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의 사용가치는 구입 (교환) 동시에 실현되지는 않는다. 그건 우리가 모든 물건들을 구입한 즉시 사용하고 소비해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상품들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나중에 사용(소비)하기 위해 보관되기도 하고 (예를들어 나중에 먹기 위해 보관해 두는 라면, , 고기 등의 생필품), 어떤 상품들은 사용가치의 실현을 위해 우리의 적극적 노력과 참여를 필수 전제로 한다. 휘트니스 쎈터나  스포츠 강습 , 혹은 학원의 어학코스 등은 그들의 사용가치 날씬한 몸매, 건강, 외국어 실력 - 실현하기 위해선 우리 자신의 능동적 노력과 참여를 필요로하는 상품들이다. 여기엔 책도 포함되는데, 사놓았지만 아직 읽지않은 책들은 우리가 시간을 내어 그를 읽기 전까지는 아직 자신의 사용가치 지식의 증가, 책읽기의 즐거움 실현시키지 못한 남아있는 상품들이다. 이런 상품 종류들의 사용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우리 자신의 능동적 참여가 여러 이유로 인해 게으름, 시간없음, 흥미상실 지연되게 되면 상품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사용가치엔 일정한 변화가 발생하게 된다. 음식이 상하고 변질되어 결국 버려야 하거나 휘트니스 쎈터나 학원 수강증의 유효기간이 끝나 버리는 경우에서처럼 상품의 사용가치가 아예 상실되어 버리거나, 아니면 책의 경우에서 처럼 실현되지 않은 원래의 사용가치 대신 다른 사용가치(예를들어, 서재의 장식품, 라면 덮개, 폐품 ) 그를 대신해 등장하기도 한다.

    

상품의 교환(구매) 사용가치의 실현(사용) 사이에 놓여있는 이러한 분리[1]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예로들었던 상품들은 여전히 사용가치의 실현 여부가 우리의 의지와 참여에 달려있다. 말하자면, 상품들의 사용가치는 사다놓은 음식을 상하기 전에 소비하고, 서가에 꽂혀있는 책을 부지런히 읽고, 수강료를 지불한 학원에 열심히 다니는 우리의 의지적 행동을 통해 실현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엔 사용가치의 실현여부가 우리의 의지적 행동과 참여로부터 분리되어 있어서 우리가 아무리 부지런하고, 적극적이며, 열심히 노력하더라도 그것의 사용가치를 실현시킬 없는 상품도 있다. 보험이 그것이다. 보험 상품의 사용가치는 사고가 났을 그를 보상받는 데에 있다. 책을 사거나 외국어 학원을 등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험의 사용가치 역시 상품의 구입과 동시에 실현되지 않는다. 그러나, 책이나 학원 과는 달리 보험 상품의 사용가치는 우리의 의지적 행동을 통해서 실현되지 않는다. 모든 보험 상품들은 의도적으로 발생한 사고에 대해선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을 근본원칙으로 삼고 있으며, 이를통해 보험의 사용가치의 실현은 우리의 의지적 행동이 아니라 전적으로 우연적이고 예측할 없는 사고 가능성에 의존되어 있다. , 보험의 사용가치는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우연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불안한 과정 자체에 의해서만 실현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보험상품의 사용가치를 실현하게 하는 이런 사고들이란 사실상 결코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모든 상품들은 그것의 사용가치의 실현을 즐기고, 향수하기 위해 구매하는데 반해, 보험상품을 구매하면서 우리는 자신이나 가족에게 자동차 사고가 나기를, 집에 화재가 발생하기를, 누군가 갑자기 암에 걸리기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모순적 상품, 보험을 우리는 구매하는가? 말할 것도 없이 그건 우리가 살고 있는 자체가 예측 불가능한 온갖 위험성들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상품들이 그것의 소비(사용) 가져다   비록 가상적일지언정 어떤 행복에의 약속[2] 때문에 구매된다면, 보험이라는 상품은 이처럼 오늘날 현대인의 자체가 처해 있는 불행에의 가능성 때문에 구매된다. 

   

교황의 면죄부를 구입했던 중세인들은 최소한 자신이 구입한 상품(면죄부) 사용가치가, 살아있을 때는 아니더라도 죽어 영혼이 하늘에 올라갔을 때는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한 점에서 16세기의 면죄부는 오늘날의 보험에 비해 보다 확실한 상품이었다. 보험상품을 구입하는 현대인들은 모순으로 가득찬 상품의 사용가치가 실현될 것을 확신할 수도, 바랄 수도, 그렇다고 그것의 실현 가능성을 완전히 부인할 수도 없다. 보험은 오늘날 우리의 삶이 처한 온갖 모순적 관계들을 반영하고 있다.      

 

 



[1] Alfred Sohn-Rethel 상품의 교환과 사용의 분리를 자본주의적 상품관계의 핵심으로 파악한다. 그에 의하면 시장에서의 교환을 전제로 생산되는 상품들은 구매를 통해 개인 소비자에게 이전(교환)되기 전까지는 사용되지 않은 남아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교환에 있어서의 사용의 배제 (Nichtgeschehen) 결핍(Leere)이라는 상품관계에 행위와 의식, 행동과 사유, 나아가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리가 기인한다고 본다. Alfred Sohn-Rethel : Geistige und körperliche Arbeit. Zur Theorie der gesellschaftlichen Synthesis, 1972. S.47 ff.

[2] Vgl. Wolfgang Fritz Haug : Kritik der Warenästhetik,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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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남시 님의 <보험, 모순으로 가득찬 상품>
    from 2007-08-03 01:11 
    그동안 보험 상품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막연한 거부감을 구체화시켜준 글. 그러나 여전히 주위에서는 내게 '보험의 필요성'을 시도때도 없이 환기시킨다. '보험가입을 피하는 101가지 요령' 같은 매뉴얼이라도 필요해보인다.
 
 
sandcat 2007-01-04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김남시 님.
저는 결혼 전부터 보험 들기가 꺼려졌는데 그 이유가 '미래'를 저당잡힌다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었어요. 불행, 우연의 사건, 사고를 담보 삼는다는 느낌. 무엇보다 불안한 마음을 사고판다는 것이 꺼림직했답니다. 공감하고 갑니다.

김남시 2007-01-04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sandcat님, 맞아요. 보험은 우리의 미래를 불행, 우연적 사건과 사고로 색칠해 보여주고는 그로부터 생겨난 우리의 불안한 마음을 담보로 자신을 판매하지요. 보험 속에 숨겨져 있는 저 '협박에 의한 강매'의 원리가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에요.
아이가 귀엽네요. 제 아들 (5살)과 비슷한 나이일 것 같은데...

sandcat 2007-01-05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후면 세 살이 됩니다. '협박에 의한 강매', 맞아요. 그런데 보험을 많이 들 수 있는 사람은 사실 불행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적은 사람이기도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좋은 날 되시길.

iggy 2007-08-03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퍼가려했는데, 오랫만에 와서 그런지 도무지 어케 해야하는지 몰라 먼댓글로 표시해둡니다. 여하튼 배워갑니다.

김남시 2007-08-21 18:0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iggy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