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으로 옳다는 착각 - 누가 왜 가짜 과학을 만들고 퍼뜨리고 악용하는가
지바 사토시 지음, 김종현 옮김 / 부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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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를 졸업하고 수년간 연구실 생활을 하면서 '과학적으로 증명됐다'는 말에 믿음을 가지고 있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과학은 객관적인 근거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한 편의 논문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겪으며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진화생물학자인 저자는 과학적으로 옳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다양한 사례를 보여준다.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주장부터 범죄를 일으키는 유전자가 있다는 주장, 왼손잡이가 단명한다는 연구까지 시대도 분야도 다양하다. 단순히 유사 과학의 사례를 소개할 것이라 여겼지만 잘못된 과학이 만들어지고 받아들여지는 과정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다.


문제는 과학을 왜곡하는 것이 과학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정치권력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과학을 요구하기도 하고 미디어는 특정 과학자를 영웅으로 만들기도 한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함정이 여기에 있다. 객관적인 자료와 수치를 사용한다고 해서 그 자료를 선택하고 해석하는 사람까지 객관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며 평소 얼마나 쉽게 '과학적'이라는 단어의 함정에 빠져 있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인터넷에 등장하는 수많은 건강 정보도 전문가의 설명이라는 단서가 붙으면 더 신뢰하게 된다. 거기에 논문이나 통계가 덧붙여지면 의심이 줄어든다. 하지만 출처가 있다는 것과 결론이 반드시 옳다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무엇을 근거로 삼았는지 뿐만 아니라 그 근거가 어떻게 해석되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학적으로 옳다는 말의 함정에 빠지지 말자. 과학은 끊임없이 수정되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 또한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는 없다. 맹목적인 믿음보다는 왜 그것을 옳다고 받아들였는지, 그 과정에 다른 판단이나 이해관계가 개입되지는 않았는지 한 번쯤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과학을 제대로 믿기 위해 무엇을 의심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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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이의 해부학
애슐리 엘스턴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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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첫번째 거짓말이 중요하다>를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이번 책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누군가에게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준다면 그 순간 내 알리바이는 어떻게 될까. 두 여자가 서로의 필요 때문에 위험한 거래를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로 등장인물도 많고 과거와 현재의 사건이 얽혀 있어 처음에는 다소 복잡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각 인물이 현재의 모습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과거 사건의 관계가 하나씩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반전이 단순히 독자를 놀라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이 밝혀져도 기존 인물과 사건의 관계 안에서 설명되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앞선 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읽는 동안 의문스럽거나 불편했던 인물의 행동 역시 결말까지 가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범인의 정체는 예상 밖이었지만 뜬금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사건도 따로 놀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무엇보다 제목인 ‘알리바이’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사건을 관통한다는 점도 좋았다. 끝까지 읽고 나니 처음에는 불편했던 인물들까지 이해할 수 있었고 그래서 더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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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잊힌 사람들
발레리 페랭 지음, 장소미 옮김 / 엘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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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클러버의 2번째 책은 프랑스 소설 <일요일에 잊힌 사람들>이다. 간단한 책 소개와 제목만 봤을 땐 노인 요양원을 배경으로 한 잔잔하고 따뜻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읽을수록 이 소설은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쥐스틴은 요양원에서 만난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엘렌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에 특별히 마음을 기울이고, 그것을 하나씩 기록하기 시작한다. 현재의 쥐스틴과 과거의 엘렌을 오가는 이야기는 처음에는 서로 별개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여기에 쥐스틴이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뒤 조부모와 사촌과 함께 살아온 가족사가 조금씩 겹쳐지면서 소설은 생각보다 훨씬 여러 겹의 구조를 갖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었다. 시간과 인물이 계속 교차하고, 각 인물이 품고 있는 상처와 기억 역시 단순하지 않다. 특히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드러나는 관계와 선택들은 예상보다 훨씬 강렬했다. 몇몇 설정에서는 꽤 충격을 받았고, 인물의 행동을 어디까지 이해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는 부분도 많았다. 누군가의 선택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를 안다고 해서 그 선택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설정이 많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뒤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된 건 '기억한다는 것'이었다. 요양원에는 가족들이 찾아오는 일요일에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살아 있지만 누군가의 일상에서 이미 잊힌 사람들이다. 반대로 쥐스틴은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삶이 완전히 잊히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를 덮어둔다고 해서 그 과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말하지 않은 일, 오래된 상처, 가족 안에서 감춰진 기억은 사라지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남아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쥐스틴이 다른 사람의 과거를 기록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바라보게 된다는 점도 그래서 인상적이었다.


