 미술의 역사에서 보면 오히려 짧은 기간에 불과하다. 매체의 특성상 비 시간적일 수 밖에 없는 그림이 도대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서사를 표현해 왔을까? 그를위해 그림은 어떤 장치와 질서, 표현방식을 발전시켜 왔을까?          

 

그림이 서사를 표현하는데는 전통적으로 크게 두가지 방식이 있었다. 첫째는 표현하고자 하는 전체 서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한 장면을 그리는 것이다. 신약전서에 등장하는 예수의 일생이라는 서사 중에서 아기 예수의 탄생“, „최후의 만찬“,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피에타“, „예수의 부활등의 장면을 그린 그림들은 저 길고도 드라마틱한 서사 중 그것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택된 하나의 장면은 그를통해 그 그림을 그린 (혹은 위탁한) 사람들이 무엇을 저 전체 서사의 핵심으로 여기고 있는가를 보여주며, 나아가 그 서사 전체를, 위의 경우엔 예수의 생애 전체를 상기시켜 주는 촉매적 (일종의 Mnemographie!) 역할을 한다.

 

서사 속의 한 특정한 한 장면이 이처럼 서사 전체를 대변하는 일이 반복될수록 그 장면은 점차 서사 전체를 지시하고 암시하는 상징이자 알레고리로 일반화된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림이 단지 일회적이고 역사적인 그 사건 자체의 재현이 아니라 신약전서 전체의 메시지 - 인류의 죄를 대속해 인간을 구원하는 신의 아들 의미하는 기호가 되고, 아기 예수를 안고있는 마리아 그림이 특정한 종교적 인물 마리아와 예수 에 대한 묘사를 넘어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Caritas적 사랑과 구원을 상징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처럼 벌거벗은 비너스 그림이 아름다움의 알레고리로, 뱀이악과 불신의 상징으로, 턱을 괴고있는 사람이 멜랑코리의 알레고리로 자리잡게 되면, 이는 이후의 많은 다른 예술적 실천들 속에서도 일반적이고 보편적 기호로 등장하게 된다.[2]

 

그림을 통해 서사를 표현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그림의 동일한 공간 속에 서로 다른 시간에 일어난 사건들을 함께 배치해 넣는 것인데 이는 거의 18세기 초까지 시간의 시각적 재현의 방법으로 꾸준히 사용되어 왔다.  1416 Bruder von Limburg 가 그린 <에덴동산>은 이러한 방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화가는 이 한 장의 그림 속에서 서사 전체를 이루는, 서로 다른 시간에 걸쳐 일어났던 사건들을 동시에 배치하고 있는데, 여기선 신이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고, 이브가 뱀의 유혹을 받아 금지된 나무 열매를 따 아담과 나누어 먹고, 그로인해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는 장면들이 모두 한 공간 속에 그려져 있다.

 

 

 

 

 

 

 

 

 

 

 

 

 

 

 

 

 

 

 

서로 다른 시간에 일어난 사건들을 동일 공간 속에 배치해 그 사건들로 이루어진 전체 서사를 표현하는 이러한 재현 방식은, 서로 다른 시간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걸 허용치 않는 사진의 재현에 익숙해 있는 우리에겐 낯설게 느껴진다. 우린 그림 속에 그려져 있는 사람과 대상들이, 마치 사진을 볼 때 처럼 사진을 찍은 바로 그 순간에 함께 존재하고 있던 것으로 인지하며, 그를통해 저 그림 속에 네 명의 이브와 세 명의 아담이 같은 순간에 동일한 공간에 존재하고 있다고 느껴 이를 모순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각적 재현이 카메라를 통해 시간적 동시성의 요구를 충족 – 순간포착! - 시키게 된 것은 사진이 발명되고 나서도 한참 후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초기의 카메라는 한 장면을 잡아내기 위해 몇 시간에 걸친 노출과 감광 시간을 필요로 했었고, 그를통해 만들어진 사진엔 ‚순간’이 아니라 그렇게 노출된 만큼의 긴 시간이 찍혀져 있었다. (1827년 Nicéphore Niepce 가 자신의 거실 창밖을 촬영한 최초의 사진은 8시간의 노출을 필요로 했다![1])

