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은 물건들의 대도시다. 거기엔 자신이 원래 속해있던 장소와 시간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물건들이, 마치 태어나 살던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몰려든 실향민들처럼 모여있다. 자신이 있던 장소를 떠나 여기, 인위적이고 제도적인 장소 박물관에 모인 저 물건들은, 다만 명찰처럼 붙어있는 안내판을 통해서만 자신이 떠난 장소와 시간을 이야기한다. 태어나고, 속해있던 장소를 통해 특징지워져야 할 저 물건들의 정체성은 여기선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의 컨셉에 따른 새로운 사물의 질서 속에 재배치되어, 그 속에서 자신의 역할과 임무를 부여받는다.

도시에 살고있는 ‘장소를 잃은’ 사람들이 그래도 사투리를 통해 육체에 남겨진 자신의 장소의 흔적을 드러낸다면, 문외한인 우리에게 저 물건들의 육체는 그들 장소의 어떤 흔적도 말해주지 않는다. 박물관에 모인 저 물건들의 무장소성 Ortslosigkeit은 또한 그 물건들의 무시간성을 결합되어 있다. 원래의 장소에서라면 시간 속에서 변하고, 퇴색하고, 허물어지며 사라져갈 저 물건들은 여기 박물관에선 방습기와 전문적 처리를 통해 시간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나 보존되어 있다. 서로 다른 시간, 나아가 서로 다른 시대의 수많은 물건들이 ‘지금과 여기’의 한 장소에 모여있음으로써 박물관은 저 무시간성의 특성을 배가시킨다.

박물관은 수십년, 아니 수백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지니고 있는 저 많은 물건들을 단 몇시간 동안에 일별할 수 있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과거의 시간들을 응축된 형태로 체험할 수 있게 해 준다. 며칠, 아니 몇십년에 걸쳐 일어난 이야기를 단 두시간 반에 응축해 보여주는 영화적 지각에 익숙해있는 우리에게 박물관은 저 장소를 잃은 다양한 시대의 물건들이 번갈아 가며 출연하는 무성영화관 같다.

 박물관의 물건들은 자신의 아우라를 박물관이라는 장소의 권위로부터 얻는다. 원래의 장소와 시간과 결부되어 있던 저 물건들의 아우라는 이제, 이 물건이 진품임을 보증해주는 박물관의 제도적 권위에 의해 생겨난다. 복제기술의 발달이 물건들을 자신의 원래의 장소와 시간으로부터 해방시켰고 그를통해 그와 결합되어 있던 아우라를 상실케 했다면, 이제 사람들은 그 복제품들과 구별되는 (혹은 구별되어야 할) ‘오리지널’을 박물관이라는 장소에 갖다 놓음으로써 물건들의 잃어버린 아우라를 박물관의 아우라를 통해 상쇄하려 했다. 박물관들은 그곳에 유명한 물건들의 ‘오리지널’이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통해 자신들의 권위와 아우라를 만들어내었고, 또 이렇게 생겨난 박물관의 권위와 아우라는 역으로 그곳에 소장되어 있는 물건들의 ‘진품성’을 강화시켜 주는 제도적 바탕이 된다. 런던의 대영 박물관, 파리의 루브르,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들은 그들이 소장하고 있는 ‘오리지널’을 통해 자신들의 권위와 아우라를 얻었고, 또 그를통해 그곳에 전시되고 있는 물건들의 진품성에 대한 믿음을 강화시킨다. 자신의 원래의 장소를 잃어버린 물건들은 이렇게, 박물관이라는 장소의 제도적 아우라를 통해 자신의 상실했던 아우라를 보상받는다.

사진과 화보, 인터넷 등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구경할 수 있는 물건들을 굳이 저 ‘유명한’ 박물관들에 가서 보고 싶어하는 우리들은, 우리처럼 자신의 장소와 시간을 잃어버린 물건들이 보여주는 커리어의 변신을 동경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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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세계에 대한 우리 지각의 흔적이다. 살아가는 동안 어쩔수 없이 세계를 지각하고 체험해야만 한다면, 기억은 우리의 삶이 우리의 육체 속에 남겨놓은 세계의 흔적들이기도 하다. 때로 우리는 기억을 위해, 기억만을 위해 지각하기도 한다. 헤어져야 하는 친구를, 사별하는 부모를, 먼길을 떠나는 자식을 우리의 기억속에 남겨놓기 위해 우린 그들의 손을 잡거나 오랫동안 그의 모습을 바라보거나, 그와 함께 기억에 남을만한 이벤트를 기획하기도 한다.

