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닥토닥 그림편지 - 행복을 그리는 화가 이수동이 전하는 80통의 위로 토닥토닥 그림편지 1
이수동 글.그림 / 아트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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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를 건네는 이수동 화가의 그림편지

- 이수동, 『토닥토닥 그림편지』를 읽고

 

생각해보면 우리말 중에는 건넬수록 따듯한 온기를 불어넣는 말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맘때가 되면 새삼 생각나고 나누고 싶어지는 말이 있는데요, 이 말은 스스로에게 건네도 좋지만 타인과 나누면 더 좋습니다. 사실 이 말은 의태어입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동작으로 표현되는 언어. 가만히 혀를 놀려 발음해 보면 참으로 정감이 가는 말, 바로 ‘토닥토닥’입니다. 부부 사이에, 부모 자식 간에, 친구 사이 혹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관계들 속에서 자주 회자될수록 좋은 말이지요. 관계의 물꼬를 트게 해주는 말. 말이 필요 없는 말. 때론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말. 행복을 그리는 화가 이수동이 토닥토닥 위로를 건넵니다. 그림편지 가득 따스함을 담아서 말이지요.

 

저는 책을 좋아합니다. 글을 좋아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 텐데요, 그림책을 보더라도 글을 먼저 읽는 답니다. 글을 통해 그림을 보고자 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가끔은 그림에서 더 많은 글이 읽힐 때가 있습니다. 그림 속에서 자유로운 몸짓(굳이 사람의 것이 아니라도)을 발견하게 되면 이미 정형화된 글은 마음에 담아 둘 이유가 없어집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하니까요. 이수동 화가의 그림이 바로 그런 그림 중 하나랍니다.

 

산들 불어오는 바람에 옷깃이 날리듯 그의 화폭에 담긴 사람들의 몸짓은 사뿐 날아오를 듯 가벼워 보입니다. 어디론가 누군가로 향하는 그 몸짓에는 설렘과 사랑이 있습니다. 정겹고 그립고 따듯한 사람들.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몹시도 두근거립니다. 때론 노곤해지기도 합니다. 온기 때문이지요. 그, 그녀 혹은 그들이 나누는 몸짓 속에는 여유로운 휴식과 사색의 시간이 흐릅니다.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이 영원처럼 깃들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따듯한 포옹은 단연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인데요, 자꾸 보고 있자니 누군가를 가슴 가득 꼭 끌어안고 싶어집니다. 꼭 안기고 싶어집니다.

 

글 한 번 읽고 그림 두 번 보고 생각 세 번하고……. 물론 숫자로 셀 수 있는 것들이 아니지만 비중으로 따지자면 그렇다는 이야기지요. ‘행복을 그리는 화가’라는 수식어가 참 잘 어울리는 책이란 생각이 듭니다. 글과 그림 모두 따듯합니다. 부드럽고 온화하고 평온합니다. 볼수록 마음을 토닥토닥 어루만져주네요. 자꾸만 떠올리고 싶은 사람, 볼수록 기분 좋아지는 사람이 있는데요, 이수동 화가의 그림이 꼭 그렇습니다. 화려하지 않은 그의 글이 꼭 그렇습니다. 달을 향해 수줍게 피어오르는 달맞이꽃 같은 사람들이 있고 사람 같은 꽃이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책. 추워진 날씨에 옷깃만 여미지 마시고 마음부터 다독여보심이 어떠하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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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dy5 2011-12-23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좋아해요.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 지인에게 선물하기도 했지요. 말 그대로 토닥토닥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책이니까요.
 
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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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내가 과연 ‘나’인가
- 아멜리 노통브, 『오후 네 시』를 읽고
 
고문자(拷問者). 격동의 시절 암암리에 맹활약을 펼친 고문기술자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여기서 고문자란 어떠한 이유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 행동을 타인의 생활 반경 안에서 펼치는 사람을 말한다. 그로 인해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지고 생활은 중심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한다. 당신에게도 혹시 그런 고문자가 있는가? 전혀 다른 성향, 전혀 다른 성격, 전혀 이해 받지 못할 행동으로 평화로웠던 삶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려 드는 사람.
 
