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가르침과 팔정도
월폴라 라훌라 지음, 전재성 옮김 / 한국빠알리성전협회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얘기하자면, 원제가 'What the Buddha Taught'인 이 책은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불교입문서이다. 물론 제일 유명하다는 것과 제일 훌륭하다는 것은 별개의 일이지만, 적어도 제일 쓸만한 것 중 하나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스리랑카의 스님이자 불교학자인 저자가 도통 불교의 기초가 없는 서양인들을 위해 영어로 집필한 책(초판: 1959년)이라는 특징은 이 책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원인이 됐을 뿐만 아니라 현대 한국의 젊은이/지식인들에게 보다 쉽게 읽히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이 책은 과거 [현대사회와 불교](한길사, 1981)라는 편역서의 제1부로 전재되기도 했고, 대원정사에서 [붓다의 가르침]이라는 제목으로 1986년에 출간되기도 하는 등 이미 여러 차례 국내에 번역소개된 바가 있다. 전재성 박사의 번역은 그 중 최신판이자 역자의 보충해설까지 포함되는 등 가장 신경을 쓴 판본이라는 특징이 있다.

책의 내용은 일단 철저히 근본불교에 기초하고 있다. 화엄이니 보살도니 정토신앙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근본불교 이론체계의 뼈대라 할 수 있는 사성제를 중심으로 무아, 명상 등에 대해 정리하고 있다. 저자가 대승불교를 모르는 것이 결코 아님이 분명하지만 초보자를 위한 입문서이므로 일단 근본불교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방식에는 전적으로 동감이다. 대승불교는 대단하고 심오할지는 모르지만 너무 어려워서 일반인들의 눈에 거의 헛소리로 오해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기초에 해당하는 근본불교 공부가 거의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대승불교(특히 선불교)에 바로 노출되는 경우가 허다한 한국의 통상적인 불교공부 체계는 분명 문제가 크다. 이 책과 같은 좋은 입문서로 기초공부를 튼튼히 해놓고, 기본개념부터 착실히 다져놓은 다음에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야지,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돈오돈수니 겉멋이 들어 로또 사듯 대박을 노리는 것은 석가모니의 위대한 가르침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돈오돈수니 화두선이니 하는 것은 일반인이 아니라 '상근기'만을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라는 것은 고금의 선불교 고승들이 수백 차례 강조하고 있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무슨 수필집처럼 술술 읽힐 정도로 말랑말랑한 것은 아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입문용 학술서적같은 정도의 난이도이다. 이보다 쉬운 책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불교(佛敎, 즉 하나의 종교나 교단이기 이전에 사상으로서의 붓다의 가르침) '공부'를 한번 해볼 작정인 독자라면 이 정도가 딱 맞는 수위인 것 같다. 다만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이 말해주듯 이 책은 그야말로 기초핵심만을 정리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며, 설령 그 엄청난 분량의 경전과 해설서들을 다 읽는다 해도 수행(실천)을 위한 이론적 초석 이상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 또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