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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
다카기 진자부로 지음, 김원식 옮김 / 녹색평론사 / 2006년 1월
평점 :
인간이 자연에 하는 짓을 보면, 때로 인류는 지구에게 재앙과 같은 존재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내가 존재하느라 파괴되는 많은 것을 생각하면(내가 생산해내는 그 많은 쓰레기들-칫솔질한 물, 코를 풀거나 화장실에서 쓰고 버리는 휴지, 낡아서 버리는 옷이나 신발, 그리고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폐기물-왜냐하면 원전에서 생산하는 전기로 불을 켜고 방을 따뜻하게 하고 물을 데우고 컴퓨터를 사용하고 음악을 듣고 전화를 하는 것이 내 생활이니까), 내가 빨리 사라져주는 것이 그나마 자연에 덜 죄를 짓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로운 존재라면, 지구는 인간을 왜 낳았을까. 인간은 지구에 왜 존재하게 되었을까. 인간이 지구에게 해롭다 하여 인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면, 그 역시 인간을 자연과 동떨어져 존재하는, 어떤 특별한 생명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이 가르쳐준 물음입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면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도 자연의 운동 방식 중 하나일 것입니다.
“(중략) 인간사회는, 생물사이클 중에서 동물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사회까지 포함해서 자연이 구성되어 있다고 솔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논밭을 갈고 삼림을 관리하는 일까지 포함해서 자연이 정상개방계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 옳은 것이다.”(159쪽) 이 대목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모노노케 히메]가 떠올랐습니다. 나우시카가 안간힘을 쓰고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 바로, 인간이란 존재지요. 쉽게 인간 혐오에 빠지지 않으려고 그토록 애를 썼더랬지요.
우리는 지금 생물의 공생을 뚜렷하게 적극적인 것으로 이해할 수가 있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생존을 의존할 뿐이라는 수동적인 공존이 아니다. 하나의 생물이 존재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다른 것에 영향을 주고, 다른 것으로부터 반응을 이끌어내고, 그러한 반응이 피드백하여 자기에게 다시 돌아온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다시 자신도 변화해간다. 이런 상호작용이 자신을 항상 새로운 것으로 창출하면서 하나의 유기적인 전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165-166쪽)
그렇다고 인간이 하는 일을 모두 긍정해버리자는 이야기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인간이 자연에게서 무언가를 얻기만 하고, 자연에다 돌려주는 건 순환되지 않는 쓰레기(원전 폐기물 같은, 정말 어찌할 수없는 쓰레기)밖에 없다면 공존 관계는 무너지고 맙니다. 우리는 자연을 마음껏 착취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란 걸 명심하고, 늘 공존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 삶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겠지... 그렇지요?
“땅을 기는 것, 하늘을 나는 것, 물에 사는 것, 풀, 나무, 돌멩이, 벌레, 병균 등” 그러한 모든 것이 우리라는 관점이다.(1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