이 소설은 따뜻하기만 한 소설도, 반전만을 위한 소설도 아니었다. 사랑과 상실, 가족과 노년, 기억과 망각을 여러 사람의 삶을 통해 겹겹이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무겁고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도 많았지만, 을 덮은 뒤에도 한동안 인물들의 삶과 ‘기억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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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의 시대 - EBS 다큐프라임
EBS 다큐프라임 〈주식의 시대〉 제작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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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현재 대한민국은 주식의 시대이다. 주식의 'ㅈ'도 모르는 나조차 매일 아침 증권 뉴스를 챙겨보고 있으니, 주식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내가 처음 주식 계좌를 만든 건 7년 전이다. 우연한 계기로 노후를 위해 지금부터라도 우량주를 한 주씩 사두라는 조언을 듣고 시작했었다. 여윳돈이 있을 때마다 조금씩 사서 보유만 해서인지 지금은 수익률이 꽤 높은 편이다. 하지만 워낙 소액이었기에 노후를 대비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주식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시장은 오르는데 왜 내가 산 주식은 오르지 않는지, 팔고 나면 왜 오르는지, 손실이 난 종목은 왜 그렇게 팔기가 어려운지. EBS 다큐프라임에서 방영한 <주식의 시대>는 이 질문에 대해 종목이나 투자기법이 아닌 인간의 심리로 답한다. 이 책은 해당 2부작을 바탕으로 출간되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손실회피와 처분효과다. 사람은 수익이 난 주식은 이익을 잃을까 봐 빨리 팔면서도, 손실이 난 주식은 손실을 확정하기 싫어 계속 보유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과도한 자신감과 잦은 거래, FOMO까지 더해진다. 알고 보면 주식시장에서 반복하는 실수 중 상당수는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인지적 특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후반부에서는 시선을 개인에서 시장 전체로 넓힌다. 튤립 파동과 19세기 철도 버블, 닷컴 버블을 거쳐 현재의 AI 열풍을 살펴본다. 이 책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버블을 단순히 허황된 투기로만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철도와 인터넷은 투자 광풍과 붕괴를 겪었지만 결국 세상을 바꿨다. 기술의 가능성과 현재 주가의 적정성은 결국 서로 다른 문제라는 뜻이다.


이 책은 새로운 투자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투자 의사결정에서 인간의 심리가 어떻게 개입하는지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이 흥미로웠다. 나 역시 주식 투자에서 어떤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손실이 난 종목을 오래 들고 있는 행동이 단순한 미련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적 특성과 관련 있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결국 투자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 주식으로 돈을 버는 방법보다, 적어도 내 심리 때문에 돈을 잃는 일을 줄이는 방법을 생각하게 한 책이었다.


#도서제공 #주식의시대 #EBS #위즈덤하우스 #도서리뷰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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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의 후더닛
아사네 주지 지음, 김은모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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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냉동수면 실험에 참가한 일곱 명이 천 년 후 깨어났을 때, 한 명이 죽었다. 이들이 잠들어 있던 셸터는 외부인이 전혀 들어올 수 없는 완전한 밀실이다. 일곱 명 중 과연 누가 범인일까.


'천 년'이라는 시간은 가능성을 무한대로 열어 놓는 시간이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그 시간 동안 밀폐된 공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추리하는 과정이 꽤 흥미롭다. 소설의 주요 설정인 천 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스터리가 된다.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을 때, 눈앞의 인물만을 의심하면 되는지, 천 년이라는 시간을 의심해야 하는지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내가 좋아하는 추리의 방식이 후더닛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느꼈다. 사건의 동기는 때때로 내 기준에서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고(와이더닛) 소설 속 트릭은 내가 전혀 모르는 지식을 동원할 때도 있다(하우더닛). 하지만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을 떠올리며 의심하는 과정은 그 자체가 커다란 재미를 준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사건의 동기에는 그다지 설득되지 못했다. 작가가 진화생물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그나마 이해되는 면도 있었지만 결국 이 소설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역시 후더닛이었다.


다만 이 작품의 재미가 단순히 범인을 맞히는 데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사건의 진상이 조금씩 드러날수록 처음에는 단순한 배경처럼 보였던 ‘천 년’이라는 설정도 다른 의미를 갖는다. 냉동수면과 시간의 간극이 사건을 성립시키는 중요한 조건으로 기능한다는 점이 흥미로웠고,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알 수 없다는 점도 끝까지 쉽게 범인을 확신할 수 없게 만든다.


결말까지 읽고 나면 처음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밀실을 만들기 위한 장치처럼 보였던 ‘천 년’이라는 시간이 왜 필요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SF와 본격 미스터리가 결합된 설정이 낯설지 않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 중 누가 범인인가’를 끝까지 의심하며 읽는 것을 좋아한다면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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