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의 힘 - 조직심리학이 밝혀낸 현명한 선택과 협력을 이끄는 핵심 도구
박귀현 지음 / 심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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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개인이 모여 집단을 형성하고 집단은 협력하여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조직심리학자인 저자는 "어떻게 팀을 잘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며 인간관계부터 조직운영, 사회 정책까지 집단이 가진 힘을 설명한다. 공감과 소통이 필요한 지금 효과적이면서도 창의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해법을 찾는 이들에게 반가운 책이다.



​저자는 혁신적이면서도 생산적인 집단의 비결은 개인이 아니라 팀워크라 말한다. 사실 살아온 환경도 생각도 다른 이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각자의 경험과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이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조합하여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 내려면 엄청난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 따라서 다수와 소수의 역할을 파악하고 팀을 꾸려가려는 리더라면 우선 집단의 힘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저자는 "개인이 생각하는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집단 안에서 서로 토론하고 의사결정하는 과정은 눈에 보인다는 점"을 파악하고 집단심리학에 집중했다. 이와 관련하여 다양한 문화권에 속한 집단을 연구하고 관찰하며 리더십보다 서로 자유롭게 토론하는 분위기가 창의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양극화 시대에 필요한 집단생활 지침서를 제안한다. 



​집단 간 갈등이 해결하기 위해 다른 두 집단을 꾸준히 접촉한다는 것이 이상적이기는 하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이 책에 소개된 미국과 싱가포르 사례를 보고 나니 우리 사회에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희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세대 간 성별 간 등 사회적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다시는 보기 힘들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집단보다는 개인주의 성향이 점점 더 강해지고 타인에 대한 편견이 강해졌었다. 



​저자는 심리학 연구 결과를 토대로 '소셜 딜레마'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공동의 이득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솔직함이라는 최선의 전략을 설명한다. 서로를 향한 솔직함과 협력, 그리고 존중은 이제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 책은 집단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거나 최상의 팀을 이끌고 싶은 리더 모두에게 현명한 해결책을 건네줄 것이다.


영향력을 키워 본인의 지식이나 의견이 집단에 도움이 되게 하려면 남이 갖고 있는 공통된 지식과 의견을 알아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것을 폄하하지 않고 그것을 토대로 공통된 의견과 관점이 어떻게 본인의 지식 및 소견과 연관되어 있는지를 설명한다면 자신이 가진 전문 지식이 더 빛을 발할 것이다.
P.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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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은 총을 부르고 꽃은 꽃을 부르고 - 열 편의 인권영화로 만나는 우리 안의 얼굴들
이다혜.이주현 지음,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 한겨레출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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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인 인권. 국적이나 민족, 나이에 관계없이 적용되는 보편적인 지위와 자격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 곳곳에서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 책에서는 열 편의 인권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인권을 바라보는 시선을 들여다본다.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에서 청년, 학생, 노인, 아이, 장애인의 인권과 죽음과 고독사 등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들을 보여준다.



​사실 인권 영화를 떠올리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담고 있을 거라는 편견이 떠오른다. 우울하고 재미없고 다큐멘터리 같을 거란 생각에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개인적 취향으로 영화를 즐겨 보지 않으니 이 책을 통해 만난 영화가 내 인생의 첫 번째 인권 영화인 셈이다. 그나마 소개된 영화 중 <4등>은 영화 프로그램에서 다룬 적이 있었다. 당시 편집된 짧은 영상을 보고 성적을 위해 폭력이 정당화되는 현실에 씁쓸함을 느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타인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어릴 적 내가 살던 풍경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모습과 비슷했다. 사회가 각박해질수록 이웃의 안부를 묻고 아픔을 나누고 기쁨을 공유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타인을 배척하고 심한 경우 자신과 "다른 것"을 적으로 여기기도 한다. 연일 뉴스에서는 강력 범죄가 보도되고 경제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는 현실에서 각자의 안위를 살피기도 힘겨운 상황에 타인을 들여다볼 여유는 사치일 뿐이다. 그러나 소외된 이들이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책에 소개된 영화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세대 간 소통의 부재가 심해지면서 노인과 아동, 장애인과 같은 약자들은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받는다. 계층 간 갈등 심화로 소득 격차가 현격히 벌어지고 저소득 계층은 가난에 대해 공포감을 갖게 된다. 이런 사회에서 청(소)년들은 꿈을 포기하고 일찌감치 치열한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 밖에도 개인의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하거나 감시사회 속에서 불안에 시달리는 개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다양한 문제들을 이야기한다.



