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아픈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 시인 김선우가 오로빌에서 보낸 행복 편지
김선우 지음 / 청림출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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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아픈데 없나요? 정말 행복한가요?
-김선우, 『어디 아픈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를 읽고

욕심을 부리지 않고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욕심이 없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바쁘게 살아도 늘 부족한 것 같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괜스레 불안해진다. 가끔, 아주 가끔은 무엇을 위해 사는지도 모를 때가 있다. 아등바등 살아도 충족되지 않는, 마음 한 구석이 텅 비어있는 느낌. 행복해지기 위해 일을 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치열하게 오늘을 살아내는데도 정작 행복하지 않다면 혹시 행복의 참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나의 행복을 억지로 끼워 맞추기 하려 한 건 아닐까.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꿈꾸는 곳이 있다. 물질이 아닌 내면의 평화와 영혼의 성장(p.16)을 추구하는 곳, 바로 오로빌이다. 인도 남부 코르만젤 해안에 위치하고 있는 영적, 생태 공동체. 인도의 사상가 스리 오로빈도의 신념에 따라 1968년 첫 삽을 떠 현재 전 세계 40여 개국 2천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모든 인간이 더불어 행복해지기를 꿈꾸는 곳. 불가능할 것 같은 이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는 곳. 실험과 도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 행복의 참 의미를 알게 해주는 곳. 경쟁이 아닌 격려의 장. 시기를 버린 배려의 장. 행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이 존중받는 곳. 가능성을 끊임없이 실험해볼 수 있는 곳. 이 지구상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곳, 그럼에도 이 지구를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는 곳. 그런 곳에서 시인 김선우는 묻는다. 어디 아픈데 없냐고, 당신 지금 정말 행복하냐고. 

프롤로그부터 밑줄을 긋기 시작해 책이 온통 밑줄로 가득해졌다. 이렇게나 많이 밑줄을 그은 책은 흔치 않다. 오로빌이라는 고혹적인 마을이, 작가의 매혹적인 필력이 밑줄을 남발하게 만든다. 지구상에 이런 마을이 존재하고 있다니. 신선한 충격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도 충만해 질 수 있는 곳. 일종의 유토피아, 일종의 무릉도원. 하지만 세상사 모든 일이 그렇듯 이 곳에도 반대급부가 존재한다. 김선우는 오로빌이 갖고 있는 긍정의 측면과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문제 요소들을 균형감 있게 다루고 있다. 오로빌로 오세요, 무조건 행복해질 수 있답니다, 가 아니다. 오로빌에서는 행복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책임과 희생도 따른답니다. 어쩔 수 없는 문제에 부딪히기도 하구요, 그러니 잘 선택해 보세요,라고 말이다.

모든 일이 똑같이 존중받고 대가 역시 똑같이 분배된다. 돈 없이도 살 수 있다고 하지만 돈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가령 자녀가 대학에 입학할 때나, 처음 이 곳에 정착하기 위해 집을 마련할 때). 여기도 사람 사는 세상이다. 각자의 삶이 다르다보니 경제적인 문제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일. 사람이 만들어가는 유토피아이므로 아이러니 역시 존재한다.

전체적으로 숲이 만드는 스카이라인보다 더 높은 건물은 보이지 않는(p.36) 곳에 살면 어떨까.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을 것 같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있을 것 같다. 오로빌은 말 그대로 숨통이 되어 줄 것만 같은 도시다. 이런 곳에서는 어떤 일을 하며 살까.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 뭔가 새로운 일이 하고 싶으면 그 일을 시작하면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의 직업 선택 기준은 자아의 발견, 실현보다는 돈이 우선시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오로빌에서는 그동안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일에 마음껏 도전해볼 수 있다. 그 속에서 자신의 잠재력과 가능성은 물론 생의 기쁨과 활력까지 되찾게 된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을 하든 문제될 게 없는 곳.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이 아닌 공동체를 위한 일이기에,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일이기에, 나아가 이 지구를 위한 일이 될 수 있기에 더 가치가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마음이 한없이 두근거린다. 무언가를 하고 싶어진다.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만 갔다. 왜 사냐고 자문해보게 되고,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해보게 된다. 정말 행복하냐고, 행복이 무엇인지 아냐고, 행복해지기 위해선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된다. 이렇게도 많은 질문을 던지는 책, 이렇게도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책. 그럼에도 한없이 충만해지는 이 책, 참 좋다!
 
- 어디 아픈데 없냐고 당신이 물어왔다. 괜찮아요,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아서 괜찮은 게 아니라 그냥 괜찮은 척 살아갈 뿐이다.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것뿐이다. 이제 그러지 않아도 돼요, 하고 당신이 어깨를 다독여준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세요,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예요.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을 들여다보세요. 실험하고 도전하세요. 하찮은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당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을 해도 가치가 있답니다. 당신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니까요. 내가 행복해야 당신도 행복할 수 있으니까요.

버리고 나면 가벼워진다. 내려놓고 나면 홀가분해진다. 이 당연한 이치를 왜 깨닫지 못한 채 살았을까. 나만을 위해 산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나와 남이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방법, 우리가 사는 이 지구별을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한 걸음의 실천. 모든 걸 버리고도 모든 걸 내려놓고도 충만해 질 수 있다. 충만(充滿)의 참 의미를 몸과 마음으로 느끼며 살 수 있다. 오로빌, 거기서라면 가능하다.

 



오로빌이 세계의 한 녘에 있어주어 고마운 이유,  

내가 오로빌을 좋아하는 이유는, 대세가 정해진 듯 보이는 세계에서  

다른 질서를 창조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치열한 노력 때문이다.  

