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엄청 재미있어.

 

일본 작가의 단편인집인데 장르는 미스터리, 환타지, 공포, SF, 추리, 때론 엽기까지.

그런데 그 색깔을 말하자면 공포영화라기보다는 공포미스테리 환타지 만화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혹시 이토 준이치의 공포 만화를 본 적 있어?

그것과 느낌이 비슷하지만.. 음.. 공포만을 다루고 있진 않아.

 

이 소설들 중에서 보면 

아주 치밀한 플롯을 가지고 있어서 그 스타일이 "명탐정 코난"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추리물도 있고 ,

하이잭을 다룬 심리 모험 단편도 있고

미래 로봇이 주인공인 SF 단편도 있어.

 

중요한 건 그 어떤 단편도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는 거야.

기존에 알고 있던 어떤 스타일과도 꼭맞은 블럭을 가지지 않은거 같아.

이거 공포인가 싶으면 추리고, 추리인가 싶으면 심리스릴러이고, 심리 스릴러인가 싶으면 환타지이고...

장르가 고정되어 있지 않는거지.

 

원래 사람이란게 어떤 책을 보면 "음! 이책은 이런 장르고 아마도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겠구나.."라는 기대치가 있잖아.

사실 그 기대치때문에 소설이 지루해지는 면도 있고.

 

그런데 이 작품들은 중간까지 읽어도 다음을 짐작할 수가 없어.

그래서 한번 쥐면 손에서 놓기가 힘들어져버려.

사실 이렇게 몰입도가 높은 일본 소설은 최근에 처음 읽어봤어.

 

 

음... 이 소설들을 좀 더 난도질해볼까?

 

난 개인적으로 이 소설들에서 가장 뛰어난 점은 작가의 상상력이라고 생각해.

둘째는 단편 추리소설에서 볼 수 있었던 아귀 맞추기-독자 속이기-정말 잘 만든 점.

(그게 말이지.. 결과를 알고 나서 그 소설을 다시 처음부터 읽어보면 아! 하고 외마디 외침을 소리없이 지를 정도거든)

 

 

셋째는 이 소설들을 통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한 거야.

 

사실 이점은 나도 고민이 많이 되긴 해.

재미있다. 치밀하다. 글솜씨가 좋다. 상상력이 정말 발군이다. 이야기 진행이 유연하다. 결말이 공감이 간다...

많은 수식어를 정당하게 붙일 수 있는데 말이지.. 이소설들에..

 

근데.. 작가가 정말로 하고자 했던 바는 무엇이었을까?

독자에게 재미를 준다. 그것으로 끝!이라고 하기엔

이 소설들은 그냥 단순한 대중 소설의 느낌이라고 하기엔 공중에 붕~ 뜬 듯한 느낌이 있거든.

 

특히 로봇이 죽음에 대해 "감정"을 가지게 되는 단편 소설같은 경우엔 말이지.

정말 가슴이 짠~했어. 독백이나 대사들도 얼마나 마음을 후비던지!

하이잭을 다룬 단편같은 경우도 사실 결말이 일반 공포모험소설의 결말이라고 하기엔 너무 정도에서 벗어나 있거든.

(근데 그러면서도 주인공의 행동과 마음에 어쩐지 동화되어버리고 마는 거 있지)

 

한마디로! 작가는 독자의 감정을 가지고 놀 줄 아는 사람이야.

그것은 공포, 죄책감, 미움, 소외감. 공감.위안, 용서 등등 모든 보편적인 감정들을

마치 물결치는 파도위를 유연하게 운전하는 보더처럼 자유자재로 운전하는.. 그런거지.

 

바다의 생리와 파도의 움직임에 정통한 자가 아니라면 물위에서 놀 수 없겠지.

마찬가지고 그 역시 자기 스스로 수많은 감정의 질곡과 인생의 갈등을 경험한 사람이 아닌가 해.

그러니까 그렇게 공감이 가고 심도가 느껴지는 "감정의 절절함"까지 표현할 수 있는 거겠지.