 

때로 기억을 위한 지각 기억에 대한 강박으로 발전되는 경우도 있다. 짧은 시간에, 얼마 안되는 돈으로 가능한 많은 곳을 돌아 다녀야 하는 배낭여행이 예다. 거기에서 우리의 지각과 체험은 다만 기억을 위해 조직화되고, 빠른 시간에 되도록 많은 곳과 많은 것들을 체험하고 그를 기억 속에 쑤셔넣어야 한다는 강박이 우리를 쫓는다. 기억을 위한 숨가쁜 여정이 피곤한 육체에 더이상 기억의 공간을 남겨두지 않을 때를 대비, 우린 대표적인 비육체적 보조 기억장치인 카메라를 활용한다. 카메라는 성급한 체험과 지각의 과잉을 수용하길 거부하는 육체를 대신해 우리의 지각과 체험을 기억하는 과제를 떠맡는다. 우린 에펠탑과 개선문 앞에서, 뽕삐두와 오페라 하우스 거리에서 유명한건물과 거리들에 대한 지각과 체험을 카메라에게 일임시킨다. 낯선 도시에 대한 우리의 체험과 지각은 그들을 찍는 렌즈 화면과 셧터를 누르는 손가락으로 대체되고, 우린 카메라가 대신 모든 체험과 지각들을 고스란히 기억해 주기를 바라며 다음 예정지로 서둘러 발길을 돌린다.

 

이렇게 사물화된 지각과 체험은 그러나, 인화되어 나온 사진들 속에서 우릴 배반한다. 에펠탑과 뽕삐두 앞에서 찍은 사진들은, 피곤한 여행에서 돌아와 그들을 들여다 보는 우리에게 그가 정작 기억하고 있었어야 우리의 체험과 지각에 대해선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곳에 있었다라는 사실을 사무적으로 기록해 놓은 증빙서류들로써 사진들은, 실상 어떤 체험과 지각도 없이 그곳에 부재하고 있었던 역설적으로 폭로하고 있다.   

 

사진은 우리의 육체적 지각과 체험이 함께 동반되었을 때만 기억으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그를 찍었던 시간과 장소에 대한 체험과 지각이 결핍된 사진들은 그저 사진의 고전적 기능 하나였던 기록과 도큐멘트로서의 의미[1]만을 지닌다. 세계 도처의 유명한 건물, 탑과 성당, 작품들과 도시들의 사진을 언제든지 구해 있는 오늘날, 사진을 찍는 혹은 사진에 찍히는 주체와의 주관적 관련이 없는 사진들은 어떤 기억의 가치도 지니지 못한다.  

 

이러한 사정은 우리 자신을 사진들 속에 끼워넣는방법을 통해서도 그리 크게 변하지 않는다. 우린 우리가 방문했었던 건물, 거리, 장소들 속에 자신의 모습을 함께 찍어 넣음으로써 시간과 장소에서의 나의 현존 증거하려 한다. 그러나, 그를통해 드러나는 것은 나의 체험하지 못하는 육체가, 육체에 의해 체험되지 못한 장소들 속에 물건처럼 놓여 있었다 메시지일 뿐이다. 기억에 대한 강박을 통해 사진 속에 함께 찍힌 나의 모습은 속에 있는 모든 시간과 장소들 내에서의 나의 강박적 현존의 흔적일 뿐이다. 나의 모습을 포함하고 있는 사진 속의 사물들은 나에 의해 체험되지 못한 관광엽서의 그림들처럼 거기 그냥 그렇게 있다. 

 

핸드폰 카메라는 사진이 주는 기록과 기억에의 강박을 더욱 강화시켰다. 일상 속에서 좀처럼 체험하기 힘든 사건이나 장면들을 순발력있게 기록할 있게 주는 핸드폰 카메라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이 맞닦뜨린 사건과 장면들을 기억과 기록에의 강박없이 지각하고 체험하기 힘들어졌다. 사건과 엽기적 장면, 뉴스꺼리가 만한 일상의 순간들은 놓치고 사라지기 전에 사진으로 찍혀, 사진을 찍은 내가 시간과 장소에 있었다라는 자기 현존의 메시지로 활용되어야 한다.