그들의 치열함 속에 녹아 있는 선의와 우정의 연대와 포용의 느낌이 참 좋기 때문이다.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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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반 동안 그렇게 달이 뜨는 광경을 그렸다...

 

유난히 더운 여름날이 저문다. 들판에 나간 테일러는 밤에도 일할 준비를 한다.

근처 웨스트 버골트라는 이름의 마을 위로 달이 뜨고 있다. 테일러는 한 그루의 나무가 제공하는

풍부한 가능성으로 옮겨오기 전에는 4년 반 동안 그렇게 달이 뜨는 광경을 그렸다. 그러나 지금도

하늘에 달이 나타나는 그 정확한 순간을 잡아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달으며 놀란다.

달은 처음에는 머나먼 도시의 빛들 사이에 숨어 있다가 은근슬쩍 먼 숲 바로 위의 자리로 온다.

그때부터 작지만 강력한 점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달은 위로 올라가면서 계속 색깔이 변한다.

자주색을 띤 주황색에서 시작해, 10분 뒤에는 마젠타의 홍조가 사라지고,

마침내, 점점 검어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노란색은 눈부시고 순수한 하얀색으로 표백된다.

 

알랭 드 보통, <일의 기쁨과 슬픔> p.201,203

 

 

떠올려보려고 노력만 하면 그날의 풍경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까무룩 잊히고도 남을 법한 20여년 전의 어느 한 순간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는 건

내 몸과 마음이 조건반사할 수 있을 만한 아주 결정적인 순간이 아닐까 싶지만

그날의 풍경은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너무나도 평범한 보통의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달라질 것 없는 그 풍경이 처음으로 마음에 와닿았다. 그만 압도되고 만 것이다.

 

사춘기 소녀의 두 눈을, 온 세상을 압도하고도 남을 만한 엄청난 크기의 태양이

바다속으로 풍덩,하고 떨어지던 순간, 정말이지 한 순간!

언제나 하늘에 떠 있거나, 사라지고 난 후의 상황만을 보고 인지했던 내가

처음으로 바다를 향해 뜨거운 안녕을 고하듯 내려앉는 태양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애틋한 연인의 기나긴 작별의식 마냥 느릿하게 입수를 준비하던 태양이

바다와 맞닿는 순간

서서히... 나 느릿하게 기울어가는... 이라는 말은 더이상 어울리지 않을만큼 매몰차게 사라져버렸다.

한 순간, 정말이지 찰나의 순간,

태양은 바다속으로 빨려들 듯 사라져버리고 눈이 아리도록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약간의 허탈감에 젖어들었다. 동시에 놀랍도록 짜릿한 충만감을 맛보았다.

인간이 감히 흉내낼 수 없는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온 몸으로 받아들인 순간이었다.

 

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 중 part. six 의 '그림'편을 읽는 동안

오랜 시간 잊고 지낸 이 기억을 다시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려 볼 수 있었다.

스티븐 테일러라는 어느 무명의 중년 화가.

한번도 사람이 만든 것을 그리고 싶었던 적이 없었던 화가.

우리가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공감하고 상상하려고 노력을 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들,

말 그대로 미리 볼 수 없기 때문에 예측도 할 수 없는 자연환경(p.203)에 끌려

그의 온 시간을 자연을 관찰하는데 헌신적으로 몰두하는 화가.

치밀하고도 치열한 그의 작업방식 덕분에

누군가는 집 안 거실에 앉아 자연의 어느 일부를 실제인양 감상하고 감동받고 위로받을 것이다.

 

누군가의 말로도 누군가의 마음으로도 채울 수 없는 부분을 우리는 자연에서 채워나간다.

아닌 것 같지만, 이건 정말 사실이다.


그림을 그린 화가가 유명인이냐, 유명인이 아니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세상의 속도전에 떠밀려 앞만 보며 달려온 사람들에게

화가는 그의 온 시간과 정성을 들인 '자연'이란 선물을 내놓은 것이다.

자연이라는 것이 우리 가까이 숨쉬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것이다.

까마득히 잊고 지낸 나의 옛기억을 불러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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휙휙 던져버린다, 툭툭 건져 올린다!
그래, 거기! 버려진 욕망위에 피어난 불꽃같은 삶의 현장 꽃섬!
그곳은 진정 욕망의 하치장인가, 생(生)의 또 다른 시원인가.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낯익은 세상, 그럼에도 철저히 외면 받아왔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침내 거장의 손끝에서 푸른 불꽃이 되어 피어오르다!

-soulnote-

 

내가 도시 외곽의 쓰레기장에 주목한 것은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현재의 삶이
끝없이 만들어서 쓰고 버리는 욕망에 의하여 지탱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보다 더 많은 생산과 소비는 삶의 목적이 되었고
온 세계가 그것을 위하여 모든 역량과 꿈까지도 탕진한다.

 
- 황석영(작가의 말 중에서) -

 
*

 
세상의 속도전에 맞서다 보니 잊고 살아온 게 참으로 많은 듯하다.
개발의 뒤안으로 밀려나 소외받아온 우리의 역사이자 근원이 되는 이야기...
작가 황석영은 낯설게 여겨졌던 세상... 실은 매우 낯익은 그 세상을
'딱부리'와 '땜통'이라는 두 아이의 눈을 통해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서글픈 현실이지만 희망을 일구어가는 꽃섬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동안 우리가 잊고 살아온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새삼 일깨워준다.


그런데 말이지... 오늘 무심코 내다버린 것이 나의 허영심의 일부는 아니었을까...
그렇게 버려진 것들은 지금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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