은퇴 후 시골에서의 한적한 삶을 꿈꾸어온 에밀과 쥘리에트 부부에게 첫 눈에 <우리집>이라고 단언할 만한 매력적인 집이 나타난다. 자그마한 시골마을, 눈에 보이는 집이라고는 의사가 살고 있다는 이웃집 한 채 뿐인 곳.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여차해서 일이 생기면 바로 도움을 청할 거리에 의사가 살고 있다. 이런 곳이라면 생의 마지막 날까지 머무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 아닌가. 그러나 행복은 일장춘몽일 뿐. 오후 네 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한 평생 꿈꾸어왔던 평화로운 삶은 수렁 속으로 빠져버리고 만다.
 
매일 오후 네 시만 되면 어김없이 문을 두드린다. 마치 자기 집인 양 들어와 안락의자에 몸을 묻은 채 두 시간동안 말없이 앉아 있다 돌아간다. 바로 유일한 이웃집에 산다는 의사 양반 팔라메드다. 먼저 말을 걸어오는 법이 없다. <그렇소>, <아니오>와 같은 긍정 혹은 부정의 대답만을 내뱉는다. 에밀이 굳게 마음을 먹고 <왜죠?>와 같은 구체적인 설명을 요하는 질문을 건네기라도 하면 경멸에 찬 눈빛으로 쳐다볼 뿐이다. 마치 자신에게 대단한 결례라도 저지른 것처럼 상대방을 무한하게 만들어버리는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 그렇지만 정작 자신이 범하고 있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은 결례가 아닌 것처럼 행동을 한다.
 
도대체 그는 왜 매일 일정한 시각에 방문을 하는 것일까. 물을 수도 없다. 문을 열어주지 않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내내 침묵으로만 일관할 수도 없다. 평생 ‘예의’로 중무장한 채 살아온 에밀은 이 침입자에게조차 예의를 다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아무런 말이나 거의 혼자 떠들다시피 해야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말이다.
 
살아가다보면 본의 아니게 특수한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극한의 상황! 그럴 때가 되면 사람은 자신의 숨겨진 내면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로부터 겪게 되는 정체성의 혼란. 나라는 사람은 과연 어떤 인간인가 하는 난해한 질문에 봉착하기에 이른다. 아멜리 노통브의 『오후 네 시』는 바로 이런 이야기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의 또 다른 일면을 깨닫게 된 어느 평범한 노인의 치명적인 고통과 극단적인 선택.
 
어찌 보면 이야기는 단순하다. 매일 오후 네 시부터 여섯 시까지 이웃집 불청객과 보내는 시간 동안의 상황이 주요내용을 이룬다. 앞서 이야기했듯 <그렇소>, <아니오> 혹은 긴 침묵만이 이어지는 그 대화 말이다. 그런데 긴장감이 넘친다.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하다. 서로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드는 표정과 말투 행동이 심각한 상황과는 반대로 위트 있게 펼쳐진다.  다소 무거운 주제를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작가의 재주 덕분에 흥미롭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살아가는 동안 사람이 지켜내야 하는 예의란 것이 어느 선까지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 막바지에 툭 하고 던져놓은 듯 마침내 드러나는 반전은 독자에게 궁극의 질문을 던진다. 내가 알고 있는 내가 과연 ‘나’인가 라는. 남들이 규정해 놓은 나를 진정한 ‘나’인양 착각하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세상의 속도전에 떠밀려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고 살아왔다면 한 번쯤 진지하게 돌아볼 기회를 마련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철학적이면서도 익살스러운 이 소설을 기회삼아서 말이다.
 