 

이전 시대의 세계가 우리에게 그에 대한 지각과 체험을, 그를통해 자신에 대한 기억을 요구하던 정열적인 여인이었다면, 오늘날의 세계는 우리에게 그의 모든 순간과 장소에 우리가 다만 금욕적으로 현존하기만을 요구하는 성처녀다.       



[1] 사진이 오늘날처럼 자신의 사적인 일상사를 기록하는 기호품이  되기 사진은 공간적, 혹은 시간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대상들을 기록하는 도큐멘트로서의 역할을 했다. 유럽 근대 인간학Anthropologie 인류학과 나아가 사회학의 발생엔 20세기 사진을 통한 비유럽 문화들의 기록이 커다란 역할을 했었다. 사진들은 유럽 식민주의의 시선을 통해 비유럽이라는 타자 구성해내는 시각적 도큐멘트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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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엔 우릴 매료시키는 물건들로부터 출발한다. 누군가가 가지고 있던 장난감, 우연히 고물상에서 접한 옛 물건, 헌책방에서 만난 한권의 멋진 고서적 등이 우리 내부의 수집가적 열망에 불을 붙인다. 그리곤 우린 매혹시켰던 그 물건들을 자신의 공간 속에 가져오려는 욕구로 밤잠을 설치기 시작한다.

수집가들은 물건들을 소유하고 가지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이 수집하고자 하는 물건이 저기, 저 곳에, 나아가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들은 박물관에 혹은 골동품 가게에 '만지지 마시오'라는 딱지와 함께 붙어있는 물건들을 멀찍이 구경하는 것만으론 성이 차지 않는다. 그들은 그 물건을 자신의 것으로, 자신의 공간 속으로 가져와 언제든지 꺼내 만져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수집가들은 발터 벤야민이 멋지게 표현했듯, 촉각적 본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1

자신이 수집하는 물건들을 언제라도 자신이 원할 때 자신에 앞에 현전하게 만드는 참된 방법은 그것들을 우리의 공간 속에 가져다 놓는 것이다.2  이 점에서 수집가들은 등산자나 산책가 혹은 박물관 방문자 들과는 다르다. 등산자나 산책자, 박물관 방문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물건들이 있는 공간에 자기 자신을 가져다 놓음으로써 그 물건들을 자신 앞에 현전하게 만든다. 등산가는 배낭을 메고 산에 오름으로써, 박물관 방문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이 전시되는 박물관을 방문함으로써 스스로를 만족시킨다. 그러나, 수집가들은 물건들을 자신의 공간 속으로 가져다 놓아야만, 언제든지 자신이 원할 때 그것들을 자신 앞에서 현전하게 만들 수 있도록 그 물건들을 아예 소유하고 가지고 있어야만 적성이 풀리는 인간 들이다.

일단 어떤 물건들을 수집하기 시작하면 이제 수집가는 또 다른 하나의 형이상학적 욕구에 의해 이끌린다. 총체성, 완전성에 대한 욕구가 그것이다. 물건들이, 그것이 어떤 물건이든 수집가에 의해 분류되고 범주화되면 그것은 하나의 완전한 체계적 총체성을 지향한다. 분류나 범주화는 곧 그를 통해 하나의 체계를 완성하려는 형이상학적인 총체성 욕구의 출발점이다.3

자신이 수집한 물건의 체계에 무엇인가가 빠져있다는 결핍감은 수집가로 하여금 그 빠져있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채워넣으려는 욕구에 안달하게 한다. 연도별로 수집한 책들 중 빠져 있는 1949년 판과 유럽 모든 국가의 주화모음에서 비어있는 덴마크 주화의 자리는, 그를 바라보는 수집가의 가슴에 휑하니 비어있는 구멍을 만든다. 그리곤 어떻게 해서든 그를 채우고 나서야만 비로소 치유되는 완전성의 결핍이라는 병을 낳는다. 낯과 밤, 하늘과 바다, 나무와 풀, 해와 별, 물고기와 새, 온갖 들짐승들을 지은 신이 천지 창조의 여섯째 날 '자신의 모습을 닮은 인간'을 만듦으로써 창조를 완성했듯이, 수집가는 자신의 수집물에 빠져있는 공백을 채워넣음으로써만 일곱째 날의 안식을 맞이할 수 있다.