 

쌍둥이들의 얘기나 죽은 애인을 찾아 헤메는 남자의 얘기, 그리고 우연히 7개의 방에 갖히게 된 남매 얘기를 봐도

"인간끼리의 소통"이나 "자기 내면과의 다툼"에 관한, "깜짝 놀랄 만큼" 밀착도가 높은 심리 묘사들이 등장하거든.

 

:그 심리 묘사의 형식이 치밀한 플롯에 의해 계획된것이든, 소박한 형태를 띠고 있건 간에..

전체적인 대중 소설의 느낌 속에 작은 포션으로 등장하는 그런 작가적 "감정의 포착"이:

그냥 공포환타지로 끝날 수도 있었을 , 그냥 재미있는 소설을

"좀더 공감이 가고 가슴을 저미게 하는" 그런 "깜짝 단편"(오헨리의 단편이 보통 그렇쟎아)으로 업그레이드 시킨 것 같아.

사실 "양보다 질"이잖아? 마치 평온함 속의 스파크가 인상적이듯이 말이야.

 

뭐 과도한 칭찬인가?..

사실 이 작가의 소설을 처음 읽어본 나로서는 작가에게 감탄을 하고 있지만

여러권을 접하게 된다면 나중엔 나도 작가의 성향을 깨닫고 소설의 결말을 짐작하게 될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음. 이 한권 속에서조차도

단편들은 한작가의 작품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형식과 내용과 전개 방식을 가지고 있어.

작가가 재능이 참 많은 사람이라는건 인정해야 할 것 같아.

 

 아! 나도 언젠가는 저런 글을 쓰고 싶다.

(가끔 등장하는 너무 끔찍한 부분들은 제외하고 말이지)

 

참!

이 책의 독자는 특히!

올여름 피서를 가면서 가져갈 한권의 책!에 고민하고 있을 남녀라면 더 좋겠어.

참기름처럼 술술 읽히거든.

단편이라 짧게 짧게 끝나는 것도 좋구 말이지.

 

 

참! 그리고 표지와 내부 디자인도 참 마음에 들어.

음침하지만 고급스러운 분위기. 뭔가 일어날 듯한 그런 분위기를 잘 표현한 것 같아.

아니.. 이건 내가 요즘 무채색과 은색을 좋아해서 일런지도...

 

 

재미있게 읽고나서 아무말 않고 있다가

딴 사람이 이걸 다 읽고 나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기대해보는 것도 좋을거야.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몰두. 또 몰두할지도.

(눈에 보이는 영상으로 진행되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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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인단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어이. 친구!!

저기, 그 작가 책 또 하나 봤다.

이 이사카 코타로라는 작가 있잖아. 그 허수아비랑 환타지 나오는.. 글 잘쓰는 천재 작가 말이야.

이번에는 전혀 다른 얘긴데.. 역시 재미있었어.

 

이번엔 환타지가 아니라 현실세계 얘기야. 이상한 세계는 나오지 않아.

그리고 전작처럼(오듀본의 기도) 복잡한 플롯은 없어. 아니 훨씬 단순한 이야기야.

그런데...

아! 왜 그 사실을 몰랐을까 싶은 반전이 엄청난게  있어.

역시 앞뒤가 딱딱 들어맞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야.

답을 알고 나면 "아 그랬구나"  싶거든..

아무래도 이 작가 소설은 추리 소설 다운 면모가 있어.

 

참 내용은 밝힐 수 없어.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잘 생긴 남자가 나오고 보너스로 흰 피부의 예쁜 여자도 나와.

그리고 악당이 등장하지.

내 생각엔..

작가가 악당, 그 중에서도 약한 자를 괴롭히는 인간답지 않은 악당을 상당히 미워하는 것 같아.

그런 자는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느끼는 것 같기도 하구.

 

이번의 악당은 "동물을 괴롭혀서 죽이는" 악취미를 가진 악당이야. 그것도 세명이나 말이지.

 

아 참 글을 쓰다 보니 이사카 코타로의 책이 재미있는 이유를 하나 알 것 같다.