​솔직히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타인의 인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못했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다는 생각에 알면서도 외면했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활자보다 영상이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올 수 있다. 인권 영화에 대한 홍보가 더 많이 이루어지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자발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문화가 빨리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나 한 번만 안아주면 안 돼?"라는 질문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울 사람을 향한 애원처럼 들리기도,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손을 내밀지 않은 사회를 향한 고발처럼 들리기도 한다. 개인도 사회도 이 문제에서 구경꾼으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
p. 156


신연식 감독의 단편영화 <과대망상자(들)>은 거대한 농담 같은 영화다. 감시사회 속 개인의 불안을 과대망상과 연결 지으면서 처음엔 사람을 의심하게 하고 그다음엔 사회와 시스템을 의심하게 만든다. 보이지 않는 시스템을 의심하는 사람의 이야기 혹은 그런 사람을 과대망상자로 치부하고 배격하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인 이 영화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인 우리의 삶을 멀찍이서 관찰하도록 유도한다.
p.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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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일기
권남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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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스타벅스다. 회사를 다닐 적에는 출근길에 한 잔, 점심시간 후에 한 잔, 가끔은 퇴근길에도 한 잔씩 스타벅스 커피를 즐겨 마셨다. 그 당시 주머니 사정은 안중에도 없었다. 고단한 일상을 스타벅스 커피로 위로받는다는 핑계를 대며 커피 소비에 빠져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집에서 일하면서 한동안 스타벅스 커피는 끊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 동네에는 스타벅스가 없기 때문이다. 거리를 걷다 보면 한길 건너 보이는 스타벅스가 우리 동네는 없다. 가까운 경희대 근처만 해도 3군데나 있는 매장이 우리 동네는 하나도 없다니... 내 의지와 상관없이 스타벅스를 즐기던 삶은 과거로 사라졌다. 



​그렇게 지내온 지 얼마 후 코로나 사태가 벌어졌고 그로 인해 배달 산업이 활발해지면서 스타벅스도 딜리버리 서비스를 시작했다. 덕분에 요즘은 집에서 편안하게 커피를 즐긴다. 가끔은 매장에서 마시던 분위기가 그립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걸로 만족하고 있다.  



번역가로 익숙한 권남희 작가는 스타벅스에서 일을 한다. 그리고 <스타벅스 일기>에는 그녀가 만난 사람들과 일상이 담겨 있다.  깔끔한 공간과 적당한 소음은 원고가 술술 써지는 마법을 부린다. 오픈되어 있지만 사적 공간이 보장되는 스타벅스 안에서 그녀가 보내는 일상을 읽으며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동안 스타벅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낸다. 



​따스함과 유쾌함이 공존하는 그녀의 이야기에 얼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스타벅스라는 공간의 적당한 테이블 간격, 서로를 배려하기 위해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룰, 변함없는 커피 맛은 익숙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평범한 일상은 조금은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스타벅스라는 공간이 가진 매력과 사람을 향한 작가의 다정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일하시는데 시끄럽게 떠들어서 죄송합니다.” 아, 그 문제요. “(귀에 이어폰을 가리키며) 아닙니다. 이어폰 끼고 있어서 안 들렸어요.” “죄송합니다. 열심히 하세요.” “감사합니다.” 이어폰 껴서 안 들렸다고 하면서 그분이 나직하게 하는 말 다 듣고 대답한 아줌마. 옆에서 일하는 사람 시끄러울까 봐 아저씨는 내내 신경이 쓰이셨나 보다. 스벅에서 떠드는 사람은 많지만, 사과하시는 분은 처음 보아서 신선한 감동이었다.
p.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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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남은 시간 - 인간이 지구를 파괴하는 시대, 인류세를 사는 사람들
최평순 지음 / 해나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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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되자마자 제법 차가워진 날씨에 겨울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다시 봄이 찾아왔다. 12월에 이렇게 따뜻한 날씨가 있었을까.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날씨 때문에 매일 아침 날씨 예보를 유심히 살피게 된다. 오늘은 제법 많은 양의 비가 내리는데 일주일 후에는 영하 10도로 떨어진다고 한다. 정말 지구가 아픈 걸까.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상기후와 자연재난 소식은 지구 파괴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게 만든다. 환경 생태 전문 PD인 저자는 인간에 의해 파괴되는 지구촌 곳곳을 찾아 지구 위기를 외면하지 않고 함께 고민할 거리를 제시한다.