수집가에게 있어 물건들은 다만 그 물건 자체의 가치로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수집가에게 그 수집품들은 그 물건들의 과거, 물건들의 역사를 통해 말을 건다. 수집가에게 자신의 수집품들은 그것이 얼마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얼마나 희귀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디에서 생산되었고, 어떤 진귀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등의 그 물건 자체의 기원과 역사뿐 아니라, 그 물건과 수집가와의 관계의 역사, 곧 그 물건을 자신이 어디에서 발견하였으며, 그것을 처음 보았을때의 감격은 어느 정도였는지, 그리고 어떤 힘들고 아슬아슬한 과정을 거쳐 자신의 손에 넣게 되었는지 등의 역사를 통해 더 큰 의미를 갖는다. 그는 보관해둔 자신의 수집품 하나 하나를 다시 꺼내 볼 때마다 그 물건과 자신 사이에 일어났던 과거를 회상하며, 마치 뮤즈 신에 의해 영감에 빠져들듯 그 물건과 자신 사이의 과거가 주는 아우라4에 빠져든다. 그 물건을 구하는 과정에 얽힌 우여곡절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물건이 수집가에게 갖는 아우라는 더 크고 오래 지속될 것이다. 그 물건들을 통해 영감을 받은 수집가가 자신의 물건을 꺼내 바라볼때 '그는 마치 그 물건들을 통해 물건들의 저편을 바라 보고 있는 마법사와도 같다.'5

저 책의 이전 소유자, 애초의 구입가격, 경매장에서의 긴장감, 그리고 처음 그 책을 손에 잡았을 때의 환희 등이 저 책이라는 물건과 더불어 수집가의 진열장에 꽂혀져있다. 책장에서 그 책을 뽑아든 수집가에게 그 책은 자신의 과거들을, 자신의 역사성을 수집가에게 펼쳐보임으로써 수집가를 마법사와 같은 도취에 빠지게 한다. 수집가에게 자신의 수집품들이 갖는 아우라는 그 물건들이 수집가에게 펼쳐보이는 물건들의 역사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관상학자가 사람들의 얼굴 모습만을 보고 그의 과거와 그의 운명을 읽어내듯이 우리의 수집가들은 자신의 수집물을 보면서 그 물건의 과거와 그것의 숙명을 읽어낸다. 그러한 점에서 그들은 벤야민이 말하듯 '물건의 관상학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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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alter Benjamin, Das Passagen-Werk,Shurkamp 1982, Erster Band, S.274

2Walter benjamin, O.g. S.273

3개별적인 것들이 주어져 있을 때 그로부터 존재하지 않는 보편자를 추출해내는 능력인 칸트의 '반성적 판단력'은 현상계에서는 사실상 그에 대해 알 수 없는 가상적 완전성을 이성 이념으로 상정하게 한다. 이미 보편이 알려져 있을 때 개별적인 것들을 그 보편아래 포섭시키는 '규정적 판단력'이 그러한 점에서 존재하는 사물들로 구성되는 하나의 체계를 지향하지만, 우리의 경험을 통해 사실상 인식할수 없는 그 체계의 완전성의 이념은 반성적 판단력을 통해서 요청되는 것이다.

4발터 벤야민의이 말하는 '아우라'가 이처럼 대상이 갖는 역사성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말하는 '복제가 아닌 진품이 갖는 아우라'를 통해서도 설명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진품 모나리자가 우리에게 주는 아우라는, 저 그림 속에 다빈치의 손길과 숨길이 직접 닿았었다는 역사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복제품은 그 그림의 '내용'을 전달해줄 수는 있지만, 그 진품이 갖는 물질적 역사성을 전해주지는 못하며, 그런 점에서 진품이 갖는 아우라를 갖고있지 못하다.

5Walter Benjamin,O.g.S.274/275

6walter benjamin, S.273

7Walter Benjamin,S.274

8Walter Benjamin,S.274/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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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jami

 

 

벤야민, 하이데거, 카프카.

 

이름만으로도 우리에게 유명한 이 세 명의 독일인들이 한 때 동일한 시간, 동일한 공간 속에서 살았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어떤 신비로운 감정을 느끼게한다. 마치 플라톤과 비트겐스타인이 우연히 동네 비디오 방에서 만나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면 갖게 될 그런 감정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한 명 한 명의 이름과 그들의 저작만으로도 충분히 우릴 주눅들게 하는 저 세 명의 철학자와 문학자들은 같은 시대를 공유했던 동시대인들이었다. 이들은 서로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지만, 이 세 명의 삶의 괘적은 마치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에서처럼 이곳 저곳에서 서로 엇갈리며 교차하고 있었다.

