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엘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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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1968년, 뉴욕 명문 대학의 신입생 기숙사에서 시작된다. 노동계급 가정 출신 장학생 조지는 코네티컷의 부유한 명문가 출신 앤과 룸메이트가 된다. 자신이 태어난 계급을 혐오하는 앤은 값비싼 옷가지를 주변에 나눠주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이상주의적 신념을 놓지 않는다. 조지는 그런 앤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서서히 가까워진다.


대학을 졸업한 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간다. 조지는 패션 잡지사에서 경력을 쌓아가고, 앤은 할렘에서 흑인 사회운동가 애인과 함께 활동을 이어간다. 그러다 1976년, 앤은 애인을 구하려다 경찰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앤은 모든 도움을 거부한 채 감옥 안에서도 재소자 처우 개선 운동을 이어갔으며, 조지는 오랫동안 이해할 수 없던 친구의 삶을 다시 들여다본게 된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대의 이야기는 낯설면서도 흥미롭다. 누구보다 다르고 누구보다 함께였던 앤과 조지의 이야기는 나를 혼돈과 광기로 어지럽던 시절로 데려간다. 추석 연휴가 지나고 독감과 장염으로 일어서지도 못했던 힘겨운 시간을 보내던 중 마주한 이야기는 여성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앤이라는 인물을 단순한 이상주의자나 광신도로 단정 짓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지의 시선을 빌려 앤의 신념이 어디까지 진심이었는지, 그 신념이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를 끝까지 열어둔 채 서술한다. 극명하게 엇갈리는 삶 속에서 두 청춘이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끝까지 앤을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녀의 삶을, 그 신념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어렵다.