"소년의 동심. 그리고 소년의 모험. 멋진 사람들에 대한 동경. 악당을 물리치는 권선징악적인 동화같은 결말"- 뭐 이게 전부는 아니지만, 분명히 내가 읽은 이사카 코타로의 책에는 이런 면이 있었어.

그래서 어린시절 읽었던 모험 동화나 소년 소설같은 느낌을 주고.(내가 그런데 약하거든)

 

단!!! 이 작가가 그것만으로 승부했다면 이렇게 감동과 충격을 줄 수는 없었을거야.

책을 읽은 독자 모두에게 말이야.

 

내가 생각하기에 이 작가가 칭송받아 마땅한 점은

아니 존경받아 마땅한 점은

아니  이 작가의 놀라운 점과 경악스런 점은

보편적인 그런 재미와 스토리의 전개를 연결하는 나름의 집념스러운 방식이야.

연출방식? 아니? 집요한 준비에 의한 치밀한 플롯과 복선?

아니 그런걸로만도 설명하기 힘들겠다.

 

여러명의 인물들이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평범하게 살아가면서 평범하게 느끼고 행동하는데

그런 개개의 군상들이 엮이면서 벌어지는 우연한 사건들을 결말로 연결해서 몰고가는 글솜씨?

 

 조금이라도 감상적이거나 허술한 면은 보이지 않아. 내용은 비록 감상적인 면이 있더라도  말이야.

마치 과학적인, 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실험의 토대위에 세워진

국문학적인 ,수사학이 화려한 , 한편의 시같다고나 할까? 

밑에서는 열이 펄펄 끓고 있는데

뜨거운 마그마 위에 지각을 세우고 차분하게 빌딩을 짓는 숙련된 건축예술가?

 

기교만 뛰어나다면 건축 기술사라고 묘사하겠지만 난 감히 그를 예술가라고 말하고 싶어

상당히 통합적인 예술의 묘미와 완성도가 느껴지거든.

개성이 뛰어난건 기본이구.

 

이러니까 뭐 과도한 칭찬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작가임은 틀림없어.

결코 이 작가 책을 읽으면서 지루해지는 일은 없을거야.

 

<<집오리와 들어리의 코인 로커>>라는 이 책.

왠지 현실 이야기이지만

그럼에도 전작인 <<오듀본의 기도>>에서 보았던 섬의 아름다운 자연의 향취가 풍겨오는 듯한 작품이야.

아마도 그 향취는 작가가 말하고픈, "인간이 인간다운것"일 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향기겠지.

 두 작품을 동시에 뚫고 있는건..

거창하게는 휴머니즘이고

작게는 "내가 남을 챙기고 사랑한다는 것"이니까 말이야.

 

시시한 러브스토리, 상투적인 러브스토리, 극적인 드라마, 엽기 코믹의 가벼움..

등등에서 멀리 떨어져

"이사카 코타로" 만의 세상에서

그가 만든 환상 세상을 보고 싶다면..

언제든지 책장을 열어봐.

 

같이 책을 읽고 이야기해본다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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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 살인
아르노 들랄랑드 지음, 권수연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엽기적 살인이 난무하고 자가 당착적인 의(義)의 논리가 엽기적 살인을 감싸고 도는 이 시대. 누군가는자신이 희생자가 아니라 희생자들을 구하기 위한 의로운 투쟁자라며  아무 이해 관계 없던 30여명의 타인들에게 총을 난사하기도 했다.

 

좀 더 크게 어떤 나라는 자신들이 세상의 정의를 실천한다며 타국에 군대를 보내 전쟁이라는 불구덩이를 그 나라 국민들에게 선사했다.

 

이 모든 것이..

다 자신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자기 당착적 논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옛날에는 그런 일이 없었을까?

나라가 아니라 작은 도시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예를 들면 근세의 베네치아에서는..

 

이 소설 <단테의 신곡 살인>은

작은 도시 베네치아에서 일어난

엽기적 연쇄 살인을 다루고 있는 추리 역사 소설이다.

물론 엽기를 보여주기 위한 소설은 아니다.