1892년 베를린에서 태어나 1940년 스페인 국경에서 자살한 발터 벤야민과 1889년 태어나 1976년 프라이부르크에서 사망한 마틴 하이데거 사이에는 삼년의 나이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912년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철학 공부를 시작한 벤야민은 그 해 여름학기 철학과에서 개설된 리케르트 Rickert 교수의 „인식론과 형이상학 입문“ 강의를 수강한다. 벤야민 보다 조금 먼저 같은 대학 철학과에서 공부하던 마틴 하이데거 역시 같은 학기 리케르트 교수의 이 강좌를 수강하였다. 말하자면 발터 벤야민과 마틴 하이데거는 1912년 여름학기 같은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들었었다는 말이다. 이제 막 철학공부를 시작한 벤야민과 아직 박사과정 중이던 하이데거가 서로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구나 그 강좌의 수강생은 100명이 넘었다. (Autenthalte und Passagen, Leben und Werk Walter Benjamins, Willem van Reijen und Herman van Doorn, 2001, 25 쪽)

 


hrd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각자의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게 될 두 명의 철학자가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한 채 1912년 여름 같은 강의실에 앉아 함께 수업을 들었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어쩌면 하이데거는 그 수업 중 당시 형이상학 이론의 대가였던 리케르트 교수에게 날카로운 철학적 질문을 던졌을 것이고, 그 질문은 이제 막 철학 공부를 시작했던 그 강의실의 수강생 벤야민의 철학적 사유에 자극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당시 이미 프라이브르크 대학에서 '청년운동'에 연계되어 있었던 벤야민이 저명한 철학교수에게 대학개혁에 관한 비판적 문제제기를 했을 것이고, 이것이 학구적 철학도 하이데거의 눈에 거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둘은 어쩌면 서로를 알지 못한 채 바로 옆자리에 앉아 눈인사를 나누었을지도 모른다.

 


 

1883년 태어난 프란츠 카프카는 1924년 비인의 요양소에서 사망하기 불과 몇달 전까지, 그러니까 1923년 9월부터 1924년 3월까지 그의 여자 친구인 도k라 디아만트 Dora Diamant 와 함께 베를린에 살았다. 벤야민은 1915년 카프카의 작품을 처음 접했고 이후 그의 작품을 통해 받은 깊은 인상을 1934년 그가 죽은지 10주기를 기해 카프카에 대한 글을 써 남기기도 했다. 프란츠 카프카가 베를린에 살았던 이 기간 동안, 프랑크프르트에서 다시 베를린으로 올라온 발터 벤야민은 1923년 11월부터 1924년 4월 카프리로 여행을 떠날때 까지 계속 베를린에 머무른다. (Autenthalte und Passagen, Leben und Werk Walter Benjamins, Willem van Reijen und Herman van Doorn, 2001, 86/87쪽)

 당시 카프카가 여자 친구와 함께 살던 미쿠엘 가 8번지와 벤야민이 머물렀었던 그의 아버지 집 델브뤽 가 23번지는 걸어서 8분 정도 거리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Bucklicht Männlein und Engel der Geschichte : Walter Benjamin. Theoretiker der Moderne, Ausstellung des Werkbund-Archivs im Martin-Gropius-Bau in Berlin, 28.Dezember 1990 bis 28.April 1991, 1990)

어쩌면 그 사이 벤야민은 집에 오가는 도중 폐렴에 걸린 가슴을 움켜잡고 쿨럭거리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던 한 명의 수척하고 창백한 병자를 목격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카프카는 어느날 산책길에서 삼층짜리 저택으로 들어가던, 말끔한 복장의 한 부르조아 지식인을,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늘 우수에 어려있는 그의 눈동자를 마주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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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5-04-02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글입니다!!

김남시 2005-04-02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글이 멋지다기 보다는, 이 글을 낳게했던 저 세명의 삶의 좌표들이 그렇지요. 감사합니다.
 