그런데 팔라메드는 정말 그 같은 결론을 원했던 것일까. 그것은 그에게 구원인가, 처형인가! 책을 덮고 나서도 질문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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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1-30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아멜리 노통브 저도 무지 좋아하는데!! 반가워요, 소울노트님 :)

soulnote 2011-12-22 00:51   좋아요 0 | URL
저도 반가워요^^ 말없는수다쟁이님!!! 이제서야 봤네요... 올 한 해 마무리 잘 하셔요^^
 
위로
이철환 글.그림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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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단 한마디면 충분하다

- 이철환, 『위로』를 읽고


한낮의 부산함이 모두 사그라들고, 발걸음조차 조심스러워지는 침묵의 시간이 찾아오면 소리들이 명징하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애써 귀 기울이지 않아도 귓전을 울리는 나직하지만 선명한 소리들. 그것은 세상의 소리이자 내면에서 들려오는 나의 소리이기도 하다. 그 소리들과 마주할 때면 마음이 헛헛해질 때가 있다. 때로는 정신이 또렷해지기도 한다. 대체 얼마만큼의 소란스러움 안에 갇혀 살았기에 주변을 맴도는 이 소리들을 듣지 못했을까 싶다가도 이제라도 말을 건네 오는 것이 고맙게 느껴지기도 한다. 듣는 것과 들리는 것의 차이를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는 내게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 책이 있다. 바로 『연탄길』의 작가 이철환의 신작 『위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이 때의 함박웃음을 잃는 일이기도하다. 아이는 하루 온종일 세상을 탐색하느라 바쁘다. 별 것 아닌 일에도 깔깔 웃고 걱정 없이 잘 자고 바지런히 움직인다. 자신의 세계에 푹 빠져 다른 것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어른이 되면 다르다. 무엇을 해도 타인의 이목에 신경을 쓰게 된다. 세상이 정한 기준에 삶을 맞추려하다 보니 불행하다고 느낄 때가 더 많다. 바로 불치병에 가까운 ‘비교병’ 때문이다. 책의 주인공 파란나비 피터 역시 타인의 삶을 부러워한다. 자신이 가진 파란날개의 매혹적인 아름다움은 모른 채 붉은 날개만을 동경한다. 원하던 것을 갖게 되면 과연 행복해질까. 결론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가진 것에 대한 만족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이 늘 더 큰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위로』는 재미있는 교과서 같은 책이다. 교과서처럼 바르지만 지루하거나 딱딱하지 않다. 이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를 읽다보면 세상의 진리와 순리를 깨닫게 된다. 조목조목 자세하고 친절한 가르침에 자주 밑줄을 긋게 된다. 그런 면에서 교과서와 비슷하지만 교과서에는 없는 감동이 있다. 파란나비 피터의 여정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위기의 순간과 맞닿아 있다. 피터는 붉은 날개를 갖게 되면 행복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때부터 불신 오해 약육강식 소통의 부재 권력의 쓸쓸한 이면 등을 경험하게 된다.


쓰라린 고통 뒤에 마침내 깨닫게 되는 이해 배려 소통에 관한 이야기. 고정관념이 얼마나 치명적인 편견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높이 올라가는 삶보다 깊이 있는 삶에 대해 고민해본다. 존재의 욕망과 이중성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단순히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의 차이에 따라 세상이 얼마만큼 달라질지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이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면 나도 누군가에게 진심어린 위로를 건넬 수 있을까.


‘위로’라는 말을 떠올리면 날 선 생각들이 경계 없이 허물어진다. 포근하고 따뜻해진다. 눈물이 핑 돌기도 한다. 약해보이지 않으려고 단단히 옭아맸던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놓게 된다. 내 안에 내제된 이중성과 양면성으로부터도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 홀가분하게 살 수 있을 것도 같다. 누군가 내게 따듯한 위로를 건네 온다면 정말이지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위로를 건네는 일도 받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처도 입지 않으려는 듯 저마다 철옹성 같은 벽을 쌓은 채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삶의 어느 순간, 타인의 위로가 절실히 필요한 때가 찾아와도 ‘나 좀 위로해 주세요’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한다. 위로는 단 한마디면 충분하다. 단 한 번의 손길, 단 한 번의 눈빛이면 충분한데 우리는 그것을 받지 못해 상처를 끌어안은 채 살아간다. 위로를 건네는 일에도 위로를 받는 일에도 익숙하지 않은 어찌 보면 서글픈 인생들. 이 책을 읽고 나면 용기가 생길지도 모른다. 위로받지 못해 헛헛한 마음을 누군가를 위로하며 채울 수 있는 넓은 아량이 생길지도. 슬프지만 아름답고 위로가 되는 책, 이철환의 『위로』를 읽고 자신부터 위로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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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dy5 2011-12-23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스스로를 위로해줄 책이 필요했는데,요 책 하나 입고 해야겠네요.
 