1530Lucas Cranach (the elder) 가 그린 <파라다이스>에서도 한 공간 속에 서로 다른 시간의 사건들이 공존하고 있다. 신이 흙으로 아담을 빚어내는 장면부터 그의 옆구리에서 이브를 뽑아내는모습, 금지된 열매를 따먹고 난 아담과 이브가 신의 노한 목소리를 피해 숨어있는 장면들이 Limburg의 그림에 더 추가되어 있다. 이를통해 이 그림은 Limburg의 그것보다 더 상세하고 친절하게 에덴 동산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나 소설이 그저 일어났던 사건들을 시간순서에 따라 기계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서술을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 사건의 순서를 바꾸거나 특정 장면들을 강조하듯, 그림 또한 화가의 재량에 따라 일어났던 사건들의 순서를 재배치하거나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사건을 부각시킴으로써 서사의 시각적 재현을 다채롭게 한다. 이 그림에서 화가는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서사 가운데 신이 아담과 이브에게 계율을 전하는 장면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 정면에 배치하고 있는데, 이를통해 화가는 신으로 부터 받은 계율의 중요성을 저 에덴동산에서 일어났던 서사의 핵심 주제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위 두 그림에선 그래도 그림의 공간 속에, 동일한 시간이 아닌 서로 다른 시간들이 공존한다는 걸 알아보기가 쉬운 편이다. 그건 에덴동산이라는 제한된 공간과 거기 등장하는 인물들이 결국 아담과 이브, 그리고 신, 이 셋 뿐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아직 생겨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그림 속의 여러 등장 인물들이 결국 모두 서로 다른 시간의 아담과 이브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이 번식과 번창을 거듭하는 동안 이 땅엔 수많은 아담의 후손들이 생겼고 또 그들이 이전보다 훨씬 더 복잡한 사건들에 연루되게 되면서, 이제 그림을 통한 서사의 표현도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게 되었다. 이런 복잡한 서사를 표현한 그림들에선 한 공간 속에 공존하는 서로 다른 시간을 확인하기가 쉽지않다.

 

1470 Hans Memling이 그린 <Passion Christi> 를 익숙해 있는 사진적 재현 방식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이 그림 속에 등장하는 저 군중들이 마치 같은 순간에 저 성벽 도시 안 팎에 운집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 그림은 도시 주변의 모습을 한 순간에  포착한 풍경화가 아니라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행적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서사화라는 걸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성전에서 쫓겨나는 상인들, 유대인들의 모의, 최후의 만찬, 유다의 배반, 예수의 체포, 대제사장의 사형판결, 십자가 행진, 골고다 언덕에서의 십자가 형, 예수의 죽음과 그의 부활까지, 소위 고난주간이라 일컫는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 간의 삶들을 예루살렘이라는 한 공간을 중심으로 절묘하게 배치함으로써 여기서 표현되고 있는 사건의 경과를 그림을 바라보는 시선의 이동을 통해 함께 체험할 수 있게 한다. 우린 그림의 왼쪽 위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다시 왼쪽으로 이어지는, 마치 책을 읽을 때와 같은 시선 이동을 통해 예수가 체포될 때 까지 사건의 전개를 읽는데“, 그 사건의 긴장감은 이어 도시의 중심이자 그림의 한 가운데에서 이루어지는 대제사장의 사형판결을 통해 절정에 달한다. 그 후 시선은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의 걸음을 쫓아 성벽을 오른쪽으로 돌아 저 위 쪽의 언덕을 향해 가면서 이전에 일어났던 모든 시간적 사건들을 다시한번 공간적으로 조망하게 된다. 그림의 왼쪽 위,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과 대응점을 이루는 오른쪽 끝에서 부활해 승천하는 예수의 모습은 이 전체 서사의 결말이자 마침표인 셈이다.