 

니체는 역사를 직접적 생의 발양을 가로막고 현존하는 것을 정당화시키는 이데올로기로 보았다. 소위 교양의 이름으로 강요되던 넘쳐나는 과거역사에 대한 지식과, 현존하는 것을 역사적 필연성이라는 목적론을 통해 정당화시키던 헤겔식의 목적론적 역사관은 니체에겐 현존하는 권력에 대한 냉소적 긍정으로 이어지는 숙명론을 낳는 시대의 질병이었다. 19 세기를 지배하던 역사의 진보와 목적에 대한 믿음은 현재의 사건과 삶들을 저 목적실현을 위한 수단이자 과정으로 격하시켜 버리고, 현재에 대한 비판을 무력화시킨다. 과거에 대한 강요된 기억으로서의 역사적 지식은 생의 직접성을 가로막고, 새로운 것과 창조적인 것을 .어차피 과거에 이미 있었던 것’이라는 냉소주의를 통해 부정하게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필요한 것은 이제 직접적 생에로의 진전을 가로막는 역사와 기억이 아니라, 삶에의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며 우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비 역사와 망각이다. 망각하지 못하는, 그래서 철두철미 역사적이기만 한 인간은 마치 .잠을 자지 않도록 강요된 사람“이나, .되새김질을 통해서만 계속해서 되새김질을 통해서만 살아야 하는 짐승“ 과 같다. 역사는 삶에 기여해야지 삶이 역사의 제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지나친 역사는 오히려 삶을 해친다. 기억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짐승들이 보여주듯 아무런 기억없이 행복하게 사는 것은 가능하지만 망각이 없이 산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러한 점에서 니체는 망각을 우리의 에너지를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삶에로 집중하게 하는 적극적 능력이자 힘이라고 말한다. 

 

영화 <올드보이>의 오대수는 이러한 기억의 소화불량으로 고통받지 않는 건강한 망각의 인간이었다. 그에겐 술을 먹고 경찰서에 가고,행패와 패악을 부려도 그를 잊고, 다시 삶에 매진하게 하는 망각의 힘이 있었다. 그는 기억을 되새김질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겐 결핍되어 있는 저 망각의 능력을 통해 늘 현재에, 삶에 충실할 수 있는 그런 인간이었다.

 

 이 망각의 힘은 그러나, 이유를 알지 못하던 고통스 15 년의 감금생활을 통해 점점 쇠퇴해간다. 그는 점점 이전의 망각의 힘을 잃고 기억의 노예로 변한다. 그는 자신의 과거의 삶들을 하나 하나 떠올리면서 누가 자신을 이렇게 증오했었는지 기억하기를 강요받는다. 그래도 떠오르지 않는 과거로 인해 그는 점점 자신의 과거에 대한, 자신의 기억에 대한 막연한 복수를 꿈꾸는 과거의 노예가 된다. 감금방에서 풀려난 후에도 오대수는 여전히 자신의 과거를, 자신의 기억을 쫓도록 강요된다. 15년간 먹었던 만두에 대한 기억을 통해, 그리고 치밀한 계획에 따라 그에게 주어지는 작은 실마리들을 통해 그는 자신의 과거를 하나,하나 쫓아다녀야 한다. 망각의 힘을 잃고 과거에 묶인 그는 이제 더 이상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괴물이 되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이진우의 복수의 핵심이 있었다.

 

이진우에겐 오대수가 가지고 있던 망각의 힘이 없다. 그는 과거를 망각하지 못하고, 의 삶 전체는 과거의 기억으로, 그 과거에 대한 복수를 향해있다. 그의 현재는 다만, 저 과거를 위한, 기억의 복수를 위해서만 존재한다. 그리고 그 복수는 오대수가 가지고 있던, 그래서 그를 더욱 분노케하는 망각의 힘을 파괴시키고 그로 하여금 과거의 기억을 쫓, 나아가 그 기억으로 인해 스스로를 파괴시키도록 하는데 있었다. 오대수를 자신과 같은 기억의 노예가 되게 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복수는 성공한다. 아니, 지나치게 승리해 버린다. 이미 고통스런 감금을 통해 기억과 복수의 괴물이 된 오대수에겐 또 하나의 기억, 그의 마지막 남은 복수에의 의지 그리고 이는 그나마 살아 남아있는 삶에의 의지이기도 한데 - 마저 파괴시키는 결정적인 기억이 부과된다. 자신의 딸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기억. 이제 오대수는 최면술로 그 기억을 지워버리고서야 살아나갈 수 있는 폐인이 되고, 철저하게 자신의 복수를 완수한 이진우는, 자신의 현재를 지탱시켜 주던 과거와 기억을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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