 

이 소설은 누가

어떤 의도로

왜 여러 명의 남녀들에게게 연쇄적인 살인을

그것도 엽기적 방식으로 하게 되었으며

그 자는 누구이고

결국 그자의 최후는 어떨지를

촘촘한 사건들의 연쇄고리 속에서

순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스터디 스릴러이다.

 

예측되는 살인의 연속 속에서

이 사건을 해결할 의무를 지고 있는 주인공의 미래도

알 수 없다. 누가 범인인지 감을 잡기 힘들다.

오로지 알 수 있는 사실은

"단테의 <<신곡>>"에 수록된 순서대로, 그 방식대로

누군가가 차례차례 엽기적인 참혹한 방식으로 살해될 것이라는 사실 뿐이다.

 

573페이지의 긴 소설이지만

그래서 이소설은 단숨에 읽힌다.

참혹함과 메스꺼움도 잠시.. 다음엔 과연 누가 희생자가 될지, 혹시 수사 와중에 단서가 보이지나 않을지.. 촉각이 곤두서기  때문이다.

 

자신이 탐정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소설을 읽어가면 좋을 것이다.

 

주인공만은 살아남아

사건의 결말을 상큼하게 보여주길 기도해도 좋을 것이다.

중간에는 결코 미래를 짐작할 수 없으므로..

 

촘촘한 거미줄의 덫에서 거미가 한발 한발 희생자에게 접근하는

그런 긴박함을 이 소설에서는 느낄 수 있다.

결코 경박하거나 가볍지 않은 방식으로

살인에 접근하고

그리고 살인을 정당화하고

..

나중에 범인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 놀라움이란!

 

추리소설 매니아라면 즐겨읽을 만한 소설.

특히 역사적 추리물이나 미스테리, 고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소설.

 

단테의 신곡을 따라 한 살인의 방식이라니..

그리고 그 책을 택한 이유가 "그러했기" 때문이라니..

 

결말을 밝힐 수는 없지만

인간이 한 행동을 하는데

어떤 논리적 자가 당착이 필요한지..

요즘의 세상사와 겹쳐서 좀

인간이라는 "지적인"존재가 씁쓸하게도 느껴지는..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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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 시간을 초월해 나를 만나다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고주영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지은이 기타무라 가오루 | 고주영 옮김
출판사 황매(푸른바람)
별점

 

 

참 아름다운 이야기...

 

 

리셋을 읽은건

이 소설이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겉표지의 문구에 호기심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감상적이고 진행이 느린 일본 소설에

왠 블록버스터 SF스타일의 설정인가 싶었다.

 

그런데 책을 읽는 내내

전혀 SF와는 상관없는

1900년대 전시 일본의 여학교 풍경이 느른하게 펼쳐지자

중간쯤부터 나른하게 졸리기 시작했다.

"이게 뭐지...역사 소설이 었나 본데?"

 

 

그러다가 갑.자.기.

마지막 80여페이지를 남겨두고

블랙홀로 빠져드는 경험을 했다.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나도 모르게 다시 책 앞부분부터 다시 읽고 있었던거다.

책을 덮고 나서도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었다.

 

 

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래.. 그랬구나.. 그래서 앞서 이런 일들이 있었구나.."

복선이 소설의 느른한 일상 속에 확고하게 제자리를 잡고 있었던거다.

그리고 작가의 어조도 확고하고 또 강경하게

그 스토리 속에서 보여지고 있었다.

난 이파리만 보다가 결국 나무를 통째로 본 격이었다.

 

 

작가는 왜 "리셋"이라고 제목을 정했을까?

작가는 왜 이런 스토리를 쓰고 싶어했을까?

왜 작가는 전시의 일본속 일본 사람들의 일상 생활과 감정을 묘사하는데 그리 많은 부분을

투자해야 했을까?

 

 

그 답은 이 책을 끝까지 읽다보면

편안하게 마음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우리가 그토록 증오했던 일제 시대의 일본인들을

옹호하지도 미워하지도 않고 있다.

그가 묘사하는 것은 그 시대의 "일본 사람들"이다.