 

근대까지 서양미술의 큰 쟝르를 차지하는 순교 성인들을 그린 그림들은, 이처럼 그림 속에 공간화되어 존재하는 서로 다른 시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다. 그건 바로 순교자라는 단어 자체가 시간성과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순교자는 특정 종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다. 그들이 순교자로 불리는 건 그들이 죽었기때문이다. 누군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그는 아직 순교자가 아니다. 바로 이 때문에, 크리스트교 신앙의 확산에 부인할 수 없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들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는, 그를 말이나 글로 전할 때는 없던 표현의 문제가 생긴다. 도대체 순교자와 그들의 순교 행위를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할 것인가? 이들을 아직 순교하기 전, 말하자면 죽기 전의 모습대로 그린다면 이는 순교자 그림이 아니라 다만 특정 인물들의 초상화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죽은, 그래서 비로소 순교자가 된 이들의 시체를 그림으로 그려, 누구 누구 순교자라는 제목을 붙여 보여줄 수만도 없다. 그건 시체 보관소의 시체들을 상기시킬 것이다. 이 난점을 해소하기 위해 서양 회화가 택한 방법은 이들 순교자들을 아직 살아 있으면서도 이미 순교자인 상태로, 말하자면 아직 죽지 않았으면서도 이미 죽어 순교자가 된 상태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를위해, 그림은 위에서 언급했던 서사의 시각적 재현의 원리를 따라, 죽기 전의 순교자와 죽은 순교자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적 간극을 한 그림 속에 동시에 공존시켜 표현하게 되었다. 

 

이 대표적인 사례를 우리는 1416 Henri Bellechose가 그린 <데니스 성인의 순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그림에서 주인공 Denis성인은 총 네 번 등장한다. 왼쪽 아직 감옥에 갖혀있을 때의 그의 모습과 오른쪽 끝, 붙들려와 사형을 기다리는 모습, 그리고 형틀에 댄 목이 반쯤 잘려나간 모습, 마지막으로 완전히 목이 잘려 바닥에 누워있는 모습이 그것이다. 우린 이제 이 네 명의 데니스가 동일한 인물이 서로 다른 시간에 겪어야 했던 사건들을 공간적으로 시각화시킨 것이라는 걸 안다. 흥미로운 사실은 감옥에 갇혀있던 데니스에게선 보이지 않던 성인을 상징하는 후광이 사형을 기다리는 데니스에게서부터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목 잘리기를 기다리고 있던 순간의 데니스는 아직 죽지 않았건만, 그에겐 이미 순교자로서의, 말하자면 종교를 위해 죽은성인으로서의 지위가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시간에 일어난, 그러나 한 그림 안에 동시적으로 표현된 사건들 사이의 이러한 시간적 간극은 성인과 사형수 사이에서도 발견되는데, 아직 사형 집행인이 칼을 내려치지도 않았는데 데니스 성인의 목은 이미 반쯤 잘려 나갔고, 또 한 명의 데니스는 아예 목이 잘린 채 뒹굴고 있다. 화가는, 사형 집행인이 칼을 들어올리고, 사형수의 목이 잘리며, 잘린 목이 바닥에 나 뒹구는, 단두형의 가장 극적인 순간의 장면들을 동시에 배치함으로써, 움직이지 않는 그림들을 통해 움직이는 시간의 생생함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1653 Guercino가 그린 <카트린 성인의 순교> 1628년 니콜라스 푸쎙이 그린 <에라스무스 성인의 순교>에서도 그외 대부분의 순교성인 그림들에서도 마찬가지로 -  우리는 이러한 살아있는, 그래서, 아직 순교자가 아닌 인물들을, 이들이 죽고 나서야 비로소 차지하게 될 순교자라는 지위로 표현하기 위한 화가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그림 속의 카트린과 에라스무스는 아직 죽지 않았건만, 저 하늘 위에선 푸토가 이미 순교자를 상징하는 월계관과 야자수 가지를 든 채 이들이 죽어 순교자가 되기를 기다리고있다. 그림 속에서 고문 당하며 죽음을 기다리는 성인들이 그들의 « 현재 »를 보여준다면, 저 푸토들은 이 그림엔 그려있지 않은 않은 이들의 순교자 성인으로서의 « 미래 »를 대변하고 있다. 이를통해 이 그림들 역시 서로 다른 시간에 일어난 사건들을 한 그림 속에 공존시킴으로써 그 사이의 시간 속에서 일어난 하나의 서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1] G.E. Lesseing : Laokoon, Reclam, XVI.

[2] Vgl. Carsten-Peter Warncke : Sprechende Bilder – sichtbare Worte. Das Bildverständnis in der frühen Neuzeit, Wiesbaden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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