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현대적 미술
임근준 지음 / 갤리온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임근준의 책 "크레이지 아트. 메이디인 코리아"를 읽은 후, 구입한 것이다.  

"크레이지 아트. 메이디인 코리아"는 근래 읽어본 미술책 중  최고였다. 당대 한국의 미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그 책은, 어떤 분야, 특히 미술비평 분야에서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발품과 부지런함, 그를 감당하게 할 만한 열정이 필요한가를 알게 해 준 책이었다. 저자 임근준은 이 책을 위해, 아니 이미 그 전에 한국의 미술계를, 발로 직접 뛰어다니며 미술을 보고, 기록하고, 작가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체득’하였다. 임근준이 이야기하는 한국의 미술계는, 빈약한 참고자료나 외국의 이론서로부터 차용해 짜집기 해놓은 면피용 평론들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한국 현대 미술의 현장에 함께 '들어가 있던' 사람에게만 가능한 생생함으로 내게 다가왔다. 특히 <크레이지 아트>의 서문에 실린, 87년부터 99년까지의 한국 미술의 흐름을 대한민국의 현대정치사의 맥락 속에 정리해놓은 글은, 단언컨대, 한국 현대 미술사에 획을 긋는 기록이다.  한국 미술의 흐름을 당대의 정치, 사회적 맥락 속에서 포착하는 확고한 시각과, 각 해 일어났던 중요한 전시들을, 직접 개입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을 정확성과, 날카로움을 가지고 정리해놓은 이 놀라운 글은, 순식간에 한국의 현대미술을, 작가의 개성 혹은 이상의 표현이라고만 보는 낭만적 미학이론으로부터 가차없이 떼어 우리가 사는 이 땅의 현실 속에 위치시킨다. 이 짧지만, 수십명, 최소 십수년의 발품, 손품, 그리고 생각의 품이 담겨져 있는 이 글을 통해, 이 책에 소개된 총 25명의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은, 바로 한국 현대사회의 한 가운데에서 미술의 문제와 씨름하는 가운데 생겨난 것으로 설명된다. 그리고, 깊이 있지만 현학적이지 않고, 탄탄하면서도 재미있게 읽히는 그의 문장은, 한때 김현이 지적했던 대한민국 미술평론의 문제 - “미술평론들을 읽다보면 자꾸 작문 선생이 된다” - 는 진작에 넘어버리고는, 당대 미술 비평의 전형으로 손꼽힐만 하다.  

<이것이 현대적 미술>은 이러한 임근준의 전작에 대한 감동에서 아무 주저없이 구입한 책이다. 전작에서 다루지 못한 2003년 이후, 현대 미술, 특히 한국의 작가들의 미술적 고민을 그의 언어를 통해 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날 실망시켰다.

평론가 임근준의 장점은, 오늘날 인터넷이나 몇 몇 미술사 서적만 들춰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작가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주는데 그치지 않는, 그의 부지런한 발품,손품,생각품에 의해 일구어진, 그래서 그걸 읽으면 무언가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는 뿌듯함을 갖게하는 비평에 있었다. 그런데, 이 책 <이것이 현대적 미술>의 글들은 그렇지 않다. 신문 연재용으로 쓰여진 글들을 모은 것이라, 그러기에는 일단 글의 분량이 너무 짧다. 나아가 이 책에서는 한국작가보다 외국작가가 더 많이 다루어지고 있다. <크레이지 아트>에 실린 임근준의 글의 힘은, 그가 직접 작가를 만나 그들의 작업과정을 보고, 심지어 그들의 작업노트, 컴퓨터 파일들을 들여다보고 나서, 그러니까 종종 최종 결과물에서는 가시화되지 않는 작업과정 자체를 알기에 쓰여질 수 있는, 핵심을 찌르는 비평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짧은 지면안에, 그가 그런 방식으로 직접 접할 수 없는 외국 작가들의 이야기는, 그때만큼의 긴장감도, 읽고나서의 뿌뜻함도 주지 못한다. 

반복해서 이야기하지만 임근준 비평의 강점은 책 등을 통한 정보를 정리, 요약해주는데 있지 않다. 직접 작가를 만나고, 그들의 작업과정에 참여하고, 그들의 전시를 둘러보고, 한마디로 그 현장에 그가 부대낌으로서 생겨나는 생생한 현장감이 그의 비평을 살아있게 한다. 임근준 같은, 젊은 비평가가 그의 이러한 강점을 살려, 외국 작가들을 정리, 소개하기보다는 당대 한국 미술가들의 작품들을 그의 맛깔스러운 문장으로 보여주는데 전력한다면, 독자로서는 더욱 기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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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11-02-20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얼마전에 강연을들은 적 있는데...말을 너무 잘해서(조금 느끼하게) 놀랬는데, 이제 책을 읽어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