그 어떤 편견을 뺀 바로 인간으로서의 일본 사람들 말이다.

작가는 제국주의, 극우주의, 천왕 숭배 등등으로 뭉뚱그려진 이미지인 당시의 일본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서사"했다.

내가 느끼기에

작가는 더 나아가 "오히려 그 시대 일본이란 나라로부터 국민들이 소외되었다"라고 느끼는 것 같다.

 

 

내일이 없었던 국민들

내일을 장담할 수 없었기에 아무것도 꿈꿀 수 없었던 사람들..

소중한 사람들과의 미래를 잃어버려야만 했던 사람들..

작가는 그들에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영원한 미래"를 가져다주고 싶었던거다.

할 수만 있었다면 말이다...

 

작가는 그래서

시대를 "리셋"했다.

과거의 사람들이 자라 미래로 가지만

미래에서 자란 나는

과거에 잃어버린 사람과 다시 만나게 된다.

내가 그사람과 가질 수 없었던

안타까운 과거의 순간들은

미래에 다시 피어난다...

 

 

작가는 이런 의도를

"시대에 대한 복수"라고까지 말한다.

보상. 복수. 아쉬움을 멀리 보내버리는 것.

헤어진 사람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맺어주는것..

 

 

일제 시대에 일본 사람들조차

많은 것들을 잃고 살았다는 것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저릿하게 느낄 수 있었다.

반성, 회의, 아쉬움, 형제애, 가족애, 사소한 아름다운 것들에의 집착, 갈등, 여린 마음들. 소중하게 느끼는 마음들...

 

 

한가지 더.

이 소설에서

여주인공의 입을 통해 표현되는 "조선"의 의미도 우리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뜻밖이다.

나이가 든 그녀는 이렇게 고백한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인생을 망친 사람들의 고통은 천재지변이나 전쟁이나 마찬가지인데

...여학생이었어.. 지금 생각하면 모르는것 투성이였어.. 전쟁중이었는데도 ....전쟁에 대해서도 몰랐어..

용맹스럽다고 생각했어.. 가슴이 두근거렸어.. 아시아를 서양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싸움입니다라고 하니 중국 사람도 필리핀 사람도 모두 우리에게 감사하고 있다고만 생각했어.

조선사람의 심정도 생각하지 않았어. 이겼으면 지금도 그랬을거야..."

 

여주인공의 반성의 말은 작가의 말이기도 하고 어쩌면 같은 생각을 하는 수많은 일본 사람들의 말일 수도 있다.

인간대 인간으로 생각해보 볼 때

우리에게 어려운 시절을 보내게 한 일본인도

나라를 떠나서 보면

그저 "본질적으로 인간의 약점과 아름다움을 지닌 보통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데올로기나 국수주의에 사로잡히지 않고 개별적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 색다른 소설은

순정만화같기도 하고

역사 소설 같기도 하고

추억의 소품 선물 세트 같기도 하고..

(1900년대의 엄청난 추억의 소품들이 복선의 미끼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런것은 외형적인 것이고

본질적으로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세련되고도 확고하게 표현하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의 정을 지키는 것.

유대감을 느끼는 것.

시간이 존재하는 한

몇 수십년마다 떨어지는  유성우처럼

시간이 존재하는 한 존재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

그 믿음의 끈을

이 소설은 영겹의 시간을 포괄하며

두 주인공을 통해

아름답고도 처연하게 표현해 냈다.

 

 

오로지,

감정을 격하게 표현하거나

어조를 높이지 않고도

일상 생활과

그들의 대화로

그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낸

이 작가의 작가적 역량이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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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ice 선택이 기회다
왕창 지음, 김택규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직장인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저서가 나왔다.

이 책에서 "커뮤니케이션"이란 "직장인들 사이의 의사(의지) 소통"을 의미한다.

: 개인과 직장, 상사 대 부하 직원, 회사 대 회사, 사내 연애로서의 남자와 여자 등등

직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관계 구성 요소들을 세밀하게 케이스별로 분석하는

다면적, 정치적 소통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을 처세술이라고 하기엔 내용의 밀도가 높고 메세지가 진중하다.

