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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은 총을 부르고 꽃은 꽃을 부르고 - 열 편의 인권영화로 만나는 우리 안의 얼굴들
이다혜.이주현 지음,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 한겨레출판 / 2023년 12월
평점 :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인 인권. 국적이나 민족, 나이에 관계없이 적용되는 보편적인 지위와 자격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 곳곳에서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 책에서는 열 편의 인권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인권을 바라보는 시선을 들여다본다.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에서 청년, 학생, 노인, 아이, 장애인의 인권과 죽음과 고독사 등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들을 보여준다.
사실 인권 영화를 떠올리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담고 있을 거라는 편견이 떠오른다. 우울하고 재미없고 다큐멘터리 같을 거란 생각에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개인적 취향으로 영화를 즐겨 보지 않으니 이 책을 통해 만난 영화가 내 인생의 첫 번째 인권 영화인 셈이다. 그나마 소개된 영화 중 <4등>은 영화 프로그램에서 다룬 적이 있었다. 당시 편집된 짧은 영상을 보고 성적을 위해 폭력이 정당화되는 현실에 씁쓸함을 느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타인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어릴 적 내가 살던 풍경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모습과 비슷했다. 사회가 각박해질수록 이웃의 안부를 묻고 아픔을 나누고 기쁨을 공유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타인을 배척하고 심한 경우 자신과 "다른 것"을 적으로 여기기도 한다. 연일 뉴스에서는 강력 범죄가 보도되고 경제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는 현실에서 각자의 안위를 살피기도 힘겨운 상황에 타인을 들여다볼 여유는 사치일 뿐이다. 그러나 소외된 이들이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책에 소개된 영화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세대 간 소통의 부재가 심해지면서 노인과 아동, 장애인과 같은 약자들은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받는다. 계층 간 갈등 심화로 소득 격차가 현격히 벌어지고 저소득 계층은 가난에 대해 공포감을 갖게 된다. 이런 사회에서 청(소)년들은 꿈을 포기하고 일찌감치 치열한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 밖에도 개인의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하거나 감시사회 속에서 불안에 시달리는 개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다양한 문제들을 이야기한다.
솔직히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타인의 인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못했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다는 생각에 알면서도 외면했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활자보다 영상이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올 수 있다. 인권 영화에 대한 홍보가 더 많이 이루어지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자발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문화가 빨리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나 한 번만 안아주면 안 돼?"라는 질문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울 사람을 향한 애원처럼 들리기도,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손을 내밀지 않은 사회를 향한 고발처럼 들리기도 한다. 개인도 사회도 이 문제에서 구경꾼으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
p. 156
신연식 감독의 단편영화 <과대망상자(들)>은 거대한 농담 같은 영화다. 감시사회 속 개인의 불안을 과대망상과 연결 지으면서 처음엔 사람을 의심하게 하고 그다음엔 사회와 시스템을 의심하게 만든다. 보이지 않는 시스템을 의심하는 사람의 이야기 혹은 그런 사람을 과대망상자로 치부하고 배격하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인 이 영화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인 우리의 삶을 멀찍이서 관찰하도록 유도한다.
p. 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