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후 Yahoo 1
윤태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1999년 3월
평점 :
절판


70-80년대 사회현실과 그 격랑 속에 휘말려 신음하는 개인들의 이야기를 빼어난 솜씨로 직조해내 하나의 사회현상마저 불러일으킨 드라마가 있었다. 이름하여 [모래시계]. 태수의 사형집행으로 흐름이 멎었던 극의 시계와 달리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시계는 계속 흘러갔고, 이제는 속편이 나올 때도 되었을 법하다. 그 하나의 답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작품에 만화 [야후]가 해당하지는 않을까.

85년, 전두환 정권 후반기의 세 고등학생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2002년 월드컵 개막식까지 이어진다. 스토리의 첫날, 주인공의 아버지는 건물붕괴사고로 운명을 달리 하고 스토리의 마지막날, 두 주인공은 함께 세상을 등진다. 비극으로 시작해서 비극으로 끝나는 이들(주, 조연급 거의 모두가 하나하나 죽어간다)의 7년 세월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우리는 아직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만약 벌써 잊었다면 이 만화를 보면 된다. 86년 아시안게임, 87년 6월항쟁, 88 올림픽, 5공 청문회(노무현 대통령을 스타로 부각시켰던), 노동운동과 학생운동과 통일운동,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막가파, IMF 사태, 정권교체, 9.11 사건, 월드컵......

그 당시를 어리지 않은 나이로 살아헤쳐온 이들에게 마치 옛 사진을 뒤적이는 것 같은 효과를 주는 이런 사건, 사고들을 튼튼한 앨범처럼 잘 묶어주는 것은 주인공들의 개인사를 중심으로 짜여진 탄탄한 스토리다. 분명 처음부터 완전히 갖춰놓은 줄거리가 아닐 텐데도(99년에 시작된 만화인데 뒤에 가서는 2001년의 9.11 사건이 다뤄진다) 그 짜임새는 어지간한 장편소설만큼이나 안정감이 있다. 그냥 소설로 각색해서 출판해도 무난할 정도다. 여러 주인공들은 충분한 개연성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으며, 이야기 전개의 평면성을 방지해주는 시점의 교차도 준수하다. 한국 만화사에 있어 둘째 가라면 서러울 구성력의 대가인 허영만이라는 이름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렇다. 작가는 실제로 허영만을 가장 존경해왔으며 그의 문하생이기도 했다고 한다. 단지 그림체만이 아니라 스토리 구성과 '살아있는' 캐릭터 설정까지도 이렇게 잘 배웠다니 이만하면 수제자로 불려도 좋을 것 같다. 최근세사를 이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낸 한국만화가 그동안 몇이나 되었던가. 너무나 가까운 과거의 사회상을 다뤄야 하는 부담감을 덜기 위해 등장한 수경기(바이크)의 존재도 충분히 흥미롭고 적절했던 듯하다. 덕분에 S/F라는 말까지 듣는 것은 좀 과했다는 느낌이지만.

여러 모로 본작은 [모래시계] 이후, 혹은 [오, 한강!](허영만)의 계보를 제대로 잇고 있는 인상적인 시대극화다. 초반의 거칠고 덜 숙련된 그림체도 뒤로 갈수록 개선되었고, 맨마지막 부분에서 다소 다급하게 끝맺음을 한 듯한 느낌만 제외하면 전개도 20권 내내 거의 흔들림이 없다. 이 정도라면 TV 드라마나 영화의 원작으로 채택되기에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수경기만큼은 제작비 부담상 오토바이로 바꿔야 할 듯 싶지만.) 본작의 영상화에도, 또 작가의 차기작에도 모두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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