혹은 철학서적이라기엔 흥겹다.

카툰의 흥겨움이 오락 서적의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책의 이런 다면적 매력, 기발한 매력은 상황별로 간결하면서도 재미있고

책의 전체적인 상황의 그라데이션을 보여주는 19페이지의 스토리 만화북은 별미처럼 읽는 즐거움을 준다.

 

chapter 속 구체적인 상황 예시는 기존의 처세론적 저서에서는 보기 힘든

위험하고 선택적이고 구체적인 상황을 다루고 있으므로

읽고 버리기엔 아깝다.

 

예를 들면

"상사의 상사에게 상사를 고자질할 것인가?"

"이메일을 계속 사용하게 할것인가, 규제할 것인가"

"검은 돈을 줄것인가, 말것인가"

"직속 상사를 잡을 것인가, 고위 상사를 잡을 것인가"

"형편없는 대우를 받아들일 것인가, 말것인가"

 

 

더욱 특이한 것은 이런 내용을 전개하는 방식이

일종의 소설처럼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뮬레이션 스토리북"이라는 설정이다.

=>

"주인공 홍쥔은 큰 실수로 회사에서 나가야만 할 상황이 되면서

직장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난관에 진입한다...."

-> 그것을 헤쳐 나가는 과정이 바로 서바이벌 교과서 역할.

 

이 책의

단점이라면

너무나 창조적이고

너무나 독창적인 내용인 반면에

익숙한 설정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직장을 다녀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거기에다 중국을 배경으로 한 시뮬레이션이라 중국인이 주인공이고 라이벌도 중국인이다,

작가의 사상도 어느면에서는 중국적이다.

(엄청 계산적이고 실리적인

작가도 중국인이니까.

정서적으로나 용어적으로나

읽으면서 술술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특히 난 중국식 이름이나 지명만 나오면 헷갈리기 일쑤)

 

=> 기존의 처세술적 담론에서 벗어나 정치적인 면까지 고려하는 책이고

여기에서 작가의 시각은 중간자적이면서도 냉정하기 그지없다.

 

 

이 책에서 작가적 관점을 보여줄 수 있는 한 대목을 소개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공감이 가는 대목이었다.

(물론 예전에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원초적으로 비즈니스적이고 이성적이며 실무적인 저자의 일면을 보여주는

한 대목이다.

 

 

<인상적인 구절>

 

상사가 당신에게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살펴보자.

 

그는 당신이 직분과 책임을 다해 일하여 자신의 손이 돼 주길 바라고

자신이 이해못하는 상황을 제 때 보고 하여 자신의 눈과 귀가 돼주길 바란다.

 

또 자신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걸 도와 자신의 머리가 돼주길 바라고

자기 대신 말하고 비밀을 지켜 자신의 입이 돼주길 바란다.

 

당신의 상사는 머리셋에 팔이 여섯인 괴물도 아니고

천리안이나 밝은 귀를 가진 것도 아니어서

때로는 당신보다 약하고 위태롭다.

 

그럴때는 당신의 도움이 있어야 똑바로 서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상사가 당신을 그렇게 많이 필요로 할 때

두 사람 사이에는 동등한 교환의 기초가 마련된다.

이 순간 다시 살펴보면 그는 당신과 교환할 것들을 가지고 있을 테니

그가 기꺼이 치를 최대의 대가가 무엇인지 분석해보라.

그는 당신이 더 잘 일하게 하기 위해

당신에게 꼭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는 데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또 당신이 안심하고 일하도록 월금을 올려줄지도 모르며

당신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뛰어다니는 것을 허락할지도 모른다.

..

양쪽이 다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자신의 것과 상대방의 것을 바꾸기를 원하면

이론적으로 두 이석적 인간 사이에 반드시 이익의 평형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상사가 당신에게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대가로 치를지 분석해 내고,

그와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당신의 입각점과 의지할만한 조건을 마련하기만 하면

당신은 더 이상 그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피하지 않고

나아가 커뮤니케이션의 주도권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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