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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마지막 70일
바우터르 반 데르 베인.페터르 크나프 지음, 유예진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불꽃같은 열정을 피워낸 반 고흐의 마지막 70일
- 바우터르 반 데르 베인 . 페터르 크나프, <반고흐, 마지막 70일>
반고흐가 이 생에서 보낸 마지막 70일이 궁금하다면 <반고흐, 마지막 70일>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이 책은 반고흐가 프랑스 오베르에서 보낸 마지막 70일에 관한 기록이다. 책에는 그가 지인들과 주고 받았던 편지와 70일 동안 작업한 80여점의 작품이 모두 수록되어 있다. 70일 동안 완성한 작품이 80여점이라면 하루에 한 편 이상의 작품을 탄생시켰다는 이야기인데, 이토록 놀라운 창작열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가 품었던 불꽃같은 열정과 마지막 삶을 추적할 수 있는 책 <반고흐, 마지막 70일>. 최근 그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그가 생을 마감한 오베르에서의 마지막 70일은 더욱 궁금증을 자아낸다.
안타깝게도 반고흐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곳은 프랑스의 오베르 쉬르 와즈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3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와즈 강변에 위치한 전원 마을. 그 곳 라부 여관에서 그는 1890년 7월 29일 3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오베르에서 머문 70일 동안 그는 약 80여점의 작품을 완성시켰다. 물론 그 때의 모든 작품이 완성도가 뛰어난 것은 아니다. 습작을 포함해 간혹 진위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작품까지 모두를 아우른 것이다. 습작이든 완성도가 떨어지든 70일 동안 80여점의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은 과히 놀랄만한 성과다. 반고흐가 오로지 그림에만 몰두했던 오베르에서의 마지막 70일을 만난다는 건 그래서 의미있다. 자살이든 타살이든 그는 오베르에서의 매일매일을 그는 성실히 살아냈다. 마치 기관차가 폭주하듯 그림에 대한 열정을 불살랐던 시간, 70일!
자신의 삶이 노동자나 농부들의 삶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그들보다 더 편한 생활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때론 생활고를 느낄 만큼 검소할 수 있었던 이유이며 그가 그들을 화폭에 담은 이유이기도 했다. 일찍 잠자리에 들 것, 술을 적게 마실 것, 정해진 시간에 식사할 것, 많은 시간 걷고 또 걸을 것. 그는 몇몇 규칙들을 세워 엄격하게 지키며 작업에 임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자신에게 내린 처방이기도 했다. 책에는 오베르에서 그린 작품 전체와 각각의 그림에 반고흐가 보낸 최후의 날들에 대한 묘사가 덧붙여져 있다(머리말 참조). 이것은 고흐의 작품과 삶에 한 발 짝 더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오베르 쉬르 와즈에서의 빈센트 반 고흐 - 반 고흐의 흔적을 찾아서', 2부 '오베르 쉬르 와즈에서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유화 작품과 습작- 전 작품 수록', 3부 '반 고흐 유작 계승자 요안나 봉허-기록 에세이'가 그것이다. 이 책의 작가는 반 고흐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의 오류에 대해 꼬집고 있다. 일명 '가난뱅이, 병자, 미치광이, 우울증 환자, 알코올 중독자, 성격 파탄자 등의 수식어에 고립된 사회부적응자, 거친 성격의 소유자, 실력을 인정받지 못해 살아 생전에 오로지 한 개의 작품밖에 팔지 못한 화가'(서문 참조)라는 인식 말이다. 나 또한 반 고흐를 비슷하게 평가해왔다. 그럼에도 그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그림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성실함 때문이다. 그림에만 올인한 삶. 그를 따라다니는 부정적인 이미지들을 상쇄시킬만큼 그가 보여준 그림에 대한 열정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몇 해전 우연히 읽게 된 <반고흐 영혼의 편지>를 통해 반고흐와 그의 작품을 더 눈여겨 보게 되었다. 모를 때는 그냥 보아 넘겼던 그림들이 그의 내면과 소통한 후에 고뇌와 환희에 찬 완벽한 작품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반고흐에 대한 존경과 갈망.
다시 만나게 된 반 고흐 이야기 <반고흐, 마지막 70일>은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생각을 조금 바꿔놓았다. 일평생 가난에 허덕이면서도 그림에 온 열정을 쏟아부은 불운의 화가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잘못 알고 있던 사실들을 바로 알게 되었다는 말이 더 적확하겠다. 미술 상인으로 부와 명성을 쌓은 동생 테오로부터 부족함없는 지원을 받았다는 것, 살아 생전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한 것이 아니라 테오가 그의 그림을 판매하는 판매책이었다는 것, 사후에 더욱 유명해지긴 했지만 살아 생전에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인정받았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책은 그가 지인들과 주고 받은 편지와 작품을 근간으로 이러한 사실들을 입증하고 있다. 작가는 오로지 화가의 작품과 사실적인 정보만을 토대로 그의 최후에 접근하고 있다. 어떤 짐작이나 추론을 배제시킨 채 오늘날까지 밝혀진 객관적인 사실에 바탕을 둔 반 고흐를 소개하고 있다.(책 참조) 이 역시 다른 각도에서 반 고흐를 해석하고 있는 반 고흐 전문가들에게 논란을 불러일으킬만한 소지가 있지만 저자들의 해석은 들어볼만하다. 기존의 상식에 반기를 들기 때문이다. '반 고흐 다시보기'를 시도한 책.
반 고흐의 집안은 대대로 목회자 혹은 미술 상인이라는 두 가지 직업군으로 양분화되었다고 한다. 반 고흐 역시 목회자로 일정 기간 몸담은 후에 화가로 전향했다. 그가 지인들과 주고 받은 편지를 분석해 보면 언급한 작가만 해도 무려 150여 명에 달하고 책은 200여 권에 이른다고 한다. 수천 점이 넘는 그림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영어, 독일어, 네덜란드어, 프랑스어로 읽고 쓸 수 있었다고 한다. 늘 새로운 발견에 목말라했던 대단한 독서광이자 그림에 대해 끊임없는 열정을 불살랐던 열성적인 화가이자 박학다식한 엘리트. 기행에 가까운 일화들이 부각된 나머지 그의 진면목은 상당부분 가려져 있었는데 책을 통해 만나게 되어 기쁘다. 오해로 점철된 위대한 화가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값진 수확. 곳곳에 흩어져 있는 그의 마지막 작품들을 한 권의 책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는 것 역시 특별한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