고양이와 선인장 - 사랑에 빠졌을 때 1초는 10년보다 길다
원태연.아메바피쉬.이철원 지음 / 시루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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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첫 눈에 알아본 순간, 이미 하나가 되었다
-원태연, 『고양이와 선인장』을 읽고

 햇살 좋은 창가에 화분을 내어둔다. 가끔 물을 주고, 가끔 말을 걸고, 가끔 눈길을 준다. 가끔이지만 지속적인 관심. 그래서일까. 화분 속의 그것은 생기가 넘쳐 보인다. 매끈한 줄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싱싱한 탄력. 나와 같이 숨을 쉬고 하루를 살고 있다는 생각에 묘한 동질감마저 느껴진다. 생명을 지닌 것에서 뿜어져 나오는 삶의 의지. 강렬하고도 애틋하다. 누군가 자신을 바라봐주는 대상이 있을 때 그 에너지는 더 강해지는 법. 첫 눈에 서로를 알아본 고양이와 선인장처럼 말이다.

 오디오그래픽노블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인『고양이와 선인장』은 원태연 시인이 10년 만에 내놓은 에세이집이다. 오디오그래픽노블? 낯설지만 새롭고 신선한 느낌! 곧바로 음악을 다운로드 받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창가에 놓아둔 화분에서 아이비가 바람에 한들거린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고양이 외로워와 선인장 땡큐의 가슴 두근거리는 사랑이 더 싱그럽게 다가온다.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거울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고 괜스레 미소도 짓게 된다. 전보다 더 애정 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것은 오로지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있을 때 가능한 일. 사랑은 사람을 새롭게 살게 한다. 어느 날 서로를 알아본 고양이와 선인장이 그랬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고양이와 선인장은 서로의 존재를 알아본 것만으로 이미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서로를 더 알고 싶은 호기심, 서로를 걱정하는 안부, 서로를 소유하고 싶은 질투,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관심……. 모든 사랑의 과정에 동반되는 이 복잡다단한 감정들이 고양이와 선인장의 마음에 투영되어 있는 책,『고양이와 선인장』은 빛처럼 맑고 투명하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삶은 고단하다. 괜스레 주눅이 들고 눈치를 보게 된다. 나도 불편하고 상대방도 불편해한다. 그쯤 되면 혼자일 때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삶, 나만의 공간 안에서 갇힌 듯 자유롭게 사는 법을 터득해간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일까. 소위 말해 사회부적응자. 고양이 외로워가 그랬고, 원태연 시인이 그랬다. 열일 곱, 처음 자신의 시가 남들에게 인정을 받았을 때부터 마흔 하나가 된 지금까지 원태연 시인은 시인도, 작사가도 영화감독도 아닌 인생을 살았다고 고백한다. 어느 곳에도 온전히 소속되지 못한 박탈감. 시인으로는 이례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지만 주목과 비난을 동시에 받아야 했던 인생은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그간의 마음고생이 고양이 외로워에 투영된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고양이와 선인장의 이야기는 비단 고양이와 선인장의 이야기만은 아니기에 공감이 간다.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을 떠나보내고 다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것. 살아있는 한 늘 반복되는 고질병과도 같은 것이 바로 ‘사랑’이다. 우리는 사랑 때문에 아파한다. 그러나 사랑으로 인해 충만해짐을 알기에 그 아픈 사랑을 자꾸만 되풀이하곤 한다. 반복되는 사랑, 그럼에도 어느 한 순간도 똑같지 않은 신비한 마법과도 같은 사랑. 때론 미.친.거.아.냐.라는 말을 들어도 좋을 만큼 사랑은 목숨을 걸게 만들기도 한다. 땡큐를 향해 온 몸이 부서질 듯 달려가는 외로워처럼.