600여 쪽에 달하는 분량과 1960~70년대 미국 사회 운동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다소 필요하다는 점은 이 소설에 접근하기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살아온 삶과 겹쳐보며 나에게도 이런 우정이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은 이들의 이야기에 조금씩 가까워지게 만든다.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오래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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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편해지는 갱년기 상담소 - 산부인과 전문의가 알려 주는 내 몸의 변화와 신호 80가지
카트린 샤우디히.카트린 지몬센 지음, 김현정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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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몸에 이상이 생기면 가장 먼저 의심되는 건 갱년기다. 슬프게도 이제는 갱년기를 가장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갱년기가 되면 여성으로서의 존재감이 사라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갱년기 이후에도 수십 년의 삶이 이어진다. 인생의 후반부를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갱년기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가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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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여성을 진료하고 팟캐스트를 통해 갱년기 이후의 삶을 이야기해 온 두 저자는 마지막 월경 이후에도 이어지는 삶을 건강하게 살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건강 문제의 막막함에 답하는 80가지 질문과 답변을 담고 있다. 갱년기는 언제 시작되는지, 폐경 전과 후는 어떻게 다른지, 호르몬의 변화가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차근차근 알려준다. 질문과 답변의 형식이라 처음부터 읽지 않고 궁금한 항목부터 찾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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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들은 갱년기를 무작정 참고 견뎌야 하는 시기로 설명하지 않는다. 우리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면 대처할 방법도 보인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제목 그대로 아는 만큼 갱년기가 편해질 수 있다. 원인 모를 증상 앞에서 막막함을 느끼는 여성뿐만 아니라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가족들에게도 유용한 지식과 정보를 전해준다. 특히 선뜻 묻기 어려운 호르몬 치료에 관한 설명에 눈에 띈다. 유방암이나 혈전증 위험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치료를 시작하거나 중단할 때 살펴야 한 점은 무엇인지 등을 과학적 근거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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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의 증상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누군가는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지고, 누군가는 감정 기복 때문에 힘들어한다. 그래서 주변의 경험담만으로는 내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다. 이 책은 증상 하나하나를 질문으로 나누어 답하는 방식이라 저마다의 상황에 따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막연한 불안감을 구체적인 질문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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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책이 모든 갱년기 증상에 대한 진료를 대신할 수는 없다. 증상의 정도나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치료는 달라지며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한 뒤 치료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다만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알고 진료실에 들어가는 것과 아무것도 모른 채 진료실에 들어가는 것은 분명 다른 문제다. 이 책은 그 차이를 만들어주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갱년기를 제대로 마주하고 이해한다면 훨씬 더 건강한 노년의 삶을 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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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으로 옳다는 착각 - 누가 왜 가짜 과학을 만들고 퍼뜨리고 악용하는가
지바 사토시 지음, 김종현 옮김 / 부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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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를 졸업하고 수년간 연구실 생활을 하면서 '과학적으로 증명됐다'는 말에 믿음을 가지고 있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과학은 객관적인 근거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한 편의 논문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겪으며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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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생물학자인 저자는 과학적으로 옳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다양한 사례를 보여준다.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주장부터 범죄를 일으키는 유전자가 있다는 주장, 왼손잡이가 단명한다는 연구까지 시대도 분야도 다양하다. 단순히 유사 과학의 사례를 소개할 것이라 여겼지만 잘못된 과학이 만들어지고 받아들여지는 과정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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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과학을 왜곡하는 것이 과학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정치권력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과학을 요구하기도 하고 미디어는 특정 과학자를 영웅으로 만들기도 한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함정이 여기에 있다. 객관적인 자료와 수치를 사용한다고 해서 그 자료를 선택하고 해석하는 사람까지 객관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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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평소 얼마나 쉽게 '과학적'이라는 단어의 함정에 빠져 있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인터넷에 등장하는 수많은 건강 정보도 전문가의 설명이라는 단서가 붙으면 더 신뢰하게 된다. 거기에 논문이나 통계가 덧붙여지면 의심이 줄어든다. 하지만 출처가 있다는 것과 결론이 반드시 옳다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무엇을 근거로 삼았는지 뿐만 아니라 그 근거가 어떻게 해석되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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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으로 옳다는 말의 함정에 빠지지 말자. 과학은 끊임없이 수정되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 또한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는 없다. 맹목적인 믿음보다는 왜 그것을 옳다고 받아들였는지, 그 과정에 다른 판단이나 이해관계가 개입되지는 않았는지 한 번쯤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과학을 제대로 믿기 위해 무엇을 의심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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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이의 해부학
애슐리 엘스턴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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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첫번째 거짓말이 중요하다>를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이번 책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누군가에게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준다면 그 순간 내 알리바이는 어떻게 될까. 두 여자가 서로의 필요 때문에 위험한 거래를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로 등장인물도 많고 과거와 현재의 사건이 얽혀 있어 처음에는 다소 복잡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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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각 인물이 현재의 모습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과거 사건의 관계가 하나씩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반전이 단순히 독자를 놀라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이 밝혀져도 기존 인물과 사건의 관계 안에서 설명되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앞선 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읽는 동안 의문스럽거나 불편했던 인물의 행동 역시 결말까지 가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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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의 정체는 예상 밖이었지만 뜬금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사건도 따로 놀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무엇보다 제목인 ‘알리바이’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사건을 관통한다는 점도 좋았다. 끝까지 읽고 나니 처음에는 불편했던 인물들까지 이해할 수 있었고 그래서 더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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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잊힌 사람들
발레리 페랭 지음, 장소미 옮김 / 엘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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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클러버의 2번째 책은 프랑스 소설 <일요일에 잊힌 사람들>이다. 간단한 책 소개와 제목만 봤을 땐 노인 요양원을 배경으로 한 잔잔하고 따뜻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읽을수록 이 소설은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쥐스틴은 요양원에서 만난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엘렌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에 특별히 마음을 기울이고, 그것을 하나씩 기록하기 시작한다. 현재의 쥐스틴과 과거의 엘렌을 오가는 이야기는 처음에는 서로 별개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여기에 쥐스틴이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뒤 조부모와 사촌과 함께 살아온 가족사가 조금씩 겹쳐지면서 소설은 생각보다 훨씬 여러 겹의 구조를 갖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었다. 시간과 인물이 계속 교차하고, 각 인물이 품고 있는 상처와 기억 역시 단순하지 않다. 특히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드러나는 관계와 선택들은 예상보다 훨씬 강렬했다. 몇몇 설정에서는 꽤 충격을 받았고, 인물의 행동을 어디까지 이해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는 부분도 많았다. 누군가의 선택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를 안다고 해서 그 선택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설정이 많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뒤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된 건 '기억한다는 것'이었다. 요양원에는 가족들이 찾아오는 일요일에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살아 있지만 누군가의 일상에서 이미 잊힌 사람들이다. 반대로 쥐스틴은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삶이 완전히 잊히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를 덮어둔다고 해서 그 과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말하지 않은 일, 오래된 상처, 가족 안에서 감춰진 기억은 사라지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남아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쥐스틴이 다른 사람의 과거를 기록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바라보게 된다는 점도 그래서 인상적이었다.


이 소설은 따뜻하기만 한 소설도, 반전만을 위한 소설도 아니었다. 사랑과 상실, 가족과 노년, 기억과 망각을 여러 사람의 삶을 통해 겹겹이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무겁고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도 많았지만, 을 덮은 뒤에도 한동안 인물들의 삶과 ‘기억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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