기후 위기에 이어 신종 전염병의 출현까지, 인간의 활동에 의한 전 지구적 변화가 연이어 나타나는 시기가 분명해졌다. 인간의 시대, 인류세가 명징해진 것이다. 인류세의 기점으로 유력한 1950년대까지 가지 않고 2019년 이후에 일어난 변화들만 놓고 보아도 세계는 큰 타격을 받았다. 기후 위기는 더 심각해졌고, 금방 종식될 줄 알았던 전염병은 변이를 거듭하며 인류사의 새로운 장을 쓰고 있다. 플라스틱을 비롯한 포장재 소비는 늘었다. 그런데도 인간의 지구 파괴에 대한 문제의식은 답답한 수준이다. 특히 대한민국은 지구적 문제 앞에서 갈라파고스라도 되는 양 사회 분위기가 무덤덤하다.
p. 8


그는 이 책을 통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왜 우리는 지구의 위기를 외면할까?" 사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구의 위기를 고민해 본 적은 없었다. 한여름 폭염에 시달린다던가 한겨울 한파 예보가 있을 때, 혹은 어느 나라의 재난 뉴스를 봤을 때 잠깐 기후 위기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뿐이다. 이 문제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건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에 치여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기후 위기와 과학 지식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불신을 이야기한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과학 교과서의 내용은 신뢰하지만 그 지식을 가지고 정책을 펼치는 기관과 정부에 대한 신뢰가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저자는 기후 위기 시대에 언론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기후 위기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또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조언을 듣고 텀블러를 사용하게 된 일화를 소개한다. 나 역시 가급적 텀블러를 이용하려고 애를 쓰지만 솔직히 쉽지 않다. 그나마 재택근무를 하면서 일회용 컵의 소비를 줄일 수 있는 정도다. 개인의 노력과 사회적 노력이 함께 실행돼야 하지만 우리 정부는 지난달 일회용품 규제를 철회하였다.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 결정에 실망스럽기만 하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얼마나 될까. 저자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과연 이 지구에 희망은 있는지 걱정이 앞선다. 이러다 일상화된 재난에 익숙하다 못해 무덤덤하게 되는 건 아닌지 두렵다. 지구 위기에 대한 개인과 사회의 관심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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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서의 일 년
이창래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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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람들은 순간을 살라고 조언한다. 끊임없이 미래나 과거를 보려 들지 말고, 그 모든 걸 더해 보지도 말고, 현재라는 풍성하게 무르익은 과일을 맛보라고들 한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하면 인간은 그 순간에 머물게 된다. 중독자처럼 자신을 속이고 포기해 버린다. 그 모든 달콤함이 썩는 것 외에는 아무 변화도 일으킬 수 없게 될 때까지.
p. 29


밸은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무엇으로도 위로가 될 수 없는 순간에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었다. 처음으로 나는 밸이 끝없이 끌어모아야 했던 에너지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그녀는 과거가 무너져 내렸기에, 현재가 계속 이어지도록 만들기 위해 온갖 에너지를 끌어모아야 했다. 나는 밸에게 몸을 기대고 웅크리며 그녀가 나를 안도록 했다. 최대한 세게 나를 꽉 안으라고 말했다. 필요하다면 날 뭉개 버려도 좋아. 밸의 힘은 놀라웠다. 그녀에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단순히 에너지 고갈의 연료라는 걸 깨달은 게 그때였다.
p. 128


한국인의 피가 아주 조금 섞인 20대 청년 틸러 바드먼은 어릴 적 가출한 어머니로 인해 언제나 마음의 결핍을 느낀다. 틸러의 아버지는 아내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 사랑을 베풀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알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 그러던 중 틸러는 해외 연수를 앞두고 중국계 사업가인 퐁을 만나게 되고 그의 사업을 돕기 위해 '낯선 세계'로 떠나게 된다. 소설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은 운명적 만남과 타국에서 보낸 일 년의 시간을 통해 떠나 버린 이의 여정을 그린다. 



​하늘 아래 외톨이처럼 느껴질 때, 쳇바퀴 같은 삶이 무의미하다 생각될 때, 나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갈망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종종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특히 지금처럼 어떤 이유로 절대 내 자리를 떠날 수 없을 때 더더욱 낯선 세계로의 여정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틸러가 아버지에게는 예정대로 해외 연수를 간다 말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퐁을 따라 떠나게 된 심리가 조금은 이해가 된다. 보잘것없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젊은 청년의 열망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틸러의 여정은 생각만큼 아름답지 않았다. 학대 속에서 노예처럼 취급받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틸러는 자신이 더 이상 순진하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그를 여전히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처럼 틸러가 보낸 시간이 그만큼 가치가 있었을까.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결핍 때문에 낯선 이들에게서 결핍을 채우려 애쓰는 청년의 모습이 그저 안쓰럽게만 느껴졌다. 나에게도 자유로운 삶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해외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가져 성공의 길로 가겠다는 포부도 있었다. 잊고 있던 기억들이 자꾸만 떠오르는 건 틸러에게서 느끼는 동질감 때문일 것이다. 방대한 양의 소설이지만 손을 놓을 수 없었던 <타국에서의 일 년>은 화려한 무역 도시들을 배경으로 틸러라는 인물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건넨다. 낯선 경험이 성장의 발판이 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선택한 결단이 하나 둘 쌓여 자아를 형성하고 혼란한 젊은 시절을 보내고 나면 어느새 확고한 자신만의 여정을 걷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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