 고양이와 선인장의 사랑이야기? 유치하지 않냐구요? 유치하지 않답니다. 가볍지 않냐구요? 글쎄요, 저에게는 가벼운 이야기만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원태연’이라는 이름이 만들어낸 선입견이 이 책을 유치하거나 혹은 가벼운 것이 아닐까 하는 근거 없는 추측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인을 따라다니는 수많은 수식어. 결국은 대중이 만들어낸 이미지가 그를 평가절하 해온 게 일정부분 사실이니까요. 실은 제가 그랬답니다. ‘원태연 시인의 책이네. 고양이와 선인장이라고? 유치할 것 같은데. 왠지 가벼워 보여.’ 이건 순전히 제 생각이었습니다. 원태연 시인으로 인해 한 시절을 무사히 건너온 제가 세류에 휩쓸려 그를 평가절하 한 적이 있으니까요. 그런데요, 땡큐와 외로워의 이야기는요, 선인장과 고양이의 사랑이야기만은 아니기에 마음이 아프고 절절하고 애틋하답니다. 우리도 바로 그런 사랑을 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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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마지막 70일
바우터르 반 데르 베인.페터르 크나프 지음, 유예진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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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불꽃같은 열정을 피워낸 반 고흐의 마지막 70일

- 바우터르 반 데르 베인 . 페터르 크나프, <반고흐, 마지막 70일>



반고흐가 이 생에서 보낸 마지막 70일이 궁금하다면 <반고흐, 마지막 70일>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이 책은 반고흐가 프랑스 오베르에서 보낸 마지막 70일에 관한 기록이다. 책에는 그가 지인들과 주고 받았던 편지와 70일 동안 작업한 80여점의 작품이 모두 수록되어 있다. 70일 동안 완성한 작품이 80여점이라면 하루에 한 편 이상의 작품을 탄생시켰다는 이야기인데, 이토록 놀라운 창작열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가 품었던 불꽃같은 열정과 마지막 삶을 추적할 수 있는 책 <반고흐, 마지막 70일>. 최근 그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그가 생을 마감한 오베르에서의 마지막 70일은 더욱 궁금증을 자아낸다.

 

안타깝게도 반고흐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곳은 프랑스의 오베르 쉬르 와즈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3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와즈 강변에 위치한 전원 마을. 그 곳 라부 여관에서 그는 1890년 7월 29일 3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오베르에서 머문 70일 동안 그는 약 80여점의 작품을 완성시켰다. 물론 그 때의 모든 작품이 완성도가 뛰어난 것은 아니다. 습작을 포함해 간혹 진위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작품까지 모두를 아우른 것이다. 습작이든 완성도가 떨어지든 70일 동안 80여점의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은 과히 놀랄만한 성과다. 반고흐가 오로지 그림에만 몰두했던 오베르에서의 마지막 70일을 만난다는 건 그래서 의미있다. 자살이든 타살이든 그는 오베르에서의 매일매일을 그는 성실히 살아냈다. 마치 기관차가 폭주하듯 그림에 대한 열정을 불살랐던 시간, 70일!

자신의 삶이 노동자나 농부들의 삶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그들보다 더 편한 생활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때론 생활고를 느낄 만큼 검소할 수 있었던 이유이며 그가 그들을 화폭에 담은 이유이기도 했다. 일찍 잠자리에 들 것, 술을 적게 마실 것, 정해진 시간에 식사할 것, 많은 시간 걷고 또 걸을 것. 그는 몇몇 규칙들을 세워 엄격하게 지키며 작업에 임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자신에게 내린 처방이기도 했다. 책에는 오베르에서 그린 작품 전체와 각각의 그림에 반고흐가 보낸 최후의 날들에 대한 묘사가 덧붙여져 있다(머리말 참조). 이것은 고흐의 작품과 삶에 한 발 짝 더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오베르 쉬르 와즈에서의 빈센트 반 고흐 - 반 고흐의 흔적을 찾아서', 2부 '오베르 쉬르 와즈에서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유화 작품과 습작- 전 작품 수록', 3부 '반 고흐 유작 계승자 요안나 봉허-기록 에세이'가 그것이다. 이 책의 작가는 반 고흐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의 오류에 대해 꼬집고 있다. 일명 '가난뱅이, 병자, 미치광이, 우울증 환자, 알코올 중독자, 성격 파탄자 등의 수식어에 고립된 사회부적응자, 거친 성격의 소유자, 실력을 인정받지 못해 살아 생전에 오로지 한 개의 작품밖에 팔지 못한 화가'(서문 참조)라는 인식 말이다. 나 또한 반 고흐를 비슷하게 평가해왔다. 그럼에도 그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그림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성실함 때문이다. 그림에만 올인한 삶. 그를 따라다니는 부정적인 이미지들을 상쇄시킬만큼 그가 보여준 그림에 대한 열정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몇 해전 우연히 읽게 된 <반고흐 영혼의 편지>를 통해 반고흐와 그의 작품을 더 눈여겨 보게 되었다. 모를 때는 그냥 보아 넘겼던 그림들이 그의 내면과 소통한 후에 고뇌와 환희에 찬 완벽한 작품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반고흐에 대한 존경과 갈망.

다시 만나게 된 반 고흐 이야기 <반고흐, 마지막 70일>은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생각을 조금 바꿔놓았다. 일평생 가난에 허덕이면서도 그림에 온 열정을 쏟아부은 불운의 화가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잘못 알고 있던 사실들을 바로 알게 되었다는 말이 더 적확하겠다. 미술 상인으로 부와 명성을 쌓은 동생 테오로부터 부족함없는 지원을 받았다는 것, 살아 생전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한 것이 아니라 테오가 그의 그림을 판매하는 판매책이었다는 것, 사후에 더욱 유명해지긴 했지만 살아 생전에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인정받았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책은 그가 지인들과 주고 받은 편지와 작품을 근간으로 이러한 사실들을 입증하고 있다. 작가는 오로지 화가의 작품과 사실적인 정보만을 토대로 그의 최후에 접근하고 있다. 어떤 짐작이나 추론을 배제시킨 채 오늘날까지 밝혀진 객관적인 사실에 바탕을 둔 반 고흐를 소개하고 있다.(책 참조) 이 역시 다른 각도에서 반 고흐를 해석하고 있는 반 고흐 전문가들에게 논란을 불러일으킬만한 소지가 있지만 저자들의 해석은 들어볼만하다. 기존의 상식에 반기를 들기 때문이다. '반 고흐 다시보기'를 시도한 책.

반 고흐의 집안은 대대로 목회자 혹은 미술 상인이라는 두 가지 직업군으로 양분화되었다고 한다. 반 고흐 역시 목회자로 일정 기간 몸담은 후에 화가로 전향했다. 그가 지인들과 주고 받은 편지를 분석해 보면 언급한 작가만 해도 무려 150여 명에 달하고 책은 200여 권에 이른다고 한다. 수천 점이 넘는 그림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영어, 독일어, 네덜란드어, 프랑스어로 읽고 쓸 수 있었다고 한다. 늘 새로운 발견에 목말라했던 대단한 독서광이자 그림에 대해 끊임없는 열정을 불살랐던 열성적인 화가이자 박학다식한 엘리트. 기행에 가까운 일화들이 부각된 나머지 그의 진면목은 상당부분 가려져 있었는데 책을 통해 만나게 되어 기쁘다. 오해로 점철된 위대한 화가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값진 수확. 곳곳에 흩어져 있는 그의 마지막 작품들을 한 권의 책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는 것 역시 특별한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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